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화
대륙 곳곳에서 대규모 실종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실종 사건이 없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크게 충격 받은 이유는 사람들을 납치한 범인 때문이었다.
대륙 각지에서 일제히 출현한 납치범은 인간도, 이종족도, 몬스터도 아닌 놀랍게도 검은 소용돌이였다.
“성서에 나온 지옥의 문이 바로 저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되잖아? 안 그래? 찰리.”
“쉿! 목소리 낮춰. 실종된 사람들 중엔 고위 사제도 있고 지체 높은 귀족도 있어. 만약 그들과 연관된 자들이 도슨 네 말을 듣고 그들에게 전하면 어찌 될 것 같아?”
귀족은 몰라도 일단 사제가 지옥에 떨어졌다는 말이 퍼지면 이는 신성 모독으로 다뤄질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엮일 경우 백이면 백 만나는 부류가 있다.
이단 심판관!
간이 콩알만 해진 도슨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사방을 살폈다.
핏기가 싹 가셨던 도슨의 얼굴에 서서히 핏기가 감돌았다.
“차, 찰리 너 내 친구지?”
“내가 교인이라곤 하지만 친구를 팔아먹을 정도는 아냐.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런 불경한 소리를 한다면 너와의 우정을 끝낼 거야.”
“무, 물론이지. 내 두 번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않을게. 룬께 맹세해! 고마워, 눈감아 줘서. 흠흠. 그런데 우리 이렇게 있어도 될까?”
“무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저거 불길해 보이잖아. 지금이야 얌전히 저러고 있지만 언제 돌변할지 누가 알겠어. 그러니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찰리, 네 생각은 어때?”
“우리 도시만 이런 게 아니라잖아. 곳곳에 저런 게 나타났다는 말 못 들었어? 내 생각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오지에도 있지 않을까 싶어. 만약 그런 곳에서 너랑 네 가족만 있다고 생각해 봐?”
친구 찰리의 말에 도슨은 자신이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유학파.”
“그래도 모르니까 최대한 저 불길한 것에서부터 떨어진 곳에서 있는 게 좋을 거야. 너희 집이 여기서 두 블록이지?”
“그렇지.”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도록 해.”
“차, 찰리.”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부랄 친군데 그 정도 배려도 못 할까.”
도슨은 친구의 의리에 깊이 감동하여 그 마음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떼지 못했다.
한 무리의 인마가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힘찬 말발굽 소리에 고개를 돌린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서, 성기사다!”
“성기사님들이 오셨다!”
교단의 무력을 대표하는 집단이자, 가장 고귀한 기사로 알려진 자들.
그들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제 성기사를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경우 특히.
그러니 다들 이 상황에 놀라고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에 관한 소문의 절반만 진실이어도 이 문제는 금방 해결될 테니까.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 비단 성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영지의 기사와 마법사들도 도착했다.
이에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와 평화가 깃들었다.
* * *
불길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검은 소용돌이, 그것은 비단 사람들의 거주하는 곳 이외의 장소에서도 출현했다.
게른 산맥에도.
어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뚫어져라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불길한 검은 소용돌이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가 저것 때문일까?’
자세히 살펴본 검은 소용돌이의 중심부엔 불그스름한 띠가 한 줄 보였다.
저게 무슨 의미인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당장 눈앞의 저 검은 소용돌이의 정체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아무튼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저 놈으로 들었으나, 여기서 캠프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저놈에게 발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혹시 밤에만 움직이고 그러는 건가?’
그럼 말이 되긴 하는데,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 잡아가고 왜 자신은 잡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답이 보이긴커녕 오히려 문제만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스는 몸을 숙여 눈을 뭉쳤다.
적당한 크기의 눈뭉치를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냅다 던졌다.
휙.
힘차게 날아간 눈뭉치는 소용돌이를 곧장 통과하여 반대편 나무를 때리고 으스러졌다.
‘뭐지? 무지개 같은 건가?’
허공에 물을 뿌리면 작은 무지개가 만들어진다.
그것처럼 저것도 그러한 이치로 잠시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눈뭉치가 온전한 모습으로 통과할 수 있겠는가.
‘보기만 불길해 보이고 실상은 별거 아닌 건가?’
무지개와 같은 것이라면 당연히 위험할 일은 없다.
그래도 모를 일이라 어스는 몇 차례 더 눈뭉치를 던졌다.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파이어 애로우도 몇 번 날렸다.
눈뭉치처럼 스킬도 곧장 통과하여 뒤에 있던 애꿎은 나무만 박살 내고 사라졌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경계심이 한층 낮아진 어스는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다가갔다.
천천히.
거리가 가까워져도 검은 소용돌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도착한 후 잠시 망설이던 어스는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으어어어어!”
어제와 같은 경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추락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어젠 경황이 없어 지르지 못했던 비명을 이것도 경험이라도 이젠 목청껏 내지르는 어스였다.
* * *
“어스다!”
“이 녀석아, 왜 이제 오는 거야? 너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잖아!”
잠시 잠깐 정신을 놓았던 어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앞에는 사라진 동료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저들도 나처럼 죽었구나.’
추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블링크를 사용했지만 무슨 일인지 어제와 달리 블링크가 먹히지 않았다.
당시 느꼈던 충격과 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런데 여긴 천국일까? 지옥일까?
이왕이면 천국이면 싶은데, 그리고 더 이왕이면 어릴 적 꿈속에서 봤던 휘황찬란한 세상이면 더 좋고.
하지만 꿈속에서 봤던 세상과 눈앞의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빛을 내며 달리는 철마차도 없고, 거대하고 높은 석조 건물이나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 역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살려준 사람이 몇인데.’
이보다 더 부당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정신 차려, 인석아!”
“페어몬트 여기 이승과 저승의 경곈가요? 그럼 저기 저…… 음, 저게 사후 세계의 강이라던 레테인가?”
“이게 뭔 소리야? 얼른 정신 안 차려!”
어스의 반응이 답답했던지 페어몬트는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흔들흔들.
살아생전 딱히 페어몬트에게 못해 준 건 없는데, 죽어서 멱살이 잡히다니.
그런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망자도 멀미를 느낄 수 있는 건가?
설마.
“페어몬트, 어스 녀석 상태 보니깐 아무래도 자기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나 봐요. 크크.”
“그런가 보네. 어쩐지 이상한 소릴 한다 하더라니. 하아.”
“솔직히 우리도 처음엔 그랬잖아요?”
“그, 그야…… 흠흠. 음, 어스야. 우린 안 죽었어. 그러니까 정신줄 똑바로 잡아. 지금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냐.”
“저승이 아니라고요?”
“그래, 아냐. 그보다 이제 정신이 드는 게냐?”
“진짜 안 죽었다고요?”
“그래, 안 죽었어.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못 들어봤냐?”
“그럼 여긴 어딘데요?”
“네가 어제 빠져 죽을 뻔했다던 바로 그 구덩이 안쪽이 아닐까 싶다.”
구덩이면 구덩이지 아닐까 싶다는 또 어느 나라 표현이란 말인가.
“이번엔 구덩이에 빠진 게 아닌데요.”
“혹시, 검은 소용돌이처럼 생긴 걸 만지지 않았냐? 나와 다른 사람들의 경우엔 그걸 만지자마자 여기 떨어졌는데. 넌 아냐?”
“마, 맞아요. 그걸 만지자마자 추락했는데…… 모두 같은 상황이었군요.”
“나도 나지만 너도 참 겁이 없구나. 그건 왜 만져서 사달을 자초한 게냐?”
나름 머리를 굴려서 여러 실험을 거친 다음 최종적으로 만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럼 앞의 그 실험은 대체.
‘삽질했네.’
그러나 당장은 이게 문제가 아니다.
“페어몬트, 혹시 여기도 전에 우리가 갔었던 던전 같은 것일까요?”
이번엔 어스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엔 알림이 없었다.
‘첫 던전이 아니라서 알림이 없는 건가?’
아무튼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이라면?
‘상태창.’
되어야 한다.
제발.
그래야 이곳이 저승이 아니게 될 테니까.
스르르.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44).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2/100).
생명력 : 215/215.
마나 : 275/275.
인벤토리 : 1(+3).
스탯 : 힘(2.2). 체력(24). 민첩(2.1). 지력(18). 정신(36).
직업 스킬(8/9) : 매직 애로우(+0/12). 파이어 애로우(+0/12). 파이어 볼(+0/12). 파이어 버스트(+0/12). 아이스 스피어(+0/12). 일루젼(+0/12).
콜 라이트닝(+0/12). 블링크(+0/12).
업적 포인트 : 10.
코인 : 13,292.
‘내, 내 상태창이다! 역시 죽은 게 아니었구나!’
이제야 어스는 마음을 온전히 놓을 수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막막해서 그러는 게냐?”
“아뇨, 아무튼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내 생각엔 여기도 던전이 아닐까 싶다. 이런 기괴한 현상은 나로서도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 던전이라고 해두는 게 좋겠지.”
던전이든 아니든 힘이 있는 이상 힘으로 뚫어버리면 된다.
‘만약 이곳이 진짜 던전이면 보스만 잡으면 나갈 수 있어.’
빠져나갈 구멍, 그것이 확실한지는 아니지만 현 상황에선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그 희망을 좇아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앞에 든든한 동료들까지 있는 이상 어떤 난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앞서와 달리 500개가 넘는 마나 회복 포션까지 있지 아니한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새삼 확인한 어스는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자 잊고 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페어몬트.”
“응?”
“언제 떨어졌어요?”
“너도 시간을 떠올렸구나. 그런데 여긴 저번과 다른 것 같아. 저택의 그림 속 던전에선 시간이 각자 달랐는데 여기선 동일했어.”
뭐야? 그럼 이곳이 던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사람 불안하게.
“던전이라고 다 같을 리 있겠어요.”
“아무튼 괴이한 현상만 보면 이곳 역시 던전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두가 동의한 거야.”
페어몬트의 말에 각자 한마디씩 했다.
어스의 귀엔 모두 지방방송이었다.
루리아의 말만 빼고.
“다들 여기 언제 왔어요?”
“2시간 정도? 음, 대충 그쯤이지 싶다.”
“겨우 2시간이요?”
“왜? 설마 여기와 바깥의 시간이 다르기라도 한 것이냐?”
“그렇진 않아요. 그런데 왜 난 안 깨웠어요? 다들 사라져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어스의 불만은 프라이스가 풀어줬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네가 바로 그 짝이네. 내가 깨웠는데 네가 안 간다고 했잖아.”
“에? 내가?”
“몰라? 설마, 그거 잠꼬대였냐?”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어이가 없네. 잠꼬대를 그렇게 분명하게 한다니.”
자기 자신의 잠버릇을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당연히 어스도 자신의 잠버릇에 대해 알지 못했다.
5살 이후 혼자서 잤으니까.
이래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하는 게 아닐까?
당장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찰은 해봤어요?”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주변은 괜찮아.”
대답은 이번에도 프라이스였다.
“나도 정찰에 힘을 보태야겠네.”
어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하늘을 응시한 뒤 조용히 뇌까렸다.
‘블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