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46화 (46/250)

046화

카멜 파티에 합류한 지 5일이 흘렀다.

지난 3일간 어스는 일행과 한층 친해졌다.

‘칫, 용병대에서도 막내였는데 여기서도 막내네.’

막내라곤 하난 누구도 그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하긴 뛰어난 실력을 가진 3서클 마법사를 누가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또 노숙이네. 오늘은 마을에서 쉴 줄 알았는데.”

마을에서 쉴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2시간 전에.

하지만 그 마을에서 머물기에는 2시간이란 시간이 아까웠기에 마차는 마을을 지나쳤다.

페어몬트는 이를 아쉬워했다.

“늙어서 그래요, 늙어서.”

“네 녀석은 노숙이 좋더냐?”

한층 친해진 덕분에 오글거리던 호칭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또한 말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영감, 어스는 시골 출신이잖아.”

“프라이스 형, 시골 출신은 사람 아냐? 우리 시골 사람들도 침대 좋은 거 알거든.”

입만 다물면 청순한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프라이스였지만 말본새는 영락없는 동네 형 스타일이었다.

“내 말은 그만큼 자연에 친숙하다는 의미였어. 뭐 낀 놈이 성낸다더니 어스 네가 딱 그 짝이네.”

“형은 형 얼굴이 부끄러운 줄 아세요. 어떻게 그런 얼굴로 그런 지저분한 말을.”

남자가 여자처럼 생겼다는 건 스트레스일수 있다.

그래서 어스는 프라이스와 대화를 할 때면 향상 이점을 신경 썼다.

하지만 프라이스의 성격을 알게 되면서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카멜 파티엔 십 대가 세 명이다.

어스 그리고 열일곱 동갑내기인 프라이스와 루리아다.

하지만 셋이 자주 어울리진 못했다.

무슨 영문인지 카멜과 대화를 나눈 이후 루리아는 수련에 미쳐 있었다.

덕분에 그녀와 지난 5일간 말을 섞은 게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반면.

‘아그네스 누나처럼 루리아 영애도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건가?’

카멜과는 자주 어울렸다.

남녀라는 입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런 건 아니다.

검사 대 검사로서 어울렸다.

그럼에도 어스는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심란함을 떨칠 수 없었다.

‘저 노인네 또 웃네.’

그리고 이런 감정이 물씬해질 때면 향상 페어몬트를 의식하게 됐다.

빙그레.

말 없는 저 미소.

때문에 어스는 일행 중 페어몬트가 가장 신경 쓰였다.

특히, 저 입이.

어스는 페어몬트의 미소를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프라이스가 일행의 안락한(?) 노숙을 위해 땅의 중급 정령 노임을 소환하여 사방에 벽을 세웠다.

처음 저 모습을 봤을 땐 정령의 유용함에 마법사란 직업에 회의를 느꼈다.

물론 마법사도 노임이 하듯 벽을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 마법의 벽과 달리 정령이 세운 벽은 그에 구애받지 않았다.

순식간에 2미터 높이의 두꺼운 벽이 세워졌다.

9월 초순이긴 해도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였기에 저 벽은 노숙을 하는 데 있어 상당히 유용했다.

벽이 세워졌으니 이젠 지붕(?)을 만들 차례다.

이 일은 일란성 쌍둥이 형제인 하커와 호커가 맡았다.

검사인 두 형제는 최근 알았는데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다.

루리아와 자주 어울리는 카멜의 경우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익스퍼트 초급이다.

‘익스퍼트 셋, 3서클 마법사 하나에, 중급 정령사까지. 완전 미친 전력이지.’

파티의 전력은 작은 규모의 영지 하나와 맞먹는 수준이다.

만약 이러한 파티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천금, 아니 만금을 들고 영주들이 찾아와서 저들을 영입하려 들게 분명했다.

하커와 호커 형제가 손발을 맞추자 지붕이 금방 만들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덟 명의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집이 완성됐다.

“어스야, 불.”

파티의 최고 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페어몬트가 어스를 호출했다.

“예예, 가요 가.”

저택에 작위까지 서슴없이 하사하겠다는 영주들이 한둘이 아닌데, 고작 모닥불이나 피워야 하는 신세라니.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지만 하들리보단 자신이 불을 피우는 것이 백번 낫기에 어스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적당한 크기로 쌓은 모닥불에 파이어 애로우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을 하들리는 매번 유심히 쳐다보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집과 불을 얻자 저녁을 준비했다.

실력자들이 모인 집단이라서 그런지 파티는 무척이나 부유했다.

그 비싼 공간 주머니를 개인당 하나씩 갖고 있는 건 물론이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 주머니도 따로 있었다.

물론 어스도 저들에게 꿀리지 않는다.

그에게도 공간 주머니가 있다.

그것도 10킬로그램 용량의 공간 주머니다.

‘벤슨 할리는 뭐 하고 지내려나.’

그가 가진 공간 주머니의 전 주인이자, 그의 재물을 수배로 늘려준 고마운 호구였다.

공용 공간 주머니는 페어몬트가 관리하고 있어 필요한 식자재는 그에게서 타서 써야 했다.

요리는 하커와 호커 형제가 맡았다.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이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자들이 이곳에선 마부이자, 요리사로 지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길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능숙하게 요리를 하고 있는 쌍둥이 형제를 보며 어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구운 고기와 각종 야채가 듬뿍 들어간 스프가 금방 완성됐다.

각자의 식판은 곧 고기와 스프로 채워졌다.

어스는 루리아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루리아 영애 많이 드세요.”

“어스 씨도.”

다른 이들과는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들보다 오래 알고 지낸 루리아와는 여전히 호칭의 벽이 존재했다.

저 벽을 무너뜨리고 싶었지만 루리아의 표정을 보면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적당히 소화를 시킨 다음엔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어느 정도 소화가 되면 정령사인 프라이스와 마법사인 하들리는 수련에 들어갔다.

카멜, 루리아, 하커, 호커 역시.

저녁 식사를 소화한 뒤에도 한가한 사람은 페어몬트 노학자와 어스뿐이었다.

“넌 수련 안 하냐?”

“천재는 숨만 쉬어도 그게 곧 수련임. 그보다 엘프에 관해서나 더 들려줘요.”

천재는 아니다, 운이 좋아서 현재의 능력을 얻었을 뿐.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그런 그의 말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유한 능력이 그 증거였으니까.

“쯧, 이 녀석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 자기 재능만 믿고 노력은 쥐뿔도 하지 않는 놈들이야. 너, 그렇게 살면 훗날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제가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 어제 하다만 이야기나 해줘요.”

“고놈 참. 엘프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다고. 혹, 엘프가 네놈 이상형이냐?”

“예쁜 여자 싫어하는 남자 있답니까?”

돌연 두 눈을 게슴츠레 뜬 페어몬트가 구슬땀을 흘리며 검사 삼인방과 검을 나누는 루리아를 응시했다.

“루리아 영애는?”

카멜과 어울려서 수련하는 루리아를 보자 순간 반발심이 치솟았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고 말았다.

“그녀와 난 지인인데 여기서 왜 루리아 영애 이야기가 나와요.”

일부러 크게 말했다.

그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어스의 그 말에 루리아의 집중력이 순간 흩어지고 말았다.

짧은 순간에.

어스는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 그녀와 함께 수련하던 검사 삼인방은 이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를 모른 척했다.

“정말이냐?”

“나도 몸이나 풀어야겠네.”

자신의 말에 루리아가 반응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어스는 실망한 표정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술 수련할 거냐?”

“왜요?”

“너 나랑 대련 한 번 하지 않을래?”

육십 중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페어몬트는 훌륭한 몸을 갖고 있었다.

단단한 근육질이다.

그에 비해 키는 매우 작았다.

조상 중에 드워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아무튼 외관상으로 노인네는 엄청 힘이 좋아 보였다.

“팔씨름이요?”

“그 팔로? 난 어린애 팔뼈 부러뜨릴 생각 없으니까 대련이나 해보자.”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녜요?”

“겁나냐?”

“거, 겁나긴 누가. 해요. 해. 그런데 창은 있어요?”

“난 이거면 된다.”

페어몬트가 늘 손에 쥐고 다니는 지팡이를 흔들어 보였다.

‘저 짧은 지팡이로 날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심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노인네의 근육질 몸을 생각하면 숨겨둔 한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하려고 했다.

왜? 지면 엄청 쪽팔릴 것 같아서였다.

한데.

“눈알 굴러가는 걸 보니 자신 없나 보네. 클클.”

“누, 누가 자신 없데요. 멍들고 징징대지나 마요.”

그렇게 파티의 최연장자와 최연소자의 대련이 성사되자, 각자 수련 중이던 이들이 흥미가 동한 듯 수련을 멈추고 두 사람을 주목했다.

루리아 역시.

그녀까지 관심을 보이자 어스는 내심 크게 당황했다.

여기서 페어몬트에게 진다면?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어스는 절대 질 수 없다는 각오로 기수식을 취했다.

“덤벼요!”

그리고 호기롭게 소리쳤다.

* * *

“난 페어몬트 학자님이 이기는 데 100테스.”

“나도.”

“저도.”

“우리도.”

“뭐야? 그럼 내기가 성립 안 되잖아.”

듣고 싶지 않지만 모두가 자신과의 대련에서 페어몬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몹시.

‘노인네에게 질 순 없어.’

기수식을 잡고서 페어몬트의 공격을 신중하게 기다리던 어스는 그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페어몬트에게 퉁명하게 한마디 던졌다.

“뭐 해요? 안 덤비고.”

“엥? 내게 선공을 양보한다는 게냐? 호오. 후회할 텐데. 어스.”

“칫, 내 인생에 후회는 없어요. 승리만 있을 뿐.”

그의 멘트에 사람들이 돌연 제 팔뚝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루리아의 경우에는 입술을 꿈실거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를 본 어스는 저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한 자신의 멘트는 감탄해도 모자랄 유명한 명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스는 알지 못했다.

명언도 누가 언제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는 걸.

참고로 방금 어스가 내뱉은 명언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백전전승을 이뤄낸 유명한 장군이 한 말이었다.

“명장 빅토르의 명언이로군.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명언을 쓰기엔 남부끄럽지 않나?”

페어몬트의 말에 내심 당황했으나 어스는 이를 감추기 위해 발끈한 모습을 보였다.

“얼른 덤벼요. 날 새겠네.”

“오냐. 정 그렇게 나온다면야. 간다!”

힘찬 기합과 함께 페어몬트의 다리가 지면을 박차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어스를 향해 접근했다.

‘미, 미친!’

노인네의 속도와 기세가 엄청났다.

학자라며.

순간적으로 크게 놀랐지만 어스는 이내 평정심을 회복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그가 믿는 건 바로 생명력이었다.

물리적인 힘이건 마법적인 힘이든 자신의 신체를 지켜준다.

이 힘은 고통이나 상처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니 그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빡!

‘하나도 안 아프지롱.’

아프진 않았다. 다만 반격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옆구리에 가해진 충격에 몸이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스는 무너진 중심을 잡기 위해 십여 걸음이나 취객처럼 비틀거렸다.

페어몬트에겐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건 목숨을 건 결투가 아니었기에 페어몬트는 공격하지 않았다.

“아, 아니 왜 그걸 못 막는 거야?”

어디까지나 이건 동료 간에 있을 수 있는 단순한 대련이니까.

어스는 멀쩡했으나 공격을 가한 페어몬트나 이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성공한 페어몬트의 공격은 매우 묵직했기 때문이었다.

가죽과 뼈가 전부인 가녀린 몸뚱이를 가진 소년이 감당하기 벅찬 공격이었으니까.

그래서 모두가 놀랐는데.

겨우 중심을 잡은 어스는 노인네의 공격에 정신없이 밀렸다는 것에 홍당무가 되어 버럭 소리쳤다.

그 모습 그 어디에도 아파하거나 불편한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페어몬트는 물론 모두가 제 눈을 의심했다.

통각이 상실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멀쩡한 건 말이 안 돼.’

‘분명 무거운 일격이었는데.’

‘마법인가?’

‘마법을 사용했나 보네.’

어스가 마법사였기에 다들 이를 떠올렸다.

그래도 그렇지 그 순간에 방어 계열 마법을 펼치다니.

‘시전 속도만큼이나 평정심도 대단하구나.’

감탄 또 감탄이 쏟아졌다.

반면 어스는 구겨진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꽁지에 불이 붙은 송아지처럼 페어몬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스의 공격은 모조리 페어몬트의 지팡이에 막혔다.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탁탁탁탁-!

‘우씨, 왜 매번 막히는 거야?’

정말 모르는 걸까? 자신의 공격이 지나치게 정직하고, 또 그 정직함 만큼이나 속도가 형편없다는 걸.

사실 마법사로서의 어스는 모두에게 놀라움을 선사했으나, 창술가로서의 실력은 처참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맞아 주고 싶어도 맞아 줄 수 없을 만큼.

페어몬트는 어스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그의 팔과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의 공격은 어스와 달리 매번 100퍼센트의 적중률을 자랑했다.

퍽퍽퍽퍽-!

하지만 소기의 목적인 어스의 무력화에는 그러한 적중률이 무색하게 번번이 실패했다.

‘마법인가? 놀랍군. 하지만 지구력에선 내가 더 앞설 것이다. 녀석아. 흐흐.’

저리 마법을 쓰다간 곧 마나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반면 자신의 체력은 멀쩡하니 대련의 승리자는 자신이리라.

씩.

자신감을 뿜어내는 페어몬트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