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

 추위 때문에 달려서 도착한 집. 샤워까지 하고나자, 시계는 벌써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때쯤 자긴 하지만, 오늘 하루가 되게 빨리 지나간 

느낌이랄까..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내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유진이.

   "여보세요..?"

   "자고 있었어? 아앗..한국은 새벽이려나?"

   "2시야. 자려고 누워있었는데, 왜?"

   "예정보다 하루 일찍 귀국하게 되서. 내일 저녁때쯤에 만나자."

   "내일저녁?"

   "응, 음....너가 알바 하던 편의점 앞 카페에서 6시에. 아버지랑도 얘기 끝내놨으니깐..."

   "그래?! 알겠어, 내일보자!"

   "으응..잘, 잘자..!"

 잘자라는 말과 함께 끊어진 전화. 그나저나, 아버지랑 얘기도 끝내 놨다는 건... HC그룹으로 넘기기로 한 건가?! 음, 지금 뉴욕이 낮 12시 쯤 될 테니까...

전화해도 상관없겠구나.

   "여보세요? 형?"

   "오, 마침 전화하려 했는데.. 뭔 일있어?"

   "아니, 그냥 SM인수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해서.."

   "그것 때문에 전화하려 한 건데.. 지금 MAAT가 총 53%를 가지게 됐어. 반면에 우리 HC는 여전히 37%... 그래서 내가 내일 바로 한국으로 갈 예정이야. 

  이번 SM인수 건은 내가 주도하기로 했거든."

   "아..."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땐 힘들겠지만... 뭐, 최선을 다해 봐야지... 언제라도 MAAT에 속해있는 우량주주들이 빠져 나올 수 있으니까."

   "알겠어- 그럼 그때 보자."

   "그래."

 아직 확실시 된 건 아니니 만큼, 형에게 유진이 아버지의 주식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쪽 사정도 별로 좋지 않은 거 같고, 역시 믿을 수 있는 건 

이쪽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일단 자야지.... 피곤해.....

  다음날 아침.

 웬일인지, 아침부터 우리 집에 찾아온 제시카 누나. 마침 아침을 만들고 있던 난, 누나껏도 만들어서 줬다. 내가 만든 토스트를, 내 몫까지 먹어치운 

제시카 누나 때문에, 결국 내 껄 한번 더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왜 오신 거예요?"

   "응? 아침 얻어먹으러."

   "으아."

   "장난이고, SM인수 하는거- 어떻게 되고 있어?"

   "잘 될거예요. 그러니깐 괜히 이시아하는 그놈 가까이 가지 마요."

   "헤헷, 걱정해 주는거야?"

   "네. 걱정하는 거니깐, 알겠죠?"

   "어어? 으응...///"

 나와의 성관계후 유난히 성격이 달라진 맴버를 꼽으라면, 역시나 제시카 누나가 아닌가 싶다. 관계 중에도 평소와 대조적인 애교를 보여주지 않나....

제시카 누나는 아침을 다 먹고, 마치 자기 집인양 소파에 편하게 누웠다.

   "오늘 스캐줄 있어~?"

   "아니요, 없어요."

   "그래에~? 난 있는데."

   "아,네....."

   "저기, 오늘 12시쯤 놀러 와도 돼?"

   "네? 아...안돼요...."

   "흐음, 왜?"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어요..."

   "칫- 약속 없다면서-"

   "하하......"

 누나가 오면 또 그 짓 할 것 같아서 안 되는 거예요.....

   "흐아~ 그럼 나 여기서 좀만 자다갈게-"

   "그러세요.."

   "12시 전에 깨워죠?"

   "네."

 제시카 누나는, 뭐가 좋은지 혼자서 큭큭 웃어대다가, 이내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편하게 자려면 침대가 나을 텐데... 옮겨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누나를 옮기기 위해 누워있는 누나의 무릎아래와 등 사이로 손을 넣어 누나를 들어올렸다. 잠꼬대하듯 웅얼거리더니,

다시 잠에 드는 제시카 누나. 누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다 덮어주고 나서 방에서 나왔다.

 점심때쯤 제시카 누나는 스캐줄 때문에 집에서 나갔고, 난 멍하니 시간을 떼우면서 약속시간을 기다렸다.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말했듯이 사람이 별로 안다니는 동네라서, 카페의 5개정도 되는 테이블에는 한 팀 밖에 앉아있지 않았다. 

커피한잔을 시키고 얼마쯤 있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유진이가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한 뒤, 내 맞은편에 앉은 유진이는,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SM주식 8.9%를 HC그룹에 주식을 넘기면, MAAT의 상황이 불리해 지니깐, 그쪽의 또 다른 주주들도 분명 HC로 갈꺼야. 즉, 아버지가 주식을 

  넘긴다면, SM은 HC그룹소유가 될 거란 거지. SM에서도 그쪽을 바라고 있으니 인수도 금방 될 꺼고."

   "응.."

   "그런 만큼 조건이 있어. 첫 번째, MAAT에서 약속한 주식가치의 1.1배를 더 줄것."

   "문제없어. 돈이야 뭐.."

   "두 번째, MAAT가 아버지 기업에 손을 못 뻗치게 할 것."

   "응. 아예 우리 HC그룹 계열로 들어와도 되는데."

   "그건 나중에 상의하고... 마지막으로....내 조건이야."

   "어어?"

 본인의 조건이라니...?;;

   "너, 이번에 SM인수에 이렇게 적극적인게...소녀시대 때문이라며?"

   "으응...? 누가 그래..?"

   "조금만 조사하면 나오는 거야. 사실이지?"

   ".....응."

   "소녀시대랑.... 뭔 관계야?"

 난 깊은 갈등에 휩싸였다. 섣불리 누나들과의 '성관계'를 말했다간, 뭔 일이 생길지 모르고, 그렇다고 비밀로 하기에도... 조사를 했다면 알고 있을 수도 

있을 텐데... 함부로 거짓말을 했다가 들키면, SM인수건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고....

   "그냥 친한 누나들...이랄까?"

   "....연인관계는 아니고?"

   "응, 어떻게 연예인이랑 그러겠어."

   "흐음. 뭐 하긴...."

   "그런데, 마지막 조건 이란게..?"

   ".....나, 너 좋아해."

 ....읭? 이건 또 뭔소리래... 날 좋아한다니. 유진이가?

   "뭐 흔히 말하는 첫눈에 반한거야... 중2때 처음 봤을때 부터 좋아했어. 그런데, 너한테 고백했던 애들이 다 차이는거 보구...겁나서 말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냥 친한 친구로만 지내려구 했는데... 계속 네 생각만 나고... 힘들더라.."

   "......"

   "그래서, 마지막 조건이야. 나랑 사귀자. 그리고, 소녀시대랑은 다시는 만나지 마. 물론 연락하는 것도 안돼."

   "......"

   "내가 나빠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 나도 알고 보면 나름.. 매력 있다구..."

 확실히, 유진이도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격도 착하고, 이해심도 있고... 그래서 인기가 많았는데...

   "만나다 보면..조, 좋아질수도 있잖아..."

   "........"

   "여, 여튼 조건은 그 세 가지야. 오늘 안에, 결정해서 문자해."

 그렇게 말하고는 나가버리는 유진이. 세 번째 조건을 듣고 난 후, 멍해져버린 나였다. 앞의 두 조건이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만, 소녀시대 누나들과 

연락을 끊고, 본인과 사귀자니...

 하아.... 어떡해야 하지...?

 12시 10분전, 그때까지 고민한 나의 결론은 하나였다. 조건을 받아 들이는 것...

 내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소녀시대 누나들을 못 만난다는 단점밖엔 없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태까지의 HC그룹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 뿐 

아니라, 누나들은 성접대 및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릴 것이다. 물론, SM의 다른 가수들도...

 그런 상황이 오는 걸 지켜볼 수는 없다.

 유진이에게 문자를 보내자, 알겠다는 답장이 왔다. 지금 이 순간부터 소녀시대와 연락을 완전히 끊으라는 말도 함께. 난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던 

누나들의 번호를 모두 스팸 등록하고 삭제해버렸다.

 이번에 유진이와 관련된 일 때문에 연락을 끊는다는 사실을 말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누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고... 그냥 정을 떼는 쪽이, 

최선의 길인 것 같다...

 .....허전함.

 내 삶에서 누나들의 존재가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심하게 느껴지는 허전함. 그저, 방학기간 중에서도 2주정도 만난 것뿐인데.... 하지만, 

내 선택이 분명 옳은 것이다. 아니, 옳은 것 이여야만 한다. 누나들을 떠나보내야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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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뒤, 소녀시대 숙소.

   "태연아, 너도 아직 연락 안 되지...?"

   "으응..."

 약 일주일전, MAAT쪽에 있던 SM주식의 일부가 HC쪽으로 넘어가면서, HC그룹이 대주주가 되어버렸다. 그로인해, MAAT의 다른 주주들과 일반 소규모 

주주들도 모두 HC그룹으로 속해버렸고, HC그룹소유의 주식이 60%가 넘어간 순간, MAAT는 인수를 포기하고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빠져버렸다.

 그때문에 SM회사내에서는 파티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일주일동안 효인과 연락이 되지 않은 소녀시대 숙소는 침울함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게 누구지?"

   "사실, 저번에 친구랑 뮤지컬 보러간다고 한 거 효인이랑 간 거였어.. 아마 그게 마지막.."

   "아니, 연락 끊기기 하루 전날, 나 효인이 집에 놀러갔었어..."

 평소 효인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제시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은 제시카에게로 향했다.

   "너, 뭔 짓을 했길래 애가 연락을 일주일씩이나 끊는 거야!!"

   "나, 난 아무.."

   "빨리 가서 사과하고 와!!"

   "난 아무것도 안했다고!! 그리고, 연락도 안 되는데 사과를 어떻게 해!!"

   "그럼 효인이가 갑자기 연락을 끊을 이유가...없잖아..."

   "하아...나 좀 나갔다올게."

 SM인수사건으로 스캐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시카는 숙소에서 나왔다. 제시카가 향한곳은 한국에 있는 HC그룹 본사. 막상 회사 앞에 선 제시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데, 멍하니 서있는 제시카를 알아보고 다가온 한사람. 동생, 크리스탈이었다.

   "언니?"

   "수정이? 너가 왜 여기 있어?"

   "나 친구 만나려고... 친구가 이 근처에 살아서. 언니는?"

   "으응? 난 그냥....산책 같은거..."

   "아아, 그래? 앗- 저기 친구 기다리구 있다. 나 가볼게-"

   "그래....?!!!!"

 제시카는 수정이가 만난다는 친구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효인-!!!!!"

 제시카의 고함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제시카에게로 향했지만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 듯, 효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효인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고, 수정은 효인과 제시카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한 셋은, 근처에 있던 효인의 새 집으로 향했다. 18평 정도의 작은 원룸. 수정과 제시카가 식탁에 앉자, 효인은 차를 꺼내왔다.

   "차는 됐어. 지금 당장 뭔 일인지 설명해."

   "하아...그냥 누나들이 질린 것 뿐이예요."

   "뭐....?"

 제시카는 효인의 말에 벙쪄 있었고, 상황을 모르는 수정은 멍 할 뿐이었다.

   "누나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가주세요."

   "너...너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거야..?!"

   "뭐가요. 누나들이 질렸다니까요? 새로운 여자 친구도 생겼고."

   "하....너,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내 처음까지도 줬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만나서 하는 말이.... 

  고작 질렸다는 것뿐이야?!!!"

   "네."

    짜악-!

   "정말로....실망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제시카는, 효인의 뺨을 강하게 쳐버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가버렸다.

 슬픈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효인을 바라보던 수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지금 어떤 상황 인거야...? 처음까지도 줬다는 건 또 뭐구..."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누나..."

   "........."

 수정과 효인이 친해진건, 5일 전이었다.

 #5일전#

 SM의 인수계획이 위기조짐이 보이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이시아는 SM본사에 들락거리며, 계속해서 여자들을 희롱했다. SM입장에서는, 회사가 

어디로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했다간 반드시 불이익이 생길 거라 여겨, 그런 이시아를 함부로 터치하지 못했다. 게다가 회사가수들의 

일본 진출에 MAAT가 도움을 준 과거까지 있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시아의 행패는 극에 달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연예인들에게 음담패설을 지껄이거나 함부로 몸을 만지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중, SM인수과정을 밟기 위해 한국에온 자신의 형을 만나기 위해, SM에 왔던 박효인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치근덕대는 

이시아를 향해 주먹을 날리곤, 그냥 도망쳐 버린 박효인.

   "아씨....화나가지고 또 무턱대고 때려버렸네...아 진짜..."

   "저, 저기..."

 비상구 계단으로 도망친 효인을 따라온 한 여자.

   "혹시 저번에 흰 가면....?"

   "앗, 크, 크리스탈??!"

   "저기...저번엔 고마웠어요..."

   "저번이라뇨? 저 팬인데 싸인해주세요..."

   ".....?"

 뒤따라온 크리스탈을 보고 잠시 놀랐지만, 이내 그냥 평범한 팬 인척 하는 효인이었다. 크리스탈은 효인의 반응에 잠깐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살짝 웃더니, 입을 뗐다.

   "제가 몇 살인지 아세요..?"

   "네?"

   "팬인데 제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아..그...21살이잖아요~"

   "......제가 그렇게 늙어 보여요?!!"

   "에..."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이라구요! 아까 이시아 때릴 때부터 알아봤는데, 목소리 들으니깐 흰 가면씨 맞네요."

   ".....네에.."

 21살이라고 찍어봤지만, 되려 꾸중만 들은 효인이었다. 크리스탈은, 저번에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이제 HC그룹덕분에 더이상 그정도 

수위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꺼라고 했다.

 소녀시대와 헤어지고 항상 우울해져 있던 효인은, 크리스탈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살짝 웃었다.

   "헤에- 웃으니까 더 멋있네요. 그나저나 몇 살 이예요?"

   "올해 2학년 이예요. 고등학교."

   "아아~ 그럼 말 놓을게?"

   "그러세요..."

   "너도 말 놔~ 한살차이인데."

   "으음...그래.."

 저번에, 연습실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던 크리스탈 이었지만, 그 생각에 불편해 하던 효인에 비해 본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적극적으로 

효인에게 다가온 크리스탈덕에, 둘의 사이는 그 뒤로 금방 가까워 졌다. 덕분에, 어두웠던 효인의 모습도 어느 정도 풀리고, 크리스탈은 크리스탈 나름대로 

효인을 만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 뒤로, 크리스탈은 효인에게 이성으로써 좋아한다는 감정을 드러냈지만, 효인의 마음은 이미 닫혀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탈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효인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저기... 나중에는 꼭 말해줘...알겠지?"

   ".....응."

 말없이 한동안 있던 크리스탈은, 이내 효인의 집에서 나갔다.

   "하아........"

 약속에 따라 멀어져버린 소녀시대에게도,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릴수 없어 친구들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효인은, 혼자서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한편, 소녀시대 숙소에서는, 외출 후 엄청나게 싸늘해진 제시카 때문에, 한층 더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다른 맴버들뿐 아니라 매니저까지 나서서 

뭔 일인지 물어봤지만, 제시카는 말없이 방에만 틀여 박혔다.

   "수연아..들어갈게..."

   "......."

 불도 켜져 있지 않아 캄캄한 방에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제시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태연은, 맞은편 티파니 침대에 

앉았다.

   "....효인이 만났지?"

   "......어."

   "뭐래..?"

   ".....질렸대... 우리가."

   "뭐...?"

   "우리가 질렸대. 그래서 떠난 거래..."

 태연은 수연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그럴리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수연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태연의 마음속.

   "아니야, 효인이는 그럴 애가 아니야...내가 직접 만나볼거야!"

   ".....XX역 4번 출구 앞에 XX빌라. 3층이니까 직접 가서 봐봐."

   "........."

 마음같아선 당장 찾아가고 싶은 태연이었지만, 이미 새벽 2시. 내일 스캐줄 끝나는 대로 찾아갈걸 다짐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태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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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는 눈을 겨우겨우 뜨고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새 오전 11시. 부엌에서 나는 인기척에, 눈을 찌푸린 채로 부엌을 보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으음...유진아..?"

   "아, 이제야 일어났네? 아침밥 해주러 왔는데 곤히 자길래 안 깨웠어."

   "으응...."

   "배고프지? 브런치로 뭐 먹을래?"

   "괜찮아...설거지 안 해줘도 돼..."

   "여자 친구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오늘 저녁에는 어디 갈까?"

 정을 쌓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일주일 전부터 매일 밤 데이트를 나가는 우리. 나는 마음이 없는 탓에, 유진이는 숫기가 없는 탓에 아직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사이이다.

 가까이 지내다보면 정이 쌓일 수도 있다지만... 반대로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정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법. 그 후자가 지금 나와 유진이와의 상황인 

것이다.

 솔직히 유진이도 지금 우리의 상황이 진전이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듯 했지만....

   "아무데나 상관없어...나, 피곤하니까 있다가 저녁에 보자.."

   "그, 그래...."

   "....그냥 오늘 저녁은 푹 쉬어, 이만 가볼게."

 평소처럼, 돌아가는 유진이를 일층까지 마중했다.

   "....소녀시대가 그렇게 소중해?"

   "응..?"

   "고작 몇 주 만난 소녀시대 때문에, 니 마음까지 속여가면서 날 만나고, 소녀시대랑 멀어지고.... 그 정도로 소중하냐고..."

   "......지금 이 상황을 보면, 그런가봐."

   ".....내일보자."

   "그래...."

 그렇게 멀어져 가는 유진이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물론, 유진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마음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자꾸 소녀시대 누나들만 생각나고...하아...

  띵동-

   "...? 뭐 놓고간거 있..."

   ".......찾았다."

 당연히 유진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으나, 거기에 서있는 건 태연누나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무서운 표정의.

   ".....누나."

   "일단 들어갈게."

   "...안되요. 누나랑 할 얘기 없으니깐 이만 돌아가 주..."

   "시끄러-!!!"

 빈 복도를 울리는 태연누나의 고함소리. 태연누나의 눈에서는,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누나를 차마 말리지 못했다.

   "수연이 얘기가 사실이야?! 난 그 말 들으러 온 거야."

 어느 정도 눈물이 멎고 진정이 되자, 바로 질문을 하는 태연누나.

   "사실 이예요."

   "어떻게 그런...왜 이렇게 갑자기..."

   "그냥 질렸다니깐요? 질리는 것에 갑자기고 뭐고, 그런게 어디 있어요?"

   "나, 지금 이 집에서 나가는 순간 너 잊고 살 거야...아니, 평생 너 저주하면서 살 거야. 난 너한테 내 처음을 줬고, 내 마음을 줬고, 내 모든 걸 줬다고!!!"

   "......."

   "지금 나 붙잡으면, 아무것도 안 묻고 널 믿을게. 그리고 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하지만 날 붙잡지 않으면....정말로 끝이야."

   "......."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이미 유진이 아빠의 주식은 HC로 넘어왔고, 곧 SM인수도 완벽하게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전에 했던 약속을

깨버린다면...얼굴을 들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태연누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래, 애초에 이렇게 될 걸 다 알고 내린 결정이야...

 그런데, 문이 닫히려는 순간, 태연누나는 뒤돌아서 날 째려봤다.

   "야!! 다 들었다구... 아까 니 친구랑 너가 하는 얘기 들었다고!!"

   "......네?"

   "아까 앞에서...그 여자애랑 하는 얘기 들었다고.... 정말 끝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던거야?! 내가 그렇게 까지 말했는데..."

   "........"

   "스캐줄 사이에 온 거라 오늘은 이만 가볼게. 하지만.... 내가 방금 그 말을 들은 이상 이대로 넘어가진 않을거야! 어떻게든 그 여자애한테서 풀려나게 

  해 줄거라구! 너, 넌 내꺼니깐!!!!"

 약간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곤 나가버리는 태연누나. 괜히 진실을 알려서 좋을거 없는데...

 하아...이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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