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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을 보는 셀리안의 표정은 무표정하기 그지없다. 무미건조한 그 시선에 진의 눈이 흔들렸다. 경악의 심정에 가려졌던 감정이 있다. 그것은 그가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무언가라고 직감한다.
추궁할 것처럼 셀리안을 향해 날을 세웠던 게 무색하게 정면으로 그와 마주한 순간 진의 어깨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셀리안은- 나를 보는 시선은 지극히 따뜻하고, 한편으로는 초조하게까지도 보였지만, 지금은 감정이 전혀 스미지 않은 건조한 시선으로 진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눈물을 닦고 있는 셀리안의 손을 잡았다.
셀리안의 시선이 자신을 잡는 내 손에 닿는다.
“리안- 아니죠?"
"아니라고?"
"물뱀의 일족을..."
물뱀의 일족을 어떻게 한 건 아니겠죠, 라고- 말은 이어지지 못한다. 애초에 그가 그럴 이유가 없다.
셀리안의 눈이 내 손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나와 눈을 마주했다. 붉은 눈동자는 다정하게 가라앉아 있다.
“물뱀의 호수를 찾아갔다. 그대를, 찾기 위해서였지.”
“아.”
그래서, 나를 찾기 위해 무언가 한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그 구상은 말도 안 된다. 동시에 끔찍하기 그지없다.
불안하게 그를 보고 있으면, 셀리안은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호수는 꽤 오래 전부터 정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누적되어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어. 아마-”
셀리안의 시선이 스르륵 움직여 진을 향했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전능한 용이지 않나.”
“전능한 용도, 모르는 건 모르거든.”
"그럴까? 그대들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짐의 최초와 관련된 이유로- 물뱀의 대장로가 친히 오염을 방치하고 있던 것 같은데."
까득 하고, 진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알고 있지. 하지만, 그건 매우 작은 부분이야. 조만간 물뱀의 공주가 새로운 차기 장로로 선택될 테고, 그녀는 확실한 성격이니 해결되었을 거야.”
“조만간? 그대들의 조만간은 인간이나 생명이 짧은 인외생물들에게는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나는 잘게 몸을 떨었다. 셀리안이 다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머뭇머뭇 고개를 들었지만 느낌이었는지 그는 여전히 진을 보고 있었다.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호수의 오염이 심상치 않은 걸 본 순간, 짐의 왕성에 방문한 이종족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짐은 이종족의 왕은 아니라 넘어갔지만, 절박할 거라는 생각은 있었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는 인외생물이나 이종족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들과 화합하면서도 벽을 두는 방식을 취했다. 누구든 지배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인외생물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지배하지 않았다는 건 보호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 했다.
"물뱀의 호수는 그 자체로 강한 마나를 갖고 있지. 무생물이 마나를 갖는 일은 드문 만큼 주변 숲을 풍요롭게 하는데도 일조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 숲 주변으로는 다른 인외생물도 꽤 살고 있었어. 오염은 힘이 약한 이종족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네가, 셀리안 크레이누가 인외생물을 위해 손을 썼다는 거냐?"
진의 물음에 셀리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변덕이다, 눈앞에서 이상을 본 이상 넘어갈 수는 없지 않나. 조만간 인간에게도 영향을 줄지 모르고 말이야. 그 처리에 일주일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만-"
"..."
"일찍 찾으러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영."
셀리안의 시선이 드디어 나와 맞았다. 그는 정말 미안한 듯이 나를 보았다.
그의 말인즉- 호수에 나에 대해 물으러 간, 셀리안 크레이누는 호수가 오염된 걸 알았다. 오염된 호수의 이상을 감지한 왕은 탄신일을 맞이해 찾아온 이종족들로부터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공명정대한 왕, 마치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것 같은 공정함으로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셀리안은 전생, 엘킨에게 미쳐 있었어도 끝까지 성군이었다. 그가 하는 모든 살육도, 파괴도 결론적으로는 옳은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다고, 물뱀들을 멸족시키거나 호수를 마르게 하는 게, 옳다는 거냐?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것도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야! 너는-”
“멸족? 말라?”
셀리안이 조금 웃는다. 우습다는 듯이 가볍게 목을 울리고, 나른하게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네놈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군. 너무 오래 살아서 감각이 둔해진건가?”
“뭐?”
"호수가 말랐다라, 정말 말랐나?"
"?"
진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는 가늠하듯이 셀리안을 보고 허공을 보았다. 허공을 노려보듯 보며 무언가 생각한다. 생각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호수의 마나가.”
이번에는 다른 경악이 진의 눈에 서린다.
인외생물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나에 굴복한다. 마나는 그들의 지위이며 그들의 힘이었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이 세상 지고의 왕으로, 그 마나는 인외생물, 인간을 통틀어 세계의 이변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너... 이건 이미 물뱀의 호수가 아니야. 이건 네놈의 마나로 가득 찬 네 놈의 어항에 불과하잖아.”
“말이 과하군. 뱀 일족의 의견은 들었다. 호수의 오염은 너무 누적되어 그들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 같더군. 장로진을 믿었지만 소용 없었다는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던 모양이야. 짐은 뱀일족의 정화법 따윈 모르니, 짐의 마나로 갈아넣을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찬성했다.”
“그렇다 해도 정화는... 차기장로나 현장로를 통해 돕기만 해도 되잖아? 이래서야 원래 물뱀의 호수는 말라붙은 게 맞아.”
"그대는, 제법 고지식하군."
"...그런 말투는 관둬라."
진이 힘겹게 이야기한다. 그의 눈이 다시금 흔들렸다. 그 모습에 셀리안은 역겹다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성가시군, 에피룬 크레이누가 똑같은 말이라도 해줬나보지?"
"..."
“유감스럽지만, 짐이 에피룬 크레이누라는 건 공언된 사실이니, 닮은 점이 있다면 감안하고 넘어가줬음 좋겠군."
대기가 가볍게 진동한다. 렌을 향해 화를 낼 때와 다르게, 교묘하게 우는 것 같은 울림이다. 그 울림을 무시하고 셀리안은 호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진은 입을 다물고, 셀리안을 바라보았다.
"뱀족의 현장로는, 벌써 노쇠했더군. 현장로는 힘을 잃는 게 너무 빨랐지. 그 역시 호수의 오염을 방치한 탓이겠고- 전능한 용도 모르는 건 몰랐겠지만 짐이 어떻게 했어야 옳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오히려 궁금하군.”
셀리안의 말은, 옳은 말 투성이다. 그는 할 일을 했다. 진의 태도를 보건대, 그가 이야기하는 호수의 오염은 그 역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공명정대한 왕은, ‘윤하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 호수를 정화했다.
진은 심각하게 이야기했지만, 호수가 말랐다는 것, 엄밀히 말해 원래의 마나가 셀리안의 마나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다. 뱀일족이 멸족되는 일은 없었다. 모두 살아있고 그에게 찬성까지 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몇 번이고 꿈 속에서, 기억 속에서 보았다. 비슷하다고는 했지만 그 장면들은 훨씬 잔혹한 것이었다. 뒤틀어, 파괴하고, 짓밟아도 모든 것은 옳은 것- 하지만, 지금 셀리안이 했다는 일에서는 아무도 희생당하지 않았다.
셀리안이 나를 사랑하게 된 건, 어떤 끔찍한 결정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인외생물에게 무관심했던 그가 인외생물까지 생각해준 거다.
“그렇다면, 차기장로가 있지 않나. 에드나- 뱀의 공주가 왕궁에 머무는 걸로 아는데. 그녀에게 힘을 빌려 ‘뱀일족의 힘’으로 정화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그녀의 재능은 충분하잖아.”
진이, 힘없이 이야기했다. 셀리안의 말에 대한 반박을 찾지 못한 그가, 지푸라기를 잡듯 이야기한 것에 불과했지만, 순간 나는 치부를 들킨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그 놀람은 죄책감을 동반했다. 그래, 그는 에드나를- 알고 있으면서도,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던 나 자신에 놀라고 만다.
놀라고, 무서워 나는 나도 모르게 셀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꼭 붙잡는다. 이게, 무슨 감각인지 안다. 부정할 수 없는 어떤 것, 그가, 나를 사랑해 누군가를, 에드나를-
결국, 모든 건 최악으로 치달아 최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나는 또다시- 그는 또다시-
“..."
"!"
괴로움에 입술을 짓이겨 물면, 셀리안이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달래는 것처럼 다정하게 속삭여왔다.
“그녀는, 짐의 왕궁에서 요양중이라서 말이다.”
*
“그녀는, 짐의 왕궁에서 요양중이라서 말이다.”
"!"
시선을 올리면 셀리안이 부드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몸을 기울인 탓에 가까웠던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셀리안은 자신의 팔을 붙잡는 내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된다, 하영."
"하, 하지만-"
하지만-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없다. 없어야겠지. 그녀는- 무사할 거니까.”
그의 손은 따뜻하고, 셀리안의 붉은 눈은 다정해서-
에드나가 무사하다고? 그건 좋다. 다행인 일이다. 다행인 일이지만, 터져나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믿지 않고 싶어서, 생각하기 싫어서 직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셀리안은 분명히 그녀를 ‘죽였다’
나를 위해, 미실랭의 입에서 뻗어나온 렌의 손에 붙잡힌 나를 구하기 위해서. 미실랭의 몸을 지키려는 에드나를 부수었다고.
“하지만, 분명.”
“괜찮다, 믿어도 된다.”
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할리 없어. 이제 나는 분명 왕궁에 돌아갈 거고, 그곳에는 그의 말대로 에드나가 무사히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무섭다. 명백하게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오싹해진다.
“그게 무슨 말이지? 뱀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요양이라니. 그리고, 무사한 게 아니라, 무사할 거라고?”
진의 말에 셀리안이 눈가를 접어 웃는다. 그는 이제는 진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는 것처럼 틈을 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은- 그래. 마침-”
“리안.”
“아아, 걱정할 필요 없어. 확실하게 무사하니까.”
무사해졌으니까-
"..."
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구상이다. 내가- 언젠가 셀리안 크레이누였기에 할 수 있는 망상이다.
셀리안 크레이누는 지고의 왕, 하는 일은 완벽 그 자체- 낭비는 없고 영원히 성군이라 칭송받아 그의 망가짐을 아는 자는 본인이었던 나와 아주 나중의 엘킨뿐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물뱀 호수의 오염된 마나를 정화했다. 오염만 정화하는 법은 그에게는 무리였기에 그 많은 마나가 전부 셀리안의 마나로 바뀌었다. 호수는 셀리안 자체가 되었다. 아마도 그가 호수를 정화한 건 방금 전, 호수를 제것으로 만들어, 호수의 예언으로 내가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 알아냈고-
정말, 그는 정화'만' 하는 법을 몰랐을까.
그렇다 해도, 갈아치운 본래의 마나는 어디로 갔는가. 그냥 사라진 건가. 그 많은 마나가?
그의 치유 마법의 근원, 어쩌면 죽은 자까지 살릴지 모르는 그의 마법- 그가 ‘나를 위해’ 에드나를 죽이고 ‘나를 위해’ 에드나를 살렸다면 그것을 위해 대가로 삼은 것은 혹시.
“하영-”
“!”
순간 셀리안이 내 이름을 불렀다. 달콤하고 감미롭게, 조금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가 낮게 귓가를 파고든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짐을 믿으면 돼.”
"..."
"그대가 걱정할 일 따위 없게 할 테니까."
여유로운 목소리, 오만한 권유, 설득-
나는 셀리안을 보고, 셀리안은 나를 보았다. 그의 눈은 여유롭기 그지없었지만,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침묵했다. 나역시 침묵한다.
침묵의 끝에 셀리안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자. 짐의 궁으로-”
여유롭고 나른한 지고의 왕, 왕의 눈동자에는 간절함이 스며 있고, 목소리는 긴장으로 조금 쉬어 있다고. 낮고 낮게,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명령하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엘킨이, 기다리고 있어. 히아신스도 그대를 걱정하고 있지.”
나는 그 눈동자를 빨려들어갈 것처럼 보고 있다. 또다시, 이유도 없이 알 수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그의 팔을 잡고 있던 내 손이 툭 떨어지고, 셀리안은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준다.
“뱀공주도, 필시- 일어나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마 그대가 필요하겠지.”
누구보다, 셀리안 크레이누가 윤하영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윤하영을 위해, 그는 호수를 정화하고, 호수를 손에 넣고, 이종족의 말에 귀 기울이고, 에드나를 살릴 것이다. 히아신스를 지킬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돌아가자.”
한 번 더 셀리안의 목소리가 울린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 작품 후기 ============================
YouURin님, 아마도그건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ㅁ+// 햄볶햄볶
月光天女璉님! 리코멘을 원하시면 @를 붙여 주세영... 또륵 @가 없으면 리코멘을 원하시는지 제가 몰라요.ㅜㅜ 제가 바부입니다. 홍홍. 제가 月光天女璉님 사랑하시는 거 알죠! 코멘 잘 안 쓰시는데 써주셨다고 했을 때 감동먹었음.
그래서 님 코멘을 주욱 봤는데 하영이는 셀리안이랑 같은 영혼 맞아요. 류는 다른 영혼입니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