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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패러독스-85화 (8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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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솔이 달린 노란색 테이블, 종달새 파이라는 괴상한 음식을 파는 가게만 아니라면 아기자기한 디자인이라고 순수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테이블을 중앙에 두고 종달새 파이 10개를 제 앞에 둔, 에드나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그녀는 오만하게 머리를 치켜들고, 위협하듯 그 노란 눈동자로 반대편의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그 남자는 파이 한 개를 이미 입에 문 류였다. 그는 황금빛 눈동자로 여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앉아 물을 홀짝였다.

“이 남자, 시모갈의 신관이었네... 왜 이야기 안 했지?”

에드나가 나를 노려본다. 나는 움찔했다. 왕궁에서 내가 그를 못 발견하니 그냥 시내에 있다는 것만 생각하곤 했다. 진즉 이야기했으면 그 전에 에드나가 류를 만났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내가 입을 다물자 류가 거들듯 이야기했다.

“알아도 못 만나. 어린 뱀 공주는 나를 잡을 수 없으니까.”

“...뭐? 인간 따위를 내가 왜...?”

에드나는 코웃음쳤지만, 바로 류를 향해 갸름하게 눈을 떴다. 굳이 말하면 노란 눈은 그대로고 그 안의 새까만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진 것뿐이다.

“...이건 또 기분 나쁜 흑마법이 덕지덕지 붙어 있네.”

에드나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녀는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불쾌함은 그녀의 흰 눈썹이 치켜올라가면서 표현되고 있었다.

“너, 신관 맞아?”

“신관스럽지 않아? 내 마나?”

“...그렇군...아주 마나가 신성하네. 그것도 이 마나 양은 뭐야? 너 미친 거 아니야?”

“어휴, 입이 험한 건 세르미아 영애랑 똑 닮았네.”

“난 아무래도 좋긴 하지만, 이런 거랑 친하게 지내면 안돼. 너.”

에드나가 내게 충고를 하며 종달새 파이를 입에 넣는다. 한꺼번에 1개를. 어떻게 한꺼번에, 지극히 뱀답게 꿀꺽 삼키는데 우아할 수 있지?

“...마, 맛있어.”

“엉? 맛있어? 그냥 질 떨어지는 닭맛인데?”

에드나가 몸을 부르르 떨자, 류가 키들키들 웃으며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에드나의 입꼬리가 경련한다.

“고작 10몇년 산 인간이 뭘 알겠어?”

“고작 100몇 년 산 뱀공주님은 감각이 남다르네.”

류는 넘어가지 않는다. 눈을 접어 킥킥 웃으며 반 정도 남은 종달새 파이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에드나의 표정이 매섭다. 류는 그녀에게 완전히 비호감으로 찍힌 것 같다.

한편 류 역시 완전히 에드나에게 관심을 잃은 듯 나를 보았다. 그는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고, 그 자신이 말했던가. 그는 별로 집중력이 높진 않았다. 파이에도, 에드나에게도.

“그래서, 뱀공주와 하영은 나를 왜 찾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를 보고 있다. 눈가를 접어 싱글싱글 웃는다.

“알고 있었어?”

“그야, 네가 날 열렬히 찾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게 생각보다 좋아서, 놀라고 있어.”

“...열렬히라니... 시내를 헤매는 거 알았구나.”

“시내 뿐이겠어? 궁에서 두리번두리번, 요한 세르기타에게 나에 대해 묻고, 뱀공주와 시내를 돌고 돌고- 그 모습을 보느라 해야 할 일도 잊는 일이 몇 번이나- 우우, 렌이 너 같은 여자를- 그....”

그는 말을 고른다. 말을 고르면서도 계속 싱글거리고 있다.

“도화살 낀 여자라고 했어. 남자를 막 끌어들이는 나비 같은 여자- 렌의 말을 들을 때는 뭔가 싶었는데 약한 주제에 포르르 포르르 거리는 게 정말 나비 같아.”

“얘, 미쳤니?”

에드나의 흰 눈썹이 아래로 쳐진다. 제대로 미친 말을 하는 류한테 질렸는지 기가 빠진 표정으로 류를 바라보았다. 공감한다. 나도 얘랑 말하면 항상 그랬다.

마음을 가다듬듯, 하나 더, 종달새 파이를 입안으로 밀어넣은 그녀가 입가에 묻은 기름을 슥 닦아 내며... 진짜 저게 어떻게 우아해 보이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면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한데 나부터 이야기할게- 그 후, 하영이 네가 느긋하게 말하든 해. 당신!!”

그녀의 눈동자에 힘이 담기고, 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응? 나? 너 별로 재미없는데.”

“나도거든! 이것만 말하면 나도 상종도 하기 싫어. 기분 나쁜 인간.”

“하하, 그 말 많이 들어. 근데 싸이코패스 쪽이 좋아.”

“그게 뭐야?”

“...”

“하영이 나 같은 사람은 싸이코패스래. 완전 좋지 않아? 어감?”

“...나 얘 진짜 별로다.”

에드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목을 가다듬고 위협하듯 쉭쉭거리며 선고했다.

“키도스 도련님의 계약인을 당장 끊어.”

명령이 매우 잘 어울리는 공주님이었다.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선고며 명령이다. 듣지 않으면 당장 류를 죽일 것 같은 기백. 류는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듯 둔하게 눈을 깜빡였다. 깜빡이며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무리.”

“뭐?”

“응? 귀가 나빠?”

뱀은 귀가 없나? 하고 고개를 갸웃한 류는 어린애한테 설명하듯 천천히 크게 반복했다.

“무리라고.”

“...”

공기가 일변했다. 방금 전도 위협스러웠지만, 그건 위협도 아니었던 듯 공간이 어그러지는 듯한 강한 살기, 에드나의 호박색 눈동자가 무기질하게 류를 내려다보고 있다.

“왜- 무리라는 거지?”

“그건, 사용할 데가 있으니까.”

“사용한다고?”

“응, 사용할 데가 있어.”

그의 말에 나는 갑작스럽게 심각함을 깨닫는다. 류가 안 된다는 건, 렌이 감옥에 잡혀 있다던가 하는 이유가 아닌 것 같다.

미실랭 부대장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류는 사용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계약의 인으로 그런 일은 무리다. 계약의 인은 그야말로 안전한, 인간 위주의 낙인- 그런건, 그런 건-

과거에 미실랭은 하루드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셀리안에 의해 피해보지 않은 유일한 칼미온의-

“...죽이겠어.”

오싹하게, 생각이 차단되었다. 무시무시한 살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옆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에드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녹빛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뱀으로 변한다. 뱀으로 변한 머리카락은 빠른 속도로 류에게 육박해 혀를 날름거린다.

“감히, 누구를 쓴다는 거냐. 무례한-”

“..."

“감히- 감히-! 당장 풀어라. 아니면 온 몸에서 피를 뿜게 될 거야-”

몸이 덜덜 떨렸다. 살기는 느껴봤다. 그 전에도, 그리고 방금 전에도. 느꼈지만 이건 정말 자비가 없다. 차가운 감각은 발끝을 마비시키고, 마치 독사의 독에 잠식 당한 것처럼 이빨만 딱딱 부딪치게 했다.

“후후,...역시 어리네.”

류는, 그 거대한 무언가에 대해 바람 빠진 기묘한 웃음으로 응수했다.

“힘도 가늠 못 하는 건가, 아니면 눈이 먼 건가.”

그리고, 시야가 암전했다.

*

암전한 시야 속에서 미지근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너는 나를 인식하고 있는데. 항상 인식했는데. 한순간이라도 네 안에서 나를 사라지게 하는게 생각보다 참-”

류의 목소리다. 그는 그답지 않게 매우 다정한 목소리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아니, 류는 생각보다 목소리가 좋으니까, 다정하게 내고 있으니 달콤하기 그지없다. 달콤하게 안온하게 나를 가라앉힌다.

“하지만, 마법왕에게 말하게 할 수도 없고, 네가 나를 계속 쫓게 할 수도 없지. 아, 아쉽다. 그리고- 이 뱀공주도 문제니.”

나는 머리가 멍하다. 머릿속이 헤집어진다. 셀리안의 마나는 황금빛이다. 그렇게 기억한다. 황금빛 마나의 길을 가느다란 하얀색 마나가 헤집는다. 헤집으며 자신의 발자국을 숨겨둔다.

“잠시만 나를 잊는 거야. 그리고, 곧 있을 축제의 날, 나를 기억해. 나를 기억하고 셀리안 크레이누의 절망을 축복하자.”

그가 가볍게 내 머리에 입을 맞추는 게 느껴진다. 미적지근한 숨결은 셀리안의 마나를 피해 나를 옭아맨다.

*

꿈을 꾼다.

새하얀 방, 아니다. 그건 새하얀 용의 품안이다. 용은 잠들어 있지만, 자신의 품안에서 자라왔던 하얀 여자를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그녀가 낳고 죽이고 다시 낳은 아이도 안쓰럽게 느꼈다. 가능하면 두 사람이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대부분 결여했지만, 용의 소리 없는 애정이 제법 따뜻한 사랑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런 따뜻함을 나에게도 주고 싶다고. 줄 수도 없는 주제에 주고 싶다고 느낀 아이는 하얀 용의 감정을 나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고백이다. 사랑할 줄 모르는, 감정이 결여된 아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이미테이션-

그 기억과 마나는 그가 할 수 있는 고백이었다.

*

“일어나-”

“으응.”

“일어나라고!”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에드나가 있다.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노란색 테이블, 그 종달새 파이 가게다.

“무슨-”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려 했지만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흐릿하다. 그녀와 시내에 나와 종달새 파이 가게를 발견한 것까지는 기억한다.

그런데 왜 시내에 나왔지?

쉴 겸, 파이를 먹기 위해서다. 왕궁은 답답하니까.

‘정말?’

나는 에드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썹을 치켜뜨며 투덜댄다.

“아무리, 나 혼자 먹어도 그렇지 어떻게 파이를 다 먹을 때까지 자니?”

“...그, 미안해요. 그런데... 우리 정말 파이만 먹고 있었나요?”

“넌 안 먹었잖아.”

에드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죠.”

“에휴, 내일부터는 또 너를 호위하며 그 왕성에 갇혀 있겠군.”

“그...”

“또, 뭔데?”

“왜, 에드나가 제 호위를 자원했었죠?”

“말했잖아. 그야, 키도스 도련님이...”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다가 눈을 깜빡였다. 천천히 그녀의 동공이 줄어들었다 늘어난다. 흔들린다.

“...키도스 도련님이...”

“에드나?”

“...그, 네 안위를 걱정하니까. 그분이 무사히 너를 청문회장에 데려갈 수 있도록 지켜야지.”

우리는 침묵한다. 그것밖에 답이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지만 곧 이상하다는 느낌도 사라져간다. 이상한 감정이니 만큼 사라지는 것도 빠르다.

에드나는 기분이 나쁜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게로 다가가 여분의 파이를 좀더 주문해 포장을 했다.

우리는 왕성으로 돌아간다.

청문회 전, 여유로운 외출은 오늘로 끝이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흡니다.ㅜㅜ 흑흑 어제 알람 맞춰놓고 8시 30분즈음 잤는데 오늘 8시 10분에 일어난 신기한 상황!! ...죄송합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도 정말 죄송해요.

lokoko 님 // lokoko님은 20대입니다!!(무책임) ... 끝. 쿠우를 아는 분은 대충 20대일 것 같아여...(또륵) 여기 인물은 죄다 M인 것 같습니다. S는 저뿐입니다. 제가 죄다 괴롭힐 거니까. 저는 오늘 늦잠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큽. 12시간이나 자다니... 학창시절 이후 하루 12시간이상 잔 건 첨인덧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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