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화
교단에서 나온 사람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였다.
교단이란 이름만 쏙 빼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 인상이 무색하게 대단히 날카로웠다.
살벌하고 사나운 그런 쪽이 아닌 차갑고 예리했다.
“룬의 부족한 종 루비오라고 합니다. 어스 형제님.”
“루비오 사제님이시군요. 그런데 절 만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사제님이 제 집을 방문한 건 처음이라서. 반갑지 않은 건 아닙니다. 사제님이신데.”
루비오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어스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상대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송곳에 찔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혼자 사는 인생이라면 이렇게 긴장하지도 상대의 신분에 주눅 들지도 않았을 테지만, 천애고아가 아니다 보니 가족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상대의 사소한 행동에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형제님.”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건지?”
정류장을 지나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교단에서 따로 조사대를 파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스 형제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라고 하더군요.”
“소문은 언제나 과장이 심하죠.”
“침묵의 숲에서 어스 형제님의 활약은 과장이 아니죠.”
여기까진 나름 유명한 이야기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엔 결코 그리 생각할 수 없었다.
“글리시아 영지에서의 일도 그렇고요.”
스토컨가?
자유 마을에서의 일은 꽤나 유명한 일이지만 글리시아 영지에서의 사건은 오스완드 남작이 영지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 아는 자들은 현장을 확인한 사람들과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한 교단 측 인사 몇이 전부였다.
그중 루비오는 없었다.
‘처음부터 날 주시하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스는 긴장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작은 꼬투리도 잡히지 않기 위해.
“혹시, 글리시아에서 있었던 일의 원인은 밝혀졌나요? 마무리가 찝찝해서 내내 신경에 쓰였거든요.”
“범인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하게도 어스 형제님이 확산을 막아 주신 건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여력이 있는데 돕는 건 당연하죠. 그보다 저희 집은 어떻게 아시고 찾아오신 건지?”
“던전이 사라진 사건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런 일이 정말 이번이 처음인가요?”
“던전에 대해…… 아십니까?”
루비오 사제의 눈빛이 돌변하자 어스는 괜히 아는 척했다며 자책했다.
“그, 그게. 실은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지 않은 사안이라서 떠들고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그만 실수했네요.”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굳이?”
“예. 듣고 싶습니다.”
나리아를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지만 상대의 의심을 사는 건 원치 않았기에 냉큼 그녀에 관해 알려주었다.
“그렇군요. 아무튼 불쑥 찾아와서 실례했습니다. 약속이 있으시다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례라뇨. 오히려 감사하지요. 사제님이신데. 하하.”
오늘은 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어스는 끝까지 웃는 낯으로 루비오를 배웅했다.
대문을 닫고 현관문까지 닫자 그제야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들, 무슨 일이야?”
“나쁜 일은 아닌 거지?”
“오빠, 괜찮은 거야?”
자신만큼이나 가슴 졸인 가족들, 어스는 떨떠름한 기분을 애서 떨쳐내며 가족들을 다독였다.
“이 모든 게 다 내가 대단한 마법사라서 그래. 사제도 사람인지 유명인이 보고 싶었나 봐.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 * *
어스의 집을 나선 루비오 사제의 곁으로 평상복의 남자가 접근했다.
기척도 내지 않는 가벼운 발걸음이 꽤나 인상적인 남자였다.
이를 제외하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외모의 소유자였다.
“보셨습니까?”
“그래.”
“어찌 할까요?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까요?”
“보류.”
“운이 좋은 녀석이군요. 던전만 아니면 진작 작업이 끝났을 텐데.”
“그보다 조사할 사람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상가 구역 12번 길의 마법 상점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리아라는 여자에 대해 알아봐.”
“그녀도 대상입니까?”
“아니, 입이 가벼운 여자.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까.”
“곧 보고 올리겠습니다.”
남자는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루비오는 몸을 돌려 어스의 집을 응시한 뒤 곧 걸음을 옮겼다.
* * *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생겼어?
-괜찮은 거야?
-사제가 왜 온 거야?
-솔론으로 오는 건 어때?
루리아를 제외한 동료들에게서 문자가 쉴 새 없이 왔다.
그들에게 일일이 답장해 주는 데만 장장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재사용 10분, 10글자 이내라는 망할 놈의 제약 때문이었다.
망할.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이놈 때문에 더 머리 아프네.’
통신구를 인벤토리에 던지듯 넣은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열다섯 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 어떤 해보다 그랬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지금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보다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단시간 내에 강해지려면 역시 던전뿐이다.
최소 3띠 이상의 던전을 노려야 한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던전이어야 할 것이다.
‘마나 포션이나 왕창 사야겠네.’
루비오 사제의 방문으로 인해 착잡한 마음을 겨우 달랜 어스는 집을 나섰다.
여느 날과 달리 가족들이 크게 걱정했지만 또 한 번 큰소리 탕탕 치며 시내로 향했다.
정류장에 다다르자 운 좋게 대중 마차가 정차하고 있었다.
이에 어스는 본능적으로 뛰었다.
덕분에 대중 마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빈자리에 냉큼 앉으니 앞에 않은 승객이 눈치를 줬다.
대체 왜 저러나 싶어 옆을 보니 낡은 외투 차림의 임산부가 흔들리는 마차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눈이 무척 슬퍼 보였다.
집안에 우환이라도 있는 건가?
눈치를 준 승객에겐 짜증이 났지만 막상 임산부를 보자 더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자리를 양보했다.
두세 번 사양하던 임산부는 연방 고맙다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 뿌듯해졌다.
눈치를 주던 승객도 더는 얄밉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임산부의 볼록한 배가 젖어들고 있었다.
어깨도 가늘게 떨었다.
‘내 친절이 그렇게 감동적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애써 관심을 끊으려는 헛소리였다.
하지만 임산부의 젖은 배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모른 척하자니 왠지 자꾸 생각날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수건을 꺼내 임산부에게 말없이 건넸다.
연이은 호의에 임산부는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얼굴을 하고선 호의를 내치지 않고 받았다.
그런데 그게 또 기분을 좋게 했다.
‘안 돼, 여기서 멈춰야 해. 입 다물어!’
그래야 했는데.
“어디까지 가세요?”
“얼굴처럼 마음도 따뜻하신 분이네요.”
임산부는 쓸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투박하고 거친 손끝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었다.
엄마의 손이 임산부의 손과 겹쳐졌다.
‘비라도 오던가? 아님, 눈이라도 오라고. 그래야 그 탓이라도 하지.’
찬바람 쌩쌩 부는 더럽게 화창한 날씨에 감성 폭발이라니.
임산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서.
자신의 작은 친절에 감동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신경이 임산부 쪽으로만 향했다.
그래서 자신이 내릴 곳이 아닌데도 임산부를 따라 내리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고 말았다.
꽁무니를 흔들며 멀어지는 대중 마차를 눈으로 배웅하며 돌아서니, 왕도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낙후되고 더러운 비포장 길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이 눈에 들어왔다.
임산부는 보따리를 가슴에 품고 빙판을 피해 조심조심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뒤에서 보니 몹시 위태로워 보여 손이라도 내밀어 주지 않고는 베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도 손을 내미는 행동은 참아냈다.
하지만 임산부를 따라가는 발걸음은 참지 못했다.
40분을 가파른 길을 걸어서 올라간 임산부는 허름한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판자와 판자 사이의 틈새가 제법 벌어져 있는 것이 얼어 죽기 딱 좋은 구조였다.
“조쉬, 나 왔어요. 시장하죠?”
“쿨럭, 쿨럭. 괘, 괜찮아.”
틈새로 보이는 집 안 풍경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온기를 발산하는 건 잘게 쪼개어 피운 작은 모닥불이 전부였다.
가구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이 집처럼 낡은 침대 하나에 문짝도 없는 옷장과 까맣게 그을린 솥 하나와 그릇 몇 개가 이집 살림의 전부였다.
“식사 준비할게요.”
임산부는 소중하고 품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서 먹다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꺼내어 찌그러진 까만 솥에 물을 채운 뒤 이를 풀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연기 때문인지 아님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인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한둘도 아니고 나는 지금 뭐하는 거지?’
가난은 왕도 구원할 수 없다.
아니, 신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니 일개 마법사 나부랭이가 나설 일이 아닌데.
“실비아, 힘들지 않아?”
“전혀.”
“미안해. 내가 눈감고 입만 닫고 있어서도…… 우리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쿨럭, 쿨럭.”
“조쉬! 괜찮아요?”
“문, 문제없어. 그리고 이제 이것도 팔자.”
“그, 그건 조부님의 유품이잖아요.”
작은 목함을 어루만지며 여는 조쉬의 얼굴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딱히 큰돈은 안 되더라도 잡곡 한 두 포는 살 수 있을 거야. 당신도 몸이 많이 무거워졌잖아.”
만삭의 아내가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여 겨우 목구멍에 풀칠하는 찢어지는 집이었다.
가진 걸 모두 팔아도 벌써 팔았을 집에 아직도 팔 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건 그만큼 저들에겐 소중한 물건이란 의미였다.
병든 가장의 슬픔이 가느다란 목소리에 잔뜩 묻어 있었다.
이를 훔쳐(?)보는 어스의 가슴이 찌르르…… 찌르르?
‘문신이 왜?’
위그드라실의 조각으로 인해 생긴 문신, 지금 그 문신이 목함이 열리자마자 반응하고 있었다.
설마…… 조각!
저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절대 놓칠 수 없는 물건이기에 저들 부부가 다른 곳에 팔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
똑똑.
“실례합니다.”
감성 폭발이 이런 식의 멋진 결과로 이어지다니.
가끔은 감성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역시나 집안은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초라했다.
가난한 시골마을에서도 이런 집은 없으리라.
갑작스러운 어스의 난입(?)에 크게 놀랐던 임산부 실비아, 그리고 그 못지않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던 조쉬는 어스가 파이어 볼 하나를 허공에 띄우면서 놀랍도록 얌전해졌다.
“날이 추워서.”
“회, 회색 마탑에서 나오신 겁니까? 이미 빚은 청산하지 않았습니까?”
다 죽어가는 앙상한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벌떡 일어선 조쉬는 아내를 몸으로 보호했다.
“회색 마탑? 유명한 곳인가요?”
“아, 아닙니까?”
“아닌데요. 지나가는 마법산데 이 집에 좋은 기운이…… 흠. 아무튼 잡소리 그만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요. 저거 팔 생각이면 제게 파세요. 값 후하게 쳐드리죠.”
필요한 물건도 사고 불쌍한 인생들 구제도 하고. 이것이야말로 상부상조다.
“이, 이걸 말입니까?”
“예, 얼마면 될까요? 아니, 제시하세요. 최대한 맞춰 드릴 테니까.”
열려진 목함에는 놀랍게도 위그드라실 조각이 무려 세 개나 들어 있었다.
물론 저걸 손에 넣더라도 앞으로 아흔다섯 개나 더 모아야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