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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구만-”
“뭐가요?”
새빨개진 얼굴을 식히고 있으면 진은 벽으로 돌아갔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고,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그 뒤를 물었다. 그 내용은 의외로 나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근처에 둘이나 있다니 기묘하잖아.”
“...셀리안이... 이 근처에 있나요?”
그렇다면, 불완전할지언정 마법은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쩌면, 엘킨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나는 셀리안의 바로 앞에 당도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좋았을지 나빴을지 헷갈리지만, 조금 놀랍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마법과 전혀 인연이 없는, 심지어 이곳에 와서도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아아, 아마도 이 방 건너편 복도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 오기 전에 거기 있는 걸 봤거든, 이라고 진이 덧붙였다.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에게 떨어져 하녀의 방을 빙 둘러, 다시 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뻘쭘하게 그를 보았다.
“...진은 여기... 렌, 그러니까 엔실렌을 찾으러 온 건가요?”
엔실렌은 이 왕궁의 지하에 갇혀 있고 진은 무얼 찾고 있다고 했다. 여기가 뭐, 그 감옥이랑 연결되는 비밀통로? 같은 게 있는 방이고 그걸 찾아 진이 지금 벽을 만지고 있다거나... 그러나 진은 무관심하게 도리질친다.
“아냐, 렌은 알아서 오겠지. 그 놈 멋대로 설치다가 잡힌 거니까, 알아서 탈출 할 거야.”
“...”
검은 콜타르와 함께 녹아가는 엔실렌. 그는 여전히 무섭고 밉살스러웠으며 마지막에 그는 이 왕도를 망가뜨리겠다고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그 모습은 마음에 걸린다.
“...그, 이런 말은 이상하지만. 엔실렌 꽤 심한 상태였어요.”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꿈속에서 봤다고?
‘가능하지 않을까.’
나를 엔실렌의 기로 치유했다면 그 기가 연결 뭐시기 되어서 엔실렌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엔실렌은 황제의 방 밑에 있을 테니까.
“괜찮아.”
“...괜찮은 건가요?”
“아아, 괜찮아. 자업자득이고. 그걸로 죽으면 웃기긴 하겠네. 그나저나, 그 지경에서도 너를 불렀단 말이지.”
“어?”
“본 것 같이 이야기했잖아. 그 놈은 어리광쟁이니까, 황제가 냉정하게 대하니 너를 불러 응석을 부린 거지. 진짜, 모습이 애라고 정신도 애냐. 진짜, 바보야.”
진은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다가 무언가 발견한 듯 벽의 한 면을 만졌다.
“뭐해요?”
“찾는다니까, 찾았지만.”
꾹 벽을 누른다. 벽을 누르자, 그 부분부터 벽이 밀리고 작은 구멍이 나타났다.
*
진이 구멍에 눈을 댄다. 나는 기묘한 상황에서, 저거 복구는 되나, 하는 멍한 생각을 하며 그가 하는냥을 지켜보았다. 조금 망원경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안에 뭐가 있는 걸까.
“우웩.”
“왜 그래요?”
“잠깐, 일단 빼보고.”
그가 구멍으로부터 눈을 떼고, 손을 든다. 역시 섬세하고 아름다운 손이었다. 그 손에서부터 눈에 보이게 붉은 기운이 얼기설기 피어난다.
“!”
피어난 붉은 기운에 어느새 그의 손이 기묘하게 변형했다. 긴 금색 손톱이 흉악하게 솟아나고, 팔은 마치 파충류의 팔처럼 붉은 비늘이 돋아 기괴할 정도로 커진다.
용의 팔이었다.
“역시 진은 용이군요.”
“용인데?”
역시 용이었구나. 붉은 용. 엔실렌이 검은 용이었단 걸 안 순간부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류는 하루드의 수장인 거죠?”
직접 대면은 없었지만, 전생의 셀리안은 하루드의 수장에 대해 몇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자가 두 마리의 용을 부리는 현재의 주인이란 것까지도 알아냈다.(지금의 그는 모르겠지만) 하루드를 거진 무너뜨린 후에도 수장 자체를 쉽사리 제거하지 못한 것은 이 둘이 세계에 반항하고, 셀리안을 방해하며 그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장이란 남자만은 끝까지 보지도, 죽이지도 못했다.
‘그럼 류가 세류 키스톤이라는 것도 거짓말인가.’
셀리안이 엘킨의 여동생이 있었던 그 나라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완전히 하루드는 끝장이 났다. 수장이란 남자의 잘려진 한 쪽 팔과 다리도 회수했다. 하지만,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실종, 그 후로 남자는 셀리안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하루드는 무너지고, 남자도 역사에서는 완전히 그 이름을 지운 것이다.
“응?”
진이 구멍으로 팔을 돌진시킨다. 눈으로 간신히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구멍인데 진이 팔을 뻗는 순간 공간이 찢기듯 진의 팔을 받아들인다.
그는 눈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끄집어내는 순간 지독한 냄새가 난다. 고기가 썩는 냄새였다.
“아아, 뭐라고 했지? 하루드...라고? 응응, 그런 것도 하는 것 같긴 했어.”
역한 냄새는 그가 손을 밖으로 뺄수록 심해진다. 나온다. 무섭다. 뭐가 나오는 걸까.
“...역시. 근데 그 외에 다른 것도 있나요?”
“잠깐만-”
진이 벽에서 완전히 손을 빼자, 벽은 다시 평범한 벽이 된다. 금간데도 없고, 검은 구멍도 없었다.
구멍을 빠져나온 진의 붉은 손에 무언가 잡혀 있다. 그가 손을 폈다.
“...윽-”
“토해도 이해해, 단 치우는 건 아가씨지만.”
“안...해요.”
그의 손에 있는 건 고깃덩어리다. 검게 썩어서 변색된 건조물 같은 고깃덩어리에 얼기설기 갈색 머리카락이 늘러붙어 있다. 머리카락이 있다는 건- 머리일까. 썩어 비틀어진 머리-라고 생각하자 속이 울렁거린다.
‘우와, 순수하게 울렁거릴 만한 것 때문에 뒤집어지는 건 오랜만이네.’
나름 신선하다면 신선한데. 대체 저런 게 나오는 방은 어떤 방이야.
진은 그 고깃덩어리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의 은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어디 갔지?”
“...뭐가 더 있어야 하나요?”
“있어야 하지. 뇌의 일부가 없어.”
“...뇌가 뭔지 구분이나 되나요?”
그냥 말라 비틀어진 고깃덩어리다. 머리카락마저 없었다면 머리인줄도 몰랐을 것이다.
“죽었군.”
“그야, 죽었겠죠...”
저러고 살면- 좀... 많이 무섭다.
진이 손을 털어낸다. 순간적으로 그 물체가 불에 타듯 사라진다. 재조차 남지 않고.
“이러면, 쓸데없는 양산은 어느정도 막을 수 있겠지.”
“...”
대체 뭘 양산하는데. 방금 보았던, 이제는 사라진 건조물. 그 냄새와 생김새를 떠올리기만해도 먹은 죽이 넘어올 것 같다.
진의 얼굴은 미묘했다. 후련해보이기도 하고 슬퍼보이기도 하고, 성가시다는 것 같기도 했다.
“...뇌는 또 어디서 찾아야 하나.”
진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내가 열어둔 창문으로 다가왔다. 나는 줄곧 창가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까워진다. 진이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럼 건강해.”
“뇌...찾으러 가나 보죠?”
“뭐, 그렇지.”
당장 창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데, 그는 나를 조금 오래 바라보았다. 엔실렌과 비슷한 눈이다. 그리운 것 같은 눈. 다만 그와 다르게 기묘하게 복잡한 애정이나 증오라든지, 미련 같은 게 없다. 그냥 가볍게 추억을 반추하는 눈이었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뭘 고민해야 할지도 솔직히 이제 모르겠는데...”
“좋은 일이지. 음... 렌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고. 그건 그냥 미친놈이거든.”
“안 친하게 지내요.”
“그래, 그래. 그리고- 살 좀 쪄야겠다. 진짜- 그냥 건강해, 아가씨.”
“...엄마 같네요.”
내 말에 진이 미간을 찌푸린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킥킥 하고 웃자 내 이마에 류에게 하듯 꿀밤을 때린다. 다만 별로 아프지는 않다.
그리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창문 밑을 봐도, 위를 봐도 그는 없었지만,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
좀더 높이 하늘을 보면, 새까만 구름들 사이로 용모양의 구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
진이 사라지고, 방에는 혼자 남는다.
혼자 남으니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방금 그 이상한 건조물 같은 걸 봐서 그럴까.
어두운 방에 혼자 있자니, 이상하게 팔에 소름이 돋았다. 방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별로 물건이 많지는 않았다. 독방치고는 물건이 참 없다.
여자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성별도 사실 알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책상과 서랍 하나씩이 전부였다.
나는 진이 손을 뻗었던 벽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드디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나가자.’
누가 들어오면 더더욱 곤란질 테니까.
============================ 작품 후기 ============================
우왕~ 연참이다... 그런데 아무도 좋아하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또륵...
그런데 떡밥, 나름~ 풀리고 있지 않나요.ㅜㅁㅜ
류는 인간이고, 하영이-셀리안-에피룬 전생순이고, 진과 엔실렌은 용이고... 어? 다 풀린 것 같(맞고 끌려간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출근합니다~ 휴가 가고 싶다으...
lokoko 님// 저는 해피엔딩 지향입니다. 다만 엘킨과 하영이 각각 행복해질지 같이 행복해질지가 문제... 또르르
셀니 님 // 트립 준비 하고 있어요★ 빨리 트립해야 하는데, 지금 방법 모집중입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