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고블린을 사냥하고 돌아온 어스는 마을에 전에 없이 열기가 감도는 걸 느꼈다.
사고로 누군가 죽거나, 혹은 싸움이 났을 때완 사뭇 다른 들뜬 분위기였다.
마을 회관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는 걸 본 어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본 주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눈살을 찌푸리며 외면했다.
별종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노골적인 행동이었다.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어스는 그에 상처받지 않았다.
‘나도 당신들을 무시할 테니까 피장파장이지.’
오히려 당당하게 쳐다보았다.
그때, 어스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들 몇몇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한땐 친구,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바로 저들이었다.
“쥐구멍으로 드나들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 있냐?”
“내 발로 내가 다니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지?”
지지 않고 반격하는 어스였다.
이 역시 전에 없던 행동이다.
그래서 다들 인지부조화에 걸린 듯 얼마간 눈만 끔뻑거렸다.
그도 잠시.
“이, 이게 미쳤나? 죽고…….”
그때 마을 회관에서 빠져나온 남자들 중 하나가 어스를 알아보곤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어스야!”
행크의 등장에 어스에게 시비를 붙였던 아이들이 콧방귀를 날리며 가버렸다.
아이들의 뒤통수를 매섭게 노려보던 행크는 곧 고개를 돌렸다.
자애로운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서.
“이제 오는 거냐? 참, 토끼는?”
“그 이야긴 어디서 들었어?”
“루시가 그러더라.”
“걔 화 많이 났어?”
“직접 확인해 봐. 빈손인 걸 보니 못 잡았나 보네. 허허.”
애당초 목적이 토끼가 아니니 당연히 빈손일 수밖에.
대신 고블린을 잡았으니 토끼 따위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하지만 말할 수 없다.
덜 여문 선물보따리(?)니까.
“응.”
“어라? 어째 대답이 시원시원하네.”
“토끼 한 마리 때문에 기죽을 내가 아냐. 그런데 회관엔 무슨 일이야?”
“몬스터 토벌 공고가 붙었어. 그래서 제비뽑기 하느라 모인 거야.”
그 말에 어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가고 싶다, 정말 그곳으로 가고 싶다.
하나 아버지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허락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보이기엔 부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몬스터가 어디 거기만 있는가.
‘대신 안전할 텐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스는 용병이란 직업에 끌렸다.
몬스터 토벌령의 주축은 용병들이기 때문이다.
사냥꾼보다 훨씬 위험하고 험한 직업이지만 수입은 사냥꾼과 비교할 수없이 많다.
또한 몬스터와 자주 조우하기도 하는 직업이다.
그들의 일 중 하나가 몬스터 퇴치나 토벌이니까.
그 외 자잘한 일도 한다지만 그건 어스에게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돈도 벌고, 몬스터도 잡는다. 딱 나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네.’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는 청년들이 경우 고향을 떠나서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리는 곳이 용병 길드였다.
하지만 그중 열에 일곱은 죽거나 다친 몸으로 귀향하곤 했다.
칼밥은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였다.
“아들?”
“어? 응.”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야?”
아빠, 나 용병하고 싶어 라고 말하면 분명 혼날 것이다.
그러니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용병에 대한 생각을 저버릴 생각 따윈 없다.
돈도 벌고 몬스터도 잡는 직업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병밖에 없으니까.
‘영지의 병사도 몬스터를 잡지 않나?’
그러나 병사는 되기도 힘들지만,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직업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색이 마법산데.
“아무것도 아냐, 참 뽑기 잘했어?”
“잊었어. 아빠 금손 이잖아. 참, 어스야.”
“응.”
“도시에서 사는 거 어떻게 생각해?”
“도시? 갑자기 무슨 말이야? 우리 이사해?”
“그건 아니고.”
“……?”
“실은 말이다, 내가 잘 아는 상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점원을 뽑는다는구나. 그래서 네가 점원이 되면 어떨까 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얼마 전이었다면 점원이란 선택지도 나쁘지 않다.
지긋지긋한 이 마을을 떠나더라도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까.
물론 가족과 헤어지는 건 싫지만 열다섯씩이나 돼서 엄마 아빠 품에 있는 것도 한심한 노릇이다.
‘가만, 점원으로 취업하는 척하고 용병을 하면 되지 않나?’
이러면 굳이 몰래 집을 나갈 필요도 없다.
“천천히 생각해, 급한 건 아니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참, 토벌대엔 언제 참가해?”
“내일 아침 일찍.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점원 문제는 잘 생각해봐. 그리고 엄마랑 여동생 잘 돌봐주고. 알았지?”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 테니까.”
“오냐, 그러면 아빤 아들 믿고 열심히 돈 벌고 오마. 하하하.”
“다치진 말고.”
“우리 아들 다 컸네. 아빠 걱정도 하고.”
“늘 했어.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고 약속할게.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꼭 될게.”
그 말에 감동했는지 행크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럼, 아빠는 우리 아들 전적으로 믿어. 암, 완전 믿지 그렇고말고.”
* * *
다음 날, 행크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벌대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일찍 길을 서둘렀다.
이번엔 어제와 달리 배웅을 하지 못했다.
밤새 잠을 설치다 새벽에 잠깐 졸았다가 깨어 보니 아버지가 떠나고 난 후였다.
“엄마, 아빠는?”
“갔어.”
“미안하네. 배웅도 못 했는데.”
엘이나는 아들의 말이 대견했다.
제 앞가림하기에도 벅차 보이던 아들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언제 오신데?”
“보름은 걸리지 않을까? 보통 그 정도 걸리잖아.”
어머니의 말에 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앉았다.
“참, 나 밥 먹고 갈 데가 있어.”
“또?”
“어제 못 잡은 토끼 잡아야지.”
어스의 변명에 엘이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에 집중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기에 마냥 예뻐 보였다.
“도시락 싸줄까?”
“응.”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을 먹은 어스는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서 빠른 걸음으로 숲으로 향했다.
두어 번 왕복한 곳이라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어제 사냥에 성공한 개울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일은 없었다.
‘아쉽네.’
어스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참 걷던 그는 배가 고파지자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다.
손에 붙은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일어나는 그의 귀에 날카로운 비명이 파고들었다.
깜짝 놀란 어스는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서 주변을 살폈다.
더 이상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자리를 지키던 어스는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조심하며 이동했다.
그렇게 15분여를 이동한 어스는 고블린을 발견했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었다.
‘젠장, 너무 많잖아!’
매직 애로우를 무한대로 쓸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몸을 빼야 한다.
어스는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지그시 누르며 몸을 돌렸다.
스무 마리 남짓한 고블린은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방금 사냥한 커다란 사슴 때문이었다.
만약 놈들이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스는 크게 위험했을 것이다.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이동하던 다섯 걸음을 떼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집채만 한 덩치의 표범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놈에게 들키지 않았고, 놈의 표적은 어스도 아니었다.
놈이 노리는 건 사냥에 성공해서 기뻐 날뛰는 고블린들이었다.
‘저게 짐승이야? 몬스터야?’
이에 안도한 어스는 제대로 놈을 볼 수 있었다.
도망가야 하는데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
대형 표범이 몸을 날려 고블린 무리를 덮쳤다.
이에 고블린들이 저항했지만 놈들이 저항은 거대한 강철 벽을 향해 날아가는 달걀에 불과했다.
덩치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고블린 무리를 그 능력에 경탄이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금지는 포기는 게 좋겠어.’
고블린은 몰라도 저 녀석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 날이 자신의 제삿날이 될 것 같았다.
아쉽지만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고블린들은 저항을 포기하곤 사방으로 달아났다.
대형 표범은 놈들을 쫓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큼직한 사슴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사슴의 목덜미를 덥석 문 놈의 노란 눈이 어스가 숨어 있는 곳을 주시하다 이내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 잠깐 사이 어스는 진땀으로 목욕했다.
덜덜덜.
‘도, 도망쳐야 해.’
마법사로서의 자존심? 그딴 건 지금 이 순간 단 1도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대형 표범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무력을 똑똑히 보았으니까.
어스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기척을 죽인다? 그럴 정신도 그에겐 없었다.
타타타타.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나뭇가지에 찔리고, 풀에 베이고, 돌부리와 나무뿌리에 걸려 자빠지길 수회 만에 드디어 금지 초입에 도착했다.
그곳은 어제 고블린 세 마리를 잡았던 개울이었다.
헉헉.
더는 달릴 힘이 없던 어스는 그 자리에 대자로 뻗었다.
“제, 젠장, 트롤도 아니고 표범에게 쫄다니.”
한숨 돌리니 그제야 수치심이란 놈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시 그곳으로 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싸움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하는 법이니까.
체력을 회복한 어스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진짜, 용병이 돼야겠어.’
나중은 몰라도 혼자 사냥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아니다.
어스는 별일 없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어스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꼬리가 붙은 것이었다.
“끽끽.”
* * *
대형 표범을 목격한 충격이 컸던지 어스는 그날 이후 앓아눕고 말았다.
정신적인 충격에 의한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다.
엘이나는 아들의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딱히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기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시켰다.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요리가 효험을 발휘했는지 어스는 이틀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금지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이러면 나는 어떻게 성장하지?’
답답했지만 당장은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집을 떠나 용병이 되는 길 이외엔.
쾅쾅쾅-!
문짝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그에 상념에서 깬 어스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몰상식한 행위를 한 자는 마을 여자였다.
어스가 나가기 전에 엘이나가 문을 열었다.
“루, 루시 엄마, 우리 네미 못 봤어?”
“네미? 아니 못 봤는데. 네미가 안 들어왔어?”
밖은 지금 캄캄하다.
어린아이가 밖에 있을 시간이 아닌 것이다.
“아!”
여자는 희망이 사라진 듯 풀썩 주저앉았다.
“네미 엄마, 괜찮을 거야. 다른 집에…….”
“여기가 마지막이야. 우리 네미…… 설마 우리 네미에게 나쁜 일이…….”
불안한 심정을 토로하던 네미 엄마가 어스를 발견하더니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어스도 엘이나도 이에 깜짝 놀랐다.
네미 엄마는 어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정신을 차린 엘이나가 떼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딸이 잘못되면 이건 모두 네 탓이야! 네가 마을에 불행을 물고 온 거니까!”
이건 억지다, 명백한 화풀이다.
매번 이랬다.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들 어스를 걸고넘어졌다.
빌어먹을 마을 녀석들.
어스는 네미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멋지게 뿌리쳐야 하는데, 멱살은 여전히 그 손에 잡혀 있었다.
쪽팔리게.
‘힘을 찍어야 하나?’
그러자니 효율이 떨어진다.
자괴감에 빠진 어스를 구한 건 의외로 그의 여동생 루시였다.
네미 엄마의 팔을 힘껏 깨물어 버리는 루시.
“우리 오빠 건들지 마!”
그러곤 독수리처럼 두 팔을 날개처럼 쫙 펼치면서 네미 엄마의 접근을 막았다.
여동생에게 할 소린 아니지만 참으로 듬직했다.
네미 엄마의 흥분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불안을 더는 가슴에 담아 둘 곳이 없어 억지를 부렸다.
이제 자신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차례다.
아버지를 대신한 이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확실한 면모를 모두에게 각인 시킬 것이다.
‘이 상황에서 스킬을 쓰게 될 줄이야!’
이를 보게 된다면 네미 엄마는 물론 가족들도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근엄한 표정을 뿜으며 매직 애로우를 시전하려던 찰나, 엘이나가 에니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뒤 오금을 차서 자빠뜨렸다.
“……?”
“……!”
어스도 루시도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린 어머니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토끼 눈이 된 남매는 서로를 보았다.
‘오빠? 나 꿈꾸는 거 아니지?’
‘꿈인 것 같아. 우리 엄마가 저럴 리 없어.’
‘그래, 그렇구나. 꿈이었구나.’
현실을 부정했다.
하나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다.
남매는 꿈속이 아닌 현실에 서 있었으니까.
“악!”
엘이나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체구인 네미 엄마는 머리채가 잡힌 순간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저 가녀린 몸에 어떻게 저런 힘이, 아니 기술인가?
저 모습을 보니 루시가 꼭 아빠만 닮은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겉보기와 달리.
‘아빠가 엄마를 암사자라고 부른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아버지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자신을 깊이 반성했다.
“얌전히 갈래? 아님 머리털 다 뽑히고 평생 대머리로 살래?”
“가, 갈게. 그냥 갈게. 그러니까 제발 놔줘. 흑흑.”
미친 멧돼지처럼 날뛰던 네미 엄마는 지금은 순한 양이 되어 엘이나의 눈치를 살피며 나갔다.
“야!”
그러나 문턱을 넘기 전.
“왜?”
“우리 아들에게 사과해. 아님, 우리 아들 멱살 잡은 그 손모가지 놓고 가. 루시.”
“네, 넵!”
“엄마 방에 도끼 있다. 그거 갖고 와라. 저년 손모가지가 굵어서 식칼은 안 되겠어.”
도끼라니, 왜 그 흉측한 걸 안방에 둔단 말인가? 혹시, 이 집안 내력……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기함한 네미 엄마가 어스를 향해 미안하다는 마을 남기곤 부리나케 도망쳤다.
“엄마, 도끼 없어.”
“당연히 없지.”
“에? 거짓말이었어?”
“농담.”
“…….”
“어스.”
“어? 응.”
“다친 데 없어? 무식한 년이 힘만 세다니까.”
그 무식하고 힘센 네미 엄마를 제압한 건 어머니 아니던가?
“다친 데 없어. 봐, 손자국 하나 안 남았잖아.”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이 시간까지 네미는 뭘 하느라 지 엄마 저렇게 발광하게 만든 건지? 너희들은 그러면 안 된다? 알았지.”
남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엄마는 왠지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