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36화 (13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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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마음을 가다듬었다.

뜬금없는 성녀와 신관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 그의 부모 이야기였던 것 같다. 생각이 닿자 시모갈의 신관 아누휀 윈드아를 그가, 아버지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이해가 갔다.

아마, 성녀가 만났던 첫 타인은 안나- 엄밀히 말해 그녀의 찌꺼기란 거겠지만 나는 구분이 가지 않았고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중 하나였을까. 시기 상 성녀가 안나를 만난 건 셀리안 크레이누 탄생 전이니, 그들이 에피룬을 탄생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으리라. 그래서 용의 기운이 넘치는 시모갈에 갔다가, 성녀를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만나 에피룬 탄생의 포석으로서 삼기 위해 일부러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는 이야기야.’

누군가를 부활시키는 마법은 안나에 의해 만들어졌고 안나의 마법은 에피룬을 부활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셀리안 탓은 아니다. 전생에 얽매인 멍청한 자들이 집착한 더러운 짓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그의 이야기만으로는 그가 셀리안을 싫어하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설마, 그때문에 그를 미워한다면 애꿎은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그 성녀- 아마도 류의 어머니가 그 마법으로 류를 낳았다고 해도 류에게 내가 찜찜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후회한 엄마는- 수상한 타인이 준 방법으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거야. 뭐, 나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라고, 진은 이야기했지. 그리고 하얀 용도...”

류는 약간 먼 눈이 되었다. 그답지 않은 표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평상시의 멍한 표정 같기도 했다.

“...잘 됐네.”

뭐가 잘 됐다는 걸까.

안나와 관련된 누군가에게 동류의식을 갖고 그 사람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전이었건만- 알자마자 나는 셀리안과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하고 있다.

“그, 이제-”

그만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쩐지 나는 그의 말을 멈출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저 긴장했다. 긴장의 이유 중 하나는- 어디서, 어떤 부분에서 셀리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야기는 여자가 류를 부활시킨 과정이었다.

시체를 껴안고 미친 여자는 운다. 울고 울고 눈물이 마를 때까지, 아니 눈물은 마르지 않아서. 어떻게 태어나기 전의 일을 아냐고 그런 말이나 간신히 물을 수 있었는데, 그는 하얀 용이 이야기해주었다고 가볍게 덧붙였다. 하얀 용은 그에게 엄마를 미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미워할 것도 없는데 말이야.”

라며 류는 어깨를 으쓱한다.

울던 그의 엄마가 떠올린 건 그녀가 소녀 시절,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보다 이전 그녀에게 찾아온 첫 번째 인간이다. 그 자는 그녀에게 ‘죽은 사람을 살리는 법’을 알려준다. 죽은 자의 무언가, 혹은 심장, 그런 걸 이용해서 죽은 자를 살리는 흑마법.

그런 멍청한 이야기를 절박해진 여자는 아기의 시체를 안고 시험해간다. 그녀의 곁에는 그것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흰 용의 공간에는 그 여자뿐. 제정신이 아닌 성녀는 짓무르고 썩어가는 아이의 시체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절박하게 이용해, 결국 아기를 되살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 엄마가 좀 대단해. 경이적인 두 번째 부활이었다고 하는군.”

“넌... 에피룬 크레이누와 관계가 없다는 거네. 결국.”

이기적이기도 하지. 긴장의 그 다음 이유는, 혹시 두 번째로 부활했다는 그가- 이런 저런 과정에서 또 에피룬의 환생이나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부활 자체도 에피룬의 부활을 꿈꾸는 멍청한 자들에게 휘말린 거겠지만 나는 일단 셀리안에게 그가 직접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존재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렌과 진의 태도도 그렇고 조금 의심했던 터라 물으면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가, 나는 나야. 셀리안 크레이누와 달라.”

“...”

“안심했어? 왜? 나는- 조금 섭섭하기도 해. 관련이 있었다면, 너랑 아무 것도 안 해도 연결 될 수 있는 거고. 그러면 우리 엄마도-”

“...이제 일어날 시간인 것 같아.”

잘은 모르겠지만, 이제 이 지리한 꿈을 끝내고 싶었다.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그가 셀리안과 상관이 없다면 된 거다. 그의 탄생이야- 사실 잘 된 거니까.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잘 된 거겠지. 결국 성녀는 아들을 잃지 않고 그도 되살아난 거니까.

“그렇지만, 엄마도 좀 어리잖아.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

“응?”

나는 대충 그에게 대답하며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언제 이 공간은 무너지는 걸까. 일어나고 싶다.

"난 다시 태어나기 전과 다른 점이 있었던 모양이야."

아직은 아닌가. 아직은.

공간이 무너지길 기다리며 불안하게 이야기를 들으면, 되살린 아기에게는 태어나기 전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마력, 애초에 성녀와 대신관 사이에서 태어난 만큼 강했던 마나가 한 번 죽음을 경험하고 흑마법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더 높아졌다. 그리고, 감정이 결여되었다.

“-고, 엄마가 그러더군. 왜 그렇게 두리번 거려?”

“아니야.”

큰일이다. 나는 이제- 어쩐지 그가, 셀리안과 전혀 상관이 없는 그가 셀리안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감정이 결여된 게 아니다.

류는 류 나름대로 나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나와 감각을 공유하고 나에게 계속 상관한다. 보통의 기준으로는 한참 못 미쳐도 그것은 한없이 깊은 사랑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왜 그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다만 희박해서, 그 희박한 감정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희박한 사랑에 매달리는, 안타깝게 매달리는 셀리안과 비슷하고, 비슷해서.

“틀려. 류는 셀리안과는...”

“무슨 소리야? 당연히 틀리대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더 잘 났다니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면, 류는 눈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걔네 엄마와 달리 엄마는 나를 봐줬는 걸.”

아냐, 너를 죽인 것도 살린 것도 네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거야. 결국 헤르티아와 그렇게 다르지 않아. 그녀도 그녀도 전부 자신의 아이를 아이 자체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도, 셀리안도.

아니다. 다르다. 류를 동정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가 왜 셀리안을 미워하게 되었는지까지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는 셀리안을 몇 번이고 상처 입혔다.

“어머니는 어찌나 나를 사랑하던지. 그녀는 나를 너무 사랑했어. 그 증거로.”

지금 말도 명백하게 셀리안을 의식한 거다. 헤르티아에게 ‘자식으로서 사랑받지 못한’ 셀리안을 조롱하는 것이다.

나는 부러 그에 대한 괘씸함을 되살렸다. 곧 아침이다. 조금만 버티면- 아침에는 히아신스를 만나, 저녁에는 셀리안을.

그래, 셀리안을 만나 이 꿈에 대해 상담하자. 꿈을 끊어달라고.

“좋겠네. 어머니가 사랑해줘서. 마마보이도 아니고.”

“마마보이? 그건 뭐야?”

“너지.”

“싸이코패스에 마마보이, 너는 나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하는구나.”

이런 미친놈을 봤나.

나는 초조함을 지루함으로 포장하며 살짝 시선을 빗겼다. 시선을 빗기면, 류가 다음 을 잇는다. 아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 말에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어찌나 나를 나 자체로 사랑했는지. 그 후에도 결여된 나를 위해 몇 번이고 나를 죽이고 낳았으니까.  죽고, 살아나고, 죽고- 살아나고. 반복하고 반복해 온전한 내가 태어날 때까지.”

*

부활의 흑마법은, 일단 여자의 배를 필요로 했다. 그 다음은 죽은 자의 심장, 죽은 자의 일부 그런 것을 배안에 넣고 마법으로 키우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10달까지는 필요없다. 기간은 들쑥 날쑥, 배는 비정상적으로 부풀기도 하고 천천히 부풀기도 하고. 다양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그랬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의  결여를 안타까워하며 완벽한 본래의 아이를 낳기 위해 몇 번이고 노력한다.

그럴수록 아이는 울지도 않게 된다.

태어났을 때 우렁차게 울었던 아이는, 두 번째 태어났을 때는 짧게 비명처럼 울었으며, 세 번째, 네 번째 반복될수록 울음을 잃어간다.

그리고 높아지는 마나, 점점 높아지는 마나는 셀리안 크레이누에 버금가고, 그게- 그 여자에게는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 같다고- 진이 이야기했다며 류는 웃었다.

덧붙여 한 번만 더 태어났으면 셀리안 크레이누를 넘는 마나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류의 말은 액면 그대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게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드디어 공간이 무너져간다.

아침인 것이다.

아침 무렵, 부서지는 공간 속에서 류의 마지막 이야기가 들린다.

[첫번째 부활은 나도 기억하지 못해. 하지만, 부활할수록 나는 기억하고 있어. 엄마가 내 목을 조르고, 다시 나를 그 배안에 품어 낳던 순간을- 몇 번이고.]

류가 웃는다.

그의 웃음 소리는 끝까지 따라붙는다. 잠의 끝까지 계속해서.

나는 잠결에도 머리가 어지럽다고 생각했다.

엉망이다.

이런 죄를 초래한 건 누구인가.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은 누구인가.

셀리안이 아니다. 셀리안 크레이누에게는 죄가 없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그를, 막연히 밉다고도 생각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죄가 없어서.

오히려, 죄를 초래한 자는 셀리안도 괴롭힌 것이다.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특별한 갈빛 머리카락과 생기 넘치는 갈색 눈동자- 아름다운 얼굴-

안나라는 여자에 대해 끓어오르는 기묘한 증오는, ‘셀리안 크레이누’의 것이며, ‘윤하영’의 것이었다.

*

잿빛 눈동자의 시동이 찾아온 건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옷을 차려 입고 있으면 어제 이야기했던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소년이 찾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어서와!”

활짝 웃으면, 소년은 조금 당황해서 나를 보았다. 다른 누군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누군가가가 방문한 게 구원처럼 느껴진다.

아침식사는 내가 좋아하는 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토기만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좋지만, 아니 아무리 아무래도 좋다고 암시해도 류의 이야기는 찝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난 걸 반복하는 아이. 그런 무서운 짓을 한 건 결국 그의 엄마이지만, 그 방법을 알려준 건 안나의 아이다.

안나의 찌꺼기- 안나-

류의 엄마가 안나의 아이를 만난 건 그녀가 소녀일 때. 류는 셀리안보다 어리지만, 그녀가 방법을 받은 건 셀리안이 태어나기 전이었을 것이다. 어제도 생각했던 이야기다. 아직 에피룬이 환신하지 않았던 때인만큼 흰 용의 성녀에게 희망을 건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방법을 알려준 거고. 어쩌면 헤르티아에게 실패했다면 성녀에게 다시 나타나 에피룬의 심장이라도 쥐어줬을지도 모른다.

구토가 나는 이야기였다.

“그-”

“준비는 끝났어. 가자.”

빨리 히아신스를 보고 싶었다. 그녀와 오랜만에 티타임을 가져야지.

“가, 감사합니다.”

소년은 말을 더듬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소년의 볼이 조금 붉게 물든다. 그것을 귀엽다고 느낀다.

"그런데, 세피오스 님의 살롱에서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니?"

“에이나님과 함께 가시고 싶어하실 것 같아서...”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세피오스님이 신경 써준 거니?”

“...”

“아니야?”

“제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마을에... 친구가 있었어요.”

아이는 성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그 친구랑 만날 때 항상 설렜는데-먼저 가서 기다리고 싶었는데, 세르미아 영애님도 그, 그러신거죠?”

“...”

“...”

“푸, 푸하하하-”

긴장하는 아이를 보자 웃음이 터진다. 어린 아이가 친구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표정을 했던 걸까. 나는.

“그래.”

“아-”

“맞아. 나는 히아신스를 만나고 싶어.”

“네-!”

작은 얼굴이 성급하게 끄덕거린다. 조심스러운 태도였는데 아이는 아이다. 솔직한 태도에 웃음이 난다.

“그렇네. 역시 걱정도 되고... 아직 아픈 거겠지.”

“아, 아뇨. 많이 괜찮아지셨다고 들었어요. 폐하가 신경쓰고 있고, 다만 정기적인 검진이 있으...시고 최근에는 많이 돌아다니시지 않는다고. 아! 그렇다고 많이 아프신 건 아니라고 담당의가 그랬대요.”

혼잣말이었지만 얼른 안은 대답을 한다. 두서 없지만 신경써주는 건 알 것 같았다.

"세, 세피오스님께 들은 이야기는 그래요... 하지만, 세피오스님은 왕궁에서 2번째로 훌륭한 여성이라고 했으니까 맞을 거예요."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떨면서. 그게 안쓰럽기도 해 부러 활짝 웃어준다.

이런 식으로 웃는 건 그닥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요.”

“...”

“?”

안은 어쩐지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 잿빛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마치 은빛 같다.

“왜그래?”

“아, 아닙니다. 에이나 영애에게 가시죠.”

안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인도 했다.

============================ 작품 후기 ============================

셀리안 외전은 음... 한 4~5일 뒤 나옵니다. 매일 연재한다는 가정하에... 으음.

스즈카 님 // 이북 이야기는 나중에 명확하게 안이 나오면 하겠습니다. 아직은 정해진 게 하나도 없...크흡. 항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체셔빈 님 // 안나랄까, 안나의 아이들일랄까. 엄마 대신 할머니 대신 어쩌면 증조 할머니 대신 열심히 뛰어준 착한 아이들이랍니다. ㅎㅎ 저는 오늘 ㅍ스ㅋ찌 요거트 스무디를 먹었습니다. 칼로리가 달걀 넣은 ㅅ라면이었습니다. 거짓말이지?!;ㅁ;ㄷㄷㄷ

lokoko님 // 요리를 잘 하는 엘킨이지만 하영이 없으니까 아무거나 해먹습니다. 대충 사냥해서 불에 구워 먹고 있겠죠. 상남자 용병출신이니까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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