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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87화 (87/250)

087화

조쉬는 한때 전도유망한 연금술사였다.

그랬던 그가 나락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재료를 몰래 빼돌려서 팔아서 이득을 취하던 상관을 상부에 보고한 것이다.

그게 옳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조쉬가 역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조쉬가 고발한 상관의 사촌이 회색 마탑의 간부였단 사실을 몰랐던 것이 그의 인생을 지금처럼 만든 것이다.

이에 조쉬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마법사 그것도 마탑의 간부가 지닌 영향력은 일개 연금술사 따위가 어찌할 수 없었다.

연금술사로서의 취업 길은 막혀버렸고, 전 재산까지 횡령의 대가로 빼앗기며 빈털터리가 된 조쉬는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덜컥 병이 걸린 뒤 만삭의 아내가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얻어온 음식과 약간의 금전으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하나 아내가 만삭이 되자 더는 그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실비아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가 슬퍼했던 이유였다.

앞날이 너무 막막했으니까.

어스가 저들 부부의 사연을 들어준 것은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다.

이 상황 자체가 우발적인 동정심에 의해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겐 플러스였다.

대단히 이로운.

“연금술사로 취업은 어렵겠네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타국에 있는 지인에게도 연락했지만 그 친구도 고개를 내젓더군요. 한마디로 연금술사로서의 취업은 물 건너 간 것이죠.”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스 님이 제 조부님의 유품을 비싼 가격에 사 주셨으니 올 겨울을 넘긴 뒤 작은 가게라도 할까 합니다. 물론, 그 전에 제 몸이 회복 되어야겠지만.”

위그드라실의 조각은 어스에게나 큰 가치를 가진 물건이지 사실 다른 이들에겐 그냥 특이하게 생긴 딱딱한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물건을 누가 높은 가격에 사겠는가.

구입자가 특이한 수집욕구가 있지 않고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이는 조쉬 내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어스가 구입의사를 타진했을 때 잡곡 한포를 구입할 수 있는 액수만 불렀다.

어스는 부부가 부른 가격의 100배를 주고 이를 구입했다.

적당한 길목에 노점상을 차릴 액수는 되는 돈이었다.

그러나 아픈 조쉬를 생각하면 저들이 그런 노점상도 차리지 못할 공산이 컸다.

난방비와 식비 그리고 치료비로 금방 동이 날 테니까.

“조쉬 씨.”

“예.”

“혹시 마나 회복 포션 만들 수 있습니까?”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긴 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마탑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개인이 포션을 제작해서 파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죠.”

어스는 처음에 그저 자신이 쓸 마나 회복 포션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쉬의 말에 문득 행상으로 직업을 전환한 거너를 떠올렸다.

포션엔 몬스터 부산물과 다수의 약초가 들어간다.

거너는 그런 쪽에 일가견이 있었고, 실제 그와 관련된 물품을 사고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안한다면 그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분명 승낙할 것이다.

일방의 피해만 주는 일이 아닌 상부상조다.

그리고 거너와 옛 동료들이라면 자신이 신경 쓰지 않더라도 사업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갈 것이다.

“나랑 일해보지 않을래요?”

무작정 도와주는 인연이면 피곤할 테지만 그게 아닌 이상 함께 가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면 보따리까지 주라는 말이.

‘아닌가?’

어쨌건 상관없다.

어스의 갑작스러운 제안, 등장도 뜬금없고 갑작스러웠지만 아무튼 조쉬의 입장에선 하늘이 내린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생전 안 하던 일을 하는 것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삶.

전엔 그와 같은 삶의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시 여겼지만 이젠 아니었다.

“하, 하겠습니다. 배만 곪지 않게 해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 * *

어스는 조쉬 내외를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딱히 가져갈 물건도 없었기에 누더기나 다름없는 외투가 전부였다.

살림이 빈천하니 이사는 참 편하다.

몸만 가면 되니까.

어스가 젊은 부부를 데려오자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그의 가족들은 부부의 사연을 듣자 마치 제 일처럼 슬퍼하며 두 사람을 반겼다.

집이 크다 보니 어스의 가족들이 방 하나씩 쓰고도 방이 남아돌았다.

여기에 별채까지 있으니 지낼 곳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거너, 아그네스, 린다, 니코 그리고 중개인 한스가 소개해 주기로 한 이들을 고용해도 방은 넉넉하다.

‘막상 살다 보니 휑했는데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네.’

역시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

엘이나는 조쉬 내외가 지낼 방을 내주었다.

그동안 집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기에 당장 들어가서 살아도 문제없었다.

조쉬 내외를 부모님께 부탁한 어스는 바삐 집을 나섰다.

중개인 한스의 사무실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정류장에 막 도착한 대중 마차를 집어 탈 수 있었다.

이번엔 실비아 같은 사람은 없었다.

한스의 사무실에 도착한 어스는 한스가 소개하기로 한 입주 고용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스는 노른 가족을 고용하기로 했다.

대화를 나눠 보니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직 용병이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스 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준비되시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한스 씨.”

“예, 손님.”

“4인용 승용 마차를 구입하고 싶은데 그쪽으로도 소개가 가능한가요?”

“싸고 좋은 품질의 마차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루리아의 소개로 알게 된 중개업자 한스, 왕도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이런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 루리아에게 문자로나마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나는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이왕 내친걸음이라 한스와 노른을 대동하고 승용 마차와 말도 구입하기로 했다.

“가죠, 마차 사러.”

* * *

노른 가족은 이틀 뒤 어스의 집 별채에 입주했다.

어스의 부모님과 루시도 이들을 환영했다.

그렇게 3일이 쏜살처럼 지나자 어스는 거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새해 첫날을 가족과 새로 식구가 된 이들과 함께 지낸 뒤 야심한 시간에.

‘블링크.’

거너가 뿌리를 내린 소도시 랭진을 향해 이동했다.

포션을 연방 들이켜며.

* * *

“어, 어스?”

“헐, 진짜 어스야? 이야! 너 많이 컸다.”

어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깜짝 놀란 거너와 니코.

두 사람을 보자 지난 세월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오랜만이야. 그간 잘 지냈어요? 장사는 잘 되고? 아그네스와 린다 누난?”

“장 보러 갔어. 그보다 진짜 어스 너 맞아? 뼈에 가죽밖에 없던 몸에…… 이거 근육 맞지?”

“내가 말했잖아 나 한창 자랄 나이라고.”

“밖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요즘 어떻게 지내?”

어스는 두 사람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거너 일행은 행상으로 자리를 잡기 전인지 상가 지역이 아닌 변두리 주택과 창고를 임대하여 그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다.

소도시도 도시라고 물가가 제법 비쌌던지.

“얼마 전에 왕도로 이사했어. 가족들과 함께.”

“와, 왕도?”

“응.”

“출세할 줄은 알았지만 진짜 출세했네. 혹시, 귀족 나리도 된 거야?”

“되려고 하면 얼마든지 될 수 있지만 아직은 내키지 않아서 말이지.”

“잘난 척은.”

“내가 한 인물 하잖아. 하하.”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들처럼 어스와 니코는 격이 없었다.

말수는 없지만 맏형 같은 느낌의 거너 역시 불편하지 않았다.

“거너 형은 어때? 일은 할 만해?”

“검은 소용돌이 때문에 다들 예민해서 우리도 잠시 쉬고 있어.”

검은 소용돌이에 대한 정식 명칭과 향후 이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정보를 손에 넣은 상태다.

던전에서 창출할 수 있는 이익 역시도.

그러나 지방에서 행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까지 전달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어스는 자신이 아는 내용을 짧게 설명했다.

“몬스터라고?”

“예. 듣기로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의 부산물이 외부 몬스터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하더라고요. 조만간 공식적인 발표가 나올 거예요.”

“넌 그걸 어떻게 알아?”

“거너 형, 나 마법사예요. 그것도 왕도 2군 지역에 준 저택을 자가로 소유한 잘나가는 마법사. 참고로 나 5서클임.”

앞에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거너와 니코는 어스의 경지를 듣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1서클에 불과하던 소년이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고위 마법사로 통하는 5서클이 되었으니 저들 입장에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엄청난.

“거, 거짓말이지? 그게 말이 돼? 5서클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비유를 해도 왜 개랑 비유하는 거야.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못 믿는 것 같은 데 5서클 벼락 한번 구경해볼래?”

“지, 진짜냐? 농담 아니고?”

“내가 이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어. 당연히 진실 100퍼센트지.”

어스의 확답에 거너와 니코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한참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린 니코.

“5서클이면 단승이긴 해도 최소 남작 작위도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임관하면.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오늘 여기까지 내려온 건 예전처럼 다시 뭉치고 싶어서야. 자세한 이야기는 아그네스 누나랑 린다…….”

“누가 왔어?”

오우거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린다와 아그네스가 등판했다.

반가운 목소리에 환한 얼굴로 돌아선 어스는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린다와 아그네스를 볼 수 있었다.

아그네스는 여전히 눈부시게 예뻤고, 팔 하나를 잃은 린다는 그에게 잊고 있던 씁쓸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당사자의 표정은 팔이 멀쩡하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밝았기에 씁쓸함은 곧 사라졌다.

또 한 번 반복적인 대화가 오갔다.

키가 컸다느니, 근육이 붙었다느니, 출세해서 좋겠다느니, 그리고 5서클이 되었다는 말엔 앞서 거너와 니코가 그러했듯 아그네스와 린다 역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얼른 정신 차리고. 밥 먹자. 이곳에서 가장 비싼 집이 어디야? 쏠게. 나 5서클 마법사잖아. 왕도 2군에 준 저택을 소유한 건물주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하.”

* * *

자리를 옮긴 어스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하지 않겠냐며 제안했다.

“그 제안 받아들이마.”

“잘해 봐요. 그리고 선뜻 응해줘서 고마워요.”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들어보니 땅 짚고 헤엄치긴데.”

그렇게 거너를 비롯한 옛 동료들을 고용했다.

집에 이야기 하지 않고 몰래 나왔기에 간단히 먹고 일어섰다.

“왕도에서 봐요.”

“정리 끝나면 바로 상경할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둘지 않으면 여동생에게 돈을 뜯길지 모른다.

또 외박했냐며.

그래 봐야 푼돈이지만.

소도시 랭진 상공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어스는 왕도를 향해 거푸 블링크를 시전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포션 때문인지 중간에 속이 좋지 않아서 잠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불빛 한 점 없는 산속이다.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한 분위기였지만 어스의 표정엔 조금의 두려움도 찾을 수 없었다.

양옆에 든든한 파이어 볼을 생성한 상태였기에.

화르, 화르륵.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다시 일어선 어스는 길을 재촉했다.

아니, 하려다 멈칫했다.

바람이 한차례 스윽 불자 나뭇가지에 쌓인 눈 더미가 떨어졌다.

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어스는 유난히 어두운 곳을 볼 수 있었다.

파이어 볼을 이동하여 살피니 거기에 던전이 웅크리고 있었다.

“여기도 하나 있었네.”

심봤다.

어스가 발견한 던전은 세 개의 띠를 가진 곳이었다.

먹기 딱 좋은 수준의 던전이다.

‘형이 공간 주머니 잔뜩 사갖고 와서 싹싹 털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아무나 들여보내지 말고 말이야.’

두 눈에 사랑을 가득 담아 던전을 쓸어본 뒤 어스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날 새기 전까지 집에 도착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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