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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1화 (21/250)

021화

다음 날, 어스는 거너 용병대와 함께 용병 길드 지부에 방문했다.

승급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다.

시험 장소는 길드 지부 건물 뒤쪽에 마련된 적당한 크기의 공터였다.

이곳은 소정의 금액을 받고 용병들에게 대여해 주는 장소로도 사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스를 비롯한 십 수 명의 용병들이 저 공터의 임자였다.

그중 마법사로 승급 시험을 보는 이는 어스를 제외하곤 단 한 명도 없었다.

시험 방식은 간단했다.

자신의 주 무기로 시험관을 상대하면 된다.

챙챙, 캉캉, 쿵쿵!

무기와 무기가, 손과 발, 그것도 부족해 머리와 어깨까지 전신을 무기로 사용하는 그들의 모습은 이곳이 시험장인지 전장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시원시원한 박진감을 연출했다.

한마디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스, 넌 긴장 안 돼?”

옆에 있던 니코가 팔꿈치로 어스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이곳엔 시험관과 응시자만 있는 건 아니다.

어스처럼 다른 응시자들도 지인들과 함께 왔다.

그리고 연관이 없는 자들도 더러 눈에 보인다.

저들은 구경꾼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다들 죽기 살기로 시험에 응시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몸 쓸 일도 없고, 대련할 일도 없는데 긴장할 게 있어?”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당당한 어스의 답변에 니코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어스 점점 재수 없어지는 거 나만 그런 건가?’

니코가 속으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탈락자가 발생했다.

“야! 구스 너 오늘 왜 그래! 거기서 실수하면 어쩌자는 거야? 멍청한 놈.”

“저 새끼 어제 과음했잖아. 병신, 시험 전날 그렇게 처마실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어서 내놔. 50테스.”

동료가 시험에 떨어져서 열을 내던 게 아니었다.

내기에 져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저런 장면은 저들뿐만이 아니다.

근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용병들의 시험이 끝나자 다음은 원거리 무기를 사용자들이 시험을 치른다.

‘따지면 나도 원거리 공격순데.’

활을 사용하는 용병의 경우에는 두 가지 시험을 본다.

제 자리에서, 이동 중에 활을 쏘아 일정 점수를 넘어야 한다.

“아그네스 누나, 누나는 왜 아직 은패죠? 누나 실력이면 금패도 문제없지 않나요?”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번번이 좌절했어. 몇 번 그렇게 떨어진 뒤로 승급 시험은 포기했어. 은패 1급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건 새로운 사실이었다.

아그네스가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린다니.

아니, 그럼 고블린 토벌과 오크 부락 섬멸엔 어째서 백발백중이었을까?

‘실전에선 아닌가?’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엇갈린 가운데 드디어 어스의 차례가 됐다.

그가 이 시험의 마지막 응시자였다.

오늘을 위해 구입한 건 아니지만 어쨌건 마법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어스는 장내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왜 저런 복장이냐라는 등의 말이,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그리고 장의사도 아니면서 왜 검은 옷을 입고 저러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찬사의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부러워하는 말조차.

‘다, 당신들이 마법 로브를 알아? 이게 얼마짜린데.’

로브의 기능과 가격을 안다면 절대 저딴 말 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멘트를 날린 자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장의사라니.

동료들이 나서서 한마디 해주길 바랐지만 다들 웃기 바빴다.

니코, 게이브, 깁스, 린다…… 특히, 린다가 유독 많이 웃었다.

아닌 척하면서 거너도 웃는다.

‘대, 대장까지.’

설마 아그네스 누나는 아니겠지.

어스는 최후의 보루를 지켜보는 전장의 사령관이라도 된 듯 불안하고 떨리는 시선을 그녀에게로 던졌다.

‘우…… 웃고 있어!’

이 순간 아그네스의 웃음은 한 자루 비수가 되어 어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의기소침?

천만에 오기가 들끓었다.

보글보글.

‘그래, 이 몸의 진가를 보여주마!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보자고.’

얼마 전까지 그는 사람의 진가는 옷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그때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하늘만 아는 비밀이려나.

참고로 마탑에서 이뤄지는 승급 심사의 경우에는 서클을 개방하는 것이 전부다.

무미건조하고 심심한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마법사가 서클을 개방하더라도 외부에 나타나는 변화는 없고,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마법사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곳에선 해당 경지의 마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시험을 대신한다.

어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 그에겐 남들 다 갖고 있는 마나 서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간직한 비밀이 알려질 경우 최악의 경우 남은 인생을 실험실의 실험체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능력을 함구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

아무튼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시험장 중간에 우뚝 선 어스는 보란 듯 느릿하게 주위를 훑었다.

그러곤 과시라도 하듯 자신의 로브 자락을 탁 쳐서 펄럭이게 만들었다.

“파이어 볼!”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봐도 이게 뭔지 모를 무식한 이들을 위해 어스는 친히 육성으로 시동어를 외쳤다.

화르르.

직경 30센티미터의 둥근 불덩어리의 출현에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마, 마법사였어!”

“마법사라니……. 그럼 저 로브도 보통 옷이 아니라는 거네. 어쩐지 이 날씨에 저런 옷을 왜 입나 싶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옷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주길 기대하며 구입했더니, 정작 자신이 옷을 증명해 주는 꼴이 되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가격을 제외하면 로브 자체의 성능을 그를 최고로 만족시켰기에 로브에 대한 원망은 조금도 없었다.

“마법이 걸린 옷이라니…… 저건 얼마나 할까?”

“당연히 엄청 비싼 놈이겠지.”

“그런데 저 마법사님 너무 어리지 않나?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면 열다섯은 넘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열다섯에 파이어 볼을 쓴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 분명 동안일 거야. 그것도 무지막지한 동안이 분명해.”

“돈도 많고, 직업도 마법산데 동안까지라니…… 대체 저 남자의 단점은 뭐지?”

생성한 파이어 볼을 과녁을 향해 시원하게 날려 보낸 어스는 로브 자락을 앞서보다 더 힘차게 펄럭이며 돌아서서 일행을 향해 걸어갔다.

콰아아-앙!

때마침 터지는 파이어 볼.

이번엔 많이 있어 보이는 어스였다.

* * *

어스는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금패 1급 용병으로 거듭났다.

금패라서 그런지 일반 합격자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은패보단 확실히 금패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스가 금패 1급이면 앞으론 거너 용병대가 아니라 어스 용병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머리를 갸웃거리며 린다가 그리 말하였다.

이는 용병계의 불문율이다.

강자가 수장을 맡는 것이.

하지만 거너 용병대는 이합집산의 성향이 강한 일반적인 용병대와 달리 자그마치 5년이란 역사를 가진 전통(?)의 용병대였다.

그러니 용병계의 불문율을 내세워 수장을 교체하는 건 그 역사를 부정하는 짓이었다.

과연 린다가 이를 몰라서 이런 말을 했을까?

천만에.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어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유도 질문이었다.

만약 여기서 어스가 불문율을 내세운다면 린다는 어스에 선을 그을 생각이었다.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너와 달리 다른 이들 역시 린다와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용병대완 생각과 분위기 확연한 거너 용병대였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스는 둔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장군이나 사령관을 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 봤어요. 그러니 지금처럼 용병대는 계속 거너 용병대였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지금처럼 멤버로 참여하는 게 좋아요.”

미묘하게 흐르던 긴장감은 어스의 그 말에, 단호함마저 느껴지는 그 태도에 완전히 흩어졌다.

어스와 거리를 살짝 벌리며 그의 표정을 살피던 린다가 돌연 파안대소하더니 어스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 누나도 은근 머리가 좋단 말이야.’

린다의 평소 행동과 말, 그리고 외양만 보고 판단하면 큰코다치리라.

어쩜, 거너 용병대에서 린다야 말로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허점은 많아 보이는데 막상 작정하고 들어가면 실은 허점이 아닌 함정이라고 생각해 보라.

오싹.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어라? 이젠 가만있네. 드디어 누나의 포옹에 길들여진 거야? 우리 어스? 그런 거야? 그렇다면 진도를 빼야겠네.”

“진도?”

“포옹에 반응이 없으면 당연히 농도를 더 높여야지. 원래 남녀는 그렇게 발전하는 거야.”

린다가 말한 진도의 참뜻을 알게 된 어스는 얼굴이 노을처럼 달아올랐다.

“너 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설마? 그런 거니?”

린다가 얼굴을 훅 들이밀며 야릇하게 웃었다.

생선 가게 앞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여기서 잘 못 말하면 생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생선으로 사는 것도 나쁘진…….’

그건, 아니다.

동료는 동료일 뿐 연인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린다는 자신보다 한참 연상이다.

열두 살이나.

아그네스 누나라면 생선이 되는 걸 고민하겠지만 린다는 아니다.

어스는 단칼에 잘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순간 아그네스가 끼어들었다.

“린다 언니 그만 놀려. 그리고 어스.”

“예? 예. 아그네스 누나.”

“농담이니까 린다 언니의 말을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

아그네스의 말이 진짜라는 듯 린다는 재미있어 지려고 했는데, 라는 말을 반복하며 물러섰다.

그제야 어스는.

‘아냐, 그래도 린다 누나는 아니지.’

자신의 내면에서 섭섭한 감정을 찾아낸 어스는 냉큼 이 녀석을 걷어찼다.

아무튼 린다 덕분에 용병계 불문율로 인해 자칫 꼬일 뻔했던 관계가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었다.

* * *

금패 1급 용병 마법사의 이야기가 제이든 후작령 주도 내 용병들의 입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몇몇 용병단의 귀에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갔다.

그에 어스를 영입하기 위한 스카우트들이 후작령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방문하였을 땐 정작 어스는 일행과 함께 주도를 떠난 후였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마차.

일행을 태우고 이동 중인 이 짐마차는 거너가 사비를 들여 구입했다.

필요하다면서.

“거너 대장은 못 하는 게 없네요. 이렇게 큰 마차까지 몰 수 있다니.”

거너의 옆자리엔 어스가 앉아 있었다.

조수석이란 이름의 명당에.

어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너가 아닌 마부석과 짐칸의 경계인 가름판에 턱을 괘고 있던 린다가 했다.

“대장 아버지가 역마차를 몰았대.”

“음, 어쩐지.”

거너 용병대는 헥터 왕국 북쪽에 위치한 침묵의 숲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부산물이 높게 책정된 몬스터 역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값비싼 놈일수록 그만큼 강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어스 입장에선 두 팔 벌리고 환영할 장소였다.

그래서 처음 목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침묵의 숲까지 꽤 걸리니깐 이참에 마차 모는 걸 배워봐.”

“나 마부 할 생각 없거든요. 린다 누나.”

“그래도 배워 두면 나중엔 쓸모가 있을걸.”

“그런 말 하는 누나는 마차를 몰 수 있어요?”

“우리가 짐마차 구입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해?”

“처음 아니에요?”

“당연하지. 그리고 마차는 아그네스도 몰 줄 알아. 아! 니코는 못해.”

이후 린다는 멤버들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어스는 멤버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진짜, 가볍게 볼 수 없는 누나네.’

한참 그 이야기를 듣던 어스는 이게 린다의 노림수가 아닐까 싶었다.

일행과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정보를 쥐여 주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어스는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경청했고, 이런 어스의 모습에 린다는 픽 웃으며 그의 머리를 헝클었다.

“누나!”

“예뻐서.”

“나 잘생긴 거거든요.”

“재수.”

“어쩔 수 없어요. 우리 엄마가 이렇게 날 낳았으니까. 그러니 우리 엄마 보면 전해 줄게요.”

“악! 미안. 절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몰라요, 그대로 전할 테니까. 다음에 우리 엄마 보면 그때 가서 변명을 하도록 하세요.”

덜컹덜컹.

마차도 웃고, 짐칸에 앉아 있던 동료들도 모두 웃기 시작했다.

‘편해, 무지.’

가족들 이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어스는 저들과 좀 더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더해 한 가지 얻을 것도 있고.

“게이브 아저씨. 저 창술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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