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69화 (6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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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story 3

시모갈 섬에는 하얀 용이 잠들어 있다. 그가 어디에 잠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닿을 수 없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몇십, 아니 시대에 걸쳐 몇백 , 어쩌면 몇 천이 넘는 사제와 신관이 시모갈에서 하얀 용을 찾아 헤맸다. 시모갈을 감싼 마나가 그것이 헛된 망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지만, 용이 어디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성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결백하기로 소문난 최고신관과 순결한 성녀 사이에서 나온 여자 아이를, 남몰래 출산을 마친 성녀가 성국의 최끝단의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그 떨어진 장소가 하얀 용의 품안이었던 건 매우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아기는 제 어머니의 황금빛 눈동자와 제 아버지의 크림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등장에도 하얀 용은 깨어나지는 않았다. 않았지만, 용이 내뿜는 정결하고 풍부한 마나 속에서 최고 신관과 성녀 사이에서 나온, 세계 누구보다 세계의 기운에 사랑받은 아이는 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말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고

세상을 모른 채.

그렇게 소녀가 사람이되, 사람과는 먼 존재로 13살에 접어들었을 무렵, 하얀 용의 거처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 자는 소녀에게 말을 가르치고, 사람을, 먼 옛날의 세상과, 그리고 그 자의 근원에서부터 품어왔던 사랑을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소녀에게 그 사랑의 결정체를 남겨주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소녀가 여자가 되었을 때 잠든 하얀 용과 단 둘이 있던 소녀의 공간에 다시금 누군가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찾아온 것은 아니었고, 말그대로 헤매어 들어온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던 자가, 의도를 가진 자였다면 이번에는 말그대로 우연이었다.

남자는 그 즈음에도 제법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었으나 독실한 신관으로 독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헤매던 끝에 다쳐 다리를 절고 있었고 일행을 놓친 채 절벽에서 떨어진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간호했다. 남자는 여자가 있는 곳이 하얀 용이 있는 곳임을 알고 감격했으며 하얀 용 곁에서 자란 여자에게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세상을 모르는 그녀에게 남자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로 성국과, 세계와 마나, 그리고 그가 존경해마지않는 고대의 마법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두 사람 사이의 호의는 애정이, 애정은 곧 이성간의 사랑이 되었다. 여자가 아이를 임신했을 즈음 남자는 회복되었고 그는 절벽을 벗어났다.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하얀 용’의 거처에 대한 소식을 들뜬 마음으로 품고 성국의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남자는 그가 치료 받고 사랑을 했던 절벽을 다시는 찾지 못했다. 찾을 수 없었다.

여자는 홀로 남았다. 홀로- 사라진 사랑하는 자의 아이를 품은 채 10달, 그동안 그녀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애초에 사람에게 면역이 없었다. 면역이 없는 그녀가 유일한 타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것은 생각보다 큰 상흔을 남겨, 여자는 어느새 자신을 떠난 남자를 원망하게 되었고 처음 느낀 원망이란 감정에 먹혀들어가 점점 미쳐갔다.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제 손으로 목 졸라 죽였던 것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후회했다. 울고 울고 울던 그녀가 아기의 시체를 안고 떠올린 건 언젠가 그녀를 찾아왔던 누군가가 남긴 사랑의 결정체. [죽은 자를 낳게 하는 방법]이었다.

*

“이 남자가 진짜 세류 키스톤인건가요.”

히아신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병원, 정신병원의 한 구석에서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는 남자는 그녀의 기억속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남자는 제법 미남자였다. 훤칠한 키의 미남자는 하얀 병원복을 입은 채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간간히 어둠이, 어둠이-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사고도 소통도 불가능하다. 육체는 상처조차 없는데 정신이 바스라진- 히아신스는 남자에게서 조금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오싹함을 이겨내고 두려움을 물리치며 냉정하게- 그녀가 만났던 세류 키스톤의 인상착의를 기억해내려했지만 이상했다. 함께 지냈던 세류 키스톤은 평범한 얼굴에 작은 체구였던 것 같다. 아니 아니야. 평범한 건 맞지만 키는 컸을지도...

‘이상하네.’

생각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가짜 세류 키스톤과 칼미온에서 직접적으로 함께 일했던 건 얼마 되지 않았건만 점점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것도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생활했던 세류 키스톤에 대한 기억은 모조리 희미하다.

엘킨은 물론 심지어 셀리안 크레이누도 그랬다. 그들의 마법왕조차 세류 키스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암살자들이 주로 그렇긴 했다. 그림자 역할의 첩자나 암살자는 기척을 지우는 훈련을 받고 일부러 평범한 외관을 가진 자를 뽑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누구든 될 수 있고 어디든 스며들어 일이 끝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어디든 흔적은 남는다. 게다가 세류 키스톤인 척 했던 그 남자는 존재감이 제법 강했다. 몰래 활동한 것도 아니다. 마음대로 활보했으며 누구하고나 이야기했다. 차라리 세류 키스톤의 하인으로 들어와 조용히 남에게 눈에 띄지 않고 행동했다면 모를까.

칼미온 기사단의 얼굴이 심각하게 찌푸려진다. 하지만 셀리안은 이 사태에 대해 의외로 냉정한 얼굴을 했다.

“재미있네.”

“네?”

“마치, 그- 엘킨, 그런 흑마법이 있지.”

“성공한 사례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엘킨은 고개를 젓는다. 그의 어머니가 마탑의 수장인 만큼 그는 의외로 흑마법이나 주술에 대해 빠삭했다.

셀리안이 말하는 건 흑마법을 이용해 아주 어린시절부터 존재감을 지우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일 때부터 그 영혼과 육체를 한계까지 지워나가, 감쪽 같은 그림자를 만드는 마법. 분명 존재하고 마음껏 활보해 존재감을 피력하지만 누구에게도 눈치 채이지 않고 인식되지 않고- 마치 연기처럼 어디든 파고 들고 누구든 되지만 일을 마치면 사라지지. 꿈의 암살자를 만든다고 몇몇 암살자 조직에서 실험했던 고루한 이야기다.

마법을 이용해 존재감을 지운다고- 말이 쉽지, 그런 짓을 하면 영혼도 육체도 망가진다. 성공할 수 없는 일이다. 제 입맛대로 존재감만 지우다니. 차라리 기척을 지우는, 정상적인 훈련을 하는 편이 낫다.

“그런, 그럼 세류 키스톤이 그 성공-”

“농담이야. 히아.”

셀리안이 웃는다. 심각하게 흑마술에 대해 고려하던 히아신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

“짐 정도 되는 자면 모를까, 존재를 지우는 마법에 노출 되어 자아나 육체를 유지하려면 왠만한 마나로는 되지도 않지. 오히려, 일종의 기억마법을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쓰고 있다는 게 맞겠군. 흠- 짐이 그런 얕은 수에 넘어갔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셀리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도 늙었다고 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용을 부린 남자가 세류 키스톤이란 것을 떠올리며 조소했다. 세류 키스톤을 자처했던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는 모르지만, 용을 부릴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식의 흑마법에 노출되어 키워진 존재라고 생각 못할 것도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일 텐데, 이 경우 부모가 제정신이 아닌 거겠지만.

‘뭐 됐나.’

용은 셀리안의 손에 있다. 시간은 많고, 용은 그 감옥을 자력으로 벗어날 수 없다. 천천히 천천히 용의 정신을 무너뜨려보자고 생각한다. 셀리안 자신에게 너무도 구애되는 그 멍청한 용을 무너뜨려, 꼬리를 잡아주지-라고 그의 입가가 끌어올라간다. 악의에 찬 웃음이었다.

필요한 일이지만, 거기에 이런 감정이 섞여 드는 건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 알지만, 셀리안 크레이누는 그 용이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용에게 생각이 미치자, 셀리안은 자신의 침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 윤하영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지.

제법 마음에 드는 존재였고, 히아신스도 꽤 호의를 가지고 있다. 엘킨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친우는 늦은 첫사랑을 앓는 것 같았다.

가능하면 상관없는 거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상관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고. 그의 눈이 냉정하게 빛났다.

“자, 그럼 어디 진짜 세류 키스톤을 볼까.”

“네, 데려와-”

히아신스가 눈짓을 하자, 기사단의 몇몇이 진짜 세류 키스톤을 끌고온다. 역시 남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셀리안은 가늘게 눈을 뜨고 남자의 기운을 살펴본다.

‘흐응.’

정신이 부서져 있다. 부순 건- 그 용이다. 기운이 남아 있다. 그 감옥에서 윤하영을 치료하는 김에 녹이고 녹인 터에 질리도록 가지고 논 기와 흡사하다. 그 검은 용을 이용해 부순건가-

“이 남자를 병원에 넣은 자는?”

“기록에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만, 가끔 이번에 죽은 리나 테일이 흑안흑발의 소년이나 적발의 미남과 함께 있는 걸 봤다고 합니다. 이 남자는- 리나 테일이 담당했다고 하더군요.”

“적발의 미남?”

“네.”

“흐음...”

셀리안이 쓰고 있던 안경을 가볍게 올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나테일의 시체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나저나, 귀찮게 되었군. 차남이 정신병원에서 이런 꼴로 발견 되었으니... 키스톤가는 덕분에 혐의를 벗었군.”

키스톤가 자체도 연루된 건 조사를 통해 알고 있다. 지금까지 알아낸 건 키오스령의 노예상은 아카인가가 맡고 있고, 그 끈의 끝에는 게트룬 남작이 있다는 것이다. 게트룬 남작의 끄나풀이 키스톤이란 건 표면에 드러난 일이다.

게다가 아카인가는 금번 노예마차건과 영애가 독단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완전히 꼬리르 잡히고 말았다.

문제는 아카인가가 게트룬과 연결되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루드와의 연결까지도. 이를 위해서는 아카인 후작이 정보를 실토하는 건데 그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트룬에서는 아카인을 끊어냈다. 그럼에도 아카인 후작이 입을 열지 않는 건 그의 딸 때문이 가장 크다. 세류 키스톤의 행세를 한 자가 아카인 영애를 데려갔다. 세류 키스톤인 척 한 그 남자도 결국 하루드와 연관된 자란 것이다.

용을 부리고 있다면 꽤나 높은 자.

설마 키스톤가에서 차남을 희생시킬 줄은 몰랐지만, 하루드란 원래 그런 조직이다. 차남을 잘라내면서 노예마차건을 완전히 미궁 속에 밀어넣을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카인 영애의 행방을 찾아보도록 하지. 산은 찾았나?”

“네, 변방의 여관에서 아카인 영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은 이를지 모르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판단됩니다.”

“그야 그렇겠지.”

산, 어린 나이에 막 즉위한 셀리안 크레이누를 찾아왔던 소년-

“오랜만에, 옛 지인을 만나겠군.”

그때 탁탁 소리와 함께 급하게 알현을 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간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건만, 달려온 걸 보면 예삿일이 아니다.

허락하자, 다급하게 한 남자가 뛰어왔고, 시모갈의 방문을 알려 왔다.

*

시모갈 사절단은 대신관 1명, 평신관 5명과, 수행원 20명 정도의 단촐한 구성이었다. 그 중 신관급은 각방을 썼고 수행원들은 단체실을 사용했다.

그리고 대신관의 제자 신분으로, 평신관 5명 중 하나로서 참여하게 된 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 지내던 곳이라 익숙하지 않을 것도 없었다.

“진이 알면 화내겠네.”

자중하라고 했는데, 하지만 진도 멋대로 할 일이 있다며 사라졌으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다. 슬슬 하루드도 질려갈 무렵, 황제로 즉위한 셀리안 크레이누가 전방위 마법으로 무언가 찾는 걸 알았다. 그것이 하루드의 본거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황태자 시절 그저 찔러보는 것과 달랐다. 정말로 ‘하루드’를 찾고 있었다.

그 셀리안 크레이누가 찾고 있고 현재로서는 그나마 팽팽하게 대적하고 있는 최대 조직이라고 해서, 굳이 굳이 원래 있던 수장을 죽이고 수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셀리안 크레이누의 눈치만 슬슬 보며, 잇속 차리기 바쁜 곳. 수장이라는 남자가 자랑하듯 이야기했던 것과는 괴리가 있었다.

물론 수장이란 남자는 느낌이 나쁜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류를 동정했다.

류가 8살 무렵, 아비를 찾아 밖으로 나온 어머니에게 버려져, 버려지자마자 게트룬 남작 취향의 아이들을 수집하던 노예상에게 주워졌다. 그것이,그 범상치 않은 마나 때문에 하루드의 미치광이 마도사들에게 넘겨졌다. 마나의 양만 알고 가치를 몰랐던 그들에게 헛된 마법의 실험대로 사용 되었다.

마도사들이야 이론이었던 마법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어 좋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류 정도의 마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이미 류의 존재는 뭉그러졌지만 그는 제대로 자아를 유지하고 육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장은 우연히 그를 발견했고 그를 거둬들였다.

수장은 류를 높이 샀다. 마도사들에게 당한 마법도 오히려 암살이나 그림자로서의 재능으로, 게다가 그의 마나는 정말 엄청났다. 그가 알기로 이 세상에서 셀리안 크레이누 다음으로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그는 류에게 기대를 걸었다.

소년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지만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어긋난 것도 자신과 닮아 있었다. 언젠가 자기 자리를 넘겨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네 마법은 마법왕 못지 않구나. 그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이 내가 많은 걸 가르쳐주마. 배우다보면 결국 마법왕을 넘게 될 것 같아. 기대되는 걸.]

그는 존재가 지워진 그를 기억해주었고, 그 효과를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류라는 이름을 주고-

하루드라는 가장 더러운 곳의 수장으로 있었던 것 만큼 그는 그 반대급부로 류라는 어린 아이를 키우며 사랑을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류는 그가 싫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았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착각한 건 소년이 어긋나긴 했지만 남자와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남자가 환경에 의해 어긋난 반면 소년은 존재 자체가 약간 어긋나 있었다. 인간으로선 가혹한 실험을 당해도 자아를 유지한 건 어쩌면 그의 재능이나 마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결여 덕분이었다.

솔직히, 왜 죽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가 평소처럼 잘난 척하듯 '이 세상에서 그 셀리안 크레이누와 맞서고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라고 하길레, '그럼 내가 가질까?' 하고 죽인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하루드란 생각보다 재미없는 곳의 수장이 되고 몇년 정도 흐른, 최근- 세세한 건 진이 다 해줬고, 류는 힘만 휘두르면 되었는데 그것도 슬슬 질려갈 즈음. 셀리안 크레이누가 친히 하루드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적극적으로 무언가 짤 의욕은 없었지만, 기회가 되면 한 번 얼굴이라도 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온 근방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슬렁거리다가 발견했다. 그 사막에서-

처음에는, 아카인의 후작이 어린애들을 꼬여내는 걸 보고 있었다.

게트룬 남작은 하루드 내에서도 소아성애자에 식인 기호로 종종 눈총을 받는 남자였다. 류도 애초에 잡혀왔을 때는 게트룬의 먹이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그런 인연 탓인지, 게트룬 남작에 대해서는 그 옳고 그름 여부와는 별개로 꽤 재미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류는 무언가에 집착해본적이 없기에 더욱, 그의 취미에 대해 질리지도 않고 대단하네, 라는 가벼운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원래는 제대로 된 귀족인 아카인 후작이 그 점을 역겨워하는 것도 알았다.

잘은 몰라도, 인간 사이의 그런 복잡한 관계나 감정을 보는 건 꽤나 재미있었다. 공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리고, 그 여자를 만났다. 윤하영.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아카인 후작이 사무적인 표정으로 내심 역겨워하며 아이를 꼬여내는 걸 방해하는 것 같아 끌어당겼는데, 그 여자가 의외로 재미있어서.

‘뭐가 재미있었지.’

대담하게 욕하는 모습이? 감 좋게 도망치는 모습이? 아니면 후에 마차에서 류를 제대로 인식하는 점이 재미있었나,

류는 그가 인식되려고 의식하지 않으면 의식되지 않는다. 그런 마법이 성공한 것이다. 단지- 막바지의 영혼들은 가끔 그를 인식했다. 죽기 직전이란 게 아니다. 영혼 자체가 소멸되기 일보직전인 자들- 마지막 환생인 자들, 그 자들에게는 류의 영혼이 가진 강대한 마나 자체가 너무 강해서, 흑마법이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매우 시시한 것이다. 시시한 것인데-

‘이상하게 시시하지 않아.’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이 노쇠한 영혼과 텅텅 빈 마나를 가진 주제에 바닥에 남아 있는 마나의 흔적이 지나치게 상급이라 그런가.

진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왠지 아닌 것 같아.'

류는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검들은 현재 모두 출타중이다. 제멋대로인 아이들이다. 남은 건 하영이 선물한 볼품 없는 식칼 뿐.

‘어쨌든 걔 덕분에 재미있는 걸 많이 하고 있으니까.'

그 시시한 여자가 재미있어서, 누군가인 척 연기까지 해 왕궁에 따라가보았는데, 왕궁에 막상 들어가니 건드릴 게 너무 많아서 - 그냥 지켜보다가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먹으려고 하던 것이 변해,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해보았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보았지. 셀리안 크레이누.

실제는 더욱 재수 없었고-

그래서, 재미있는 일을 꾸며놨는데 잘 들어맞으면 좋겠다. 그걸 이루고 싶어서, 한 번 망가뜨린 후 잊고 있었던 아버지란 남자를 기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루드 쪽도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 아카인의 바보 같은 아가씨도 잘 회수했고- 이제 류가 관여할 건 없이 게트룬 남작이나 다른 간부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나저나 이름하고는-’

에피룬이라니, 거지 같은 이름이다. 제 아비의 망가진 머리를 파고들어 요령 좋게 그의 수양아들로-친아들이 수양아들로 들어간 게 웃기긴 하지만- 들어갔지만 이름에 대한 감각이 참 대단하시다. 거지같은 이름이지만 셀리안 크레이누가 그걸 듣고 어떤 표정을 지을 생각하면 기대되어서 견딜 수 없어진다.

류는 식칼을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이 성 안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윤하영만은 분명 알아보겠지. 어떤 표정을 할까. 그 검은 눈동자에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섞여 어떤 표정으로 그를 볼지 매우 기대되는 일이라고.

류는 가볍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Q 하영이는 계속 야한 차림이었나요?

- 아니요. 엘킨 망토 둘둘 말고 셀리안이랑 엘킨이랑 대화 했어영.

오늘 회사 회식으로 꼬기 먹음. 꼬기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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