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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붙잡혔다. 그녀, 어머니가 자신에게 직접 닿은 게 몇 년만인지.
“아아. 가여운 폐하.”
“...”
“감히 폐하를 의심하다니, 분수도 모르는 것들 때문에 다정한 폐하께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하면-”
여자는 작게 신음했다. 내 팔을 잡고도 송구스러다는 듯이 신음하고 결심한듯이 눈을 빛낸다.
“저는 알아요.”
“아신다고요?”
“그럼요. 저는 어린 날부터- 그 좁고 좁은 방에서도, 형제자매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멸시당하고 멸시당하면서도, 그, 폐하의 피를 일부 가졌다는 것밖에 장점이 없는 무능한 왕에게 모욕당하면서도- 몇 번이고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엘킨이 불안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 그는 분명 대충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머리가 빙글빙글, 녹아내릴 것 같아서. 이게 분노인지 슬픔인지 어이없음인지 수치스러움인지.
“그래도, 저를 버티게 한 건 폐하입니다! 폐하를 줄곧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다정하고 상냥한 폐하의 무용에 대해 들을 때마다-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폐하가, 폐하가 제 배를 빌어 이 세상에 나온 순간 전 구원 받은 거예요.”
“...”
“아아, 아름다운, 붉은 눈- 그 눈이 제 눈앞에-”
그녀는 과감하게 팔을 벌려 나를 껴안았다. 마치 큰 결심이나 한 듯 나를 위로한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그녀의 품에 안겨보고 싶었건만, 술에 취한 그녀에게 안겼던 12살의 생일날, 얼마나 행복했던가.
“폐하는 저의 태양이에요-”
“...”
“걱정하지 마세요. 폐하가 그런 표정을 지으실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눈동자는 광기에 차, 반짝이고.
“앞으로 몇 명, 몇 십, 몇 만이 의심하더라도- 성물은 당신 안에 있으니까요.”
이제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태어난 순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고-
56
히아신스에게 물어보면, 내가 쓰러지고 일주일 정도 지났다고 했다. 셀리안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을 때는 얼마나 지나있었을까, 시간 가늠은 되지 않지만, 어쨌든 몇 달이라든가 터무니없는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침대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상처는 다 낫긴 했지만 아무래도 걷는 것까지는 무리가 있었다. 일주일 동안이나 누워 있던 탓도 있으리라.
‘성국의 사절단.’
그것이 오는 건 셀리안의 생일 즈음이었다. 연달아 일어나는 추락사건, 마침 찾아온 셀리안 크레이누의 생일-
이게 기억 속에 없는 아주 새로운 방문인지, 아니면 기억 속의 그 날이 땡겨진 건지 알수가 없다. 아는 과거 속, 셀리안의 생일에는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다른 의도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만약 이번 방문이 오로지 그 다른 의도 때문이라면-’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계속 과거에 없었던 일들, 혹은 후에 일어나야 할 일들이 연달아 생기고 있었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생일 날 찾아왔던 용이 세류 키스톤의 인외생명체 엔실렌이라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아니, 세류 키스톤이란 남자 자체와 아예 인연이 없었다. 세류 키스톤이란 인물 자체가 사절로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아니아니, 노예마차가 애초에 이렇게 빨리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아카인 영애가 실종되는 사건도 없었다. 좀더 앞으로 간다면 아카인 영애는 산을, 별 장애 없이 그를 쟁취한다.
성국의 사절단이 찾아오는 일은 이 시기 없었다.
무엇보다,
차마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한달이 채워지기 전, 이 시기에 추락사건은 없었건만.
히아신스가 내 심장으로부터 피어나던 모습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이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의식을 돌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발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만은 알 것 같아.'
검은 용, 엔실렌을 이 지하 밑바닥에 가둔 셀리안의 마음만은-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고귀한 용을, 용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윤하영' 따위를 위해 희생시키고, 감옥에 가둔 건 심한 처사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그는 옳았다.
아카인 영애가 하루드와 관계 있고, 그 하루드에 소속되었을 키스톤 가의 차남이 영애를 데리고 없어진 만큼- 그 수상한 남자의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용을 가두는 건 타당한 처사다. 나에 대해서도. 용이니만큼 가장 희생이 적다. 그를 순간적으로 희생해 백성인 '나'를 구하는 것도 어쩌면, 어쩌면 옳은 일이라고.
셀리안 크레이누는 항상 옳았다. 미쳐버린 마지막의 마지막조차 그가 했던 행동은 다 옳았다.
'미치겠군.'
나는 내 가슴께의 상처를 쓸어보았다. 이 세계 자체인 용이 셀리안의 주술에 그렇게 맥없이 당한 건 그가 셀리안이 자신을 상처 입힐 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셀리안이 아무리 엄청난 마법왕이라도, 그렇게 쉽지는 않은 일이 가능했던 건 그가 셀리안을 은연 중에 믿었기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그럴리 없다고.
셀리안도 아마 그 믿음을, 알고 있었다.
[다정한 왕]
기분이 나빠진다. 이것은 셀리안의 기분이었고, 이 합리적인 일은 사실 하나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상처입히고 싶었던 것 뿐이겠지.'
[꺼져, 사라져, 나는 셀리안이야.]
어린애 같은 남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그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줄곧 내 안의 그와 다른 그가 견딜 수 없었는데- 셀리안의 기분이 짐작되는 순간 더없이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
그 날은, 히아신스가 가고 당분간 혼자 있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셀리안의 방이건만 셀리안이 찾아오지도 않았고, 단지 끼니 때 죽을 가져다 주었던 하녀가 다시 왔다 갔던 것뿐이다. 어느새 창밖은 완전히 어둑했졌지만, 셀리안은 밤이 되도록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할 생각일까.'
나를, 엔실렌을, 그리고 앞으로를-
한 번 내가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엔실렌을 가둔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의 그는 평상시와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물론, 나도 그저 히아신스가 걱정되고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아 제정신이 아닌 채로 그를 보긴 했지만, 적어도 그는 순간적인 심술은 부릴지언정 이성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용은 그를 순간적으로 화나게는 해도, 그를 바꿔버릴 정도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정도일 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조금 걸어보았다. 오전에는 간신히 침대 기둥에 서서 버티는 게 다였지만, 이번에는 과감하게 발을 내딛었다. 간만의 움직임에 약간 비틀거렸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오래 누워 있던 탓이라고 암시하며 발을 내딛는다.
‘허리도 좀 아픈 것 같네.’
천천히 걸어 문앞에 당도한다. 가만히 문을 밀어본다.
나가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답답해서, 동시에 혹시나 하고.
"아, 역시-"
열리지 않는다. 히아신스도, 드나드는 하녀도 별 문제없이 열고 닫았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푸핫-”
오늘 따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셀리안 크레이누’와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다. 실제 그는 내 앞에 코빼기도 안 비치건만.
셀리안 크레이누는 왕으로서는 자애로웠다. 자애로웠지만 왕은 왕이다. 그의 말대로 왕이란, 이 정도의 왕이란 지독한 악당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는 결벽적이었고 철저했다. 그가, 검은 용 엔실렌과 세류 키스톤이 관계 되어 있는 나를 방치할 리 없다. 그렇다고 히아신스의, 그 이상할 정도로 과분한 호의를 받고 있는 나를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나를 지키겠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허세야.'
그 남자는 나를 감시하면서도 지키는 것으로 제 방에 가두는 걸 선택한 것이다. 어떤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가 허락한 몇 명만이 열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은 아마 나를 데리고 나간다는 건 일단 생각도 하지 않겠지.
“에휴.”
그가 나를 걱정하고 치유한 것도 사실이지만 액면 그대로 그뿐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건 순수하게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침대로 돌아가 걸터 앉았다. 간만에 걸으니 힘도 없었고, 짐작이 가는 이상 그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셀리안의 방에는 거울은 없지만, 황금으로 도금된 벽에는 내가 비춰진다. 조금더 왜소해진 여자가 가슴에 붕대를 감고 흰 속바지만 입은 채 커다란 침대에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얼른 오면 좋을 텐데.’
일주일이나 잤다는 게 실감은 나지 않지만, 다시 자기도 뭐하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와, 그의 얼굴을, 그의 감정을 확인하고- 내 이야기를 하고, 다시 일상이든 뭐든 결정을 하고 싶었다.
*
결국 그날 셀리안 크레이누는 나타나지 않았다. 멍하니 왕이 제 방으로 복귀하길 기다리다 까무룩 잠이 잠이 든 건 새벽녘이었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꿈을 꿨다.
그것은 전생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엘킨에 대한 꿈도 아니었다. 조금 이질적인 광경이다.
감옥이다. 새까만 감옥, 왕궁의 가장 깊고 깊은 곳, 그 속에 어린 아이가 새하얀 쇠사슬에 묶여 있다. 인간의 피부로 둔갑해 있던 피부는 새까만 콜타르를 뒤집어쓴 것처럼 반즈음 녹아있다.
“흉한 꼴이군. 파괴의 검은 용이 기껏해야 인랑이나 잡아두었을 이따위 감옥에 갇혀 있다니.”
셀리안의 목소리가 울리고, 새까만 감옥에서 새하얀 빛이 빠끔히 열린다. 어린 아이, 엔실렌이 고개를 든다.
“그 모습은 둔갑인가 했는데, 이 지경이 되어도 유지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둔갑과는 다른 걸까. 학구열이 불타는 걸.”
셀리안이었다. 그는 여느때처럼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평상시에 입는 하얀 색 가운을 걸친 가벼운 차림으로 척척 그에게로 다가갔다. 엔실렌 바로 앞에 쭈그려 앉아 무감하게 그를 본다. 가벼운 말과는 다르게 시선이 탁하다.
반면 엔실렌의 눈빛은 복잡했다.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다.
“용의 기란 대단하더군.”
“...”
“성국의 사절단이 꽤 재미있는 꼬투리를 잡고 있어서 말이야. 누구누구씨가 일으킨 추락사건 덕분에 그 꼬투리에 대한 명분도 세우고 있고.”
셀리안의 손이 엔실렌의 머리에 닿을 듯하다가 그의 녹아내리는 피부에 더럽다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성스러운 기적으로 시선을 끄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
“신전에 성국의 사절단이 도착하는 순간, 기적처럼 왕성 내부터 광장 부근까지의 환자들이 전부 병이 낫는다- 휘유, 내가 생각해도 엄청났는데-”
용이란 정말 쓸만하다며 셀리안은 키득키득 웃으며 일어났다. 그 붉은 눈에 스민건 옅은 광기였다. 다만 엘킨 때와 다르게 매우 냉정하게, 그는 엔실렌에 대한 근원모를 미움에서 파생한 광기를 제 입맛대로 통제하고 있었다.
“세류 키스톤- 그 남자가 어디 있는지 실토한다면 너는 풀어주지.”
“...”
“흠, 풀어줬다가 왕궁에 해를 입히는 것도 좀...”
셀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가 한 말을 고민하고 있으면, 엔실렌이 입을 열었다.
“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지금 내 주인은 그 녀석이니까.”
“그렇게 애원하더니, 꽤나 가벼운 용이군.”
“...하지만, 이름...”
“...?”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래, 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모두 없는 걸로 해줄게. 인간 따위 정말 싫지만 이 나라도, 그래- 손끝 하나 대지 않을 테니까. 기도 빌려주지, 옛날처럼- 네가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류 녀석, 의외로 방임주의니까 잠시간 나는 너를-”
엔실렌이 고개를 든다. 그의 검은 눈이 애원하듯 셀리안을 바라보았다. 셀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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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하철의 델리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 따끈하고 쬐끄만 슈크림스넥의 칼로리를 고려하지 못하는가... 라는 고뇌...(<<)
결론은 냠냠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추코는 사랑입니다! 라고, 이 말이 되게 절실하게 하는 말이란 걸 글을 쓰면 쓸수록 깨닫게 됩니다.;ㅁ; 감사해요!
에이리엘 님 // 그렇군요. ㅎㅎ 여자애들은 다 BL을 좋아해★라고 생각하는 사촌 남동생에게 이야기해줘야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