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4)

      [시리즈 풍자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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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호텔 이야기■

       ☞열 번째 이야기: 귀신과의 정사(情事)上.

       민수는 모 프로 야구단의 잘 나가는 주력 투수이다.  억대의 몸

     값을 받고 첫해에  15승이라는 성적을 올려 톡톡히  이름 값을 한

     그는 어느덧 데뷔 2  년째에 접어들었음에도 2년생 징크스를 무색

     하게 하며 총알  같은 공을 씽씽 뿌려 대  상대 팀 타자들을 벌벌

     떨게 하곤 했다.

       그런 민수에게 약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창  혈기 왕

     성한 미혼의 선수답게 주변에  항상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다

     녔다. 즉 여자를 지나치게 밝히는 것이 민수에게는 최대의 흠이자

     약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수는 장래가 총망되는 억대의 선수

     인데다가 외모 또한  영화배우 못지않게 출중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민수의 주변은 끝없이  여자들이 맴돌았고 그는 별 어려움

     없이 여자들을 골라가며 잠자리를 같이 하곤 했다.

       민수의 최대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같이 솟구치는 강한 체력이

     었는데 경기 전날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여자와 데이트(?)를 해

     도 다음날이면 변함없이 상대 타자들을 넉다운 시켰다. 오히려 민

     수에게 여자들과의 육체적 교류는 강한 운동에너지의 원천처럼 느

     껴지게까지 되었다. 심지어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져 외박이 금지

     된 날일 나치면 다음날 이상하게도  그의 공은 맥을 못 추고 상대

     타자들에게 통타 당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민수의 신앙이  어느 날 싹 깨어지고  마는 일이 일어났

     다.

       때는 프로야구가 한창  전기 리그 종반으로 치닫던 어느 날, 가

     장 중요한 시점에서 팀이  내리 5연패를 당하자 화가 치민 감독은

     전 선수에게 외박과 금주령을 내렸다. 선수들의 정신 무장을 다시

     하자는 의도  였던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자 가장 몸이 단  것은

     물론 민수였다. 하루라도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좀이 쑤셨던 민수

     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감독의  불호령이었다. 그렇다고 지시를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와 3연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서 전주로 이동

     을 했던  팀은 전주에 있는 C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말 3연전에

     대비했다. 문제의 C호텔은 귀신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어 징크스에

     예민한 야구단은  여간해서 묵기를 꺼리는  곳이었으나 팀이 주로

     묵던 모 호텔이 수리를 하면서 할 수  없이 팀은 C호텔로 왔던 것

     이다.

       저녁에 비가 조금 왔던  관계로 일찌감치 훈련을 끝마치고 호텔

     로 돌아온 선수들은 내일  있을 3연전에 대비해 작전 구상들을 하

     면서 휴식들을 취했다.

       그러나 민수는 이래저래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작년에 전주

     에 와서 모 나이트 클럽에서  만나 사귀어 오던 아가씨 하나를 만

     나기로 미리 약속까지 정해 두었던 터인데 팀의 성적 하락으로 물

     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음이 뒤숭숭해진 민수는 일지 감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호텔 창밖을 바라보니 비는  그쳤다 오다가를 반복하며 내일의 경

     기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었다.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그녀

     는 화를 내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었다. 젠장, 여자가 어디 자기

     뿐인가...

       새벽 두시. 호텔  5층 창문밖에는 짙은 어둠과 함께  아직도 빗

     방울이 뜯고 있었다. 통상 같이 방을 쓰곤 하던  룸메이트인 선배

     투수 K는 허리  디스크가 번져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 간 터였다.

     예상대로 라면 지금쯤은 무슨  핑계라도 대고서 호텔을 빠져 나와

     가까운 곳에 방을  잡고서 여인의 품 안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노닥가리고 있을 시간인데 민수는 생각할수록 부화가 치밀었다.

       바람이 부는지 연신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제대로 잠이

     오지를 않자 민수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캔 맥주 두 개를 꺼내 창

     문 가로 가져갔다.  이 정도 비라면 전주의 그라운드 사정은 뻔하

     다. 어차피 게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민수는 천천히 맥주를 들이

     켰다. 작은 스탠드  불만을 켜 놓은 방안은 희미했고 커튼을 열어

     놓은 통에 창문  유리를 통하여 민수의 모습이  침침하게 내 비췰

     뿐이다. 창 밖도 어둠뿐이었다.호텔 뒤편이 야산이었기 때문에 그

     저 칠흑 같은 어둠이 빗속에 일렁거리며 춤을 출 따름이었다.

       새벽 두시 반, 갑자기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더니 똑

     똑 정확하게 두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빈속에 연거푸 들

     이마신 두 캔의 맥주로 인하여 약간 정신이 흔미한 상태였기에 민

     수는 혹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했다. 이상하군,

     이 시간에 룸 서비스가 올 일도 없는데.  민수가 고개를 갸우뚱거

     리는 사이 다시 똑똑 두  번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틀림없이 들려

     왔다.

       "누구십니까?"

       혹시 자신처럼 잠못 이루는  팀 동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어 민수는 조심스레 문가로 다가갔다. 하지만 기분이 약간 이상하

     단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저... 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애띤 소녀의 음성이었다.

       "예, 무슨 일이죠?"

       상대가 여자인지라 약간 안도감이 든 민수가 다시 물었다.

       "예, 옆방에 든 투숙객인데요. 대단히 실례 인줄은 알지만 잠도

     오질 않고 무서워서요... "

       순간, 민수의 눈이 재빠르게 빛났다. 이런 제길... 떡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경우도  있네. 하지만 이래 놓고 야중에 돈을 요구

     하는 악질 콜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민수는 문틈을 통하

     여 복도 밖을 여자를 확인했다. 헉..민수는 다시 한 번 놀라며 마

     른침을 꿀꺽 삼켰다.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고 잠옷 같은  것을 걸

     친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하긴..저도 적적하고 잠이 안 오기는 마찬가집니다. 마침 냉장

     고에 맥주도 있고...."

       그러면서 민수는 문을 열어 여인을 방으로 안내했다.  가까이서

     보니 여인의  모습은 더욱 더 매혹적이었다. 약간 창백한  얼굴에

     화장끼 없는 얼굴이었으나 잠옷 바람으로 겁도 없이 처음 보는 남

     정네의 방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대단히 끼가 농염한 여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간혹씩 있기 마련인 여성 펜들

     의 육탄 공세  일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야밤에 방으로 처

     들어 온 일은 드믄 경우였다.

       "같이 묵은 남자 친구는..."

       희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인의  앞에 털썩 주저앉은 민수는 본격

     적인 일 벌이기에 앞서서 뒷감당을 먼저 생각했다. 한참을 중요한

     시기에 우락부락하고 인상 험한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녀를 찾아

     문을 따고 쳐들어와 펀치를 날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살폿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방면에 도통한  민수는 프로다운 눈을 번득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통상 이런  시점에서 여자의 앞뒤를 들추는 건 하등의 도

     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익히 터득한 터였다. 그냥 서로를 묻지 말

     고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의 직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맥주 캔 하나를 따서 그녀에게 건넸지만 두어 모금 마시는 시늉

     을 했을 뿐이다. 대신에 그녀가 노골적으로 속살을 보여 왔으므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민수는 용기를 내어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아마도 같이 투숙한 남자 친구가 제대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

     고 잠이 들었거나  아니면 여자를 홀로 바람 맞춘, 어쨌거나 여자

     는 지금 몹시 외로운 상태 입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시점에서 여인에게 구차스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매너 없

     는 행동일 것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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