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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이름은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들을 수 없다. 허락받은 사람이 입에 내도, 허락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진범이... 렌-”
내가 그 이름을 입에 내면, 바닥을 향해 있던 셀리안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붉은 눈동자가 무감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아...”
실수 했나, 그는 그 이름을 듣기를 거부했다. 거부하며 분노했다. 말하자면 그는 이름을 허락 받은 사람이다. 엔실렌은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듣는 걸 허락했지만, 본인이 듣지 않기 위해 피해왔다. 그런 그에게 이름을 이야기했다. 긴장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태연했다.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자기 스스로 엔실렌의 이름을 읊는다.
“그것의 이름은 엔실렌 아닌가.”
“...에.”
“미실랭도 렌이라고 부르니... 부를 수 도 있나."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의외로 태연히 그 이름을 부르는 셀리안이라니.
내가 아는 셀리안 크레이누는, 이럴 수 없다. 없는 게 맞는데. 엘킨을 사랑하던 시절의 기억이 강하긴 해도 젊은 시절의 그에 대해서도 안다. 나니까.
‘나라고?’
내 눈앞에 있는 그가 정말 나인가, 헷갈리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이지, 아니 애초에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뭐, 그대는 ‘그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제법 어리광은 받아주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이 시절의 그도, 역시 전생과 관련된 화제에는 민감했다. 이렇게 태연할 수는 없다. 분노와 증오, 조금 민감하게 꿈틀대는 광기- 그가 숨기고 숨겨도 나라면 알 수 있다. 마치 신관들 앞에서 그에게 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 알았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 셀리안의 눈은 고요하다.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것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이름, 안 부르는 거 아니었나요?”
“응? 아아, 그대는 지난 밤에도 끌어들여졌지. 그래서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 신기한 꿈 덕분? 이라고 말하며 셀리안은 가볍게 웃었다. 말하자면, 원래 알고 있던, 꿈 때문이라면 꿈 때문인 거겠지만.
“뭐, 부르지 않겠다고 했고, 그것에게 듣지는 않았지만서도- 미실랭에게 그 전에도 들었다고. 나는 ‘허락’ 받았으니까.”
“...”
“허락을 받은 이상, 미실랭이 그 이름을 발음하면 나는 듣게 되니까. 허락받지 못한 히아나 엘킨은 발음이 뭉개져 들리겠지만.”
엔실렌, 이름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한 엔실렌. 셀리안이, 내가 기억하는 전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셀리안이라면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오버하고 있어. 이건 엔실렌을 동정한 윤하영의 발상이다.
“걱정마. 여기서 아무리 내가 엔실렌-이라고-"
그는 심술궂게 킥킥 웃는다.
"불러줘도 못 듣지, 못 들어. 본인은 못 들으니까. 힘도 소진되었고 감옥이 괜히 감옥이 아니니까.”
"..."
“본인 앞에서만 안 부르면 되지.뭐.”
고요한 표정과는 별개로 셀리안은 거기까지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심술굿게 웃는 순간 가라앉아 있던 적의가 살짝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라앉는다. 평온해진 거나 태연해진 게 거짓은 아니지만, 엔실렌들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가벼운 건 아니었다. 셀리안에게는 그랬다.
'역시 그런가.'
내가 가진 셀리안의 인식에 대해 과신하는 건 그만 두었지만, 역시 그는 그다. 왜 태연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근원적인 거부감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기억 속에 그가 단 한 번, 감정은 감정대로 두고 이렇게 이 화제에 대해 고요해진 적이 있었다.
너무 짧은 기간이고 그 후에 감정은 다시 최고조로 들이쳐 잊고 있었지만 단기간- 셀리안이 엘킨에게 반하게 된 날 이후 한동안. 신전의 사건 이후, 셀리안은 평온했다.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미쳐갔고 더 괴로워졌지만 한동안은, 마치 구원 받은 것처럼.
어머니의 독 같이 달콤한 칭송도, 아버지의 모든 기운을 잃은 듯한 악의에도 태연하게. 마치 지난 날의 트라우마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은 셀리안 크레이누 그 자체인 것처럼 후련해졌다.
지금이 어째 그랬다.
'엘킨과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그는 이미 엘킨에게 반한 걸까. 그것도 신전사건이나 추락사건처럼 시간이 앞당겨져 이미. 아니, 어제 일을 미루어봤을 셀리안은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 근원적인 감정은 그대로지만, 조금은 후련해진 것 같은 이 얼굴. 이유가 뭘까.
대체 왜.
“무슨 짓이에요...”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셀리안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온다. 슥 몸을 일으켜 파고 들어왔다. 바로 지금까지도 옆에 누워 있었지만, 한 이불을 덮는다는 건 다른 의미로 미묘한 일이다. 설사 그에게 그렇고 그런 감정은 죽어도 느끼기 힘들지만 어쨌든 여자와 남자가 아닌가.
“짐의 침대잖아. 주인은 추워서 떠는데 그대만 이불을 덮고, 억울하지 않아?”
“...피부 완전 뜨겁거든요.”
이불 안으로 파고든 셀리안은 역시 체온이 높았다. 어제 품에 안겼을 때도 뜨겁다고 느꼈지만 역시 지금도 그렇다.
“기분 나빠.”
“그대는 취향이 좀 이상하군. 이런 짐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너 같은 여자 처음이군."
"...우웩."
"자자~ 졸리다고 했지. 함께 자볼까, 하영-”
느끼하게 이름을 부르며, 싫으면 그대가 일어나, 나는 무리니까- 라고 이야기한 뒤 셀리안은 어린애처럼 이불의 반을 차지했다. 셀리안 체격에 맞는 큰 이불이고 이상한 배려 덕분에 여전히 나는 폭 뒤집어쓰고 있었다.
“제 세계였다면 치한으로 고소했을 거예요.”
“싫으면 일어나라니까.”
더 열받는 건, 이 괘씸한 파렴치범은 이불 안에 파고들어 정자세로 누워 깐죽거려도, 마치 명화에 나오는 아폴론처럼 그림이 되는 것이다.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나는 이불을 포기하고 침대 끝으로 이동했다. 싫으면 일어나라는 말을 들은 터라 괜한 오기가 생겨 일어나긴 싫지만, 그렇다고 붙어 있기도 싫다.
그는 따라오지는 않았다. 다만 이불을 좀더 옆으로 펼쳐 나를 다시 폭 감싸줬을 뿐이다.
*
그의 침대에는 원주인과, 윤하영이 누워 있다. 남녀가 누워 있는데 정말 잠만 자다니. 나랑 셀리안이기에 가능한 걸까.
몰려오는 수마에 가물가물, 지금 눈을 감으면 또 엔실렌을 만나게 될지, 아니면 셀리안 덕분에 그건 피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진짜 이름 안 불러줄 건가요?”
그의 말대로 엔실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말이 셀리안에게 부리는 심술인지 아니면 이름 좀 불러줬다고 기뻐한 엔실렌에 대한 연민 같은 건지 좀 헷갈렸다.
셀리안은 조금 조는 것처럼 그대로 꾸벅거리다가 내 물음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나를 보았다.
“이름 따위. 솔직히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이쪽은 싫다는데 계속 부르라고 집착하니까 그냥 심술을 부린 것뿐이야.”
거짓말쟁이. 그런 가벼운 게 아니면서.
“그럼 불러줄 건가요?”
“설마- 기특한 일이라도 좀 했다면 모를까. 그건 범죄자잖아? 앞으로도 불러줄 생각은 없어.”
“...”
다시 침묵. 그렇구나, 하고 눈을 감는다. 엔실렌에게 동정했지만 그보다 깊게 셀리안의 감정을 이해한다. 나도 참 이기적이지.
'근데- 결국 같이 자는건가. 엘킨이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멍하니 생각하며 정말 잠이 들려는 찰나, 셀리안이 문득 입을 열었다.
“혹시 그대- 꿈에- 갈색 머리의 갈색 눈동자를 가진 미인이 나오지 않나?”
“그런 머리와 눈은 이 세상에 많잖아요.”
미인은 드물겠지만.
좀 자자, 이 왕님아. 제가 자자고 해놓고 말도 많으시다.
“그대 세계는 다른가?”
“제 쪽도 뭐, 있겠지만 제가 있던 나라는 몽땅 흑발흑안이라...”
“흐음...”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 이 세계에서는 흔한 색이다. 리나 테일도 그랬고, 그의 어머니인 헤르티아도 그랬다. 헤르티아의 시녀도 그랬고. 생각해보면 동상 추락사건의 희생자는 꼭 머리나 눈 중 하나 이상은 갈색이었다. 너무 흔해서 생각 못했지만 노린 걸까- 한국에서 흑발흑안이 연쇄살인의 피해자라고 규칙성을 찾긴 뭐하니까 오버인건가 싶지만 새삼 미심쩍다.
“이건 그냥 전해오는 동화 이야기인데.”
“?”
“그 용이 범인인 걸 알고, 그 동화가 어쩌면 진짜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대가 숨기는 많은 것들 중 혹시, 그와 관련된 게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럼 짐은 어떡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일단, 그 동화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셀리안의 기억을 뒤져보려고 하면, 셀리안이 말을 잇는다.
“응, 그렇지. 알았다면 그대도 진범을 눈치 챘을 테니까. 그대는- 그대인거지?”
“...”
무슨 이야기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의 눈이 절박해서, 모르겠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아서.
“저는 저예요. 적어도, 제 꿈은 지금 이 시점의 이 세계에 고정되어 있어서 더한 옛날 같은 건 몰라요.”
나는 에피룬의 꿈따위 꾼 적이 없다. 꾸는 건 셀리안 크레이누에 대한 것뿐.
아니- 언젠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되찾을 테니까.]
갈색 눈동자와 갈색 머리카락의 미인- 아 이게 무슨 기억이었지. 생각나지 않는다, 희미하게 지워져간다.
“그대는 그대-”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아마, 제가 다른 모습이었다면-”
나는 셀리안을 향해 시선을 준다.
“분명 남자였겠죠.”
“큭, 무슨 소리야.”
“그러게요.”
셀리안은 나른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손짓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눈에 힘을 준다. 귀찮다는 듯이 더는 말로도 안 하면서 눈빛만으로 명령을 하신다. 괘씸한 왕님이다.
다가가자, 옳지 옳지 하고 밉살스러운 말을 중얼거리더니, 가까워진 나를 휙 잡아 당겨 품에 안았다. 엘킨 때처럼 심장은 두근거리지 않는다. 게다가 두 번째다. 오히려 조금 안심되는 게 이상하다.
‘진짜 이상한데. 이러면 안 되는 것 같은데.’
최소한 남은 이성과 상식으로 일부러 버둥거려본다. 곧 그는 나를 어제 복도에서와 마찬가지로, 반항하면 처형한다-로 제압했다. 그 뒤 팔베개를 해 눕게 하고, 슬그머니 내 가슴께로 손가락을 갖다 댔다.
“우와, 치한-”
“어쩌면 사내끼리지 않나. 게다가 역시 있지도 않구만, 뭘.”
“...”
어라, 살의가...가뜩이나 콤플렉스인데.
“역시, 기로 연결되어 있네. 감옥에 계속 끌려가고 있지? 두 번 이지만, 아마 앞으로도 불러대겠군. 귀찮은 용이야.”
“...그건 꿈이 아니었던 건가요?”
정말, 나는 감옥을 훔쳐봤던 것이다. 예상했지만 참. 꿈이 아니었다. 셀리안이 감옥을 나오기 전 허공을 봤던 것도 어쩐지 나를 발견했던 것 같다.
“그건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같으니까. 엘킨 말대로 그 주인, 세류 키스톤...에 의해 보호된 것 같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기가 섞여 들면서 간섭이 가능해졌군. 좀더 확실히 차단해주지. 하는 김에 원주인의 기 대신 짐의 기로 차단해주지.”
치한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셀리안이라 그런가, 그가 내 가슴께, 흉터 부근에 작은 마법진을 그려갔지만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평온하게 안기는 것 같은 느낌, 그의 정원에 있을 때와 비슷하다.
“자존심 상하는군.”
“네?”
“아냐.”
그가 내 가슴께로부터 손을 뗐다.
“엘킨 올 때즈음 되면 나는 나갈 테니까.”
"!!"
"쯧, 잘 자."
이 남자가 미쳤나- 자려고 한 게 방금이지만 엘킨이 오는 건 확정인 것 같다. 항의하려고 했지만 그의 손가락이 내 이마에 닿는다.
“비, 비겁-”
“잘 자.”
순간 눈이 스르르 감긴다. 잠이 들라치면 그는 한 팔에는 내 머리를 올려놓고 다른 팔로는 나를 꼭 붙잡았다.
‘제멋대로야-’
어느새 정신은 깊은 어둠 속으로 침몰해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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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참이냐고 물으신다면... 주말이라서? 아녀...
옛날 옛날 어떤 스즈카님이 지난번부터 후원쿠폰을 주시면서 연참 및 이~~만큼 분량을 요구했어요. 불쌍한 나무바라기는 구상분을 주섬주섬 퇴고하기 시작했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ㅋㅋ
선추코 항상 감사하고요. 아, 진짜 코멘 주셔서 너무 좋아요. 1일연재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으...ㅜ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