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4 109 =========================================================================
키오후는 이야기했다.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 말이 진짜인지는 밀어두고라도- 돌아갈 수 없다. 없는 게 맞다. 이곳에는 히아신스가 있고, 엘킨이 있고, 셀리안이 있다. 도망칠 수 없다.
이전과 다르다.
나는 엘킨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제와서 바꿀 수는 없다. 나는 이 왕궁에, 엘킨 옆에 있겠다고, 그렇게 결심한 것이다. 설사 기만이라도, 안일한 선택이라도, 적어도 엘킨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나는 내뱉은 것이다. 적어도.
그럼에도, 도망칠 수 있는 길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아. 그것은 이미 저주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109
나를 중심으로 엘킨, 셀리안, 류가 빙 둘러 앉아 있다. 원탁의 테이블은 포근한 디자인이고 그 위에는 밝은색 사기 컵이 4개 놓여 있다. 곁들여진 과자도 달콤해 분위기는 포근하기 그지없었다.
그 덕분일까,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분위기는 심각해지지 못했다. 일단, 결정적으로 내가 다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류 탓이다. 류라는 남자는 심각이라는 단어와 너무 멀다. 그는 바로 앞에 셀리안과 엘킨이 있는 걸 이용해 내게 스킨쉽을 시도했다. 그는 딱히 스킨쉽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감각이 공유되고 나서 그 기묘한 감각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셀리안은 류를 마법으로 의자에 묶어 버렸다.
문제는 그 마법이 나에게도 적용되었다는 거다. 몸은 움직일 수 있는데, 마치 묶여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기시감에 눈을 찌푸린다. 못 움직일 건 없지만 움직이는 게 오히려 불편한 그런 느낌.
"..."
아예 못 움직이게 묶인 류만큼은 아니지만 묶이지도 않았는데 묶인 감각을 공유하는 건, 솔직히 말해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미안하군. 하지만,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셀리안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씨익 웃은 뒤, 류 앞으로 차려진 과자를 스윽 빼 내 앞으로 돌려놓는다.
"...과자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어이! 마법왕! 나는 먹지도 말라고?"
"너는 안 먹어도 되고."
"지당한 말이군, 하영."
"폐하는 하나도 안 지당하구요. 아이참, 엘킨. 과자가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아까 전에, 기묘하게 불안해보이던 셀리안이 신경 쓰였지만, 그는 괜찮아보였다. 여유롭고 나른하게 앉아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럼, 일단 엘킨, 하영의 보호자이자 검사자로서 먼저 질문할 기회를 짐이 하사하지."
검사...으,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 걸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 다행히 엘킨은 류를 향해 질문했다.
"그럼 기꺼이. 흠- 하영에게 묻은 피는 무슨 피인거죠?"
나에게 물어도 대답해줄 생각이 있는데, 어지간히 신뢰를 못 받는 것 같다. 검사...시에도, 나한테는 내가 다친 곳이 없는지만 물어보았을 뿐, 다른 상황은 물어보지 않았다. 설마, 류를 붙인 게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
"하영~ 과자 줘! 아앙-"
류는 류대로 대답은 않고 입을 벌린다. 배고픈 고양이처럼 갸름하게 눈을 뜨고 칭얼거리고 있다.
"대답 안 하십니까, 세류 키스톤?"
"엘킨 다이브, 일단 마법왕에게 이 불편한 주술 풀라고 해."
"...과자인 거죠?"
엘킨이 눈썹을 까딱하더니 빙그레 웃는다. 그대로 제 앞 그릇의 과자 두어개를 집어 류의 입에 돌진시켰다. 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입에 물린 과자를 우물우물 씹는다.
"렌이 이야기하기를, 남자 입에 음식을 넣는 놈은 성취향이 의심스럽다고 하던데."
엘킨이 하나 더 과자를 집어 류의 입에 억지로 쳐넣었다. 말그대로 쳐넣었다고 해야 할까. 과자가 그의 이빨에 딱 부딪치고, 류는 찡그렸지만 엘킨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우븝."
"과자 드렸으니 대답이나 하시죠."
류는 우물우물 과자를 씹으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엘킨을 본다. 우물우물 꿀꺽- 과자를 전부 씹고 그러고도 남은 것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뱀-피지."
"뱀 피?"
"응~ 내가 찔렀어, 뱀 팔을 콱 하고...음? 뱀이 팔이 있나."
"그 말은- 그녀를 공격했던 인외생물이 다시 나타난 거군요. 그리고... 뱀 피라면."
엘킨이 눈을 가늘게 뜬다.
"...키오후...님인가요."
"어떻게?"
그의 말에 놀란 건 나다.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엘킨이 류에게 물어본다면 내가, 나에게 물어봐도 충분히. 하지만, 단번에 잡아낸 건 의외였다. 상대는 존경받는 물뱀의 대장로였고, 에드나는 왕궁 내에서 꽤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야..."
엘킨의 시선이 셀리안을 향했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셀리안을 바라보았다.
"인외생물 중 그대와 접점을 가진 건 뱀공주밖에 없어서 거기부터 시작했지. 단서가 하나도 없는데 이 왕궁 내 그 많은 인외생물을 감시하고 뒤질 수는 없지 않나."
"문제는- 에드나 님은 의외로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으셔서 난항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히아가 그러더군요. 당신과 함께 키오후 님을 만났다고요. 그래서... 최근 키오후 님의 동선을 확인했는데, 히아의 동선을 따라가는 것 같다는 걸 알았습니다."
흠칫한다. 키오후에게 했던 건 말만이 아니었다. 히아신스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도, 영문 모를 그 남자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로 불안해져 셀리안의 눈치를 보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키오후가 결혼선물로 예언을 해준다고 했다더군. 히아가 짐의 꿈을 꾼다고 하던데... 음, 결혼이 다가왔다고 짐의 꿈을 꾸다니. 그런 귀여운 점이 있을 줄은 몰랐어."
"...꾸, 꿈에 대한 예언의 답은 안 들으셨나요?"
"응? 못 들었는데? 최근 히아와 직접 대화할 시간은 없어서... 그게 중요한 건가?"
셀리안의 눈이 의아하게 나를 본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긴장했다. 이야기, 해야 하는데, 잘게 떨면 셀리안은 이야기를 잇는다.
"어쨌든, 뱀의 장로가 히아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는 것도 좀 걸렸지. 고작 예언에 그녀를 쫓을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그대는 히아를 많이 걱정하고 있지?"
"아."
"혹시 히아와 연관 된 건가 정도는 추측해보았지."
"..."
"그런데, 그 반응을 보니 정답이군. 뱀의 장로는 그대를 공격하고, 히아에게도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가?"
지금이다. 말할 때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설사 히아신스와 키오후, 그리고 그녀의 전생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고 해도, 말할 생각이었다.
이야기의 무대는 준비 되어 있다. 마법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지혜롭고, 여유롭다. 잘 될 거다.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후회한다. 더이상 키오후가 히아에게 무언가 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하영?"
"아, 아뇨."
"너무 뚫어지게 보는군. 짐의 영민함에 반하면 곤란해. 엘킨이 있지 않나."
"..."
이런 점만 없으면 진짜 후덜덜 할 텐데.
"무엇이 그대를 불안하게 하는 거지?"
그래도, 이 모든 점에 구원받는다.
셀리안이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본다. 시선은 다정하기 그지없다.
'믿자.'
믿자, 마법왕을. 윤하영 따위보다 훨씬 그릇이 큰 나의 전생을.
심호흡을 했다.
히아신스의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걱정된다고. 키오후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런 이야기를.
"오늘... 사실 히아신스를 만났어요."
"그랬군."
"그런데... 그녀가 조금 이상했어요. 최근 무언가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고."
"흐음."
셀리안의 시선도 엘킨의 시선도 진지하다. 결혼을 앞뒀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든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경청해준다. 반응에 힘 입어 말을 이어나간다.
"바빠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그 전에 히아가 키오후로부터, 예언을 들었다는 걸 들었어요. 관련시키는 건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키오후에게 직접, 따지러 갔던 거예요."
"예언이 히아의 기억에 지장을 준다는 건가요?"
"예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키오후가 히아신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오늘 그의 입을 통해 확인했어요."
그 전에는 어쩌면 에드나가- 어렴풋한 기억 속, 히아가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결혼식이 발표될 무렵이었다고. 그 무렵 에드나는 칼미온에 들어갔다.
에드나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키오후가 그녀를 통해 그녀도 모르는 사이 뭔가 히아신스에게 했을 수 있다.
그날, 장미정원으로 히아신스를 데려온 게 에드나였기도 했고.
"어째서, 그가 히아신스에게 그런 짓을 하려는 건지도, 혹시 들었나요?"
엘킨의 물음에 나는 셀리안을 바라보았다. 셀리안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다. 그는 히아신스를 아낀다. 사랑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소중하게. 어쩌면 사랑보다 더 큰 애정으로.
'사랑보다 더 큰 애정은 아니야. 그는 사랑 때문에 히아를 죽였으니까.'
비집고 새어나오는 기억을 몰아낸다. 아니다. 지금의 그는 다르다.
"그는 히아신스에게 그녀의..."
괜찮을 거야. 믿을 수 있다. 지금의 그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완결무결의 왕. 히아신스를 상처 입히지 않을 거다. 나는 셀리안의 붉은 눈을 한 번 마주본다. 따스한 빛을 띠고 있다.
이야기해도 된다. 좀더 의지해도 된다.
"그녀의 전생을 일깨우고 싶어해요."
"전생?"
되물은 건 엘킨이다. 류는 흥미없어 보인다. 그는 입가에 묻은 과자를 떼어 혀로 날름 핥고 있다.
"네, 전생요. 그게- 히아신스의 꿈이, 폐하의 꿈이 아니라-"
그리고, 셀리안은...
"...아."
"하영?"
실수- 했다.
*
셀리안 크레이누는 내 말의 의미를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망설이며, 그의 눈에 격려를 받아 힘들게 힘들게 이야기한 전생이 '에피룬 크레이누'와 관련 되어 있다는 것을.
셀리안도 아니까. 키오후라는 남자가 에피룬 시대의 사람이란 걸. 그가 안나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그러니까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엘킨이 내 시선을 따라 셀리안을 본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엘킨의 시선에 조금 웃었다.
'...차라리...'
나는 동시에 시선을 내렸다. 셀리안의 사려 깊은 시선은 나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그렇군. 내 꿈이 아니라, 에피룬 크레이누의 꿈...인가. 그렇다면 히아의 전생은 에피룬 크레이누와 가까운 사람이었다는거군. 인외생물들은 인간보다 오래 사는 만큼, 감각이 다르지. 인간이 죽고 사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니까. 그렇지, 엘킨?"
"엘프는 인외생물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엘킨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시선을 비스듬히 떨어뜨린다. 이대로라면 멍하니 셀리안을 보게 된다. 멍하니 그를 보면, 너무-
엘킨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 손을 쥔다. 괜찮다고.
'어째서 내가 격려 받고 있는거지?'
어째서, 나는- 이야기해버리고 만 걸까.
"전생이나 후생과 관련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워낙 특수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인외생물들은 자신의 지인들이 죽거나 다시 태어났을 때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인간의 전생과 환생까지 알아볼 수 있는 고위생물은 드뭅니다."
"그래, 그들은 집착하지.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일단 알게 되면, 그 과정에서 다시 태어난 지인의 인격을 뒤섞어 버리기도 한다는데 말이야. 정말 민폐지. 더 민폐인 건 그들이 오히려 그 섞임을 좋아한다는 걸까. '알고 있는' 옛사람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말이야."
셀리안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는 이런 화제에 대해서는 이죽이곤 했다. 숨길 수 없는 적의를 드러내곤 했다. 불쾌하다는 것처럼.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오래 산 사람이나, 인외생물 따위 싫다고 이죽였다.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너무나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예. 마탑에도 제법 그런 사례가 많이 보고 됩니다. 어느날 기억이 사라진 환자나 인격장애가 온 경우죠."
"살펴봤더니 이종족이 원인이라는 경우겠군."
"그렇습니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는데.
"걱정마라. 하영."
나를 부르는 셀리안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머뭇머뭇 고개를 든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따스한 빛을 띠고 있다. 광기에 차지 않은, 미치지 않은 다정하고 따뜻한 눈동자- 한편으로 냉정하고 이지에 찬, 성군다운 눈동자다.
"히아는 짐이 지키마. 키오후도, 짐이 정리하도록 하지. 아, 물론 정리가 위험스러운 건 아니야. 저 남자처럼 다짜고짜 인외생물의 팔을 찌르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응? 그럼 물어보고 찌르게? 나도, 자르는 건 양해를 구했어?"
"정말 말을 배우는 편이 좋을 것 같군. 너는."
셀리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히아신스 에이나를 상처 입히지 않는다. 괴롭게 하지 않는다. 지킬 것이다. 소중함이 변하지 않는다.
"걱정마라, 하영. 히아는 지금 왕궁 내 자신의 방에서 하녀들과 같이 있구나. 그리고, 키오후는 정원에 있군. 어딘가 가는 것 같긴 하지만, 히아가 있는 방향은 아니야."
다정한 말, 사려 깊은 배려.
나는 입술을 문다.
나는 대체 무얼 한 걸까. 무얼 말한 걸까.
셀리안 크레이누가 상처입어버렸다. 그가 숨기려 해도 보고 말았다.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그가 상처 입을 거라는 걸.
하지만, 더 견딜 수 없는 건 그가, 셀리안이 괜찮다고, 괜찮은 척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려받는 게 나다. 내가, 배려받고 있다.
나를 견딜 수 없다.
"..."
"자, 그럼 이제 말이 서툰 네놈에게 짐이 직접 말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나의 감정과는 별개로 셀리안의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그것은 류를 향해 있었다. 여유롭고 오만하고, 방금 전과 달리 한치의 자비도 없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미세하게 짜증스러움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면 내 과장일까. 그 짜증스러움에, 그가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보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는 건 너무 이상한 걸까.
흘끔 시선을 주면 류는 여전히 과자부스러기를 찾는 것처럼 제 손가락을 살피고 있다. 살피면서 눈만 살짝 들어 셀리안을 본다.
"흐음?"
"우리의 계약은 그거였지. 하영을 공격한 적을 알아낼 때까지- 유감스럽게도, 감각의 공유를 해제하는 법은 현재 찾는 중이지만 말이야. 짐도 안즈도 아주 열심히니까 곧 끝나겠지."
셀리안이 의자에 푹 기대 앉았다.
"일단은, 하영에게 피해가 안 갈 만큼 아주 푹신하고 아늑하면서도 네놈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감옥을 만들어봤는데, 말이야."
"우와, 성격-"
류는 셀리안에 의해 의자에 묶여 있는 터라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새삼스레 제 몸을 살펴본 뒤 입을 열었다.
"설마, 이것도 일부러야?"
"글쎄, 짐에 대한 걸 감히 네놈이 다 알 수야 없지 않나."
"흥, 뭐 너는 나에 대해 다 아는 줄 알아?"
"관심 없다."
류는 투덜댄다. 여유로운 것 같기도 하고 분한 것 같기도 하고 기묘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노크도 없이, 허락을 구하는 목소리도 없이 다짜고짜 무례할 정도로 쾅 하고 문이 열렸다.
처음 든 생각은 그거다. 류를 구하러 온 누구인 걸까, 하고. 류가 너무 여유롭기도 했고, 그 이유가 구하러 올 사람이 있던 거라면 이해가 간다.
셀리안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짐작으로 비슷한 생각을 했거니 했지만 여유롭기 그지없는 그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고 곧 의아하게 가늘어진다.
입구에는 에드나가 서 있었다.
"...에드나?"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의 시선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에드나를 마지막으로 본 건, 키오후와 함께였으며, 그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 아니었다.
"...뱀공주인가?"
"에드나 님,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는 셀리안도, 엘킨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외관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외관.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인간 아닌 것이 '인간'으로 변한 것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띠고 있었다. 그 전에는 독특하긴 했어도 자연스러웠건만, 지금은 마치 간신히 유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 항상 반짝반짝 빛나던 호박색 눈동자가 탁하다.
인외생물이 인간화를 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라고도 하는, 영혼의 창이라 하는 눈동자가 탁하게 가라앉아.
"어딨지?"
그녀는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갸름하게 뜨고 류가 앉아 있는 자리를 노려보았다.
한참을 가늠하는 것처럼 보고, 류는 유쾌한 듯 입가를 끌어올렸다.
"용의 주인-!!"
"오오, 알아봤어. 쟤, 나 스스로 알아봤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저 남자에게 상처 입히는 건 허락할 수 없군."
"리, 리안!"
"걱정마라."
셀리안이 다가오는 에드나에게 손을 뻗은 것도, 에드나가 아랑곳없이 달려오는 것도 순간이다. 에드나의 인간화가 풀리고 거대한 물뱀으로 화해가며 그녀는 류에게 육박했다.
============================ 작품 후기 ============================
곧 추석이라 그런지 싱숭생숭 집중이 안 되는데 일은 이상하게 많네요.ㅜㅜ 훌쩍.
시로야차98님이 팬아트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ㅜㅜ
쿠로네코짱 님, 찹쌀떡좋아 님, 에네 님, nla 님, 기막힌인연 님, YouURin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ㅜㅜ 왜이렇게 많은 분이.... 오늘은 가지가 부러지더라도 가지춤을 추겠습니다. 덩실덩실~>ㅁ<
네르비안 님 // @ 넵, 21세기 지구입니다. ㅋㅋㅋ 그리고 각자의 배우자는... 그닥 비중이 있는 인물들은 아닙니다만, 꼭 완결되기 전에 언급이라도 하도록 노력...쿨럭쿨럭. 코멘트 감사합니다.ㅎㅎ
워비 님 // 엘킨의 예언을 생각해주세요! 하지만, 예언은 뒤집으라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주시고요! ... 결론은 나무바라기를 죽입시다. ㅋㅋ @를 뒤에 붙이셨는데 이게 리코멘요청의 @인가 감탄사인가 고민하다가 그냥 리코멘 하고 싶어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