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안녕히 가세요~!"
"......"
어제처음 시작한 10시 야간 편의점 알바.. 구석진 곳에, 꽤나 크게 마련된 가족마트인데, 과연 적자나 면할까 싶을 정도로 손님이 없다.
아무리 야간이라지만, 들어오는 손님 수로 봤을 때 전기세도 안 나올것 같은 기분이다. 뭐, 나야 시급이나 받는 입장이고, 한번 체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는 거지만.
그렇게 지루한 알바를 하면서 여태까지 해오던 주식을 정리하기위해, 일단 소규모의 코스닥 주식들을 팔고 있는데 오랜만에 들어온 손님.
"어서 오세요-!"
아무리 12월이라지만, 영상권 날씨임에도 모자에 마스크, 목도리까지 하고 있었다.
도박하자는 생각으로 대량으로 구매했던 한 연구소 주식과 투어 주식이 몇 배로 뛰어 꽤나 큰 이익을 봤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러운 기분이여서
내 밝은 인사를 가뿐히 씹는 손님을 착하게 용서했다.
키랑 스타일로 봐서는 여자로 보이는데....
여자는 어정쩡한 자세로 무언가를 찾는 듯 싶더니, 주위를 휙휙 둘러보곤, 생리대 하나를 집었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인채로, 생리대를 계산대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놨다.
"오천원 입니다."
여자가 코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데, 후다닥 뛰어 들어온,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한명이 계산대 앞에 서있던 여자를
툭 쳤다.
남자가 덩치도 있고 열려있던 문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바람에, 여자의 상체가 앞으로 밀려나며 모자가 벗겨져 내 발 옆으로 떨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아이씨, 너 때문이잖아!! 여기 이거 계산요!"
남학생은 카운터 바로 옆의 껌과 초콜렛 하나씩을 계산대에 올리고 삼천원을 꺼냈다. 그리곤 잔돈을 받자마자 뒤따라 들어온 또 다른 남자
애와 나가버렸다.
"여기, 모자...요?"
"......;;"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데...
".....그..소녀시대?"
"그, 태연 닮았단 말 많이 들어요..."
"...보, 본인 아니세요? 저, 싸인 받을 수 있나요? 친구 중에 팬인 애가 있어서.."
".....하아... 네.."
오호! 역시 태연이었어! 살다보니 알바 하다가 연예인을 다보네.. 후후 이거 방학 끝나면 바로 팔아야지.... 그나저나 믿기지가 않네..
티비에서만 봐오던 사람이랑, 그것도 한창 인기가 많은 소녀시대 리더랑 마주하고 있다는 게.. 말 거는 걸 귀찮아 하는듯 하기도 하지만, 뭐.
그나저나 실물이 더 예쁜것 같다.. 관심이 없어서 티비에서 많이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실물이 나은것 같은데?
"진환 씨에게 라고, 오, 감사합니다. 이정도면 십 만원은..."
"저기, 저희 숙소가 요 앞으로 이사 왔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매니저 오빠가 자주 오고 가끔 맴버들도 올 텐데.. 소문 안내줬으면 좋겠
어요...."
"네."
태연 씨는 싸인을 건네고, 내가 주워준 모자를 다시 쓴 뒤 생리대를 들고 나갔다.
"헤에- 숙소라.. 뭐, 난 방학동안만 할 꺼지만, 집도 가까우니 또 만날 수도 있으려나? 그나저나, 그날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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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6시에 다른 알바가 오자 노트북을 들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그리곤, 바로 앞의 빌라로 들어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약간 웨이브가 들어간, 아주 짙은 검은색 머리. 여자 같은 긴 속눈썹과 분홍빛 입술, 하얀 피부.. 키만 작았다면 여자라고 해도 믿었을,
미소년이었다. 그는 이내 잠에 빠진 듯,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소년은 배가 고픈 듯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우유와 식빵, 계란을 꺼냈다. 그리곤 토스트 두개를 만들더니,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음. 좋은 아침이다."
소년은 간단히 세수를 한 뒤, 학교로 향했다. 걸어서 10분 만에 도착한 학교. 시험이 끝나고 이틀이 지난날이라 그런지, 분위기는 몹시
풀어져 있었고,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모두 영화만 보게 하고는,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한편... 저녁 6시, 토크쇼 촬영장.
"언니, 왜 이렇게 멍하게 있어요, 곧 나가야 되요."
"어? 어어..."
"저기, 어제 언니 그거 사러 나가고 뭔 일 있었어요? 그때부터 계속 멍하니.."
"아냐!!! 피곤해서 그래!!"
"흠, 그래요...? 수상한데... 얼굴은 왜 빨개져요?"
"서현이 너 자꾸!"
"앗, 빨리 가요!"
"이씨.."
태연은 서둘러 세트위로 올라가는 서현이를 한껏 째려보며, 뒤따라 세트장위로 올라갔다.
토크쇼가 끝나고 벤을 타고 돌아온 네 명, 태연과 서현, 유리와 윤아.
태연은 다른 세명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한 뒤, 어디론가 향했다. 유리와 윤아는 피곤한듯 바로 숙소로 들어갔으나 서현은 먼저 간 둘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태연을 따라갔다.
태연이 향한곳은 숙소 근처의의 편의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서현은 가본 적이 없었지만 매니저가 몇번 들리는 걸 본적 있었다. 최근에 저녁에
봤을 때, 예쁘게 생긴 알바생이 알바를 하고 있었던 걸 기억해낸 서현 이었다.
태연은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에, 거울을 보고 옷매무세를 다듬었다. 태연은 거울을 보면서 몇 번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서현은 태연이 들어가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나오질 않자, 편의점 유리를 통해 편의점 안쪽을 들여다봤다. 태연이 물건을 고르고 있을 거란
서현의 생각을 깨고, 서현은 태연과 대화하는 낯선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아니, 남자였다.
최근까지 여자라고 알고 있었지만...그때는 멀리서 얼굴만 조금 봐서 그랬지만, 가까이서보니 확실히 남자였다. 여성스럽기도 하고, 남성스럽기도
한....모순적인 표현밖에 나오지 않았다. 착하게 생겼달까.. 하여튼 호감형 외모였고, 서현이 생각해오던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왠지 남자를 보고 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뭐고, 나이는 몇 살 일까? 여자 친구는 있을까... 태연언니와는 뭔 관계일까....?'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보면 수상하게 여길 정도로, 편의점 유리에 달라붙어 알바생만을 주시하고 있는 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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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편의점 알바 경험삼아 하는 건데... 힘들진 않은데 되게 지루하네.. 시급도 적고.. 한 달만 하고 그만해야지. 아, 어서 오세요-"
"......"
응? 어제와 비슷한 패션이네?
"음... 태연씨 인가요?"
"히히, 네. 알아보시네요?"
"뭐, 그렇게 입고 오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애초에 사람이란 것 자체가..)"
"아, 어제는 미안했어요. 피곤하고...그...신경 쓰이는 일도 있어서..."
아무래도 그날 이었던걸 말하는 것 같네..;
"밝으니깐 보기 좋네요."
"저, 말 놓아도 되죠?"
"네, 내년에야 고등학교 이학년인데요 뭐.."
"히힛- 너두 누나라고 불러. 이 알바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는 거야?"
"열시부터...여섯시요."
태연누나는 카운터 옆쪽의 빈 의자에 앉아 날 빤히 쳐다봤다. 야간 알바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꽤나 심심하기 때문에, 아, 물론 태연누난
추가로 예쁘기도 하니깐 옆에 있어 주는건 좋지만..
"한가해요? 편의점 야간알바 구경 할 정도로?"
"으응? 그, 그냥.. 편의점 알바 하는 친구는 처음이라."
태연누난 옆에 계속 앉아 있으면서 핸드폰을 하다가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효인아~~"
"어, 유진..이네?"
"응! 학원 끝나고 집 가다가 들렸어. 알바 한다더니 진짜구나."
"어.. 방학 좀 전 부터 했으니 일주일 좀 더 됐나..?"
"우리도 어제 방학했...옆엔 누구야?"
"으응?? 아는 누나...."
"아~ 안녕 하세요~? 전 효인이 중학교 친구 이유진이라구 해요."
"어어...안녕..."
이유진... 중학교 동창으로 지금은 여고에 다니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연락도 하고 사적으로도 몇 번 만나서 놀았기 때문에, 졸업하고 나서
서먹해진 많은 애들과 달리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
"맞아, 맞아~ 그래서 걔 그날 바로 병원 갔잖아~"
"내가 옮겼지. 그리고 병원가고 나서도 택시타고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까지...으휴..."
"수술해서 한달 가까이 학교 쉬었지? 아 근데 너 그 소식 들었어? 혜진이가......."
"저기...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보자."
"아, 조심히 가세요 누나.."
태연누나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유진이는 궁금하다는 듯, 얼굴을 내 앞으로 들이밀고 물어봤다.
"저 언니 누구야?"
"으응? 그냥 편의점 알바하면서 알게 된 누나...."
"흐음...너 아직 여자 친구 없지?"
"어어..."
"아, 근데 어제 우리 학교에서 있지....."
유진이는 그 뒤로 십분 정도 나랑 같이 있으면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신나게 설명했고, 자신이 다니는 여고축제에 가지 않은 것을 몇 번 이나
되짚어 가면서 질타했다. 그리곤, 집에서 부른다면서,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고는 편의점을 나갔다.
"하아..이제야 한시군...앞으로 다섯 시간이나...흑... 아, 어서 오세요~"
"저기요..."
"엇, 서,서현?"
"네..그..저...태연언니랑 어떤 사이세요?"
"네? 그냥 어제 처음만난... 아무사이도 아닌데요..?"
"정말요?! 정말 이예요?! 그런데 어쩌다 친해져서 하루 만에 이렇게 같이 있을 정도로 친해진 거예요?!"
"어... 그냥... 어제 만나고... 오늘 찾아온것 뿐인데요....."
"흐음..."
어... 얼굴에 뭐 붙었는데...
내가 서현씨의 얼굴에 붙은 검은색 무언가가 뭔지 보려고, 카운터 너머로 몸을 숙여 고개를 내밀자, 서현씨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았다.
그냥 먼지인가보네... 근데 이 누난 왜 먼지를 떼 줘도 계속 저러고 있는 거야..?
"누나, 아..누나라고 해도 되죠? 왜 그러고 있는 거예요?"
"어..어어? 네?"
"말 놓으세요. 왜 눈감고 얼굴은 빨갛게... 혹시 뭐 그렇고 그런 생각 하신 거예요?"
"....으응?"
"히히, 장난 이예요. 얼굴 붉히시긴. 그나저나 연예인 이란거, 생각보다 인간적 인거 같네요. 이런 장난에도 쉽게 당황하시고."
"노, 놀리지 마!"
"네네~ 근데 그거 물어보러 오신 거예요? 태연누나랑 뭔 관계냐고?"
"응.... 아, 저기, 이름은 뭐야?"
"이름요? 박효인이요. 약간 여자같죠..?"
"으응? 아니, 뭐, 잘 어울리는데...?"
잘 어울린다라...; 내가 좀 여성스럽게 생겼다고 놀리는 건 아니겠지?;
근데 같은 그룹 맴버라 그런지 서로 많이 신경 써주나 보네... 좋겠네, 이렇게 걱정해 주는 맴버가 여덟 명이나 있고... 그나저나 세 번 째지만
티비에서만 보던 사람이랑 이야기 하니 기분이 오묘하네..
"흠- 그런데 진짜 그런 생각 한 거예요? 눈까지 감은거 보면 혹시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던 거 아녜요?!"
"씨..뭐...뭐!!!"
"뭐겠어요- Kiss me daring, Kiss me Kiss me tonight~"
내가 Kiss me daring 노래를 부르자, 서현누나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지면서 내 시선을 피했다.
"자꾸 그럴래~?!!"
"음~ 근데 누나도 저 심심할까봐 같이 있어주시게요? 한가 하신가 봐요?"
"아냐! 바빠서 피곤하거든! 갈꺼야!"
서현누나는 삐진 듯,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는 편의점에서 후다닥 나갔다.
저 누나 티비에서 봤을 때 랑 캐릭터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내가 너무 놀려서 그런가?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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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2주 뒤.
12월 20일, 다른 학교보다 좀 빠르게 시험을 봐서 그런지, 기말고사 성적표와 생활기록부, 11월 모의고사 성적표등을 확인하고 맞게 된
겨울방학. 친구들이 스키장에 가자고 했지만, 알바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됬다. 처음에 시작할 때 최소 한 달간은 절대로 본인이 와서 시간을
다 채우고 가라고 했기 때문에...
대신, 그동안 서현누나를 통해 소녀시대 누나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왜인지 태연누나는 나랑 아는 사이 였다는걸 아무한테도 말을 안 한
모양이었지만, 서현누나가 가끔씩 다른 맴버들을 데려와서 얼굴을 트게 됐다.
아...물론 좋지 않게 얼굴을 튼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때를 말하자면...
정확히 이틀 전. 11시경.
재고 확인을 하고, 잠깐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여자 한명이 초콜릿 몇개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서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잠깐 화장실 다녀오느라..."
"....알바가 자리나 비우고, 일 좀 제대로 할 것이지..."
....저기 고개 숙이고 작게 말할 바엔 마음속으로 하시던가? 갔다 오는데 2분밖에 안 걸렸구만..
"죄송합니다, 근데 알바라고 기계도 아니고 화장실도 못가요? 진짜 잠깐 갔..."
"빨리 계산이나 해!"
"네....그런데 혹시 제시카씨 아닌가요?"
"....계산이나 하라고. 짜증나니깐."
참자.... 그나저나 이분은 그 이미지 관리도 안하나? 아님 원래 이런 이미지였나?
"후...칠천 오백원 삼십원 입니다..."
그러자, 오천원짜리 두개를 카운터로 날리듯 건네는 제시카. 지폐 두장은, 카운터를 넘어 바닥에 떨어졌다. 난 꾹꾹 참으며, 땅에 떨어진 오천원
지폐 두 장을 주웠다.
"여기 잔돈 이천 사백 칠십원이요."
제시카는 내 말을 무시하곤, 날 비웃듯(걍 비웃었다. 대놓고.) 흘겨보며, 편의점을 나가려 했다.
"....연예인이라고 일반인 무시하세요?"
"....뭐?"
"연예인이라고 일반인 무시 하냐고요. 고작 이분 화장실 갔다 왔다고 시비 걸질 않나, 처음 본 사람한테 말도 함부로 하고, 돈은 바닥한테
내세요? 편의점 알바는 천민이고, 당신은 양반이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 말은 있는 대로 무시하고, 끊고. 후.. 기본적인 예의,
아니 개념조차 없는 것 같네요."
"야! 너 내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
"네, 소녀시대 제시카씨. 삼주 전에 숙소 이쪽으로 옮겼다죠?! 하,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사생팬일까 봐요? 저 그쪽 말고 다른 맴버 몇명
이랑 아는 사이거든요? 뭐, 물론 그냥 인사만 하는 정도긴 하지만 태연누난 번호도 있고. 어쨌든 그쪽이 연예인이라고 사람 막 무시하고
그러면 안 되죠! 소녀시대면 뭐 다 용서되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세요?"
"하아...보자보자 하니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