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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41화 (41/250)

041화

어스와 루리아를 태운 마차는 소도시 버진에 정차했다.

오늘 밤은 이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하인이 섭외한 고급 여관에 들어선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곤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탁.

‘후아. 죽을 뻔했어.’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선 어스는 하루 종일 쌓였던 긴장감을 그제야 풀어낼 수 있었다.

무너지듯 침대로 엎어진 어스는 죽은 듯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다고 갑자기 활개 치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하자 민망함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서였다.

그렇게 침대의 먼지를 열심히 털어내던 어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무룩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어스는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을 활짝 열자 군데군데 불이 켜진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이라 거리는 행인들이 제법 보였다.

그들을 응시하던 시선을 더 멀리 던지자 유독 환한 곳이 보였다.

축제라도 하는 걸까?

풀이 잔뜩 죽어 있던 어스의 표정이 돌연 환해졌다.

개인의 역량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면 외부의 도움이나 환경을 통해 극복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스는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종업원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스는 기다리지 않고 곧장 종종걸음으로 종업원에게 다가갔다.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허름한 여관과 달리 어스 일행이 묵는 여관은 이 도시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급 여관이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서비스 마인드에선 조금의 단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 서비스 마인드뿐이랴, 객실이나 음식 역시 흠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이러니 귀족이나 부자들의 눈이 높을 수밖에.

참고로 여정의 경비는 글리시아 측에서 전부 부담하고 있었다.

“객실에서 보니까 서쪽이 유독 환하던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서커스단의 공연이 있습니다.”

“서커스요?”

서커스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서커스단이 들어와서 공연을 한다니.

루리아와의 어색한 분위기는 물론 개인적인 호기심까지 충족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라 어스는 적잖이 흥분했다.

“예, 손님.”

그런 모습이 종업원의 눈에도 훤히 보였는지 종업원의 입가에 미소가 진하게 맺혀 있었다.

어스의 모습은 엄마 미소를 불러일으키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으니까.

“그렇군요. 이야기 고마웠어요.”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5테스 동전을 꺼내 종업원에게 건넸다.

익숙하다는 듯.

그에 종업원은 기뻐했다.

어스는 고민에 잠겼다.

루리아를 불러 함께 갈 것이지 아니면 답사하고 난 뒤에 그녀를 데려갈 것인지에 대해.

‘내가 미리 알아보고 말하자.’

어스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건 지금까지 그녀 앞에서 남자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

능숙한 리드.

어스는 이를 위해 서둘러 여관을 나섰다.

한편 그 시간, 루리아는 긴 고민 끝에 어스와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그를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잘 입지 않는 원피스까지 꺼내 입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루리아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릴사위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모르는 남자와 중매로 결혼하느니 차라리 어스가 낫지 싶었다.

훨씬.

‘그도 날 좋아해 주면 좋을 텐데.’

검에 대한 열정과 해석은 뛰어난 루리아였으나 미묘한 감정에 대해선 무딘 구석이 많았다.

물론 어스에게도 문제가 없진 않다.

사랑 앞에선 유난히 내성적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이 많다고 해야 할까?

옷맵시를 다듬은 루리아는 흡사 전장에 나서는 장군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복도로 발걸음을 디뎠다.

두 사람의 객실은 50보가 채 안 되지만 마음이 무거운 탓에 그녀의 걸음걸이는 흡사 거북이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복도에 난 창문까지 관찰할 수 있었고, 얼마 전 어스가 발견한 환한 불빛도 보게 되었다.

저 불빛을 본 루리아는 단숨에 불빛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서커스단의 정기 공연임을.

‘또 그런 분위기가 생기면 서로 곤란해질 테니 서커스 공연을 핑계로 그와 데... 하는 거야.’

데이트!

속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그 단어가 부끄러워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야 말로 숙맥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핑계 거리를 찾은 루리아의 발걸음은 이전과 달리 자신감이 붙었다.

똑똑, 똑똑똑.

그런데 아무리 두드려도 객실 안에선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그에 루리아는 난감해졌다.

마침 그런 그녀에게로 종업원이 다가왔다.

“709호 손님께선 20분 전에 나가셨습니다.”

루리아에게 이를 알려준 종업원은 어스에게 서커스단 공연을 알려준 여자 종업원이었다.

이 여관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수자를 생각하면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이를 알지 못하고, 어긋난 운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으니.

루리아는 말없이 돌아섰다.

체념의 표정을 짓고서.

하지만 곧 그녀는 몸을 돌려세웠다.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요?”

“서커스단 공연장으로 가셨어요. 제가 위치를 알려드렸거든요.”

종업원의 말에 루리아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께 봐도 될 텐데 혼자 갔다는 건 내가 불편해서겠지?’

그 이유 이외엔 딱히 생각나지 않는 루리아였다.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 이는 그녀가 자주 듣던 말이었으니 그녀 입장에선 당연한 결론이었다.

* * *

서커스단이 자리 잡은 곳과 가까워질수록 행인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신경 써서 걸어야 할 지경이다.

공연 시작 전엔 계속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한산한 길을 찾아야 할까?’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 길이 있다면 현지인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이동하진 않을 테니까.

조그만 도시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건지.

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도시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현재 대거 도시에 들어와 있었다.

그 이유는 서커스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참고로 숙박료가 비싼 고급 여관을 제외한 여관은 현재 만실 상태다.

이유는 서커스단 때문이었다.

이젠 신경 써서 걸어도 몸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루리아 영애가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

루리아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한 어스는 그녀가 이곳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종업원에게 준 5테스가 갑자기 아까워진 그때, 어스의 눈에 범죄 현장이 포착됐다.

‘헐, 저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

작고 왜소한 체격의 인영이 얇고 작은 칼로 사람들의 옷을 따고(?) 있었다.

옷감이 벌어지면 그곳으로 손을 넣어 재빨리 주머니를 챙겼다.

그렇게 챙긴 주머니를 잽싸게 품속에 넣고선 물이 모래사장에 흡수되듯 자연스럽게 인파에 흡수되었다.

은밀하고 빠른 움직임 탓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어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소매치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였다.

‘다행이다. 인벤토리가 있어서.’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 대신 자기만족이라니.

그렇다고 어스의 태도를 지탄할 수도 없다.

이 상황에선 누가 나서도 소매치기를 붙잡긴 힘들다.

앞으로 이동하는 것 이외에 좌우나 뒤로 이동하는 건 몹시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 제 발로 이런 곳을 찾아왔다면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병목구간을 지나자 그제야 조금 숨통이 트였다.

‘매표소 때문이었구나.’

유입은 10인데, 유출이 1이니 인파로 북적일 수밖에.

“몇 장 드릴까요?”

“두 장이요.”

루리아가 서커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라 어스는 입장권 두 매를 구입했다.

입장권은 팔목에 묶을 수 있는 형태의 질긴 종이였다.

“참, 아저씨.”

“얼른 들어가세요. 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

“나갔다가 들어와도 이거 쓸 수 있어요?”

“안 돼요.”

“예?”

“안 된다고요. 얼른 들어가요.”

어스가 어물쩍거리자 손수 등까지 밀어주는 친절한(?) 직원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로브를 입고 있지 않다고 어찌 저리 손쉽게 자신의 몸에 손은 댄단 말인가.

그러나 이를 따질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온 어스는 신세계를 목격했다.

널찍한 공터엔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동식 놀이기구를 비롯해 갖가지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빼곡했다.

공터 중앙엔 거대한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저곳이 이 장소의 백미인 서커스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이거 얼마예요?”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그새 배가 꺼진 어스는 매콤한 향의 꼬치구이 하나를 가리키며 상인에게 물었다.

“1테스입니다.”

미쳤다, 손바닥보다 조금 긴 저 것이 2테스라니.

“1테스요? 0.1테스가 아니라?”

“안 살 거면 가쇼. 영업 방해하지 말고.”

어스가 아니어도 꼬치구이를 찾는 손님들은 많았다.

다들 가격에 황당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함께 온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다들 군말 없이 꼬치구이를 구입했다.

“아빠, 최고!”

“잘 먹겠습니다.”

“자기야, 이거 맛있어. 하나 더 사자.”

“그, 그럴까?”

“얼른 사.”

줄 한쪽으로 밀려난 어스는 기분이 묘했다.

자식이 잘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부모, 그리고 연인에게 있어 보이고 싶은 청년의 치기 이면에 묻어 있는 걱정.

그들의 공통점은 돈.

‘돈 벌긴 힘들어도 쓰는 건 한순간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과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모습에 애잔한 감상의 눈길을 보낸 어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꼬치구이 집은 저 집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가격을 단합한 것인지 기본이 1테스였다.

어쩔 수 없이 꼬치구이 두 개를 구입한 어스는 양손에 하나씩 잡고 뜯어 먹었다.

오른손엔 양념, 왼손엔 소금구이.

‘아, 맛나네. 맛나.’

본격적인 공연 전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한 광대들의 잔재주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저속하지만 웃긴 광대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이 빵빵 터졌다.

입 주변에 양념을 잔뜩 묻힌 어스 역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여기 온 목적…… 까맣게 잊은 듯 보이는 건 착각일까? 부디, 착각이길.

* * *

“저 꼬맹이 돈 쓰는 거 봤어?”

“봤지.”

“귀족 집 자식일까?”

“그런 집 자식이 이런 곳에 혼자 왔겠냐? 경호원이 없잖아.”

“그럼 부유한 상인 집 자식이겠네. 세상 물정 모르는? 흐흐.”

평범한 인상의 두 남자가 있었다.

둘은 먹잇감을 찾는 매처럼 사람들을 살펴보았고 얼마 전부터 그들의 눈은 한 소년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어스였다.

꼬치구이 20개로 배를 채웠음에도 부족한 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군것질하며 돈을 물 쓰듯 썼고, 자연 그의 씀씀이는 흑심을 품고서 이곳에 온 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침 일행도 없어 보이는군. 오늘은 저놈으로 하는 게 좋겠어. 어때?”

“1번, 2번 중 어떤 거?”

1번은 소매치기, 2번은 자해공갈이다.

“3번.”

“뭐?”

“3번이라고. 느낌이 와. 저건 보물단지야.”

“위험하지 않겠어? 1, 2번은 잡혀도 벌금이랑 옥살이 조금 하면 풀려나오지만 3번은 최소 10년 이상이라고. 운 나쁘면 형장의 이슬이 될지도 몰라.”

저들 사이에 오가는 3번은 납치였다.

“부잣집 도련님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어. 이런 기회가 흔하다고 생각해? 못해도 작은 가게 하나 살 수 있는 돈을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가게?”

“그래. 그것도 중심 상권에 위치한 가게 말이야. 이래도 안 할 거야?”

“부, 분명 가게라고 했지? 중심 상권에 위치한?”

“너 내감 모르냐? 필이 왔어, 저 새끼 저거 그냥 걸어 다니는 금고야 금고. 우리의 찬란한 미래가 저기 있다고.”

남자는 친구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지금껏 친구가 찍은 대상치고 빈털터리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어스는 범죄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때 어스는 자신의 목적을 상기하곤 화들짝 놀랐다.

“앗! 루리아 영애.”

아직 공연까진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서두른다면 루리아와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먹었나?’

볼록해진 배를 살살 문지르며 어스는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출구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한 데다 어둡기까지 했으니.

파이어 애로우라도 띄워서 길을 밝혀야 하나 생각할 때였다.

어스를 은밀히 쫓아온 남자 하나가 어스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뻑!

건장한 성인 남자라도 한 방에 쓰러질 만큼 강력한 공격에 어스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콰당!

기절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왜 그렇게 심하게 쳐. 죽으면 어쩌려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진 않아. 초짜도 아니고.”

“그래도 앤데.”

“잡소리 그만하고 얼른 들춰 메. 가드들이 오면 곤란하니까.”

동료의 재촉에 어스를 들춰 메기 위해 접근하던 남자가 흠칫했다.

기절해 있어야 할 대상이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명력 : 200/210.

좀 전의 충격으로 그의 생명력 수치는 10이 떨어진 상태였다.

참고로 그의 생명력이 100이었을 때 방금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면 이보다 훨씬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선 어스는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은 누구냐!”

멀쩡한 어스의 모습에 깜짝 놀랐던 두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두 남자는 공연장을 순찰하는 가드가 올까 싶어 어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첫발도 떼기 전에 움직임을 멈추어야만 했다.

타오르는 불의 공, 파이어 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헉!”

“마, 마법사!”

한탕으로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던 두 남자는 확실히 밝은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던 빛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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