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46화 (14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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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의 작은 몸을 완전히 적셔버렸던 물들이 어그러진다. 기묘한 광경, 그로테스크하다는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없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게, 무슨- 큿!"

렌의 눈이 날카로워지고, 그의 주변으로 그가 만들어낸 마법진이 폭탄처럼 터지며 물들을 저지한다. 렌의 몸에도 상처를 내지만, 그는 그런 것엔 개의치 않았다. 않았지만-

“레-렌?”

렌의 눈이 당황한 것처럼 흔들리고 복도를 가득 채웠던 물들이 울컥울컥 움직여 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든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속도는 렌이 몸을 움직이거나 마법진을 만드는 것보다 느렸지만, 일제히 확실하게 렌만을 노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렌이 발버둥치지만 그 몸에 물이 달라붙는다.

"아, 안돼."

안 된다고? 내가 렌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깊은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나는 렌을 잡고 있는 손을 움직여 그에게 달라붙는 물을 털어내려 했다.

황금의 고리에 의해 보호받는 내 손은 아직 물에 의해 습격받지 않고 있다. 그 내 손이 닿은 렌의 몸도 그랬다.

"렌!"

“쳇-”

그런 나를 렌이 밀어낸다.

“이딴 거에, 내가-”

밀어내고 버둥거린다. 버둥거리지만 소용이 없다. 내가 손을 떼자 그의 몸에 달라붙는 물이 점점 많아진다. 그 모습을 진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야? 렌이-”

"...나는 렌을 돕지 않아.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게다가-"

외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 그가 약간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 눈이 웃는 듯 우는 듯 찌푸려진다.

[이해했어요.]

웃는 듯 우는 듯 찌푸려지던 잿빛 눈동자.

[당신의 말이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요.]

그렇게 이야기했던 소년과 같은 눈동자로-

“그녀는- 우리에게 복수 하려는 거군.”

그걸 내가 어떻게 막겠어, 라고... 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

렌은 저항하고, 물은 느릿하게 그를 감쌌지만 그가 완전히 삼켜지는 데는 실제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물을 쳐낼 때마다 물들은 집요하게 그에게 들러붙어 그를 삼켜갔다.

렌은 아직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의지가 그만큼 강했던 건지, 아니면 저것이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 건지.

나는 망연히 반즈음 얼굴이 날아간 에드나의 몸과 그녀에게 ‘먹혀’ 사라진 렌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으면, 에드나가 울컥울컥 떨리기 시작했다.

*

사람들을 삼킬 때마다 에드나의 몸은 물이 넘쳐흐르곤 했었다. 그 그릇은 물을 담기에도 벅차 새로운 걸 삼킨 후에는 그 질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물은 탐욕스럽게 주인의 의지를 받아들여, 혹은 제 의지로 주위의 것을 삼켜가곤 했다.

그렇다면- 용을 삼키는 건 어떨까. 세상 그 자체이면서도 세상의 이변이라 불리는 용을 삼킨다면.

“에, 에드나-”

에드나의 몸이 울컥울컥 떨리고 있다. 감당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잡아두려는 것처럼 떨린다. 떨리면서 물이 줄줄 샌다. 새고 있었지만, 아직 그녀는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터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

“아...”

나는 어느새 주저앉은 몸을 일으켰다. 축축한 물은 찌릿찌릿 몸을 감전시킬 것 같다.

“소...소망실현- 내, 소망실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전생에 셀리안 크레이누, 더 옛날에는 에피룬 크레이누였다. 내게는 분명히 방법이 있을 터였다. 에드나를 살리는 방법이.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일어선 내 팔을 진이 붙잡았다. 붙잡는 게 가능했다. 의아하게 바라보면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셀리안 크레이누도 아는 거지. 내가 너를 지키려는 걸. 그리고, 그 남자에게 어느 정도... 지금은 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 자, 하영-”

“그럴 수는 없어. 에드나를 두고 갈 수는-”

“그녀는-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어떻게든 이라니-”

“그녀는 나나 렌에게 복수 하고 싶은 거잖아. 키도스, 미실랭의 복수겠지.”

그가 가볍게 한숨을 쉰다.

“저 상태라면 렌을 삼키는 걸로 이미 한계겠지만.”

“난 못 가. 그녀를 두고 갈 수 없어."

"고집은...물은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세상을 적신다- 이러고 있는 것도 슬슬 위험하지만..."

진이 내 말에, 절반 정도 얼굴이 날아간 에드나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시선이었다. 동시에 손을 탁탁 털듯이 흔들었다.

"저게 뭔지 알겠어? 네가, 아는걸 이야기해봐.”

"어?"

비린내 나는 썩은 물-

'저게 뭐냐고?'

진에게는 정말 방법이 있는 걸까.

셀리안은 에드나를 살리는데 물뱀 일족의 호수를 사용했다고 했다. 그 반작용일까, 아니면 그에게 있던 저주의 흔적일까. 어느 쪽이든 그 대량의 마나가 그녀를 이루는데 사용되어야 했지만, 그것이 실패했다면? 실패해, 응결되지 못한 호수가 계속 넘쳐흐르고 있었던 거라면?

“호수... 호수야. 이건-”

"그래, 호수- 역시 호수였군. 물뱀의 호수- 그때 셀리안 크레이누가 말려버린 물뱀의 호수- 공주를 살리기 위해 사용했다- 그리고? 단지 공주의 복수심만으로 저런 게 가능할리가 없지."

"키, 키오후가, 키오후가 그녀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했어."

에드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호수는 이미 오염되어 있었어. 그것에 그 늙은이가 저주까지 가했다- 그렇다면, 그 저주를 건 자에게 핵을 빼앗는다면-"

"빼앗아-"

진이 그 은색 눈을 나로부터 떼어 천천히 움직인다. 그 시선은 에드나도 아니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복도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내 시선도 그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반은 정답이랍니다.”

“!”

그녀에게서 흘러넘친 물이 아직 닿지 않은 복도의 끝에는 물뱀의 대장로와, 히아신스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서 있었다.

*

녹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올려 묶고, 깔끔한 붉은 옷을 차려입은 남자의 호박색 눈동자는 만족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여자는 진을 보자 가볍게 떨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더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안타깝다는 생각과 동시에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오후...”

하지만 그 모순된 감정을 그녀에게 부딪칠 생각은 없었다. 여자는 너무나 가련히 떨고 있었고 어찌 되었든 히아신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번 그녀를 외면했다.

“이런, 이런- 붉은 용 진님이 아니십니까. 당신의 주인은 어떻게 하시고 여기까지 오셨는지.”

“내 주인은 셀리안 크레이누랑 단 둘이 치고 받고 싶어하거든.”

“치고 받아?”

그런 거 무리다. 생각하기에는 마나를 잃은 류 쪽이 불리해보이지만, 셀리안은 나와 감각이 공유된 류를 공격할 수 없다.

“응? 아아... 공유를 끊는 건 무리지만, 자유롭게 치고 받고 싶어서 둘이 합의했달까... 일방적으로 류가 요청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감각의 공유를 일방으로 바꿨거든.”

“일방이라니?”

“말 그대로야. 공유는 그대로니 류가 불리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아이의 부족한 마나는 나랑 렌이 채워주고 있으니까. 그것도- 렌이...저리 되었으니 류의 승리를 위해 내가 더 힘내야겠네. 이건- 네 놈 작품 같군.”

나는 의아하게 진을 보았지만 진은 이 화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거기까지 말하고 키오후 쪽을 보았다. 키오후를 보고 있지만 여자를 신경쓰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참 기특한 아이가 아닙니까.”

키오후는 바로 그들 앞까지 흘러온 물로부터 여자를 보호하듯 뒤로 숨긴다.

"기특하다고요?"

"뭘 화내는 겁니까. 이건 저도 의외입니다. 저 아이는, 버티고 있는 겁니다. 장하게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그렇게 다짐했으면서도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남은 용을 삼킨 뒤 자신이 소멸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어하는 겁니다.”

물론, 약간의 피해는 입히겠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는 거라고- 키오후는 에드나를 안쓰럽다는 것처럼 바라보고 진을 바라보았다.

"그냥 맘껏 터진다면 용에게 복수도 하고, 이 나라에도 복수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뭐... 그녀를 멈추고 싶다면 먹혀보는 건 어떨까요. 붉은 용이여."

"나를 먹어서 끝낼 수 있을리 없잖아. 그건, 저 공주에게는 지나치게 부담이야. 그릇을 넘는 힘이다.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체계적으로 하고 있어? 여전하달까, 더 발전했잖아- 키오후군."

"..."

진은 그 답지 않게 빈정댄다. 키오후는 기분이 상하지도 않은 것처럼 묘하게 웃을 뿐이다.

어떻게, 저 남자는 저리 태연한 걸까.

"핵을 내놔요!"

"핵?"

"당신이 에드나에게 저주를 건 거잖아요! 저주의 핵... 그게 있다면."

나는 진의 눈치를 살피며 키오후를 향해 이야기했다.

"핵, 핵- 이라... 어지간히 에피룬 크레이누의 영혼을 달래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저 달래는 의도만은 아니었는데?"

"있다 해도- 그런, 당신들에게 편리한 것이 있을리 없지 않습니까. 그저 제게서 빼앗는 걸로 이 저주를 끝낼 수 있을 정도의- 제게 핵이 있다면 그건 다른, 작은 보조도구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

"그렇게 남 일처럼... 당신에게 에드나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요?"

손녀처럼, 여기고 있지 않은 걸까. 에드나를 아이라고 표현하는 키오후의 말에는 분명히 어떤 애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건만.

“나?”

내 물음에 그가 눈을 크게 뜬다.

“당신도 그 입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요? 그 아이에게서 흘러넘치는 건 저희들의 호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 건 마법왕이고요. 저는 오히려, 그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잔혹하게 여기고 있어요.”

“당신이, 에드나에게 저주를 걸었으면서!!”

“저주 때문이라고? 아뇨, 아뇨- 그건,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틀려요.”

키오후가 순간 여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키, 키오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안나.”

“...안나, 라고.”

“네, 안나랍니다. 이제는- 완전히.”

그가 눈을 휘며 웃는다. 진이 굳는 게 느껴졌다. 그의 은빛 눈은 어느새 ‘안나’를, 안나만을 쫓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척 해도 내가 느꼈던 게 맞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그녀를 보는 시선에, 안나는 그 눈빛이 두려운 것처럼 그를 피했다. 키오후는 어쩐지 그것이 만족스러운 것처럼 웃는다.

“안나에게 그런 심한 짓을 하다니- 진, 당신도 참 잔인한 자네요. 저만큼요.”

“부정하지는 않겠어.”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 눈에는 그답지 않은 감정이 서려 있다. 그것은 죄책감과 닮아 있다. 역시 내가 느낀 것은 착각이 아니다. 에드나를 향했던 어울리지 않는 죄책감의 근원이 어디 있었는지 알았다. 안나에게서 나온 거다. 그는 안나를 보고 에드나에 대한 죄책감을 떠올린 거라고.

“나는- 이치를 되돌리기 위해 안나를 죽이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키오스를 부수려 하고 있지-”

진의 시선을 따라 밖으로 시선을 주면 여기 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왕궁 내를 넘어 수도 전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작지만 웅성거리는 소리,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제는 확실히 느껴진다.

“하지만- 네 놈과 묶이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군.”

그리고 키오후와 마찬가지로 그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보호하듯이 말이다. 키오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불쾌한 듯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뱀족의 대장로가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에드나에게서 흘러나온 물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물을 밟았다. 밟으며 그의 입이 벌어진다.

“마법을 쓰는 건 오랜만이네요.”

밟는 순간 물이 흘러온 자리와 여자의 자리 사이에 균열이 갔다.

“!”

순간 나를 감싼 황금의 고리가 가볍게 빛나고 왕성의 복도 끝이 푹 내려앉기 시작했다.

“당신은 복도를 공중으로 띄었더군요. 전 한 번 내려보겠습니다.”

“말장난을-”

복도는 마치 가라앉듯이 바닥으로 쑤욱 내려간다.

"뱀족 공주의 호수 마나를 끌어쓰는 거냐?"

"제가 너무 늙어서요."

마치 땅에 먹혀들어가듯이 복도가 밑으로 내려앉는다. 어느새 여자는 내려앉는 복도를 불안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꺼져들어가는 복도에서 나는 나를 보는 슬퍼보이는 녹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가 바닥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던 풀숲은 바로 옆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새듯이 흐르던 물은 이제 풀숲을 적시고 풀숲은 에드나의 물에 확실하게 삼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훌쩍 높아진 왕궁복도의 부서진 끝에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나’만을 보고 있었다.

[그저, 만나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키오후를 불안하게 보던 시선은 어느새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녹빛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저 시선을 알고 있다. ‘그때’는 색은 달랐지만 항상 저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떠날까봐 겁내는 것처럼, ‘내’가 사라질까봐 겁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사는 건 너무나, 너무나 괴로운 일이죠.”

그런 내 시선을 키오후의 장신이 가로막는다. 진으로 인해 바로 앞까지 다가오진 않아 키오후와 내 사이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키가 키다보니 더 이상 불안한 눈빛의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에, 상황에 맞지 않게 안도하면, 그는 무감한 눈빛을 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안나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았습니다.”

그 목소리로 현실로 돌아온 윤하영은 얼른 에드나를 확인했다. 에드나의 몸이 물을 토하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죽은 자가 한 기약 없는 약속을 기다리며 슬퍼하는 그녀를 보았답니다. 아마, 진 당신도 보았을 겁니다. 슬퍼하고 그래도 언젠가를 기억하며, 그것이 이번 생애에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인간의 한계에 부딪쳐 늙어가는 육체를 마주하는 그녀를-”

“...”

“에피룬을 아꼈던 당신은 공감하며- 당신만큼 아끼지는 않았던 저는 공감하지 못하며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너는 에피룬을 싫어했잖아.”

진이 씹어뱉듯이 반발했다. 키오후는 깊게 웃는다.

“중요한 건 그녀가, 인생을 허비했다는 거죠. 에피룬 크레이누는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잠들어 있었다면, 안나는 괜히 인생을, 후생을 주욱 허비해온 거죠. 기억한다고,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한 주제에 모두 잊은 자를 위해서.”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안의 누군가를 비난한다. 아프다-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인데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중요한 일은 에드나인데도- 전혀 상관없는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을, 영혼을 파고든다. 내 안의 누군가를 흔들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 따윈 됐어요!”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나는 부러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 해도, 그렇다 해도 아니다. 아닌 것이다.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아뇨!! 아뇨, 아뇨-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키오후는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를 높이는 건 처음을 들은 것 같았다. 그 호박색 눈동자는 적의를 담고 나를 보고 있었다.

"당신들이 '저희'를 불행하게 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생애에 아직 복수할 당사자들이 남아 있을 때- 나의 아이에게 복수의 칼날을 쥐어준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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