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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셀리안의 생일이 끝났다. 하루가 끝난지 한참이 지난 새벽, 어린 셀리안 크레이누는 안심했다. 용따위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않았다고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창문이 열렸다. 창문이 열리고, 새벽의 조금 밝은 하늘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런 착각을 주는 청년이 스며들 듯 나타났다.
[미안, 늦었어. 아 진짜~ 그 까탈스러운 녀석이 가지 말라고 어찌나 뭐라고 하는지.]
남자다운 얼굴, 다부진 체격, 온몸을 감싼 검은 옷- 어둠 속에서 목에 두른 천이 펄럭거린다. 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밝은 얼굴이다. 기뻐보였다.
[아, 이거 생각보다 쑥스럽네, 이름부터 다시 교환해야 하는 거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에 환희가 깃든다. 기쁜 듯, 절박한 듯 바라보며,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덩치 큰 사내가 기뻐 죽겠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
엔실렌, 흑안흑발의 소년- 윤하영 앞에서 노인으로 변했던 엔실렌. 그 모습이 너무 달라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채지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모습이 완전 다르니까. 어린 셀리안 크레이누 앞에 나타난 건 흑안흑발이란 점 빼고는 전혀 연령도 체격도 다른 청년이었다.
[내 이름은-]
[필요없어.]
청년의 등장에 셀리안은 창문으로 뛰어가 남자를 밀어낸다. 남자는 당혹했다.
[몰라.]
너 같은 거 몰라.
[너따윈 필요없어.]
남자의 얼굴 따위 보지 않는다.
[꺼져, 사라져, 나는 셀리안이야.]
나는 셀리안이야. 너 같은 거 모른단 말이야.
“하영?”
“예? 그, 그래서?”
“그는 폐하만이 하영을 살릴 수 있다고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어요. 미실랭 부대장도-”
“미실랭 부대장?”
“그 아이는 미실랭 부대장의 순찰을 따라왔던 거였는데... 사실, 하영이 있던 골목은 꽤 치안이 안 좋은 곳이라서요.”
미로 같은 골목길, 그때는 몰랐지만, 생각해보면 그곳은 왕궁 근처에서 가장 치안이 안 좋은 골목이었다. 암암리에 귀족들과 서민들이 어두운 거래를 하는, 셀리안이 그 뿌리를 뽑기 위해 일단은 지켜보고 있는 장소였다. 유지하는 척, 감시를 하며 몇몇 크고 작은 세력을 일소했다.
“미실랭 부대장도 폐하가 회복마법을 쓰시는 줄은 모르셨으니까요. 다만, 하영의 상처는 심상치 않으니 일단 왕궁 의사에게 보이는 편이 낫겠다고 했어요.”
그녀의 시선이 한순간 내 붕대께로 와닿는다. 여자끼리긴 하지만 너무 간소한 차림이라 조금 민망한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다 나은 상처를 또다시 그녀가 죄책감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다행히 히아신스는 금방 뒷말을 이어나갔다.
“다친 하영을 데리고 이동할 방법은 이동마법 뿐인데, 이동마법은 거리가 한정되어 있어서요. 저보다 미실랭 부대장이 이동 거리가 길어요.”
“미실랭 님한테도 신세를 졌네요.”
“후후. 하영이 인사를 해주면 기운이 나실 거예요.”
“기운이요?”
“그게... 일단 이야기를 계속 할게요..."
미실랭 부대장과 히아신스는 나를 데리고 왕궁의사에게 가기 위해 이동마법을 반복했다. 마침내 궁정 안까지 들어왔을 즈음에는 내 손이 너무 차가워져서 놀랐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이동, 마지막 이동일거라고 히아신스는 생각했지만 이동마법은 의원이 있는 방이 아닌 왕궁 도서관에서 다시 멈춘다.
"이동마법의 거리 계산이 잘못 되었던 모양이었어요. 한 번 더 이동하려는데, 폐하가 계셨어요. 폐하는 하영을 보고 놀랐고, 저희는 시간이 급박해 사정을 설명할 수 없었어요. 바로 다시 이동 하려는데 그 꼬마가 폐하께 다가가는 거예요.”
[이대로라면 윤하영이 죽어. 죽으면, 이 왕궁을 파괴하겠어.]
“미실랭 부대장도, 저도 당황했어요."
두 사람은 당황했고, 셀리안과 엔실렌이 마주본다. 셀리안은 엔실렌을 빤히 바라보았다.
[할 수 있잖아. 너라면 할 거야. 그렇지?]
[...]
[너는 다정한 녀석이니까.]
[다정한 녀석...이라고?]
그 말에 셀리안의 입가가 말아올라갔다. 물끄러미 엔실렌을 바라보다가, 히아신스와 미실랭쪽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정신을 잃은 내게 다가왔다. 무릎을 꿇고 나에게 손을 대었다. 셀리안의 회복마법은 무영창으로 시전 되었다. 히아신스나 미실랭이나 그 모습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셀리안이 치유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건 유명했으니까.
"..."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하던 히아신스가 침묵한다. 그 표정은 의아함과, 희미하게 두려움을 담고 있다. 두려움이라고?
"히아신스님?"
“아.아뇨... 하영을 치유하면서도 그 꼬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어요. 이상한 이야기지만, 저는 폐하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어요. 아마... 아는 사이였던 걸까요?”
[여전히 엄청 아는 척 해대는 불쾌한 생물이군. 네가, 세류 키스톤의 인외생물체였나?]
[이런 영광이네,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모습도 다를 텐데 바로 알아보다니-]
히아신스가 보기에 꼬마, 엔실렌은 어쩐지 기뻐보였다고 한다.
[내가 필요없다고 해서,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아, 필요없지.]
[?]
순간적이었다.
[!!]
[나에겐 필요없어.]
[너-]
방금 전까지 기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왕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인간으로 의태하고 있던 아이의 등 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졌다. 히아신스와 미실랭이 당황한듯 태세를 정비하면 셀리안은 치료마법을 계속 하며, 오히려 미소지었다.
미소짓고, 아이는 분노한다. 긴장되는 사태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것도 끝이 났다.
“그 꼬마가 쓰러졌어요. 왕궁의 흔들림도 멎었고요. 아무래도 폐하가 마법을 쓴 거겠지만-”
셀리안은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며, 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엔실렌은 인외생명체 전용 지하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히아신스나 미실랭이 국가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말렸지만, 그는 단호하게. 가장 깊은 감옥, 최악의 생물체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었다는, 오래된 감옥에 쓰러진 엔실렌을 쳐박아버렸다.
*
인외생물체를 가두는 감옥- 만든 건 몇십대 전의 왕이었다. 마력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왕가를 따르던 인외생물체들이 떠나가기 시작한다. 초대처럼 용을 다룰 수는 없지만, 지난 몇 대 동안은 비슷한 느낌으로 크레이누의 왕들과 지체 높은 인외생물체들은 계약을 맺었다. 그 전설적인 관계를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랬던 것이, 왕의 마력이 약화되면서 인외생물체들이 떠나간다. 떠나가는 인외생물체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만들었던 게 최초. 그것이 점점 뒤틀린 일이라고 생각한 제법 훌륭한 왕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생물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바꾸었던 게 다시 몇십대 앞-
"그래서- 미실랭 부대장이 워낙 정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조금 시무룩해있어요. 가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 아이가 어린애 모습인 것도 있고."
"..."
"해서, 아마 하영이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 하러 가주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요."
"네, 꼭 갈게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가 누워 있는 침상의 바로 밑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외생물체를 가두는 감옥은 성의 지하에 있었지만, 특히 강한 인외생물체를 가두는 방은 왕의 방 아래 쪽 지하에 있다. 왕이 떠나가려는 인외생물체를 가두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왕의 침실은 1층도 아니고, 그냥 같은 위치에 있다는 거지 바로 밑은 아니다. 그런데도 바로 밑에 엔실렌이 있는 것 같아서...
엔실렌-
“...류는...”
기묘한 느낌을 떨쳐내려 꺼낸 말이긴 했지만 일련의 이야기들과 이어지는 건 류였다. 앨리자베스 아카인을 데려가면서 그가 나에게 했던 말부터 그랬다.
[걱정마, 그 녀석-널 마음에 들어하니 절대 안 죽게 할 거야.]
그건 히아신스가 아니라, 엔실렌이 아니었을까. 미실랭 부대장의 순찰에 따라와 그 근처에 있던 엔실렌을 가르키던 거였으리라.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라...'
결국 엔실렌은 12살 셀리안의 생일 다음날 찾아왔던, 아마 용일 것이다.. 고대왕 에피룬 크레이누가 부렸다는 두 마리의 용 중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 그가 내게 한 행동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해가 간다.
그리고, 지금 그는 감옥에 있었다.
‘나를 회복시키며 희생시킨 건, 엔실렌인가.’
용이다, 죽지는 않았겠지만.
"류,세류 키스톤님은 이 일을 아시나요?"
"..."
"?"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만. 세류 키스톤...아니...”
히아신스는 조금 망설였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먹은 듯 입을 열었다.
“새삼스럽지만, 하영을 찌른 건 앨리자베스 아카인이 맞지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히아신스의 말로는 범인은 이미 특정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묻지 않았던 거라고.
내 옆에는 반으로 나뉘어진 아카인 가 호위의 시체가 있었고 그 골목에서 히아신스를 공격한 몇 명의 호위를 생포했다고 한다. 그들은 히아신스의 검은 머리를 나로 생각했다고, 자신들의 주인 아가씨가 흑발흑안의 여자를 발견하자마자 죽이라고 했다는 것을 실토했다.
“...당장 앨리자베스 아카인을 구금해야 옳습니다만.”
그녀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자세히는 이야기드릴 수 없지만, 현재 칼미온의 하녀 윤하영을 찌른 앨리자베스 아카인와 함께 그 남자 세류 키스톤이 실종되었습니다.”
“...”
“둘을 연결해 생각하는 게 하영으로서는 이해가 안 갈지도 몰라요. 그는 하영의 친구였죠?”
“...”
“하지만, 몇가지 조사한 바가 있어요. 그러니까 하영도 모쪼록,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으며 작은 보석을 건네준다.
“이 보석에 숨을 불어넣으면 바로 저나 엘킨 대장, 미실랭 부대장이 알게 된답니다. 부디, 부탁 드려요. 당신의 또다른 친구로서-”
그녀는 한동안 내 손을 잡은 채, 내 가슴께를 바라본다. 괴로워보이는 시선이었지만 더 이상 내게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저, 약간 지쳐보이는 표정으로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쉬세요. 하영- 하영의 옆에 있고 싶긴 한데...”
히아신스가 복잡하게 웃는다.
“오늘 아침부터, 성국에서 사절단이 찾아와서요. 별일은 아닙니다만, 이런 때에 피곤한 일이죠.”
또다. 또, 셀리안의 기억 속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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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초중고등학교 앞에 있던 횡단보도의 녹색어머니(?)들이 사라졌어요. 왜 사라지셨나 했더니 학생들은 방학인 것입니다으다으다으... 부릅뜨... 느무느무 부릅뜨...
에이리엘 님 // 언젠가 셀리안은 별로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는데... 혹시 아직도 그러신가요[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