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화
어스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문이 갑작스레 닫혔다.
문을 닫기 위해 몸을 돌렸던 어스는 이 모든 걸 보았고, 그에 깜짝 놀랐다.
바람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에 놀란 이들이 홀에서 입구로 뛰어왔다.
일이 생긴 것으로 여겼다.
“무슨 일이야?”
“어스, 왜 그래?”
놀란 마음은 일행의 목소리에 조금 가라앉았다.
“문이 저절로 닫혀서…….”
“바람 때문이겠지.”
“프라이스 형, 바람 때문이 아니라고. 바람이 부는 방향과 문이 열린 방향이 같았어.”
“뭐? 에이. 농담이지?”
“내 표정을 봐? 이게 농담하는 사람의 얼굴이야?”
“그러게.”
프라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손잡이를 잡았다.
철컥, 철컥.
어찌된 영문인지 손잡이는 꼼짝도 않고 마찰음만 일으켰다.
이에 심상찮음을 느낀 건지 프라이스는 더더욱 힘을 썼다.
그럼에도 소용이 없었다.
“카멜 형, 힘센 형이 한번 열어 봐. 아무래도 손잡이가 고장 난 것 같아.”
프라이스의 요청에 카멜이 나섰다.
아니, 그가 나서기 전 쌍둥이 중 하나인 하커가 앞으로 나왔다.
“내가 할게.”
철판도 구부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악력을 가진 검사가 하커였다.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도 그러한 그가 마나까지 사용하면 철판 따윈 휴지처럼 꾸깃꾸깃 구겨버리는 것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하커조차 문손잡이를 어쩌지 못했다.
“이 문 대체 뭐야?”
자존심이 상한 하커는 마나까지 운용했다.
문짝은 몰라도 손잡이가 남아나지 않아야 할 상황이다.
한데도 손잡이는 손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그제야 다들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저택이 있을 만한 지역도 아닌 것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 보자.”
밖은 세찬 비바람이 불었지만 기이한 이 현상에 의문을 품은 이들은 이를 감수하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창문은 홀 중앙에 위치한 곳이었다.
문이 위치한 입구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40미터에 이른다.
카멜은 창문 손잡이를 잡았다.
수려한 문양이 양각된 손잡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비싸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이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관심은 오직 하나.
끙끙.
“꿈쩍도 하지 않아.”
창문을 등지고 돌아선 카멜이 고개를 내저었다.
번쩍!
투명한 창문 밖에서 하늘을 쩍 가르는 굵직한 번개가 지상을 향해 내리꽂혔다.
밖에 있었다면 통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번개는 넝쿨을 칭칭 두른 커다란 나무를 타격했다.
그럼에도 나무는 멀쩡했다.
이를 본 건 비단 어스뿐만이 아니다.
카멜을 제외한 모두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봐, 봤어? 방금 그거?”
“봤어요.”
“뭐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번개를 맞고도 이파리 하나 떨어지지 않았어.”
창을 등지고 있었기에 이를 보지 못한 카멜이 영문을 물었고, 그에 일행은 한목소리로 방금 자신들이 목격한 것을 말하였다.
그 말에 카멜은 수렁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창을 깨 보자.”
하커가 근처에 있던 부러진 의자를 들었다.
누구도 하커의 과격한 행동을 막아서지 않았다.
자신들이 경험한 것들 모두가 기괴했으니까.
하커의 손을 떠난 부러진 의자는 유리창을 가격했다.
어린아이의 주먹에도 깨지는 것이 유리다. 하물며 건장한 체구의 성인이 힘을 다해 던진 의자에 버티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쾅!
예상과는 다르게 도리어 의자가 유리에 튕겨 나갔다.
“뭐, 뭐야 저 유리! 여기 유령의 집이라도 되는 건가?”
“유, 유령의 집? 프라이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하들리 형도 봤잖아?”
“다들 비켜봐. 내가 해볼 테니까.”
“하커 형도 어쩌지 못한 걸 마법사인 형이 한다는 게 말이 돼?”
“내가 힘으로 한데?”
“그럼?”
“마법.”
하들리는 언락 마법을 사용했다.
보조 마법, 혹은 생활형 마법이라 불리는 마법들이 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그중 몇 가지를 익히곤 했다.
하지만 스킬 슬롯의 제한으로 인해 어스는 보조 마법은 처음부터 익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사냥해야 경험치와 업적 포인트를 구할 수 있는 처지였기에 그의 관심은 처음부터 공격 마법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락! 언락! 언락!”
거듭된 하들리의 언락 마법에도 창문은 끄떡하지 않았다.
“미쳤네. 대체 이 저택 뭐야?”
다들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파티의 두뇌이자 지식의 창고인 페어몬트를 향했다.
박학다식한 그라면 이 저택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고서.
“내 생각엔 이 저택이 유적의 일부가 아닐까 싶어.”
“유적지라고요? 달랑 저택 하나뿐인데?”
“유적지라고 해서 꼭 규모가 큰 건 아니야. 하나의 형태를 갖춘 유적지도 있어. 물론 흔치 않아서 일반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와, 유적지로 가는데 유적지가 걸리다니. 이거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호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삼스레 내부를 응시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이들의 관심은 이어진 페어몬트의 심각한 어조에 촛불 꺼지듯 꺼지고 말았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우린 이 안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야. 유적지의 신비를 풀지 못할 경우.”
* * *
비바람을 피해 의문의 저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이제 저택을 빠져나가기 위해 저택 내부의 수색에 들어갔다.
저택은 4층 건물로 방의 숫자만 무려 99개였다.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약한 취미를 가진 자가 분명했다.
기괴한 모습의 장식용 갑옷도 섬뜩한데 이것도 모자라 짐승과 몬스터를 박제하여 벽에 걸어두고 있었다.
‘으스스하네.’
이것만 해도 정신이 피폐해지는 데 여기에 더해 천둥과 번개라는 조미료까지 더해지자 심장을 더 옥죄여왔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취미 한번 고약하네. 안 그래?”
입을 다물고 얌전히 있으면 백 퍼센트 여자라고 확신할 수 있는 프라이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박제된 사슴을 보며 불쾌감을 표출했다.
“투덜거릴 시간 있으면 신빈지 개뿔인지부터 찾아? 여기서 나가기 싫어?”
“누가 나가기 싫댔어? 그냥 기분 나쁘다는 거지. 그런데 그 신빈가 뭔가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아야 찾든 말든 하지 않겠어?”
“신비니깐 척 보면 느낌이 오지 않겠어?”
“느낌은 곳곳에서 받고 있어. 저기 저 곰, 오크, 고블린, 독수리 박제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기괴하게 생긴 갑옷에서도.”
프라이스의 말에 어스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개가 내려칠 때마다 방금 본 것임에도 새롭게 보였으니까.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낮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빈지 뭔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는 해가 떨어져 음침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저택에서 밤을 맞게 될지 모른다.
‘자정은 유령들의 시간이라고 하는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상 어스는 바짝 얼어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백배는 낫지. 이런 건 당최.’
하다못해 위그드라실의 조각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아래층에서 위층까지 쭉 올라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엄마가 자신의 문신을 본다면 분명 등짝 스매싱을 날릴 게 분명한 예의 그 신비한 문신은 지금껏 단 한 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곳은 그에겐 영양가도 없으면서 사람 떨리게 만드는 내키지 않는 유적지에 불과했다.
‘빨리 나가고 싶다.’
세상과 단절된 상태였기에 그의 마음은 더더욱 조바심치고 있었다.
“여기도 평범해.”
프라이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였다.
“우리가 맡은 층은 다 끝난 것 같은데. 내려가죠. 다른 사람들이 발견했을지도 모르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여긴…… 1분도 있기 싫어.”
정령사의 감일까?
부디, 프라이스의 기분 탓이길 바라며 어스는 그와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 * *
2시간에 걸친 수색을 모두 마치니 다들 진이 빠진 듯 먼지가 수북이 쌓인 소파임에도 망설이지 않고 엉덩이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았다.
“신비라고 여겨지는 건 발견할 수 없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였어.”
“페어몬트 정말 여기가 유적지 맞아요?”
“유적지가 아니고서야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
“저기, 페어몬트.”
“그래, 어스.”
“우린 어찌 되는 걸까요?”
“찾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문을 열어주길 기다릴 수밖에.”
“아무도 안 오면?”
“낸들 알겠냐?”
“학자잖아요? 페어몬트는.”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신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모든 걸 다 알겠냐?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지.”
다들 그 말에 낙담했다.
‘제 발로 덫에 걸리다니.’
사냥꾼의 아들로서 이건 명백한 낙제다.
어스는 실의에 빠졌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방법이 없으니.
‘그래도 식량은 충분하니까 아껴 먹으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
이마저도 없었다면 어스는 조바심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혹시, 이 중에 지하실에 가본 분?”
이 파티에서 유일한 홍일점인 루리아가 이를 언급했다.
그 순간 고뇌(?)에 빠져 있던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니.”
“나도.”
“저도.”
“뭐야? 다들 위층만 뒤진 거야?”
“그러게. 왜 지하는 아무도 안 갔지?”
혹시, 다들 겁나서 애당초 지하실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어스는 일행의 얼굴을 은근슬쩍 쳐다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이라도 내려가면 되지.”
“저기, 그런데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 본 사람?”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나랑 어스가 1층을 수색했는데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은 보지 못했어.”
“뭐? 그럼 이 커다란 저택에 지하실이 없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하들리 형, 저택이라고 해서 꼭 지하실이 있으란 법은 없지 않을까?”
“프라이스 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시골 농가에도 지하실 하나는 기본으로 있다고. 하물며 이런 거대한 저택에 그게 없을 리 있겠냐? 너, 어스랑 설렁설렁 살핀 거 아냐?”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는 거야? 나도 당사잔데 어떻게 설렁설렁해. 어스, 너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 우리가 설렁설렁했냐?”
“아니지.”
“들었지?”
“흠흠, 그럼 지하실 입구가 1층 말고 다른 곳에 있나? 그보다 다들 배 안 고파. 정신없이 뛰어다녔더니 출출한데. 일단 뭐 좀 먹고 지하실 입구를 찾아보는 건 어때?”
하들리의 말에 다들 허기부터 채우기로 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다 같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장소가 그곳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뒤따라가던 어스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초상화로 도배된 벽면은 번개가 내려칠 때마다 왠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이 움직인다니.
‘그럴 리 없잖아.’
어스는 이를 기분 탓으로 여겼다.
찝찝한 생각을 떨친 어스는 앞서 걷던 루리아가 부르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일행은 저택에 갇힌 신세로 식사를 마쳤다.
배가 부르자 그제야 조바심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다들 흩어져서 지하실 입구가 있는지 찾아봅시다.”
앞서와 달리 이번엔 어스의 곁에 프라이스가 아닌 루리아가 함께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눈썹하나 까딱이지 않을 것 같던 루리아가 돌연 어스의 소매를 잡고서 놓아주질 않았다.
“왜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하아. 그림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어스 씨.”
그녀의 말에 어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유, 유령이 사는 저택인 건가?’
그런 어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루리아는 한곳을 가리키며.
“저기 저 그림이에요.”
루리아가 가리킨 그림은 자신이 본 그림과 달랐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
‘무, 무섭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