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29화 (12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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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자두도록 해라.”

“계속 잤는걸요.”

"쯧."

셀리안이 손을 들었다. 그는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고, 다른 한 쪽 눈을 갸름하게 떠 기가 막힌 듯 나를 보았다. 말 안 듣는 어린 아이를 보는 표정이다. 나보다 어린 주제에...

그보다, 이 상황은 낯이 익다. 셀리안이 잠을 권하고 내가 거절하고 그가 손을 들고- 그 손이 다가와, 곧 내 이마를-

또 강제로 재우는 거냐!

"잠깐!"

"뭐지?"

이마를 다치지 않은 한 손으로 감싸고 외치면, 셀리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 의지로 잘 생각이니까, 좀 그러지 마요.”

반발하긴 했지만, 다 낫지 않은 몸은 노곤하고 창밖도 마침 어두웠다. 강제로 재우지 않아도 눈만 감으면 잘 것 같은 상태였다.

“좋은 생각이군.”

손을 거둔 셀리안은 그대로 깍지를 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을 감아야지. 재워줘?"

“됐거든요. 설마, 잘 때까지 지켜보려는 건 아니죠?”

“자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짐이 지켜보는 걸 영광으로 알도록.”

“...”

그의 붉은 눈이 나른하게 풀린다. 느른하게 가늘어진 붉은 눈동자에 내가 비치고 있었다. 나 역시 제법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도, 그도 안심한 거다. 우리 모두 무사한 것에, 우리가 다시 평화롭게 말을 섞게 된 것에.

'그래도, 좀 쑥스럽네.'

예전이었다 해도 저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부끄러웠을 텐데, 이 남자가 날 좋아하는 걸 아니까 더 민망한 기분이었다.

“말도 더럽게 안 듣는군.”

“잘 거예요. 잔다니까요.”

다시 손을 드는 그의 모습에 냉큼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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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반즈음 잠에 취해 생각한다.

일단은 아직도 나를 보고 있는 걸까-부터 시작한다.

나를 보는 걸까, 보고 있는 걸까. 셀리안 크레이누가 나를 보는 건 어떤 감각인 걸까.

사랑하는 여자를 보는 감각?

셀리안이 나를?

그것은 아직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의 사랑을 인정했지만 내게는 아직, 그래 아직 거울을 보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그와 나는 다른데도.

이건 그의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냥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무서울 뿐이라고.

“왜일까... 무섭구나.”

여러가지 생각에 골몰하다보면, 셀리안이 나직하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정말 혼잣말 같기도 하고 내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무섭다는 걸까. 홀로 골몰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셀리안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잠결이지만 감각은 그를 향해 곤두섰다.

또다시 무언가 그를 괴롭히는 일이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기억을 더듬지만 이 즈음 그를 괴롭힐 만한 것은 별달리 없었다. 엘킨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와 대입해 내가 그를 불안하게 할만한 게 있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키오후라든가 진이라든가... 전생에는 없던 요소들이 끼어들어 있다.

- 정말 이런 요소들이 전생에 없었을까.

그만큼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리안- 아무것도 무서워 할 필요 없어요.”

쏟아지는 잠기운을 이겨내며 나는 일갈했다. 그것은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열어보면 모두 별것도 아닐 거예요.”

그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전생이든 환생이든 무엇이 얽혀도 셀리안 크레이누는 셀리안 크레이누일 것이다. 내가 절대, 그를 부정하지 않을 테니까.

“그럴까.”

셀리안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나는 완전히 잠 속에 빠져들었다.

*

"오오, 됐다, 됐어."

'...분명 자고 있었는데...'

"자야 만나지."

'...'

나를 보고 즐거운 듯 외치는 류를 무시하고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나와 공유된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이 셀리안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감옥이라기보다는 어린애 놀이방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바닥도 천장도 벽도 온통 폭신한 메트리스에 감싸여 있다.

어쩌면 이 만남은, 인외생물의 감옥에 갇혔던 렌이 했던 것과 같은 현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좀 다를까.'

렌에게 불려 그의 감옥에 끌려들어갔을 때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게 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일단 렌 때와는 달리 부유해서 그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명확한 질량을 가지고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질량이라고?

터무니없다. 나의 몸은 어디에도 없었고 류에 대한 대답조차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

그런 생각을 했지만 순간 명확하게 내 모습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가 스스로에 대해 질량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서서히 떠오르는 손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면 류가 무릎걸음으로 내가 나타나기 시작한 지점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짓을 하다니. 셀리안에게 들킬 걸?"

"전혀, 이건 너와 나의 꿈인걸?"

"뭐?"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지. 우리 사이에는-"

"뭔 소리야?"

"우와- 배신해 놓고 뻔뻔하네!”

그는 눈썹을 꿈틀 접으며 일부러인 것처럼 연극조로 소리를 질렀다.

"배신이라고?"

"그래, 배신-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셀리안 크레이누를 부르다니."

"흐음."

그의 입에서 배신이란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다. 새삼 류를 바라본다.

마법은 사라져, 머리색은 베이지색으로 돌아왔고 눈동자는 황금색이었다. 나를 타박했지만, 그의 눈에는 배신감이나 원망이 섞여 있지는 않았다. 않은 것 같았다.

사랑스러움도 기쁨도 모두 그에게는 강하지 않은 감정이었고, 배신감도 원망도 그에게는 마찬가지였다. 감정은 깊어지지 않는다.

"..."

오히려, 지금 그의 눈동자에 서린 건 배신감보다 흥분이다. 그답지 않은 강한 감정이 놀랍지만 흥분이라니?

"...변태같이."

“또 변태라 그러네?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하지?”

"흥분했잖아. 배신 당해서 좋아?"

"설마, 상처 입었다고."

류는 투덜대다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내게 얼굴을 대왔다.

"이걸로 셀리안 크레이누도 침범할 수 없는 너와 나의 연결이 증명된 거잖아. 그게, 좋아서 그래."

"무슨 소리야?"

또 이 남자의 말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고 있었다.

“말했잖아. 이건 너와 나의 꿈이라고. 셀리안 크레이누는 내가 갇힌 감옥에 이중삼중으로 결계를 쳐놨어. 렌처럼 너의 영혼을 끌어올까봐 그런 거겠지.”

그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건 필요 없다는 거지. 감각의 공유는 약간만 마나를 투자하면 꿈의 공유도 가능하다는 게 지금 증명 되었으니까! 너와 나의 꿈이 이어지는 건 그도 막을 수 없어. 그가 아직 너와 나의 감각이 공유되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이 남자는, 자기 자랑을 할 때는 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 여긴 네가 있는 감옥이 아닌 거네?"

어린애 놀이방 같지만 온통 하얀 게 악취미라고 생각했는데- 꿈이라고 하는 걸 보면 류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었나 보다.

“아니, 유감이지만 감옥 맞아. 거의 똑같이 재현했어. 보여주고 싶잖아? 내가 있는 곳을...”

"필요없는데."

“또 너는... 대체 나를 얼마나 상처 입혀야겠냐?”

방을 둘러보던 시선을 류에게로 향한다. 그가 상처라니, 배신을 연호하는 그만큼이나 우스운 이야기였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상처도, 배신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남자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감정을 주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류라는 남자가 갖는 특이성을 배제하더라도, 나의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차가운 표정."

"그래?"

그는 셀리안을 상처 입혔으니까, 상처 입히려 하니까.

"우리는 감각이 공유되고 있잖아. 난 지금 네게 배신 당하고 필요없다고 말해져서 아픈 것 같거든? 넌 안 아파?"

"안 아파."

일갈하면 그는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좋은 것 같기도 한 표정을 했다. 모든 감정의 아픔이 공유될리는 없는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전혀 아프지 않다는 것에 그의 투정을 내심 비웃었다.

“그렇겠지, 넌 불감증이니까.”

그는 툴툴거리며 허공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는다. 황금빛 눈은 드물게 강한 감정을 갖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런 그를 무감하게 마주 바라본다.

“그러니까- 불감증인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만큼 생각하게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꿈은 기니까- 라고 덧붙이며 그는 웃었다.

"이야기?"

"응, 내 이야기. 어린 시절이라거나, 취미라거나, 특기 같은- 그런 거."

류의 취미나 특기라고? 뭔가 뒤숭숭할 것 같다.

"...그런 거 너랑 어울리지도 않고, 난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하는 거야. 넌 알고 싶지 않아하니까-"

"..."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네가 나를 동정할지도 모르지.”

오늘 그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이야기에도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 나는, 그에 한해서는 정말 불감증인지도 모르겠다.

"동정 받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렌이 이야기했거든. 여자라는 생물은 모성애가 강하다고."

"..."

"이 이야기는 진도 렌도 동정했던 거니까, 기대해.”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꿈이 끊겼다.

============================ 작품 후기 ============================

짧네요.; 내일은 빵빵한 분량으로 찾아온다고 이야기 드릴 수는 없지만;;ㅜㅜ 크흡.

아무개23님, 마사히 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 가을도 깊었으니 열매춤을 추겠습니다. 수확의 계절이네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ㅋㅋ 감사합니다.

시은랑 님// 셀리안이 열심히, 정말 열심히 고민중이라고 합니다.ㅎㅎ

月光天女璉 님 // 사실 하영이도 퍽 제대로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셀리안보다 다른 것에 영향을 받기 쉬운 약한 하영이라 외부에서 끄집어내려고 하면 쉽게 끄집어내진다고 해야 하나. ㅎㅎ 나머지는 앞으로 진행을 통해 풀어가겠습니다.

cool7 님 // ㅎㅎㅎ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읽고 생각하신 대로 느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ㅁ/ 이것이 제대로 된 사랑인지 아님 그냥 자기애인지... 또르륵

네르비안 님 // 요즈음 어쩐지.. 리코멘으로 스포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ㅎㅎ 어쩐지 앞으로 진행을 통해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적 예감이 듭니다.>ㅁ<

시노메 님 // 나무는 생선을 먹지 못해요. 햇빛과 물을 먹을 뿐이죠! 거기다가 @는 간식이랍니다. 냠냠.

lokoko님 // 음... 사실 이북 계약은 했습니다. 그러나 종이책은... 이 마이너한 글을 종이책 화해주실 대인배 출판사님들이 없는 것 같...또르륵

옆집바나나 님 // ㅋㅋㅋ 우리 독자님들도 보이시는군요.; 이 행복한 상황 뒤에 펼쳐진 난잡한 아수라장을...;; 열심히 풀어보겠습니다. 홧팅. 엘킨은 역시 마성의 엘킨. 지금 엘킨 가지시겠다는 독자님들만 몇이냐.

우왕굳열글자까지되네 님 // 이렇게 긴 닉네임을 가지시다니... 혹시 오타가 났어도 용서해주세요. ㅎㅎ 대신 만약 닉에 제가 오타를 내버렸다면 엘킨을 드립니다~

적매화 님 // 이북 계약은 했습니다. 종이책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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