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마법사의 길은 쉽지 않다.
노력해도 어떤 이들은 평생 3서클의 벽을 뚫지 못하고 2서클에서 좌절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어스는 더욱더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재능을 보유한 천재라고.
제 입으로 자신이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이는 어스가 평생 듣고 살아야만 할 찬사였다.
다행히 어스는 타인의 찬사를 싫어하지 않았기에, 그가 제 입으로 자신이 비밀을 밝힐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창술?”
“예.”
게이브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설마, 자신을 싫어하는 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그래도 모를 일.
어스의 의문은 린다로 인해 풀렸다.
“3서클에서 포기할 생각이야? 어스, 그건 아니다. 넌 아직 젊어. 아니, 어려. 지금처럼 무서운 속도로의 발전은 어렵겠지만, 너라면 5서클도 문제없을 거야. 한눈팔지 말고 지금처럼 한 우물만 계속 파.”
게이브가 저와 같은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린다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나도 린다 생각에 동감이다.”
린다와 게이브의 생각은 정석이다.
하지만 자신은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그들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처럼 몬스터만 잡다 보면 5서클은 물론 9서클도 문제없다.
문제는 시간 그리고 넉넉한 사냥감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진지하게 정석을 말하고 있었다.
“제가 창술의 끝을 보겠다는 건 아니에요. 보다시피 제가 또래보다 작고 말랐잖아요? 그래서 몸을 쓰다 보면 달라질까 싶어서 배우려는 거예요. 이왕이면 저도 갖고 있는 창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면 더 좋잖아요.”
조리 있는 어스의 서명에 게이브는 납득했다.
“그런 이유라면 상관없겠지. 대신, 아주 엄격하게 가르칠 거야. 네가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나 나름대로 내 창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막 굴려…… 까진 아니고, 적당하게 굴려주세요. 헤헤. 제가 보기보다 체력이 낮아요.”
여기서 말하는 체력은 상태창의 체력 스탯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같은 체력인데 상태창의 체력을 올려도 어째서 육신의 체력은 올라가지 않는 건지, 그럴 거면 애당초 체력 스탯이 아니라 생명력 스탯이라고 해야 이치에 맞지 않나 싶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스탯도 마찬가진가?’
모르겠다, 아무튼 주어진 행운은 의심하지 말고 그 덕을 보면 그만이다.
“그래, 오늘부터 가르쳐 주마.”
“역시, 남자.”
그렇게 어스는 게이브에게서 창술을 지도받게 되었다.
‘반드시 키 큰 근육남이 되고 말 테다!’
* * *
그날 저녁 야영지에서 어스는 자신의 창을 쥐고서 게이브 앞에 섰다.
다들 할 일도 없었기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게이브를 향한 시선은 무난했다.
반면 어스에게 향했던 시선 중 하나는 그의 손에 쥐어진 창을 보며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하나의 시선은 니코였다.
“어스, 그 창 팔아 버린 게 아니었어?”
“아빠가 선물한 창인데 팔긴 뭘 팔아요. 돈이 떨어져서 밥을 굶는다면 모를까.”
어스의 말에 니코는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아닌데.”
“뭐가 아닌데?”
“린다 누나 저 창 말이에요. 분명 마차에 실린 적 없어요. 그리고 어스를 만난 이후에도 보지 못했고요. 그래서 난 팔아 버렸다고 생각한 건데 저게 갑자기 나타나니까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요.”
“어라,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니코와 린다의 대화에 자연 모두의 관심이 어스의 창에 쏠렸다.
어스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저들에게 인벤토리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어 잠시 머리를 굴리는 데 그때 아그네스가 영문을 알겠다는 듯 끄덕이며 말했다.
“공간 주머니 샀어?”
어스가 애지중지하는 마법 로브와 연관 지어 생각한 것이다.
그에 다들 납득했다.
덕분에 어스는 인벤토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스, 허든 상회주에게 얼마나 받았기에 마법 로브에다 공간 주머니까지 산 거야? 한두 푼이 아닐 텐데.”
부러움이 가득한 니코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스는 검지를 펼치며 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깊이 알려고 하지 마요. 크크.”
“와. 엄청 받았나 보네? 쳇, 부럽다. 세상 다 가진 녀석이었어. 흑, 나 같은 건 어스에 비하면 발가락 때도 못 돼.”
“니코, 발가락 때는 될 거야. 그러니 자신감 갖고 살아. 발가락 때. 푸하하하하.”
깁스가 니코의 어깨를 제 어깨로 툭 쳐서 쓰러뜨리며 박장대소했다.
“깁스 형, 그렇게 툭 치면 어떻게 해요? 이 돌 보여요? 이 녀석을 옆구리로 들이박을 뻔했다고요.”
“다쳤어?”
“그건 아니고.”
“그럼 됐지. 일어나지도 않은 걸 갖고 징징 거리다니. 그래서야 멋진 여자 만나겠냐? 남자는 모름지기 곰 같아야 하는 거야.”
깁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참고로 일행 중에서 깁스의 덩치가 제일 컸다.
그래서인지 무기를 두 개나 사용했다.
큰 한손검과 방패였다.
니코 역시 검과 방패를 썼다.
주로 사용하는 건 석궁이지만 아무튼 니코도 검방이다.
“눼눼.”
“이 녀석이!”
자신의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 니코에게 발끈한 깁스였다.
하지만 칼보다 주둥이가 빠른 니코가 화제를 돌리는 바람에 깁스는 어정쩡하게 말문을 닫아야만 했다.
어스를 향한 니코의 질문에도 호기심이 없지 않아 있었고.
“공간 주머니 용량은 어떻게 돼?”
“창술 수련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얼른 말해 주고 해. 봐봐. 게이브 형도 궁금하다고 쳐다보잖아.”
다들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어스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20킬로그램이요.”
별거 아닌 말이다.
그런데 그의 말에 질문을 한 니코는 물론 호기심을 드러내던 다른 이들도 뒤로 자빠질 만큼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미, 미친! 20킬로그램짜리 공간 주머니를 샀다고?”
“왜, 왜요?”
니코의 과격한 반응에 어스는 되레 놀라고 말았다.
니코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굉장히 비싼 가격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얼마나 비싸기에 저럴까?
이젠 어스가 몸이 단 모습을 보였다.
“20킬로그램 용량의 공간 주머니의 가격은 몰라. 하지만 5킬로그램의 공간 주머니의 가격은 알지. 나도 우연히 알게 됐어.”
“니코, 사설이 길잖아. 얼른 말해.”
덩치는 곰이지만 호기심은 어린아이처럼 왕성한 깁스가 채근했다.
“3만 테스요.”
다들 놀라 두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놀란 사람은 바로 어스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3만 테스를 벌었다는 말이 되니까.
‘아, 아니지. 내 건 20킬로그램이니까 더 비싸잖아.’
인벤토리의 편리함에 푹 빠졌을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던 어스는 공간 주머니의 가격을 통해 자신의 인벤토리가 대단한 보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날 창술 수련은 물건 너 가고 말았다.
다들 허든 상회주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애들 앞에선 찬물도 마음껏 못 들이킨다니까.’
어스는 잘 알지도 못하는 허든 상회주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 * *
어스는 저녁이면 게이브에게 창술 배웠고, 마차가 이동하는 중엔 아그네스에게서 글을 배웠다.
그렇게 바쁜 보름을 보내자 드디어 목적지인 침묵의 숲을 볼 수 있었다.
“저기가 바로 침묵의 숲이다.”
거너의 말에 단어를 암기하던 어스는 이를 중단하고 목을 길게 뽑았다.
특별한 신비가 도사린 곳이 아닐까 생각했던 어스는 막상 침묵의 숲을 보자 자신의 고향 마을의 숲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포장이야 뭐가 중요하랴.
‘저 숲에 다양한 몬스터가 산단 말이지.’
두근두근.
저도 모르게 흥분한 어스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꽉 움켜쥐었다.
주먹에 담긴 힘은 예전의 힘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브의 지도하에 수련한 창술의 효과인지 놀랍게도.
스탯 : 힘(1.1).
힘이 증가한 것이다.
0.1이라곤 하지만 이 수치는 업적 포인트 1개에 해당하는 것이라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시기에 힘 스탯이 오르지 않았다면 어스는 창술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 저녁이라곤 해도 한 낮의 열기는 여전히 대지에 남아 있어 무척 고됐다.
그런 차에 덜컥 힘 스탯이 올라버렸으니, 모르면 모를까 이를 알게 된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데 하물며 이쯤이야.
하여튼 그 일을 계기로 업적 포인트가 아니더라도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글도 열심히 배우는 중이었다.
-어스.
-예.
-기억 안 나니?
-뭐가요?
-어제 가르쳐 준 단어잖아.
-아!
-내가 누누이 말했지, 반복이라고.
아그네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좋아하는 누나에게서, 아니 첫사랑으로 기억에 남을 여자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남자의 심정이 오죽할까.
문제는 저 말을 저녁에도 똑 같이 들었다.
-몸에 때려 박은 걸 어떻게 까먹을 수 있어?
게이브에게서도.
그래서 어스는 알게 되었다.
자신의 몸뚱이와 기억력은 평균 이하라는 것을.
-어스는 아무래도 마법 쪽에 재능이 몰빵된 것 같아. 그게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그걸…….
니코에게서 이런 치욕적인 소리까지 들어야만 했다.
‘몬스터, 내가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지난 보름간 받았던 스트레스를 몬스터에게 모조리 배설하기로 단단히 벼르고 있는 어스였다.
* * *
침묵의 숲과 면한 곳에 마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이 자리한 위치는 헥터 왕국의 법률에 의거 하우든 백작령에 포함되었지만 마을 구성원이 하우든 백작령의 영지민이 아닌 용병들이었기에 하우든 백작에게 세금을 바칠 의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우든 백작 입장에선 자신의 영지에 마을이 들어섰으니 당연히 세금을 받아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저 용병 마을로 인해 얻게 되는 직간접적인 수입이 세금보다 더 많았기에 하우든 백작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
권리를 포기한 대신 백작은 용병 마을에 대한 도움 역시 주지 않았다.
어쨌건 그 이후 용병들의 마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상인과 장인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은 점점 발전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용병 마을이 아닌 자유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규모가 커지자 치안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몬스터 사냥을 위해 찾아온 뜨내기들이 굳이 치안에 힘쓸 이유가 없었다.
그에 상인과 장인들이 돈을 각출해서 용병 길드와의 직거래를 통해 치안을 맡길 용병들을 고용했고, 이로 인해 자유 마을에는 두 부류의 용병이 존재했다.
몬스터 사냥을 목적으로 한 용병.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된 용병이 바로 그것이다.
“대장, 마을이 있으면 굳이 짐마차를 살 필요가 없잖아요?”
자유 마을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된 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의문을 표하였다.
“없지. 대신 다른 곳보다 몬스터 부산물을 저렴하게 매집하는 단점이 있어.”
“아! 그래서 짐마차를 산 거군요. 부산물을 다른 곳에 가져가서 팔려고?”
“빙고.”
“그럼 상인들이 싫어하지 않나요? 마을 치안을 위해서 상인이랑 장인들이 돈을 내어 운영하고 있는데?”
“딱히.”
“어째서죠?”
“우리처럼 생각하는 용병대가 있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거든. 그리고 이 마을은 몬스터 사냥에 나가는 용병들에겐 중요한 보급기지야. 너도 알다시피 침묵의 숲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마차로 하루 반나절이야. 오가는 시간만 무려 3일이지. 여기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한다고 생각하면 시간은 더 걸려. 그러니 그 시간에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것이 용병들 입장에선 이익이지. 상인들이나 장인들도 이걸 알기 때문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아. 그리고…….”
거너는 꽤나 친절한 선생이었다.
거너에게서 자유 마을에 대한 설명을 거의 다들을 때쯤 일행을 태운 짐마차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일행은 까다롭지 않은 검문을 끝으로 마을 내부로 들어갔다.
“마을이 보기보다 훌륭하네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어스의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용병이 세우고, 상인과 장인들이 돈을 모아서 운영하는 곳이라 낙후 된 마을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마을은 깨끗하고 규모도 상당했다.
이 정도면 마을이 아니라 도시로 볼 법했다. 물론 영주가 사는 주도나 국왕 직할지에 비할 순 없지만.
“어라? 어린아이도 있네요.”
공터 한쪽에서 놀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발견한 어스가 눈을 크게 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가족과 여기에 사는 사람도 꽤 많아.”
“신기하네요. 자유 마을이란 곳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보다 큰 마을, 아니 도시라고 해야겠군. 그런 곳이 이곳 말고도 여럿 있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적지에 도착한 듯 어떤 여관 앞에서 마차가 멈추었다.
어스는 여관 건물에 붙은 간판을 보고는 자신있게 말했다.
“나, 나 저거 읽을 수 있어요. 상도기? 상도기 맞죠?”
“상이 아니라 쌍, 기가 아니라 끼. 그렇단다. 어스.”
아그네스 앞에서 다시 한 번 초라해지는 어스였다.
‘그래도 절반 이상은 맞췄으면 잘 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