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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후란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그 기묘한, 동물인지 식물인지 모를 것이 나- 엄밀히 말해 히아신스의 가위-를 습격했을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생각이었다. 류는 그것이 인외생물의 소행이라고 했으며, 그 생물체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키오후와 봤던- 그가 마음에 들어 했던 가시없는 장미줄기를 닮아 있었다.
그것을 찜찜함으로 내버려두고 있던 것은, 내가 키오후라는 남자를 은연중에 껄끄러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피룬 시대부터 살았으며 안나들과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와 함께 티타임을 가진 날 이후, 히아신스의 가위가 지금까지와 다른 등장을 했다.
그런 여러 요인들이 내가 그를 피하게 했다.
만약, 내가 히아신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동상 사건을 추적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였다면, 나는 그를 수상히 여기고 미행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전까지의 나는-
이제는 사라진 통증을 생각하며, 심장 부근을 만져본다. 엘킨의 사랑에 더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그렇게 쉽게 없어질 통증도 아니고, 나도 사실은 바뀌지 않았건만.
'엘킨.'
다 잘 되었다고, 잘 될 거라고 되뇌고 있었지만, 나는 또다시 무언가를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번 정자로 갈까요?"
"네, 그래요."
상념에서 깨어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일단 키오후였다. 저 남자와 이야기한 뒤, 좀더 제대로 윤하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자. 다시 엘킨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하면 된다.
나는 바로 그들 곁에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바로바로 바로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저를 찾으시다니, 영광입니다. 옛날에는 제가 주로 당신을 찾았으니까요."
"옛날?"
"당신의 최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랍니다. 알고, 싶으신가요?"
"...아뇨, 됐어요."
"...유감이군요."
키오후를 따라 정원을 걸을 때마다, 언제라도 히아신스의 가위가 내 곁으로 다가올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히아신스의 가위, 그것은 이제 동상 추락을 예고하는 기능을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 달라진 게 아니라면- 애초에 히아신스의 가위가 단순히 추락사건을 예고하고 내 죄책감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히아신스의 위기를 알려주는 거라면?
'비현실적이네.'
비현실적이지만 눈앞의 남자가 히아신스에게 원하는 건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동상에서 연이어 일어난 연쇄 추락만큼이나 불길한 어떤 것- 그건 확실하다.
*
"자, 그럼 왜 저를 찾으신 걸까요."
키오후는 우아하게 자리에 앉아 깍지를 낀 채 그 호박색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히아신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라고-
옆에는 류가 있다. 키오후보다 훨씬 작은 류지만, 그가 있다는 게 용기를 준다. 키오후는 류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물뱀의 대장로라고 하면, 왠만한 인외생물 중에서도 고위급에 속할 것이다. 그런 그를 속여넘길 정도의 마법을 두르고 있다는 게 류를 더욱 믿음직스럽게 했다.
'류가 믿음직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조금 자조하면서도 안도한다. 나는 겁도 많고, 가능하면 내 몸도 사리고 싶었다. 그게 윤하영이다. 그래, 그게 윤하영. 자신의 아픔에 둔감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위태로운 여자 따위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하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외면하고 안주하는 여자도 아니었어. 그래, 나는-
"..."
내 말에 키오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태연한 반응에 기가 막힌다. 내가 그에게 대놓고 이야기한 건 류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자의 반응을 보려는 것이기도 했다.
한 번 더 묻는다.
"어째서 대답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히아신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는 능청을 떠는 것도 아니었고 척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 죄송합니다. 조금 당황해서. 제가, 무슨 짓? 그 분에게?"
내 말이 너무나 의외라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뻔뻔할 정도로 연기에 능숙한 건지-
"...그럼, 저에게는 왜 그러신건가요?"
"..."
이번엔 반응이 왔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 안의 검은 동공이 다시 가늘어진다.
'저게 무슨 표정이지.'
반응이 온 건 좋은데, 나는 조금 고민한다. 저 남자의 저 표정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 표정은 언뜻 투정을 부리는 손녀딸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표현과는 들어맞지 않는다.
"예전에, 당신이 저를 습격한 건 이거였죠?"
개인적으로 솟아오르는 의아함을 뒤로 하고, 장미를 가리켰다. 가시없는, 장미- 공격성을 잃은 저 장미가 그날 어떤 위협으로 다가왔는가를 떠올리며, 강하게 추궁하면 그는 동공을 더욱 가늘게 좁혀 나를 보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눈썰미가 있으시군요."
키오후는 기특하다는 듯이 웃었다. 기특하다는 듯이...
"..."
뭘까, 부글부글거린다. 진도 키오후와 비슷하게 어린애 취급하듯이 나를 대했고, 렌으로 말하자면 명백한 힘의 우위를 인식하고 나를 대하곤 했었다. 했었지만.
그가 나를 공격한 주제에 여유작작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인걸까.
어느 쪽이든 웃기지도 않는 반응이다. 욱씬 거리던 다리의 통증이 되살아난다. 무력하게 히아신스의 가위를 껴안던 기억도-
"왜 그런거죠?"
"당신을 도우려고 한 거랍니다."
"개..."
"네?"
개소리.
"돕는다는 당신의 말이 터무니없다고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확실히 제 다리에 상처도 남았고, 저는 위협적으로 느꼈어요."
"..."
"그런데, 돕는다니? 개소리 같아서, 그만."
이번엔 제대로 말로 내뱉는다. 그를 따라, 여유작작한 척 생글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너만 뻔뻔하냐, 나도 뻔뻔해져주지.
오랜만에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인지, 산책을 나왔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뒤를 따라온 류가 든든하기 때문인지- 언젠가부터인가 잊고 있던 성깔이 나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설마 왜 공격했냐는 말에 도우려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 전에 나는 외관 때문인지 그가 조금 괴짜 같은 청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밉살스러운 노친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닮았군요."
내 얼굴을 빤히 보던 키오후가 낮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나는 조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약간 긴장한다. 긴장하며 슬쩍 류가 있는지 확인하면 그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건 괜찮다는 거겠지. 아니, 호위가 류이니 별로 믿음직하지 않달까, 믿음직하게 여긴 방금까지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
"..."
"..."
"..."
"하하. 그립군요."
긴장하고 있을 때, 키오후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터뜨렸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키오후도 내가 긴장이 풀리는 건 상관이 없어보였다.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나도 모르게 휙 하고 피하자 그의 입가가 휘어진다.
'이상하네.'
의기양양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처럼 오싹하거나 그렇지는 않는데, 내 앞에서 손을 멈춘 물뱀의 장로는 방금 전과 달리, 누가봐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데. 나를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의기양양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데도.
"왜 저에게 그러신거죠?"
얼른 이야기를 끝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남자는, 뭔가-
"도우려고 했습니다."
"돕는다고요? 당신의 돕는 거는 상대를 위협하는 건가요? 설마 히아신스에게 전생 운운하는 것도 나를 돕기 위해서라는 건 아니겠죠?"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그 분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키오후님은 이 사람 저 사람 돕느라 바쁘시네요."
"늙은이는 오지랖만 넓어져서 말이죠."
키오후는 묘하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그 시선에 약간 숨이 막힌다.
"당신은 누군가를 돕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자꾸 이러시면, 폐하한테 이야기하겠어요."
설사, 히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해도. 지금의 그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폐하에게? 무엇을?
"히아신스의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최근 무언가 잊는 일이 많다고 했어요. 바빠서 그런 것 같다고는 했지만- 이상하잖아요. 나는 당신이 그녀에게 전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그게 그녀를 좀먹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걸, 고작 '죽음'으로 잊는 건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남자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뜬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이 남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 없다. 아니 알 것 같다. 숨이 막히고, 무섭다. 왜이렇게 무서운 걸까.
"에드나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전생을 기억하는 인간이라고."
"...에드나가?"
"그 아이는 저에게 모든 것을 상담해준답니다. 보기와 달리 아직 어리니까요."
"..."
"그래서, 저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셀리안 크레이누 폐하의 곁에서 히아신스 양을 도울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그녀도 당신을 좋아하고요."
"내가 기억하는 건 당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것 같군요. 게다가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었지요.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입니다. 그건."
"중요한 거라도, 현재를 침범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유감스럽다는 것 같이 중얼거린 그에게 나는 턱턱 막히는 숨을 꾹 참고 반박했다. 무엇에 반박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에게 반박하고 싶어진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전생 없이도 히아신스도, 셀리안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어요."
나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영문 모를 반박을 하고 키오후의 눈을 바라보면, 그가 안쓰럽다는 것처럼 미소지었다.
"...힘들어보이시는군요."
"흣!"
순간적으로 막히던 숨이 터진다. 숨을 조이던 장막이 없어진 것처럼 편하게 숨결이 돌아온다.
"당신은 인간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
"이렇게 작고 퇴락한 영혼인데-"
그가 당장이라도 내게 손을 뻗을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몸을 뒤로 뺀다. 도망치고, 싶다.
"당신은 힘들어보이십니다. 마법왕의 그 엄청나던 마나가 이렇게 미약해져서. 불쌍하게도."
"..."
"당신은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그랬듯이."
"당신이?"
"호수가, 당신이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밖에 많은 것을-"
그가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한다.
"위대한 호수라고 들었는데 그런 거나 물어보는 건가요?"
비웃듯 이야기해보았지만 그는 태연하다.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저희의 어머니인걸요. 자식의 친애하는 옛친구에 대한 물음입니다."
"..."
"아마 당신의, 불안정하고 미약한 영혼이 동일한 큰 영혼의 흐름에 끌려 이 시공간으로 헤매어 온 거겠죠. 불쌍하게도. 당신의 과거 영혼이 있던 이 세계로."
그는 혼자 납득한 것처럼, 지어낸 것처럼 매끄러운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며 안쓰러운 듯 나를 본다.
"당신은 착각하고 계신 겁니다. 제가 그랬듯이. 당신은 그저 미아입니다. 어떤 사명도 없습니다. 이미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우신 당신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생각을 하다니 제가 다 부끄러워지네요."
"그..."
"?"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당신, 뭘 꾸미고 있는 건가요? 히아신스에게 무슨 짓을-"
"이런 이런- 정말 닮았군요. 히아신스님이 왜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마나의 양을 제외하면 '그'와 가장 닮은 건 당신일지도요."
"!!"
그는 과감하게 내 손을 붙잡는다. 멀리 떨어졌는데도 강하게 뻗어오는 그 손을 피하지 못했다. 엘킨의 체온도 차갑다고 느꼈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나와 다른 생물의 체온이라고 확실하게 느낀다.
'당신은 어떤 의미로는, 셀리안 크레이누 왕보다 더 에피룬을 닮았습니다. 그 시절의 그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지요.'
내 팔을 붙잡는 순간, 남자의 말은 머리를 직접 울린다. 에드나와 같이 셀리안에게 들키기 싫어서라든가, 그런 게 아니다. 그가 내게 왜 이런 방식으로 말을 거는지 알 수가 없다. 억지로 파고든 나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리자 눈이 빙빙 도는 것 같다.
"이거, 놔요!"
'나는- 그래서, 당신을 돕고 싶은 겁니다.'
개소리다. 개소리지만, 나는 남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다. 홀린 것처럼 귀를 기울인다.
'저는- 그날, 당신을 원래 당신이 계시던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한 겁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 윤하영이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 윤하영이 그나마 윤하영으로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걸 외면하고 이기적으로 있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였다.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을, 이 세계에 붙잡고 있는 것을 제거해드리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닌데.
저항을 멈추고 멍하니 키오후를 보고 있으면 남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뱀처럼 속삭였다.
'당신이 가장 당신다울 수 있는 곳으로.'
*
"아-"
아니야,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하지만-
지금 이 남자가 뭐라고 한 거지?
"...어?"
"?"
"짜증-"
"...큭!"
순간, 날카로운 검이 내 손을 쥐고 있는 키오후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관통했다. 피가 철철철 흐른다.
"...너, 그만 손 놔라. 잘라버린다?"
류는 찌른 그대로 키오후를 바라보며 무감하게 이야기한다. 키오후의 검은 동공이 놀란 듯 커진다. 생살이 관통된 아픔과, 예상치 못한 존재의 난입에 당황한 것 같다.
"왜 안 치워? 이대로 잘라줘?"
류가 눈을 갸름하게 접으며 웃는다. 언뜻 비슷하지만, 류와 뱀족의 눈색은 다르다. 그들의 호박색 눈동자가 그들이 인간과 다른 생물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류의 황금색 눈은 그가 인외생물과도 인간과도 다른, 무언가 굉장히 성스러우면서도 요사스러운 존재라는 느낌을 주고는 했다.
"뱀은 자르면 다시 자란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건 도마뱀이지..."
그리고 도마뱀도 손이 다시 자라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얼빠진 대답을 해버린 건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다. 내가 준 식칼이 지금 나를 쥐고 있는 남자의 손과 연결된 팔을 관통하고 그 피가 줄줄줄 흘러 내 팔목을 적시고 있다.
"그래? 그럼 이건 무슨 배짱이야?"
류가 키오후의 손을 꽉 잡는다. 그에게 잡혀 있는 내게도 느껴질 정도로 꽉-
"하하, 내 힘이 이 정도구나."
류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고, 키오후가 내 팔에서 천천히 손을 뗀다. 피가 흐르는 탓에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보다는 류를 의아한 듯 바라본다.
"이것참... 독특한 기운의... 도련님이로군요. ...기척을 숨긴 건 마에 가깝지만... 마나는 신관, 인가요?"
"뭐야, 지극히 평범한~ 인외생물스러운 답이군.."
류가 키들거리며 그에게로 휙 얼굴을 들이댄다. 입가를 끌어올리고 류 특유의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얼굴로 말을 건다.
"그래서, 너라는 거지. 그 이상한 생물을 얘한테 보낸 거."
"장미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이상한 생물이라니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장미라고? 그게?"
"..."
"뭐, 그렇다 치고 말야. 그건- 마치 인간 같은 주술...이더군."
"기묘한, 평가로군요."
"응- 인외생물은 그런 주술 안 쓰지 않아? 렌도 그렇고 진도 그렇고 그 녀석들은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어서 그런 꼼수 안 쓰거든."
"..."
"지금도 갑자기 마음에다가 말을 거는 것 같고. 잘 안 들리잖아. 열받게시리... 정말 어지간히 나쁜 짓을 하고 있거나, 어지간히 네가 약하거나 둘 중 하나 때문이겠지?"
희한한 광경이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초연했던 키오후가 류앞에서 감정이 드러난다. 지금 그가 매우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겠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입가를 끌어올린다.
"진, 렌이라고 하셨습니까."
"응? 들었어?"
"그럼, 당신이 지금 그들의 주인이군요."
키오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류를 비웃듯이 바라본다.
"용들이 '동정' 때문에- 전생의 약속을 버리고 선택한, 한 번 죽었다 살아난 꼬마가 당신인가 보군요."
"동정?"
"용이란 작자들이 참으로 지조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렇게 불안정한 아기 영혼이니, 그들이 자애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류가 고개를 갸웃한다. 갸웃하다가 흥미를 잃은 것처럼 키오후에게서 떨어졌다.
"아, 너군. 그 소문 퍼뜨린 거."
"..."
"멍청한 뱀이 쪼잔한 짓을 한다고, 진이 그러던데."
류의 눈은 심드렁했지만 한편으로는 날카롭게, 하찮은 것을 보듯이 키오후를 보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경계를 하며 이죽였다면 이제는 정말 하찮은 걸 보는 표정이 되었다.
"하영, 가자."
"어?"
"나는, 최근의 맹한 너도 좋고, 히아신스 에이나를 보고 갑자기 주제도 모르고 들쑤시고 다니는 너도 좋아해."
"뭐시..."
"나나 렌에게 휘둘리는 너도 뭐, 제법..."
이 자식이...
"하지만, 저런 거한테 휘둘리는 너는 마음에 안 드는지도."
그는 그대로 내 손을 붙잡는다. 그는 뜨지 않았다. 그것은 류가 키오후를 나에게 있어 위험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이기도 했고, 키오후가 미약하든 강하든 어느 정도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붙잡은 손으로 기묘한 감각이 전해지면 류는 그대로 나를 끌고 키오후로부터 떨어뜨린 뒤 그대로 정원 밖으로 향한다.
"류!"
"아, 내 이름 부르는 너는 많이 좋을지도."
"야! 손 아파."
"나도 아파."
휙휙 끌리면서도 끌려가는대로 걸으면 나에게 따라붙는 키오후의 시선이 느껴진다. 살짝 시선을 주면 호박색 눈은 무감하게 나와 류를 보고 있다.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지혈도 안 하고 그대로 둔 채 나를 보며,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예의 다정한- 다정한 척 하는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
상처 입은 채라 그럴까, 그 모습이 부자연스럽다.
"없애시면 됩니다. 당신을 따라붙는, 불길한 것이 있지요. 그걸, 없애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갈 수 있으실 겁니다."
류가 나를 끄는 힘이 강해지고 나는 정원을 빠져나왔다.
*
"류!"
류의 발걸음은 빨랐다. 척척 걸어나가는 그는, 작은 체구 때문에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불가능했다.
"류, 놔-"
"싫어."
"왜... 키오후가 나에게 뭔가 할 것 같아?"
"응?"
류가 발걸음을 늦추고, 나란히 걷게 된다. 걸었지만, 손은 여전히 연결된 채다.
"아니. 오랜만에 잡았으니까, 놓기 싫어."
류가 웃는다. 웃으며 내 손을 좀더 꼭 잡는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류의 발이 붕 뜬다.
키오후로부터 멀어지고, 류도 더이상 그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윽?!"
"같이 뜨다니, 생각도 못 했어. 계속 잡고 있어야지."
"어어?!"
류의 발이 뜨고, 류는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보고 있다. 그의 몸은 이제 완전히 떠오른다. 나는 떠오른 류에게 붙잡힌 채 그와 얼굴을 마주한다. 까치발을 든다. 까치발을 든 채 하늘을 향해 발을 뻗은 류를 안절부절 못하고 보고 있다.
"놓으라니까!"
"싫어~"
"류!!!"
"계속 불러줘!"
"이 멍청아!!!"
이러다 나도 뜰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소리를 높인다. 높이는데, 빙글거리던 류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아- 진짜."
"야, 놔, 놓지 못-"
"여기- 있었군."
그리고 순간 내 허리를 붙잡아 껴안는 체온이 있다. 동시에 까치발로 떠있던 발이 땅에 닿고, 반동으로 류의 손이 내 손을 놓는다. 그는 꽉 잡고 싶어했지만, 순간적인 일이었다. 뒤돌면, 금빛으로 반짝이는 곱슬머리가 내 등에 닿는다. 고개를 숙이고, 내 허리를 껴안은 채, 그는 내 등에 얼굴을 묻는다.
기억하면, 류는 셀리안이나 엘킨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역할이라고 했다. 나에게 적의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면 셀리안에게 제일 먼저 신호가 간다고 했다.
"폐하..."
"..."
"그... 별거 아니었어요."
별거 아니었던 건 아니지만-
[저는- 당신을 원래 당신이 계시던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한 겁니다.]
정말일까.
'아니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살짝 몸을 틀어 셀리안의 어깨를 흔든다.
"아, 혹시 피 때문에 그래요? 이 피 제거 아니에요."
"..."
"폐하, 완전 오바인 거 아세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진짜. 아, 오버가 무슨 말이냐 하면."
"..."
"폐하?"
셀리안의 팔이 내 허리를 좀더 꽉 잡는다. 꽉 껴안는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얼굴을 살피고 싶지만 그는 내 등에 얼굴을 완전히 묻고 있다.
"...리안?"
"...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셀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허리로부터 손을 떼고 물러난다.
"괜찮다면 됐으니까."
"리안?"
그의 붉은 눈이 묘한 빛을 띠고 나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오래도록일리가 없다. 단지 내가 그렇게 느겼을 뿐이다. 알 수가 없어, 손을 뻗으려 하면, 셀리안의 뒤에 있던 모퉁이를 돌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하영-"
"엘킨-"
"엘킨, 하영은 무사하다고 하는군."
"그녀의 말은 신용이 안 돼요."
"그렇지. 그대가 검사 좀 해봐."
셀리안은 나로부터 시선을 완전히 돌려 엘킨을 향해 웃었다.
============================ 작품 후기 ============================
YouURin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저 버릇됩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 ㅎㅎ 정말 감사합니다.
옆집바나나 님 @ 이상하다. 너무 독자님들이 나를 부둥부둥해준다. 농약이란 표현은 독자님의 예쁜 표현이라 생각해서 투정 좀 부려봤는데 다들 부둥부둥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부둥부둥이 저의 비료입니다.ㅜㅜ 코멘 항상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성실연재하는 모습...보여드리고 싶은데 비축분이 부족...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