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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66화 (66/250)

066화

게른 산맥 내에서 발견한 미발굴 유적지는 실상 페어몬트가 어느 고서에서 힌트를 얻은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역사학자이자 모험가답게 퍼즐을 맞추듯 정보를 찾아다녔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3년이다.

물론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미발굴 유적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든든한 동료들이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여준 결과도 발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간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렸다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그곳에서 취한 이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기에 파티와의 인연은 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친, 11월에 눈보라라니. 이게 말이 돼?’

절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어스가 나고 자란 곳은 왕국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11월의 눈은 별세계 이야기였다.

더구나 눈보라는 이야기로만 들었지 직접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송곳처럼 느껴지는 눈송이.

당장이라도 살을 갈라버릴 것 같은 바람은 어스를 과묵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속은 온갖 투덜거림으로 축제를 이루고 있었지만.

휘이이이, 우우우우우웅.

과연 이곳은 인세일까? 지옥의 한 귀퉁이일까?

아프고, 오싹하고, 춥고, 힘들다.

이게 모험가의 숙명이라면 이 일을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인생 길지도 않은데 이런 개고생으로 시간을 낭비해야 하다니.’

이처럼 내적 고민에 휩싸인 어스와 달리 일행은 이런 일에 인이라도 박혔는지 딱히 고생스러워하는 낌새도 찾을 수 없었다.

“카멜 형, 이대로 강행할 거야? 날씨가 영 심상치 않은데.”

“검은 바위 평야까지 가려고 했는데 역시 무리겠지?”

“당연하지.”

“욕심을 내려놔야겠네. 노임에게 캠프를 만들 적당한 장소가 있는지 물어봐.”

정령은 여기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개 부럽다.

“저쪽으로 쭉 가면 적당한 넓이의 평지가 있대.”

“쭉? 얼마나?”

“노임의 반응을 보니까 대략 20분 내외일 거야.”

앞으로 20분을 더 심술이 잔뜩 난 자연과 맞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어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행히 주저앉는 볼썽사나운 꼴은 당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호커가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치미는 부끄러움이 눈보라도 잊게 만들었다.

힘 스탯 2.2의 남잔데.

“고마워요. 호커 형.”

“그러게 하체 훈련이 중요하다고 몇 번 말해야 하냐? 지겹더라도 꾸준히 해. 평소에도.”

말이 쉽지 하커와 호커가 가르쳐준 하체 단련은 이게 단련인지 고문인지 모를 만큼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요령을 피웠고 그때마다 두 사람의 잔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잔소리는 어느 때는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또 어느 때는 자괴감을 그의 가슴에 남겼다.

“어스, 업고 가줘?”

앞서 걷던 하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 말을 들었는지 루리아가 뒤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움이 샘솟듯 치솟았다.

“내가 이래 봬도 사냥꾼 아들이라고. 우리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 내 아버지야. 고작 이런 산길 따위에 내가 굴복할 것 같아. 사나이 어스,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

루리아가 들으라고 더 크게 말했다.

그래도 한 번, 혹은 두 번 더 권하면 정성에 감동해서 업힐 생각은 있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하지만 뒤처지지 마라. 이런 날씨엔 잠시 한 눈만 팔아도 대형 사고니까.”

인간미 참 없네, 한번 거절당했다고 그냥 물러서다니.

‘스킬이 마렵네.’

정확한 목적지를 볼 수 있다면 블링크로 단숨에 이동해 버릴 텐데.

아쉽게도 아직 목적지는 보이지도 않기에 이는 의미가 없었다.

더구나 블링크는 5서클이기에 한 번 시전하는 데 200의 마나가 소모된다.

마나 200은 하급 마나 회복 포션 한 병 용량이다.

다시 말해 돈지랄이라는 거다.

‘내 돈이 아니니 망정이지.’

그랬다 어스의 손에 떨어진 대량의 마나 회복 포션은 카멜, 페어몬트, 하들리, 루리아가 각출한 돈으로 매입한 것이다.

선물이란 명목으로 그들에게서 받은 포션의 숫자는 자그마치 500병. 이곳 물가가 비싼 탓에 총 65,000테스나 주고 산 것이다.

수십만 테스의 현금을 보유한 어스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는 부담되는 액수였다.

아니, 쓸 엄두조차 낼 수 있을까 싶은 그런 거액이다.

그럼에도 네 사람은 푼돈 쓰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지출했다.

오히려 더 사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해당 도시에서 보유한 모든 마나 포션이 500개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상인이란 양반이 말이야. 물건을 넉넉히 구비해야지 좀스럽게 500개가 뭐야, 500개가. 누구 코에 붙이라고.’

그런데 이렇게나 돈이 많은 저들이라면 혹시.

‘마법 통신구도 있을까?’

왠지 저들이라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 통신구의 원리는 모르지만 들은 풍월에 의하면 통신구에 저장된 번호를 입력하면 입력된 번호에 해당하는 통신구와는 언제든 연락이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 마법 통신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어스는 이 말에 진심 깜짝 놀랐다.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사람에게 문자를 전송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물건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보다 더 경이적인 건 마법 통신구의 가격에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만 테스는 너무 한 거 아냐? 음성이나 영상이 전송되는 것도 아니고 달랑 열 글자인 주제에.’

사실 말은 이리했지만 갖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공짜나 혹은 선물로 준다는 가정하에서.

혹시나 나중에라도 다시 동료들이 선물을 주겠다고 하면 통신구를 말해볼 심산이다.

하나는 자신이, 다른 하나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줘서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허공에 붕 뜨는 기분이다.

“다 왔어!”

앞장서서 걷던 프라이스의 힘이 가득한 목소리에 어스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 어라?’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의 중심이 돌연 무너지더니 시야가 갑자기 확 낮아지기 시작했다.

설마 넘어진 건가?

민첩 스탯 2.1인데?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자신이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행 중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걷고 있다는 점이었다.

빠르게.

‘이봐, 이봐들! 야! 나 넘어…… 아니, 떨어지고 있네. 으아아아아-!’

그랬다.

넘어져서 구르고 있는 게 아니라 어스는 낙하하고 있었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사자도 그제야 이를 깨달았다.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비명까지 포함되는 건지 이번에 알게 된 어스였다.

* * *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점점 거세지는 눈보라를 피해 그제야 쉴 수 있겠다며 급하게 발걸음을 놀리던 프라이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섰다.

“소리?”

“어.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기도 하네.”

“저도 들은 것 같아요.”

“나도 들은 것 같아.”

“어스, 넌…… 어스? 어라? 카멜! 어스가 안 보여!”

뒤늦게 어스가 사라진 걸 눈치챈 일행이 급히 어스를 찾느라 법석을 떨었다.

“호커, 네가 어스 앞에서 걸었잖아? 대체 정신을 어디에 팔았기에 애가 없어진 것도 눈치 못 챈 거야? 네가 그러고도 익스퍼트냐?”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었기에 형 하커의 말에 호커는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호커 입장에서도 이건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방금까지 뒤따라오던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지금은 어스부터 찾아야지. 어스! 어스야!”

하지만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어스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사나운 바람에 실린 메아리가 고작이었다.

“프라이스, 일단 캠프부터.”

“어? 응, 알았어.”

카멜의 지시를 받은 프라이스는 노임을 부려 그 자리에서 견고한 캠프를 만들었다.

네 개의 벽과 지붕까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 만들어졌다.

“프라이스.”

“응.”

“노임을 통해 어스의 흔적을 찾아봐.”

“했어, 했는데 노임도 못 찾겠데.”

정령이라고 만능은 아니다.

특히 정령사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정령은 그 힘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더 심하면 역소환되기도 한다.

“그 짧은 순간에 노임의 인식 범위 밖으로 벗어났다고? 그 느림보가? 그건 말이…… 아니, 녀석이라면 가능하군.”

“어스가 블링크로 다른 곳으로 갔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런데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페어몬트의 말에 하들리가 의문을 제기했다.

다들 하들리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사이 눈 폭풍은 더더욱 강력하게 변하였다.

이 날씨에 직접 찾아나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다들 발을 동동거릴 때.

“어, 어스예요! 노임이 어스를 찾았어요!”

노임에게 집중하고 있던 프라이스가 돌연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환호성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잔뜩 뿔난 얼굴을 한 어스가 캠프로 씩씩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사람이 구덩이에 빠졌는데 왜 아무도 관심을 안 주는 거야? 내가 5서클 마법사여서 망정이지 방금 죽을 뻔했다고! 추락사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억울함과 분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구덩이?”

“너 구덩이에 빠졌었어?”

“근방에 그런 게 있었어? 프라이스, 사람이 빠질 만한 구덩이가 있어?”

“아뇨, 그랬다면 노임이 미리 경고했죠.”

“뭐야?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어스, 네가 빠진 구덩이는 어디 있어?”

프라이스의 질문에 어스는 직접 그들을 이끌고 자신이 빠진 구덩이로 향했다.

노임이 만든 캠프에서 구덩이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자 있어야 할 구덩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천만에, 이는 절대 있을 수 없다.

구덩이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는데 그 깊은 구덩이가 그새 사라진다니.

“왜 그렇게 봐? 진짜라고! 진짜진짜 여기에 엄청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니까. 내가 반사 신경이 좋아서 스키…… 흠흠. 마, 마법으로 빠져나왔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지금쯤 저승이었을 거야.”

어스는 진심을 담아 말하였지만 증거가 없다 보니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깜빡 의식을 잃었던 거 아닐까? 너무 추워서?”

“마법 로브랑 부츠가 장식이야? 분명 여기 있었어. 우리 아버지랑 엄마 이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어스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나서자 일행은 그가 빠졌다는 구덩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구덩이를 발견하지 못했고, 졸지에 어스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았다.

어스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프라이스 형 말처럼 잠깐 정신을 잃은 건가? 아니야, 절대!’

하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증거가 없으니 여기서 더 우길 수도 없었다.

눈보라 속에서 구덩이 하나 찾겠다고 20분이나 고생했는데.

“그래, 졸았나 보다. 아니, 정신을 잃었나 보다.”

“그럼 그런 거지 왜 삐딱해. 너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아니, 내 말은…… 알았어. 일단 캠프로 가자. 이러다 얼어 죽겠다.”

억울했지만 어쩌랴 증거가 없는데.

‘귀신이 곡하겠네. 아니, 설마 귀신의 장난인가?’

갑자기 눈보라도, 산맥의 그림자도 하나하나 심상찮게 보이기 시작하는 어스였다.

몬스터면 몰라도 상대가 귀신이라면.

오싹.

“바, 빨리 들어가. 진짜 얼어 죽겠어.”

어스는 누가 잡을 새로 그길로 캠프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이에 사람들은 실소를 날렸다.

* * *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동료들에게 섭섭하고, 자신의 무죄(?)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에 답답했던 어스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렇게 간신히 잠들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뭐야? 다들 어디 간 거야?”

노임이 세운 임시 캠프 안엔 있어야 할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단체로 놀리려는 건가?

그 외엔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 나섰는데.

아니, 나서려다 입구에서 멈추었다.

눈보라가 어제보다 더 강력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에 고작 자신을 놀리려고 단체로 사라지는 장난을 친다? 페어몬트나 프라이스 형이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 특히 루리아는 그런 유치한 장난에 동조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꿈인가?’

그런데 꿈이라고 하기엔 추위가 너무 생생했다.

그럼 귀신의 장난질?

갑자기 뒤를 돌아보기가 싫어졌다.

아니, 찝찝했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없었기에 어스는 용기를 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도라는 이름의 한숨이었다.

“장난이지! 장난이면 그만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어제 일 때문이라면 내가 사과할게! 사과한다고! 그러니까 장난이면 그만하고 나와!”

캠프 밖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으나 들리는 건 눈보라의 위맹한 소리와 메아리뿐이었다.

“프라이스 형! 루리아 누나! 다들 그만하라니까.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그만해. 셋 센다.”

셋을 세고, 열을 세고, 다시 스물을 세고…… 그러다 백까지 세어 봤지만 그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제야 어스는 일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르니까.

어스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서 눈보라를 뚫고 걸었다.

‘우선 그곳으로 가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은 곳은 거기니까.’

어스가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바로 자신을 집어삼킨 의문의 구덩이였다.

딱히 확신하고 나선 길은 아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느낌이랄까?

그렇게 현장에 도착한 어스는 눈앞의 전경에 동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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