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33)

Light & Dark , Life &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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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게임을 하시기 바랍니다-

-파앗!

-시작지점: 요크트 마을 정문 앞

게임 안으로 들어오자 LD&LD안의 세상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덕후는 아직 안 온 건가?)

덕후와 만나기로 한 곳은 바로 마을 중앙의 분수대였다.

만냠의 광장 역할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분수대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다시금 우울해져서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이지 내 인생은 너무나 암울하다.

게임 상의 직업처럼 말이다.

"어이, 연아야. 여기 있었구나."

"...?!"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이건...한성이? 한성이 목소리잖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한성이가 서있었다!

(어떻게...?!)

나는 너무나 놀라서 얼음동상처럼 경직이 되고 말았다.

나 여자로 플레이하는 걸 들켰어?

"하하하, 너무 놀라지 마. 연아야. 나 덕후니까."

나에게 다가온 한성이(?)는 내 어깨를 탁탁 치면서 말했다.

(더..덕후라고?)

나는 녀석의 말에 더욱 놀라서 내게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하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한성이의 모습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된 청년의 모습으로, 왠지 부러울 정도로 세련되어 보이는 훈남의 모습.

내가 아름답게 어른이 된 글래머 미녀의 모습이라면, 현재 덕후의 모습은 한성이가 어른이 된 성인 남성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너...너 그거 초상권 침해라는 거 알아..? 그..그리고 왜 너가 한성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건데? 너, 한성이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를 못하고 따지듯이 물어보았다.

-쿵쾅! 쿵쾅!

심장이 벌렁거린다.

한성이에게 들킨 건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순간 멈추는 줄 알았다.

"흥, 물론 한성이 녀석은 싫어. 하지만 녀석의 외모와 성격은 나도 동경하고 있다구."

그..그런거야?

나는 뜻밖의 대답에 놀라 덕후를 바라보았다.

"나라고 그렇게 뚱뚱하고 못 생긴 얼굴로 태어나고 싶은 건 아니야."

덕후는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을 해줬다.

"...."

문득 조금이지만 덕후 녀석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하긴 한성이 녀석, 취미가 좀 그래서 그렇지 나름 잘 생긴다가 성격도 좋아서 남녀노소에게 모두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긴 하다. 그러니 친구도 없고 외모도 딸리는 덕후가 동경을 할만 하지.

(한성이 녀석이 덕후를 싫어하게만 되지 않았다면 아마 둘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서로 취향이 비슷하니 죽이 잘 맞았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나 때문에 둘이 서로 사이가 좋아질 일은 절대 없다는 거지만.

뭐야, 그럼 내가 모든 문제의 원흉 같잖아?

"그..그래도 그 모습은 조금...."

나는 난색을 표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게 있어 한성이의 모습은 조금 안 좋았다.

안 그래도 오늘 점심시간에 말도 안되는 사실까지 알게 된 터라 더욱 그랬다.

(한성이 녀석이 실은 날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었다니...난 몰랐다구...)

난 여성스럽게 생겼지만 남자다.

한성이의 마음은 기쁘지만 난 남자보단 혜선이 누나 같은 여자가 더 좋단 말이다!

(물론...지금은 여자가 되어버렸지만...)

그래, 근데 문제는 이제 내가 여자가 되어버린 탓에 한성이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게 되어버렸다는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하아...대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

최근 들어 내 머리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투성이다.

설마 한성이가 날 좋아해준다는 건 조금 기쁘다. 나 역시도 한성이 녀석을 정말 좋아하니까.

하지만 녀석이 날 좋아해주는 것과 내가 녀석을 좋아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아니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봐야 한다.

(후우...빨리 남자로 되돌아가던가 해야지...)

나는 괜한 걱정을 할 바엔 한달 뒤에 빨리 남자로 되돌아가는 것이 낫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연아야. 너 혹시 지금 울고 있었던거냐?"

내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한성이 모습을 한 덕후가 물어왔다.

"으..응...아냐...!"

나는 내가 방금 전까지 촉수 머신 때문에 당한 억울함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얼굴을 붉히며 아무 것도 아니라며 눈물을 훔쳤다.

"...너 말야. 그렇게 내가 싫었던거냐?"

조금 상처받은 듯이 물어보는 덕후의 말에 나는 조금 미안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녀석이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를 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그래..! 맞아! 너 같으면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이 좋아질 것 같아?"

"물론 아니지."

덕후는 내 말에 즉답을 해줬다.

뭐야, 그럼 알고서도 이런 짓을 한단 말이야?

"이익!"

나는 그 반응이 왠지 더 열받아서 눈물을 훔치고는 녀석을 노려보았다.

정말이지 화가 난다.

발끈해서 두눈에 힘을 주니 억울했던 마음이나 암울했던 심정이 싹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분노는 나의 힘? 뭐 그런거다.

"그럼 대체 내게 왜 이러는데?"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소리치며 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연아 너랑 친해질 수 없으니까야."

"...."

윽!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널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없지."

"...."

한성이 모습을 한 덕후는 내 눈을 직시하면서 대답을 해줬다.

제길, 그게 더 큰 목적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날 여자로 만들지도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뭐야...이 지독한 소유욕은....?)

-두근 두근!

누군가에게 강렬히 원함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일인지는 처음 알았다.

(그...그런 강렬한 눈빛은...비겁하잖아...)

되려 나는 덕후의 시선을 참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이 내가 눈싸움에서 밀리다니, 한심했다.

하지만 지독한 소유욕을 내포한 눈빛은 여자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겐 왠지 이길 수 없는 불가항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후, 이렇고 있을 게 아니라 게임을 하러 들어왔으면 게임이나 하자."

"뭐...?"

나는 덕후가 게임이나 하자는 말에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게임상에서 내 몸을 마음껏 희롱하기 위해 부른 줄 알았는데?

(정말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부른거였나?)

나는 알 수 없는 반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줄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뭐야? 설마 다른 걸 기대했던거야?"

덕후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어보았다.

-화끈!

나는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마음에 얼굴이 시뻘개졌다.

"서..설마...! 절대 아니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녀석에게 당할 걸 생각하고 약간은 각오를 한 상태였다.

게임상에서 당하는 거야 이미 담로스에게 당한 기억도 있고, 게임상에서 한 것은 리얼이 아니니까 무효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덕후에게 들킨 것 같자 왠지 내가 바라는 것처럼 보여서 부끄러워졌다.

"흐흐흐, 걱정마. 아예 준비 안한 건 아니니까."

"...."

망할.

완전히 지금의 나는, 덕후 페이스에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네 뒤에서 멀뚱히 나를 지켜보는 네 동료를 소개 안 시켜줄 셈이야?"

(뭐..?)

나는 덕후의 말에 놀라 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소울가디언이 빙긋 웃는 낮짝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연아님의 귀염둥이, 연아님의 소울메이트, 소울가디언 빨갱이라고 합니다.]

야..얌마..! 누가 나의 소울메이트야?

"호오~ 소울가디언이라. 설마 그 악명높은 소울가이드의 업그레이드판은 아니겠지?"

그거 맞아. 덕후야.

사악하기 그지 없지.

[이런 이런. 누가 그런 누명을. 저처럼 뛰어난 AI는 그 어떤 게임에도 없을걸요?"

소울가디언은 억울하다듯 항변했다.

"크큭, 그건 그래,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지."

덕후는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만 너희 소울가이드들이 너무 유저들을 가지고 놀아서 다들 기본적으로 꺼두려 할 뿐."

뭐야, 그런거야?

[으음...]

소울가디언은 그 말에는 그 잘난 입을 놀릴 수 없는지 신음성만 내었다.

나라도 소울가이드가 그런 거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안 쓰려 했을테니 말 다 했지.

(이럴수가. 설마 한시도 입을 멈추지 않는 빨갱이의 입을 다물게 만들다니!)

하지만 나는 덕후의 말빨에 주절대길 멈춘 소울가디언의 모습에 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덕후 녀석, 학교에선 조용하더니 실은 말 잘 하는구나.)

정말이지 놀라운 말빨!

나는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어서 정말 놀랐다.

[이런 이런. 정말이지 연아님의 친구답지 않게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감탄했습니다.]

소울가디언은 놀랍게도 두 손을 싹싹 비벼면서 비굴하게 아부 모드에 들어갔다.

뭐야. 그 내 친구답지 않다는 말은?

그리고 너 말야, 손이 있었던거냐?

[능력이야 어떻든 얼굴은 가짜인 듯 싶지만요.]

"흐흐흐."

덕후는 소울가디언의 말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파지직!

소울가디언과 덕후는 서로를 노려보며 남들에겐 안 보이는 대결을 하였다.

불꽃 튀는 듯한 험악한 분위기.

나는 둘의 분위기에 위축되어서 찍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레벨도 그 정도면 고렙이신 듯 싶고, 준비도 충분하신 것 같은데 하실려는 퀘스트가..?]

"제3 폐허지대 누군가의 탑."

소울가디언의 질문에 덕후는 즉답했다.

[흠....마검사 승급 퀘스트인가요. 나쁘지 않군요.]

뭐야? 대체 무슨 이야기야?

마검사 승급 퀘스트라니?

[그럼 이제 준비를 하고 출발하도록 할까요?]

"그래."

[장비야 덕후님은 충분하신 것 같으니, 연아님만 맞추면 되겠네요.]

"그런가? 그럼 마을부터 가도록 하지."

[네.]

그렇게 둘은 짝짜꿍을 맞추더니 나의 양옆에서 나의 두팔을 잡더니 마을 쪽으로 향하였다.

어라?

"그럼 연아야, 가보도록 하자."

"응?"

[가시지요.]

"으응..?! 뭐...뭐야..? 왜들 이래?"

둘의 갑작스런 행동에 반응도 못 하고 붙잡힌 나는 바둥거릴 수 밖에 없엇다.

"야? 이보세요? 저기요?"

나는 질질 끌려가며 어이가 없어서 울상을 지었다.

뭔지 모르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건 본능적인 위험의 예감이었다.

-질질질~~!

하지만 덕후와 소울가디언, 둘은 그런 나의 반항을 가볍게 씹어주며 나를 마을 쪽으로 끌고 갔다.

그 상황이 왠지 전날 촉수 머신에 의해 결박당해 끌려가던 때와 똑같아서 나는 속으로 절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뭐냐구, 정말! 제발 살려줘~!

요크트 마을에 끌려온 나는 강제로 무기점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건 어때?"

그게 뭐야?!

덕후가 내게 추천을 해준 옷은 갑옷이라기보단 차라리 끈으로 이루어진 얇은 수영복이었다!

(쿨럭, 뭐가 이리도 야해?)

나는 그 갑옷이 아닌 손바닥만한 수영복을 보며 기겁을 햇다.

"이건 슬링샷 비키니 아머라는 건데, 새총 같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야."

스..슬링샷, 비키니 아머?

(마..말도 안돼. 이따위 것이 갑옷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고작 끈으로 만들어진 비키니 수영복이잖아!)

그야말로 새총을 닮은 옷으로, 가슴부분...이랄까 아랫배까지 미친듯이 파인데다 뒤와 옆은 가리지도 않는, 미친 노출도를 자랑하는 수영복이었다. 

T팬티와 마찬가지로 엉덩이살이 에누리 없이 노출되는데다, 초 하이레그여서 조금만 실수해도 가슴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위험했다!

(이..이런 건 절대 무리!)

성인 잡지 모델이나, 내가 아닌 다른 여성 유저가 입은 걸 보았다면 눈이 호강했을테지만, 

내가 실제로 입어본다고 하자 너무 야해보여서 차마 입을 수가 없었다.

(아예 벗고 다니는게 낫지, 이런 건...)

이런 야한 옷을 입고 다녔다간 변태로 손가락질 받을 것이 뻔했다.

"아..안돼! 절대 싫어!"

나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명백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런 건...절대 입을 수 없다구..."

아무리 지금의 내가 현실에서도 가상세계에서도 여자가 되었다지만 이런 옷을 입는 건 거북스러웠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거부를 했다.

"그래?"

덕후도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순순히 물러서며 대신 다른 갑옷을 골라 주었다.

"그럼 이걸로 하도록 하자."

(으윽...) 

하지만 녀석이 내게 건네준 것은 슬링샷 비키니 아머와 비교해도 꽤 노출도가 높은 물건이었다.

원피스 아머라고 해야 하나.

레이싱 걸들이 입는 매우 작고 얇은 초미니 스커트와 착 달라붙은 상의로 된 원피스 옷이었다.

(대체 이게 뭐냐구. 왜 내가 이런 걸 입어야 하는데...ㅠ)

난 남자인데...왜 이런 옷을 입어야 하는거야?

강요에 의해 그런 야한 옷을 입어야 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우우...이것도 너무 야한 거 아냐?"

아무리 지금 내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난 사실 남자다.

그런데 이런 허벅지도 노출되고, 움직이면 팬티가 아슬 아슬하게 보이는데다,

엉덩이는 먹혀들어가서 훤히 보이는 야한 원피스를 입게 되다니 남사스러웠다.

"그럼 아까 그 슬링샷 비키니 아머로 할까?"

히익?!

"아..아냐. 이게 더 좋아!"

난 덕후의 말에 기겁을 하였다.

녀석의 마음이 변할까봐 현재 받은 옷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스윽~!

"흑....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느낌이야..."

나는 억지로 그 레이싱걸들이나 입는 야한 옷을 걸치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덕후의 강요를 거부할 순 없었다.

괜히 반항했다가 협박받아 비키니 아머라던가 슬링샷 비키니라도 입게 강요당하면 최악이니 말이다.

(우우... 이거 팬티가 먹혀들어서 불편해...)

나는 연신 스커트 뒤를 끌어내리며 울상을 지었다.

미니 중에서도 초미니라서 살짝만 허리를 숙여도 팬티가 노출되려고 하였다.

이건 숫제 남자들보고 속옷을 보라고 만든 옷 같았다.

[오오! 멋지십니다! 정말 멋져요! 연아님!]

아닌 게 아니라 소울가디언은 연신 카메라를 들고서 내 주위를 돌며 후레쉬를 터뜨리며 내 속옷을 찍어대고 있었다.

로우 앵글 중에서도 완전 땅에 붙어서 찍는 초 로우 앵글이라 엉덩이에 먹혀들어간 내 팬티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굿 잡! 부끄러워 하는 그 자세 정말 좋습니다!]

-화끈!

이건 완전 판치라 같은 느낌이라 나의 수치심이 더욱 가중되었다.

"여...역시 이런 옷은 싫은데....방어력도 낮아보이고..."

나는 혼잣말처럼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쯧쯧, 그건 연아님이 모르셔서 그러는 겁니다.]

소울가디언은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혀를 차며 검지 손가락을 까닥 까닥 좌우로 흔들어댔다.

[RPG의 정석은 여성 방어구는 노출도와 방어력은 비례한다는 것! 바로 여성용 갑주의 법칙입니다.]

여성용 갑주의 법칙?

"그건 소울가디언 말이 맞아. 원래 성인용 MMORPG들은 눈요기를 중요시 하기 때문에 노출도와 방어력이 비례한다구."

덕후는 소울가디언의 말에 긍정했다.

(그런 바보같은...!)

노출도 = 방어도라니....

그건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소리잖아. 

그럼 차라리 벗고 다니는 게 훨씬 방어력이 높겠다.

하지만 그 말에 반박을 못 하는 것이, 내가 주로 플레이해온 게임들이 여성방어구는 노출도가 많을수록 방어력과 가격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연아님의 직업은 암울한 운명의 성노. 그리고 가지고 계신 패시브 스킬은 성노의 마음가짐이죠. 성노의 마음가짐은 방어구의 노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방어력을 배로 높여주는 스킬. 그러니 그 혜택을 받으시려면 노출도를 높이셔야 합니다.]

크흑, 여기서도 나의 직업 특성이 따라붙는구나.

하긴 패시브 시킬로 성노의 마음가짐을 가진 이상, 노출도가 높은 방어구를 걸치는 것이 옳았다.

실제로 괜히 하드 레더 갑옷같은 무겁고 두꺼운 갑옷을 걸쳐보니 되려 방어력이 반감되지 않았던가?

"그런 건 나도 알지만...."

나는 소울가디언의 말에 더욱 울고 싶어졌다.

녀석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 더 슬퍼졌다.

왜 하필이면 이딴 직업을 받아서 이 고생을 해야 하지?

진짜 내 인생은 암울하다.

"자꾸 징징 거리면 진짜 슬링샷 비키니 아머 입혀 버린다?"

덕후는 인상을 쓰면서 협박을 해댔다.

녀석은 아까 내 것으로 이미 슬링샷 비키니 아머를 샀기 때문에 그 협박은 유효했다.

으윽, 도저히 이길 수가 없구나...

"후우...알았다구...그냥 입고 다니면 되잖아....입고 다니면...."

역시 완전히 약점을 잡혀서 거부할 수가 없었다.

(흑....역시 이런 불법 성인 게임 하는 게 아니었어...)

왠지 뒤늦은 후회가 되었다.

허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이 있다. 그게 딱 지금의 내 사정을 두고 하는 말이기에 더욱 암울했다.

(훌쩍, 그래도 이 옷들 정말 쓸데없이 방어력이 높긴 하네...)

거의 벗다시피한 복장인데도 전에 혜선이 누나가 사줬던 하드레더 풀아머보다 더 방어력이 높았다.

(게다가 비싸구...)

현재 저렙인데다 가난한 나로서는 입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비싼 방어구들이었다.

그런데 덕후는 현재 내가 입고 있는 원피스형 아머 뿐만 아니라 그 비싼 슬링샷 비키니 아머까지도 부담없이 샀다.

덕후는 놀랍게도 게임상에서 고렙에다가 무지 부자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부자집 아들내미인데 게임에서도 부르조아라니...)

정말이지 기가 죽었다.

제길, 부자만 잘 먹고 잘 사는 빌어먹을 세상.

어떻게 현실에서도 부자인 사람은 가상세계에서도 부자인거냐? 

(신이 있다면 저주하고 말테다.)

나는 하늘을 올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가보도록 할까?"

[키득, 키득! 그러도록 하시죠.]

응? 어이, 거기 둘!

너희 아까까지 사이 나쁘던 거 아니었어?

왜이리 죽이 잘 맞는데?

"훌쩍....!"

나는 아까 내 방어구를 살 때부터 서로 합심이 잘 되는 두 마리의 악마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눈가에 습기가 차오른다.

(하아....정말이지 내 게임 인생은 현재 내 직업만큼이나 암울하구나....) 

나는 마지못해 둘의 뒤를 따르며 마치 사형수마냥 절망스런 걸음으로 걸어갔다.

-제3 폐허지대 누군가의 탑-

"끼이익~"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달려주세요.....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달려주세요..............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달려주세요.............................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달려주세요......................................

음..누군가의 탑의 문을 열자 로딩 중이라는 문구가 나왔다.

(시간 오래 걸리네?)

고렙들의 던젼이라 그런지 로딩시간이 꽤 오래되었다.

-철컥!

나는 탑 안으로 들어가자 마을 무기점에서 덕후가 사준 하이퍼 크로스보우를 장착하였다.

하이퍼 크로스보우는 명중력이 좋고 위력은 세지만 재장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선빵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무기였다. 

저렙들도 장착할 수 있어서 주로 나처럼 쩔(온라인 게임에서 고렙이 저렙을 키워준다는 뜻. 게임에서 파티사냥을 해 레벨이 낮은 사람도 경험

치를 먹는 것)을 받는 이들이 LD&LD+에서 잘 사용하는 무기로 유명했고 말이다.

(물론 꽤 비싸서 현질하지 않으면 사기 힘든 무기기도 하지만...)

나야 동료(?)를 잘 만난 덕에 이런 무기를 얻게 되었지만 솔직히 기쁘진 않았다.

덕후는 동료라기보단 주인 내지는 협박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조금 어둡네?"

누군가의 탑은 조명이 어두운 편이었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는 랜턴같은 조명기구가 필수인데 우리는 소울가디언이 있는 탓에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활~활~!

소울가디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븕은 빛이 어두운 곳에서 그런대로 시야를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옛날 속담에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 있다고 하더니 이거 딱 그 상황인 것 같았다.

[연아님, 방금 이상한 생각하셨죠?]

"응..? 아..아니..?"

예리한 녀석. 속으로 생각한 걸 꿰뚫어 보다니.

(너도 덕후처럼 독심술을 익힌거냐?)

나는 그런 두려운 생각을 하며 혼자 부르르 떨었다.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우리는 어둠 속을 지나 본격적인 메인 던젼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흠, 전방에 적 출현입니다.]

소울가디언은 가장 앞에 서있는 나보다도 빨리 적의 기미를 알아차렸다.

"그래? 연아야, 선빵 날려."

덕후는 소울가디언의 말을 듣자마자 나에게 명령을 했다.

검사이자 가장 고렙인 탓에 덕후가 자연스럽게 파티의 리더가 된 느낌이었다.

"...알았어."

나야 레벨이 적은데다 가장 장거리 무기를 가진 탓에 덕후의 명령이 합리적이라 판단하곤 선공을 날렸다.

-피잉~! 퍽!!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화살이 날아가자, 적으로 보이는 몬스터들이 일제히 내게로 다가왔다.

"연아는 방어태세를. 빨갱이는 나와 같이 데미지딜러 역할을 하도록 한다."

덕후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파티를 조율해갔다.

리빙아머로 보이는 적들은 파티의 가장 앞에 위치한 내게로 몰려들었다.

나는 적들을 공격한 뒤 도망다니거나 파티의 방패 역할을 하면서 적들을 유인했다.

"파워소드!"

[퐈이야!]

그런 상황에서 덕후의 지시를 받은 소울가디언과 덕후의 협공은 빛을 발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멋진 연계공격!

나는 덕후가 파티의 리더로서 능숙하게 전투를 이끌어 보이자 순수하게 놀라고 말았다.

(괴, 굉장해! 역시 고렙이라는건가.)

덕후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능숙하게 파티를 조정해서 효율적으로 전투를 해갔다.

너무나 빠른 사냥속도.

-퍼억!

나야 선빵을 날린 뒤 도망다니다가 디펜더 역할에 충실하면 되었기에 전투는 무척 쉬웠다. 

뒤는 검사인 덕후나 데미지딜러인 소울가디언에게 맡기면 되었으니 말이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미친 듯이 빨리 쌓이는 경험치를 느끼며 레벨이 올라가는 메시지를 듣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굉장해! 혜선이 누나랑도 파티 사냥을 해봤지만 역시 고렙인 덕후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구나!)

수비형 직업인 소드 커맨더와는 달리 공격형으로 특화된 검사인 덕후의 공격력은 가공할만 했다. 

게다가 녀석은 혜선이 누나보다 더 고렙인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무지하게 얻어맞았을텐데...)

별로 공격도 안 맞는데다 워낙 사냥 속도와 스피드가 좋아서 흥이 절로 났다.

게다가 내가 장비한 방어구는 노출도가 높긴 했지만 방어력이 높은데다, 내 패시브 스킬인 성노의 마음가짐과 조합이 잘 맞았다.

-패시브 스킬 성노의 마음가짐이 발동되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M의 본성이 발동되었습니다-

원래 성노의 마음가짐은 M의 본성과 더불어 발동율이 매우 좋은 스킬이다.

그런데 노출도가 높은 방어구까지 겸비하고나자, 저렙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만한 공격에는 별다른 데미지도 못 느낄 정도였다. 오히려 M의 본성 탓에 기분이 짜릿해지는 기분이랄까. 야릇하게 흥분이 되었다.

(하하, 역시 이 암울한 운명의 성노는 전형적인 탱커 직업이야!)

월등히 앞서는 방어력으로 리빙아머의 강력한 공격을 간단히 맞아내자 나는 신이 났다.

아무리 레벨차이가 심하게 나도 엄청난 방어력으로 전부 막아내자 두러울 것이 없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벌써 4단계의 레벨업!

(즐거워. 정말 이런 즐거운 파티사냥은 처음이야♪)

덕후 녀석이야 끔찍히 혐오스러웠지만, 녀석의 리딩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즐거웠다.

솔직히 덕후 녀석이 내게 요구할 치욕이 걱정스러웠는데 순수하게 게임만을 즐기게 되자 녀석에 대한 반감이 많이 사라져갔다.

(덕후 자식, 정말 대단한 걸?)

멋지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한성이의 외모를 한 덕후는 정말 늠름한 모습으로 파티의 리더이자 검사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

-두근!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나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바보 같아...)

같은 남자의 활약을 보며 가슴 설레어 하다니....

내가 미친건가?

(흥..! 쪼..쪼금 뿐이라구...!)

그래,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건 아주 조금 뿐이다! 

그리고 그건 전부 한성이의 모습과 오버랩되어서 그런 것 뿐이고!

원래 나는 한성이를 닮고 싶어했었다. 

남자답고 성격도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런 멋진 모습을 보면 동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근데 그것도 문제일지도...?)

-붉그레

나는 멋진 활약을 펼쳐보이는 덕후를 보며, 한성이를 떠올리자 얼굴을 붉혔다.

내가 동경하던 한성이의 사랑을 받는 입장이라는 걸 되새기자 괜스레 부끄러워진 것이다.

(난 그저 한성이를 친구로서 좋아하는 것 뿐인데...)

하아...복잡하다.

나는 덕후가 멋진 모습을 보여줄수록 한성이가 떠올라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응?)

바로 그럴 때 새로운 몬스터가 출현을 하였다.

(저게 뭐지? 펜인가?)

나는 거대한 만년필이 내게로 둥둥 떠서 다가오자 의아해했다.

(근데 저렇게 큰 펜은 처음보네?)

길이가 1미터는 되어보이는 만년필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왠지 무지 약해보였다.

[연아님, 조심하세요!]

-피잉~!

내가 만년필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어디선가 날아온 기습 공격에 나는 순간 기겁을 해야 했다.

"!"

만년필의 펜촉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거대 펜촉이 마치 단검마냥 날 노렸기 때문이다!

(뭐야, 이녀석들? 필기구 종합세트인가?)

나는 새로운 적들의 모습이 희한해서 어이가 없어졌다.

-씨잉~!

또다시 펜촉들이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치잇!"

나는 낮게 혀를 차며 수십개로 늘어난 거대 펜촉들의 공격을 피하였다.

-퍼억!

몇개의 펜촉들의 공격은 미처 피하지를 못했지만, 워낙 내 방어력이 쎄서 그다지 데미지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역시 이 녀석들 약해.) 

나는 스쳐 지나가는 펜촉의 공격에 미세한 데미지를 입자 약간은 다시 자신감이 생겨졌다.

돌진해오는 펜촉들의 공격은 숫자가 많고 매서웠지만 강력한 탱커 스킬로 무장한 내 방어력은 뚫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오!"

날카로워 보이지만 그리 위협적이진 않은 펜촉과 깃털의 공격에 나는 고함을 내지르며 맞서나갔다.

"소울가디언! 연아가 방어를 할 동안 마나를 모아서 불뱉기 공격을 연타하도록 해!"

[롸져!] 

덕후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명령으로 다시 한번 파티의 공격을 조율하였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지시!

대단한 용병술을 발휘하는 덕후였다.

-챙!

펜대에 칼을 맞은 만년필은 땅이 한번 팅겨졌다 다시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라 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앗?!"

위험하다!

-쉬익!

바로 그때,구원자처럼 그런 만녀필을 향해서 덕후는 다시 공격을 해서 정확하게 명중을 시켰다.

"파워소드!"

덕후의 칼날에 펜촉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괴물 펜마저 몇번 칼질로 쓰러지자, 나는 든든함을 느꼈다. 

"괜찮니, 연아야?"

"으..응..."

(나를 보호해주는건가?)

같은 남자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생소했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두근 두근! 

늠름하게 나를 보호하며 검을 휘두르는 덕후의 모습이 너무 멋졌다.

전설의 용사가 그런 모습일까?

지금 덕후의 모습이 아이돌 모델 같은 한성이의 외모라서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덜컹! 덜컹!

(저건 또 뭐지?)

적들을 다 무찔렀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어둠속에서 무엇인가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번에는 거대한 유리몸체에 검은 액체가 담겨져 있었으며 검은색 두껑에는 커다랗게 '잉크' 라고 적혀있었다.

"........."

정말 필기구 종합선물세트네. 

저거 잡으면 평생 잉크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휘익!

바로 그 순간, 잉크가 공중에 뜨는가 빠른 속도로 내게 몸통박치기를 해왔다!

"크윽!"

이번에는 조금 데미지가 있어서 나는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하지만 역시 패시브 스킬인 성노의 마음가짐 덕분에 살았다.

[괜찮습니까, 연아님?]

"으..응."

나는 안부를 물어오는 소울가디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잉크는 크고 느려 보이는 몸집과는 다르게 날아드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아무래도 녀석은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으니 옆으로 돌면서 공격하도록 해."

덕후는 내게 다가오더니 적의 공격이 무조건 앞으로만 온다는 걸 간파한 듯. 내게 옆으로 피하면서 공격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과연 그의 말대로 따르자 우리는 쉽게 잉크마저도 잡을 수가 있었다.

(와아~! 정말 대단해...! 그 짧은 시간 안에 적의 약점까지 간파해내다니...)

덕후의 게임 센스는 타고난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새로운 면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조금씩 호감이 가는 걸 느껴야만 했다.

단순히 게임만 같이 하는 걸 생각하면 녀석의 최고의 파티원이자 리더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즐겁게 게임을 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야.)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에 나는 고마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럴수록 덕후에 대한 반감은 감소가 되어갔고 말이다.

[전방에 또 새로운 적의 출현입니다.]

그 경고처럼 우리는 또다시 거대 깃털펜 3마리와 마주쳤다.

이전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 마주친 만년필과 같은 종류인 것 같았다.

"연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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