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금지 입구에 도착했다.
막상 그 앞에 도착하자 파티 원들 사이에서 동요가 도드라졌다.
저들 모두 이곳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 갈색 자작나무 마을 출신이었으니.
“진짜 들어가도 괜찮을까?”
“이미 엎지른 물이잖아? 그리고 우린 병사야. 계약직이라곤 하지만 우리가 임의로 임무를 저버릴 수 없다는 거야. 만약, 그랬다간 평생 수배범으로 쫓기면 살아야 할걸.”
“하아, 다른 녀석들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떠났어야 했나?”
“되돌릴 수도 없는 이야기를 왜 자꾸 하는 거야?”
“그런데 고블린이 여기로 도망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명이 고블린을 언급하자 병사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는다.
요새의 사령관은 갈색 자작나무 마을 출신의 사냥꾼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하여 정찰에 활용했다.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었지만 반대로 이 지역 출신들이었기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금지 내부의 정찰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점이 문제 될 건 없다.
요새 사령관이 정한 정찰범위엔 금지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금지 내부에서 고블린이 발견되더라도 저들이 곤란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자신들의 입장에서지 높은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지가 문제였다.
금지에 대한 부담감에 도주한 고블린들까지 새로이 추가되자 병사들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목소리 낮춰. 기사님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나직한 그 경고에 병사들은 그제야 흠칫했다.
모두의 시선이 주변을 살피고 있는 기사의 등짝을 우려의 시선으로 응시했다.
기사 찰슨은 병사들의 말을 듣고도 이를 모른 척했다.
미신에 흔들리는 평민들이 어디 저들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
* * *
금지 내부로 진입.
한참 걷던 일행은 전날 어스가 고블린 세 마리를 처치했던 개울에 도착했다.
무더운 날씨에 움직인 터라 다들 목이 마른 상태였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울물을 얼굴에 퍼부었다.
점심때인지라 다들 여기서 끼니를 해결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 중으로 놈을 잡으면 좋겠지만 수삼 일이 지나도 허탕 칠 수 있었기에 초반부터 힘을 뺄 수 없었다.
다들 기뻐하며 챙겨온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어스는 아버지와 따로 식사했다.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갓 만든 빵과 베이컨에다 우유까지 겉들인 호화스러운 점심이었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려던 그때였다.
풀숲이 이상한 방향으로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포효를 터트리며 고블린 여섯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고마울 때가!’
어스의 매직 애로우와 찰슨의 검이 동시에 고블린의 몸뚱이에 작렬했다.
마나 소드를 운용하지 않음에도 고블린의 몸뚱이는 날카로운 칼날에 베어지는 종이처럼 갈라졌다.
찰슨이 놈들을 다 해치우기 전에 어스도 시전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어스와 찰슨은 각각 3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할 수 있었다.
“어스 마법사. 정말 2서클인가?”
“예.”
“마법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시전 속도가 엄청나군. 그 정도면 근접전에서 기사와 붙어도 할 만할 것 같아.”
치하의 말이라고 하기엔 찰슨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찰슨과 대화 중에 상태창을 열어본 어스는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그 이유는 코인 때문이었다.
3서클 스킬을 사기에 조금 부족했던 금액이 이번에 채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면 이젠.
‘……3서클인가?’
일반적인 마법사와 궤가 다르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마법사가 마법으로 말하면 그만이지.
파이어 볼!
드디어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마법, 아니 스킬을 갖게 된 어스였다.
‘이런 건 바로 사야지.’
* * *
드디어 3서클의 공격 마법인 파이어 볼이 어스의 손안에 들어왔다.
어스의 광대는 당장이라도 하늘로 승천할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13).
생명력 : 100/100.
마나 : 140/170.
인벤토리 : 1.
스탯 : 힘(1). 체력(1). 민첩(1). 지력(2). 정신(15).
직업 스킬(3/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파이어 볼(+0/12).
업적 포인트 : 0.
코인 : 2.
‘문구 하나만 들어갔을 뿐인데도, 상태창이 빛나네! 빛나.’
당장이라도 파이어 볼을 시전 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눈도 있어 참았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대형 표범으로 보게 된다면 마나는 아껴야 한다.
3서클 스킬을 시전 하는 데 필요한 마나는 2서클의 2.5배인 50이다.
1시간 후에 10퍼센트의 마나가 회복되니 그땐 총 3번의 파이어 볼을 시전할 수 있다.
‘간지럽다, 미치도록.’
이 간지러움은 목욕을 안 해서가 아니라 기쁨이 가득 찬 데서 오는 가려움이었다.
혼자만의 기쁨에서 조금 벗어나자 그제야 찰슨 기사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실 말씀이라도?”
“혹시, 남작님께 임관할 생각 없나?”
어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반면 주위 사람들이 난리 났다.
특히, 행크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우, 우리 어스가 기사들처럼 준 귀족이 될 수 있다고?’
물론 행크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들은 귀한 마법사니까.
하지만 막상 기사가 아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자 느낌이 달랐다.
두근두근.
내 아들이 준 귀족이 된다니.
행크는 어스가 승낙하기를 바랐다.
아니,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똥멍청이도 아니고 누가 이런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죄송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들은 똥멍청이었다.
“그런가?”
“예.”
“그렇군.”
찰슨은 쿨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지금은 해야 할 일도 있고.
* * *
어스가 대형 표범을 목격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개울가에서 이곳까진 거의 외길이나 다름없었기에 애당초 어스의 조언은 필요가 없었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도 알아서 길을 찾았다.
덕분에 어스는 자신이 금지에 들어온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자, 이제부턴 어스 역시 아는 게 없다.
‘아빠, 이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스는 행크를 보았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이동하던 행크는 웬일인지 이 장소에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달빛을 잔뜩 머금은 명검처럼 두 눈을 빛내며.
“여기서 잠시만 대기.”
이리 말한 어스는 찰슨에게 다가간 뒤 몇 마디 말을 하곤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병사 몇을 데리고서.
그에 어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아빠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어스는 아버지의 능력을 인정하며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시 저쪽에 숨어 있었는데, 그리고 놈은 저기서 사슴을 덥석 물고서 자신을 노려보았고.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르자 인상이 절로 구겨진다.
일생일대의 치욕을 바로 여기서 겪었으니까.
물론 당시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힘을 얻고 나자 그제야 그게 치욕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로 들어갔던 행크와 병사들이 돌아왔다.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놈의 흔적을 발견한 듯 보였다.
‘설마, 이곳이 놈의 보금자리와 가까운 곳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때 살아서 이 산을 빠져나간 건 천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예민해지는데 하물며 짐승은 말해 무엇할까.
더욱이 그곳이 제 보금자리와 가깝다면 사냥감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적으로 대해야 마땅한 것이다.
배가 불러도 악착같이 따라와서 죽여도 전혀 이상하게 없는 노릇이다.
‘치욕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 맞겠구나.’
어스가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행크와 찰슨의 이야기는 끝나 있었다.
찰슨이 표정은 복잡했다.
“아빠, 기사님의 표정이 왜 저래?”
“여기서 매복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겠지.”
“매복? 그 말은 놈이 여기 온다는 거야?”
“흔적이 그리 말해 주고 있어.”
“언제?”
“이틀 이내. 아님 오늘 당장 볼 수도 있어.”
“그 말은 이 장소가 놈에겐 특별하다는 거야?”
“말귀가 밝네. 어떻게 말해주지 않았는데 바로 알아들은 거야?”
그야 여기 와서 죽을 뻔했으니까.
역시, 그날 자신에겐 천운이 따른 게 분명할 것이다.
행크는 병사들과 함께 함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 *
정확하게 이틀.
‘놈이다!’
어스는 직감적으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행크와 병사들도 느꼈다.
그리고 저들보다 더 먼저 느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찰슨 커렌이었다.
익스퍼트는 그냥 된 게 아니라는 듯.
스르릉.
검을 뽑아 든 찰슨의 기도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고블린을 벨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저게 말로만 듣던 기세라는 건가?’
정면에서 보면 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감히 그 앞에 얼쩡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천둥처럼 들릴 것 같은 장내의 침묵.
행크와 병사들이 설치한 함정을 모두 피하고서 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만인을 굽어보는 제왕처럼 놈이 커다란 노란 눈이 사람들을 훑었다.
그에 병사들이 마지막 잎사귀처럼 온 몸을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어떻게 짐승일 수 있어?”
“미, 미쳤다. 덩치가 황소의 두 배는 될 것 같아!”
“마, 마물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짐승이 저럴 리 없어.”
병사들 모두 한때 사냥꾼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던 자들이다.
그래 봐야 한 달이 안 지났다.
그러니 아직 저들의 몸에선 사냥꾼의 본능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지금 떨고 있었다.
어스는 행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굳은 건 행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스는 아버지의 표정에서 후회를 읽을 수 있었다.
‘나 때문인가?’
왠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어스는 전과 달리 놈을 보고 있음에도 전혀 떨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흘렀다고 그새 저리 달라진 건지.
물론 긴장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을 훑어보던 놈의 시선이 어스에게서 0.3초 머물다, 찰슨에게선 못처럼 박혔다.
‘방금 무시당한 건가?’
다행이었다.
어스는 슬금슬금 옆으로 이동하여 행크의 옷소매를 뒤로 잡아당겼다.
행크는 겨우 고개를 돌려 아들을 보았다.
그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다.
어스는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뒤로 물러나 있어.’
역시 행크도 입모양으로.
‘너나 물러나 있어.’
그렇게 부자가 서로의 안위를 챙기는 그 시간 찰슨과 대형 표범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에 어스는 더 이상 아버지를 신경 쓸 수 없었다.
“뒤에 있어!”
그렇게 소리치며 자신이 등판(?)할 적기를 찾기 시작했다.
기사 찰슨이 놈을 끝낸다면 좋겠지만 만약 여력이 안 된다면 그땐 자신이 나서야 한다.
‘네깟 놈이 파이어 볼을 감당할 수 있겠어!’
없어야 할 텐데.
한동안 맨 칼(?)로 대형 표범을 상대하던 찰슨이 마침내 마나 소드를 빼들었다.
놈도 별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던 그때, 비장의 한 수는 비단 찰슨 기사만이 아닌 듯 놈도 그에 맞서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저거…… 진짜 짐승 맞아?’
그제야 어스도 놈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