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15화 (11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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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에드나는 제압되었다. 셀리안은 그녀가 류에게 다가가도록 두지 않았다. 이생물을 제압하는 쇠사슬, 그것이 에드나를 묶고 있다. 그녀는 인간화하지 않은 채 사슬에 묶여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언제나 도도하게, 당당하던 에드나의 호박색 눈이 완전히 탁해져서.

아니다. 그녀의 눈은 그 전부터, 좀더 전부터 탁해져 있었다. 오늘이 아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녀는 저런 눈을 하게 된 걸까.

"걱정하지 마라. 그 용을 붙잡은 것과는 다르다. 배려하고 있으니까."

셀리안이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그대로 그녀 곁으로 다가간다. 불안하게 바라보면 엘킨이 내 손을 잡아준다. 또 걱정시키고 말았다.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인 뒤 류를 보았다.

사실은, 에드나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쁜 버릇이야. 하지만.'

류는 에드나에게는 흥미가 없어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류의 기묘한 여유에 엘킨이 내 손을 강하게 잡아 돌려준 뒤 류 가까이로 걸어갔다. 그의 행동을 경계하고 있다.

"뱀공주여."

에드나를 부르는 셀리안의 목소리가 울렸다. 새삼 시선을 향하면 에드나 역시 이쪽을 보고 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류를 보고 있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뚫어지게 죽일 듯이- 원망하듯이, 매달리듯이 류를 보고 있다.

그 모습에 가볍게 한숨을 쉰 셀리안이 에드나 눈높이로 무릎을 꿇는다. 커다란 에드나의 호박색 눈동자가 셀리안에 의해 가려진다. 그제서야 그녀가 조금 움찔했다. 전부터 그녀는 셀리안을 무서워했다. 그렇게나 무서워했는데, 그녀는 마치 이제야 셀리안을 인식한 것 같았다.

"..."

"저 남자를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지금 그는 하영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지. 그녀에게 죽음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감각이...공유."

"그래, 문제가 있다면 짐에게 이야기해다오. 짐이 해결해주지. 인외생물은 짐의 백성은 아니지만."

셀리안이 달래는 것처럼 나긋나긋하게 속삭인다. 위엄있지만, 어린애를 설득하고 위로하는 것 같은 다정한 목소리였다.

"짐이 도와주겠다."

"마법왕이 나를..."

그녀의 검은 동공이 흔들린다. 망설이고 있다. 망설이고 고민하고, 몇 번이고 무언가 이야기할 것처럼 입을 벌리다가 다문다.

"...도울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아니 그를..."

"그?"

"나도...도울 수 없어...물어...봤으니까. 몇번이고. 사실 알고 있어. 이미..."

그녀의 얼굴은 그저 뱀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울 것 같다. 뱀공주는 이제 허공을 보고 있다. 냉정해진 것 같지만, 동시에 마치 모든 기운을 소진 한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그런 건... 하지만... 그러면..."

띄엄띄엄, 마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리된 생각을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곧 에드나가 열어놓은 문으로 남자가 들어왔다.

짧게 깎은 붉은 스포츠 머리, 길게 흉터가 난 한 쪽 눈동자, 커다란 체구에 험상궂은 얼굴. 그럼에도 어쩐지 다정해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에드나-"

"미실랭이군."

"에드나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실랭 부대장은 방안의 광경을 보자 당황한다. 곧 얼굴을 굳히고 셀리안에게 허리를 굽혔다. 차례로 엘킨과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숙인다.

"미실랭이 왔군."

"...도련님이..."

에드나는 여전히 허공을 보고 있었다. 허공을 보면서도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흔들흔들,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미실랭 쪽을 보지 못한다.

그런 에드나 쪽으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미실랭이 다가간다. 한 발, 한 발- 에드나는 마치 기도하는 것 같다. 기도하는 것처럼 그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저 외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녀가 왜 류를 죽이고자 했는지는 몰라도, 미실랭 부대장에 대한 태도는 부자연스럽다. 아마도- 어쩌면, 무언가 생각하고 있다. 정리하고 있다. 생각하고 정리한 뒤 다시 부정한다.

'무엇을?'

미실랭 부대장이 멈춰선 건 에드나와 셀리안이 있는 자리 근처였다. 그 자리에 멈춰선 미실랭 대장이 나를 보았다.

"..."

"..."

에드나가 그를 외면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깨달으면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실제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에드나를 찾으며 들어왔다고 했으면서 말이다.

"?"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는 순간 따스한 느낌의 갈색 눈동자는 나를 보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치 무언가의 입구처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벌어진 입은 - 마치 검은 어둠처럼 열리고, 그 안에서 손이-

"!!"

"하영?!"

미실랭의 벌어진 입 속에서 검은색 손톱의 손이 뻗어나오고, 그 손은 금시에 길게 늘어나 엘킨을 벽에 쳐박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부서지고, 내가 비명처럼 엘킨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바로 줄어든 손이 나를 붙잡았다. 붙잡는 순간 셀리안이 움직였지만 에드나가 쇠사슬에 묶인 그대로 미끄러져 나와 셀리안 사이를 가로막는다.

억지로 움직인 탓에 그녀의 녹빛 비늘이 물처럼 튕겨나간다. 햇빛에 반짝이는 비늘이 깨져 그 안의 살갗이 드러나 찢어지고 있었다.

나를 붙잡은 손은 순식간에 줄어든다. 눈앞에는 미실랭의 입- 이상한 광경이다. 끔찍한 광경이지만, 더 끔찍한 건-

"아-"

필사적으로 가로막는 에드나의 몸체를 셀리안의 붉은 눈이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기억 속에 있는 시선이라고,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 그것은, 방금 전 튕겨나가던 에드나의 비늘과 터져나가던 그녀의 살이 내던 마찰음보다 좀더 크고, 끔찍하고 묵직했다. 그대로 대량의 물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비명처럼 신음하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하영!!!"

그리고, 목소리. 나를 부르는 목소리.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견딜 수 없다는 것처럼 부르는, 절박한 왕의 목소리가 그 소음 속에서 나만을 부르며 가까워졌지만-

굉장히 짧은 순간이었다. 내가 눈을 감은 사이, 블랙홀처럼 벌어진 입안으로 끌려들어간 것이다.

*

'바보 같은 남자-'

그런 눈을 한 사람이 된 건 언제였지. 뭉개진 히아신스의 시체를 보았을 때였던 것 같다.

냉정하게, 잔혹하게 라고는 했지만 이미 그 순간 미쳤던 건지도. 선을 넘었던 건지도.

결국 감정이란 하나도 없이, 오로지 감정이란 감정은 엘킨에게만 나눠주며, 보답받지 못하고. 결국-

망가지고

사랑받지 못하고

망가뜨리고

사랑하고

외롭게 죽었다.

한심한 인간이다.

라고, 자조했다.

동시에, 무미건조하지만, 상냥하게만 느껴지는 목소리가 따스하게

'불쌍한 남자-'

라고 속삭였다.

*

"우는 거야?"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상대의 이야기에 몇 번 눈을 깜빡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미적지근한 물이 뺨을 적신다. 시야가 흐릿하다. 그제서야 간신히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줄줄줄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눈 앞에는 노인이 있다. 노인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곧 다정하게 내 눈가를 쓸어준다. 노인의 주름진 손은 노인치고는 굉장히 다부졌는데, 넌센스하게도 손톱이 검은색이었다.

검은색, 검은 구멍 안에서 뻗어나온 검은 손톱의 손- 렌이었던 걸까.

"렌..."

"오, 정답."

정답은 무슨. 나는 몸을 일으켰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나... 왜 우는 걸까."

"글쎄, 꿈이라도 꾼 거 아니야?"

"꿈."

"그래, 인간은 악몽을 꾸면 울기도 하니까."

그가 다시 한 번 내 눈을 닦아 준다.

내 몸은 마치 푹신한 무언가에 감싸여있는 느낌이었다. 살펴보면 침대는 딱딱하기 그지없는데 안온하게 감싸여 익숙한 느낌이다. 마치 그의 정원에 있는 듯한 그런 기분.

"왜...나를 데려 온 거야."

"응?"

눈물이 그럭저럭 멈출 무렵,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추해냈다. 엘킨, 셀리안, 류, 그리고 에드나와 미실랭.

"류를 구해야지."

눈가를 어루만지는 렌의 손을 쳐내고 남은 눈물은 비벼 닦아냈다. 정신 차려야지. 정신 차리고 상황을 확인하자.

내가 있는 곳은 방이다. 어둡고 가구라고는 내가 누워 있는 침대 뿐인 살풍경한 방이었다. 창문은 없다. 창문도 없고, 불을 켤 수 있는 기구도 없고, 그저 렌과 나 사이의 허공에 등 같은 조그만 빛이 둥둥 떠있을 뿐이다.

"왜 그런 걸 걱정해?"

렌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어린 아이 모습이었을 때와 변함없는 동작이었는데 지금 그의 외관이 노인이라는 걸 감안하면, 사실 보기 괴로운 비쥬얼이었다.

"우와..."

상황에 맞지 않지만, 영 아니다 싶어 과장되게 시선을 피하면 렌이 다시 한 번 반대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는데?"

"너, 일단 말이야. 모습은 왜그래?"

"너를 오래 보다보니, 네 영혼에 공명한 거지."

"...내 영혼이 그렇게 늙었어?"

뭔지 모르지만, 그랗다고들 그러니까 지나가는 투로 물으면 렌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묘한 표정을 짓다가 갑작스레 얼굴을 들이대온다.

"내 게 되면, 영원히 존재할 수 있어."

"필요없어."

뭔지는 모르지만, 상관없으니까.

렌은 묘하게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보다 말야. 너 류에 대해 모르는 거야? 왜 그를 데려오지 않은 거야?"

"응?"

의아한듯 다시 한 번 처음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그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

나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류가 한 짓에 대해 설명했다. 그와 나의 감각이 공유되어, 그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아마 현재 셀리안에게 붙잡혀 있을 거라고.

그 이야기를 들은 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어느새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절반 정도 되는 키의 렌이 머리를 긁적인다. 같은 움직임인데 제법 귀엽고 어울렸다.

키오후의 말대로 인간이라 외관에 휘둘리는 걸까.

"그 녀석도 참."

"..."

"...?"

"...??"

"왜그래?"

"그게 끝이야?"

"끝인데?"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뭔가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진도, 렌도 아닌 척하면서도 무지하게 류를 걱정하고 아끼고 응석부리게 하는 느낌이었는데.

다행히 개운하지 못한 내 표정에 렌이 부연하기 시작했다.

"네 말을 들어보면, 류는 너랑 감각이 공유되어 있다는거잖아."

"그렇지."

"그럼, 아마 마법왕이 못 건들 거야."

혹시 모르잖아, 라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물끄러미 렌을 바라보았다.

"저기."

"응?"

"미실랭 부대장은 어떻게... 된 거야?"

"미실랭? 아아...그 형아."

렌은 내 눈을 보더니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형아, 너에게 중요해?"

"...친구에게, 중요한 사람이야."

그래, 친구에게.

미실랭 부대장 자체는 좋아했다. 아마, 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걱정할 정도로. 하지만, 그 걱정은 그가 에드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드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귓가에 남는 소리가 있다. 쾅하고 터뜨려, 이리저리 파편이 튄다. 망설임 없이.

"그건 진작에 죽었어."

"죽었다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렌의 검은 눈, 아무런 죄책감도 감정도 없는 눈을 보았다. 단지 그는 내 기분을 살필 뿐이다. 그 정도의 배려와 감정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질한 눈동자다.

"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 형 꽤 유능했단 말이야. 부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었어. 나도, 진도.”

"진...?"

"응. 진이 사용하겠다고, 빌려달라고 해서."

렌이 어깨를 으쓱한다.

"...언제부터?"

"그런 게 듣고 싶어?"

"...들어도 듣지 않아도 같다면 들려줬음 하는데."

듣겠다고 이야기하자, 렌이 묘한 눈을 한다. 묘한 눈을 하고 내 뺨에 입을 맞춘다. 입을 맞추고 웃었다. 웃음은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짜 닮았다. 너."

"..."

"완전 똑 닮았어. 제 목숨 깎아먹는 거 모르는 것까지."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쉰다.

“너도 알지? 내가 에피룬의 동상에서 계집애들 떨어뜨린거."

"..."

"무서운 표정."

"그건 대체 왜 그런 건데?"

"그야, '너'의 관심을 끌기 위한 거지."

"셀리안의?"

"그래. 마법왕의."

하나도 죄책감 없는 표정으로, 단지 내 눈치를 보며 렌은 내 손을 잡는다

"그치만,별 효과도 없어서... 동상에서 사람 떨어뜨리는 것도 그만할까 생각했었거든. 사용하던 그 흉터남이랑 너한테 잘못했던, 그 리...리나 뭐시기인가 하는 여자를 떨어뜨렸잖아. 그게 마지막이었어. 알지?"

"...그래서,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건데?"

"그거 형아가 한 거야.”

"뭐?"

"그때 걔네 떨어뜨린 거 말이야. 그때 어느정도 형아의 마음을 부쉈거든... 그~런 얼굴 하지마- 내가 형아의 마음을 부숴 조종하게 되었으니까 네가... 아카인의 멍청한 계집애에게 찔렸을 때..."

렌은 내 험악한 얼굴에, 잠시 주춤하더니 달래듯이 이야기한다.

"아, 참고로 그 계집은 죽었어."

"아카인 영애가?"

"그래. 어차피 쓸 때도 없고, 맛이 가 있어서, 이번에 류가 계약에 대해 실험할 때 살짝 실험체로 넣어버렸지.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어. 영혼도 많이 닳았을 거야. 모르긴 몰라도....음, 또 그런 표정이야."

그는 조금 풀 죽은 어투로 묻는다. 지금 내 표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기운이 빠진다. 다 어그러진다. 무너진다.

미실랭은 몰라도 아카인 영애에게는 애정 한 톨 없는데도, 참담한 기분이 된다.

"미실랭 부대장의 이야기나 계속 해봐."

"...나, 미워하지 않을 거지?"

"...좋아하지도 않아."

렌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 대해 모른다. 일방적인 호의, 일방적인 애정, 일방적인 강요. 인외생물은 자신의 지인에 대한 애정으로, 환생한 인간들을 뒤튼다. 그런 걸 좋아할 수는 없다. 셀리안이 그들을 혐오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어떨까. 나는- 지금 내 전생의 기억으로 이 세계를 뒤트는 건 아닐까.

셀리안을-

"...그, 널 구한 게 나야. 나는- 그때 아카인 계집애에게 찔린 너를 구할 수 있는 게 셀리안 크레이누 뿐이라고 알았으니까. 딱 공간 이동해서 셀리안 크레이누 앞에 간 게 우연이라고 생각해? 내가 키도스 미실랭을 조종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내가 널 살린 거야."

그는 더이상 장난스럽게 형아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구애하는 것처럼 설명해나간다. 나를 위해 미실랭을 이용했다고 한다.

나를 위해라니, 기막힌 이야기지만 나 때문에 라고 이야기한다면, 동의하고 싶은 기분이 된다.

"네가 말하는 마음을 부쉈다는 게, 죽었다는 거야? 그럼 그때 미실랭 부대장은 이미 죽었다는 거겠네?"

"음. 그건 아니야. 그때부터 강인하던 형아의 정신이 서서히 부숴진 거라는 거지. 슬슬 부숴서, 영혼은 한 톨도 제 형체가 없었진 건 후에... 안나의 후손 중 하나가 추락한 때야."

"..."

안나의 후손이 추락했을 때, 그날을 잊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아카인 영애에게 찔린 날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의 청문회, 부서지는 햇빛, 뭉개진 안나의 시체, 광소하는 류, 상처 입은 셀리안- 그런 것들.

"정확히 말하면, 그 날 새벽일까, 아니면 전날 밤일까. 나도 꽤 열심히 부쉈는데도 남아있었거든. 그걸 진이 마저 흔적도 없이 지워버려줬어."

동시에 새삼스럽지만 꿈, 꿈을 꿨던 기억이 난다. 미실랭 부대장이 나타난 꿈.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에드나가 울면 위로해줘.]

그래- 부탁했었다. 내게.

"진 녀석, 어지간히 '그걸' 떨어뜨리고 싶었나 봐. 아주 가차없이 인격을 지워버리는데- 너...왜 또 울어...?"

기억한다. 소리를, 부서지는 소리를. 나를 데려가는 렌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에드나의 모습을. 이미 영혼 따위 한톨도 남지 않은 껍데기 같은 미실랭을 눈치 챘으면서도 차마 미실랭의 몸이 부숴지는 걸 보지 못한 가련한 뱀의 공주가 가로막는 순간, 망설임없이 셀리안이 손을 뻗는다.

[이왕 만나는 건 엘킨 대장이나 폐하나, 히아군이나, 가족이나... 에드...나나... 만나고 싶은 사람도 참 많은데.]

붉은 눈은 차갑고, 그 눈은 똑바로 나를 보고, 그게 무서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린 소리를, 기억해낸다.

한심한 남자, 불쌍한 남자, 가련한 남자.

나를 멍하니 보던 눈, 나를 잡던 손, 나에게 매달리던 당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제가' 지키는 건 '셀리안 크레이누' 폐하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입니다.]

교활하게도 나는-

[그게 내가 아는 이 나라의, 지금의 왕님인 걸요.]

나는, 지독한 에고로 당신을 구원해버리고 만 것이다.

과거, 엘킨이 그랬듯이.

============================ 작품 후기 ============================

[誾炡]님, YouURin 님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_<♥

오타 정정 감사합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나무바라기입니다! 언제나 선, 추, 코, 후원쿠폰, 팬앝..ㅜ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추석 전 일 러쉬로 드디어 비축이 끝났습니다. 물론, 뼈대는 있습니다만, 뼈대로는 글이 되지 않...또르륵... 게다가 추석에는 추석 대로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의미로...(퍽퍽) 9월 29일 00시에 돌아오겠습니다.ㅜㅜ

죄송합니다.

모두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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