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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05화 (105/250)

105화

어스가 왕도에서 물건을 인수받고 곧 출발했음에도 국경 도시 헥시움에 도착하니 첫닭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다.

똑똑.

“어스.”

똑똑똑.

“어스!”

노크소리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꿈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잠을 깨우려는 꿈이라니.

어스는 속으로 짜증을 부리며 더욱더 몸을 둥그렇게 말며 이불을 꼭 끌어안았다.

자신의 단잠을 방해하려는 나쁜 꿈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듯.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 소리가 모두 현실이었고, 그 현실이 걸쇠까지 걸어둔 문짝을 부수고 방안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을 방해하는 꿈, 현실이었지만 아무튼 이를 인지하는 순간 외부에 대한 감각이 온전하진 않지만 가동한 상태였기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저런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가늘게 눈을 뜬 어스는 길쭉한 자태를 뽐내는 검을 보자 벼락이라도 맞은 듯 크게 놀라 벌떡 일어섰다.

서커스장을 피바다를 만든 암살자중 다수가 도망친 상태였다.

어스는 그들이 복수를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격을 하려고 했더니.

“루, 루리아 누나?”

불청객은 암살자가 아니었다.

“자, 자고 있었던 거야?”

“암살자가 쳐들어 왔어요?”

“아, 아니.”

“에? 그런데 그 검은 대체 뭐죠?”

“다행이다. 아무 일 없어서.”

루리아를 바라보던 어스는 시선을 커튼을 덮고 있는 창문으로 던졌다.

살짝 벌어진 커튼 밖을 보니 여전히 어두웠다.

“이상한 기척이라도 감지한 거예요?”

“아니, 아침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도 안 내려오기에 올라와봤어. 문을 두드려도, 이름을 불러도 조용하기에 나쁜 일이 생겼나 싶어서 안으로 들어온 거였어.”

“아침이요? 밖이 어두운데.”

상대가 여동생이었다면 자신을 못살게 하려는 장난으로 생각했겠지만, 루리아가 여동생과 같은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었기에 반신반의하며 말하였다.

“아홉 시야.”

“아, 아홉 시라고요?”

침대에서 창문까지의 거리는 제 아무리 긴 팔을 가진 사람도 닿을 수 없다.

몸을 감싼 이불에서,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기에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평범한 창에서 아이템으로 변모한 예의 그 창을 꺼내 커튼을 건드렸다.

그제야 어스는 날씨 때문에 어둡게 보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네.’

올해 첫 비였다.

모든 의혹이 풀렸고, 잠은 저만치 달아났다.

“이건 명백한 내 실수야. 그래도 아침은 먹고 자는 게 어떨까?”

입안에 진하게 남아 있는 딸기 향, 그 짙은 향기만큼이나 배 속은 포션으로 꽉 차 있었기에 밥 생각은 아예 나지 않았다.

그보단 더 자고 싶었다.

“아뇨, 지금은 좀 더 자고 싶어요. 참, 누난 식사했어요?”

“아직.”

“아홉 시라면서요?”

“너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어스는 그녀의 말이 달콤하게 들렸다.

그래서 순간 고민했다.

그녀와 마주보며 밥을 먹을지 아니면 이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더 잘지에 대해.

짧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어스는 끝내 잠을 포기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서 문까지 부수고 들어온 그녀를 혼자 돌려보내는 건 그녀의 마음에 섭섭함을 남길 것 같아서였다.

“읏차!”

어스는 보란 듯 힘차게 일어났다.

“가요, 밥 먹으러.”

잰걸음으로 루리아에게 다가간 어스는 슬쩍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행히 그녀는 그 손을 빼지 않았다.

고개만 옆으로 살짝 돌리며 어색한 헛기침을 살짝 했다.

“소, 손은 좀 놓아주는 게 어떨까?”

“싫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사람들이 볼지도 모르잖아.”

“보면 어때요. 사귀는 사인데.”

그 말에 루리아는 한마디도 못 하고 어스의 손에 이끌려 식당까지 갔다.

중간중간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의 모습이 루리아의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어스의 말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 *

루리아와 함께 아침을 먹고, 후식으로 가벼운 티타임까지 가졌다.

대화는 없었지만 못다 한 잠이 아쉽지 않을 만큼 그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온 세상의 부드러움이란 부드러움이 다 몰려와서 자신과 루리아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의 행복한 시간은 레이몬드 사제가 찾아오면서 끝나고 말았다.

그에 루리아는 수련을 핑계 삼아 자리를 떠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스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오늘부터 그녀와 진정한 1일이 되었으니까.

“어스 경 좋은 꿈이라도 꿨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네. 하하.”

“꿨죠. 아주 좋은 꿈.”

“무슨 꿈인지 몰라도 그 꿈 내게 파는 건 어떤가? 난 간밤에 지독한 악몽을 꿨거든.”

명색이 사제라는 양반이 악몽 따위에 휘둘리다니.

“꿈을 어떻게 팔아요.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쏴아아.

봄비치곤 빗줄기가 제법 굵다.

바람도 제법 불었다.

나뭇가지를 꺾거나 움직임에 불편할 정도의 세기는 아니었지만.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이 촛불을 한차례 휘감아 흔들었다.

휘청거리는 그 불빛에 따라 그림자가 움찔거렸다.

덩달아 레이몬드 사제의 몸도 움찔했다.

“판다고 말하면 돼.”

“그보다 무슨 꿈인데요?”

“시, 실은 벼락을 맞는 꿈을 꿨지 뭔가? 어찌나 생생한지 꿈을 깨고 나서도 온 몸이 벌벌 떨리더라고. 다른 사람에겐 창피해서 말도 할 수 없었다니까.”

시무룩한 모습으로 대답하는 레이몬드 사제의 말에 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 어스는 꿈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그 때문에 어스의 부모님은 꿈 풀이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실제 이를 공부했다.

그 영향으로 어스 역시 꿈 풀이를 할 수 있었다.

이는 속신의 한 갈래다.

교단의 입장에서 보면 마뜩찮은 일이었지만 이단으론 규정하진 않았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사제는 사제라는 건가?’

레이몬드 사제의 모습에 장난기가 동한 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연기했다.

그러자 레이몬드는 더 애가 달았다.

“1만 테스를 주겠네.”

어스도 꿈을 꾸긴 꿨다.

좋은 꿈도 아니고 나쁜 꿈도 아닌 그냥 개꿈이다.

집채만 한 덩치의 머리 세 개 달린 개가 입에서 불을 뿜고 자신을 쫓아왔던 꿈이다.

아무튼 개가 나왔으니 그건 개꿈이다.

그런 개꿈을 1만 테스에 판다면 이건 남아도 너무 남는 장사다.

‘레이몬드 사제 기분도 고려하자.’

비겁한 변명이다.

레이몬드 사제는 그런 어스의 행동을 고민이라 생각하며 금액을 올렸다.

정말이지 그 꿈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팔게요.”

그렇게 어스는 레이몬드에게 개꿈을 팔았다.

가격은 10만.

‘요즘 돈복이 바짝 올랐네. 올랐어. 뭐만 하면 돈이 그냥 굴러들어오네.’

좋은 일이다.

“참, 사제님의 꿈은 제가 살게요.”

개꿈은 10만 테스에 팔고, 레이몬드가 꾼 좋은 꿈은 1테스에 구입했다.

이래서 사람은 아는 게 많아야 한다.

레이몬드 사제는 자신이 큰 손해를 보았지만 이를 알지 못하였기에 희희낙락했다.

“난 이만 가 보겠네. 교구장님과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내 어스 경 덕분에 마음이 참 편해졌어. 허허.”

가슴 한쪽이 찌르르한 건 결코 양심이 자극을 받은 건 아니리라.

“다녀오세요.”

평소보다 더 살갑게 레이몬드 배웅한 어스는 기지개를 켜고 자신의 방으로 걸음 했다.

루리아로 인해 못 다한 잠을 마저 자기 위해서다.

때마침 날씨도 이러니 숙면을 취할 수 있으리라.

* * *

비는 나흘에 걸쳐 내렸다.

비가 그치자 에스터 추기경이 보낸 경호부대가 도착했다.

일개 성기사에 불과한 이의 안전을 위해 추기경이 부대까지 보내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들이 도착하는 동안 국경 수비대와 도시 치안대가 암살자를 뒤쫓았지만 단 한 명의 암살자도 붙잡지 못했다.

붙잡긴커녕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

아니, 그들의 무능으로 매도할 순 없다.

놈들 전원이 익스퍼트 실력자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국경 도시 헥시움을 떠나기 하루 전, 위그드라실 서커스단에서 사람이 왔다.

단장 로엘이었다.

“일찍 찾아왔어야했는데 그간 운신할 수 없어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어스 님.”

젊은, 아니 어린 성기사의 활약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했다.

이 일로 어스의 명성은 물론 교단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서커스단에도 피해가 많았을 텐데 괜찮으세요?”

“소중한 관객 분들이 당한 피해에 비하면 저희는 그저 공연만 못했을 뿐입니다.”

공연으로 먹고 사는 자들이 공연을 못한 건 큰 손실이다.

그럼에도 로엘은 공연 중단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리 보였다.

‘규모가 큰 서커스단이라서 재정이 넉넉한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번 일로 서커스단이 공중 분해된다면 평생 무료 관람권이 쓸모없어졌을 테니까.

“안타까운 일이었죠.”

“어스 님이 떠나신다는 말을 듣고 지체할 수 없어 달려왔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가 드리는 소소한 예물이니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로엘이 공간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공간 주머니는 그 자체로 비싼 물건이다.

“이번 일로 단장님도 금전적으로 피해가 컸을 텐데 선물이라니. 전 괜찮습니다. 넣어 두세요.”

공간 주머니의 가격은 최저 3만 테스에서 최고 100만 테스까지 있다.

가격의 기준은 당연히 용량이다.

최근 던전 원정이 활성화되면서 용병들의 몸값이 크게 뛰었듯 공간 주머니를 비롯한 경량화 배낭 역시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상태였다.

“아닙니다. 미리 주인 인식은 풀어두었으니 주머니를 여시면 바로 주인으로 인식 될 겁니다.”

로엘의 눈빛과 입가에선 어스를 향한 호의가 계속 머물러 있었다.

이는 어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이었다.

사고가 발생하던 그날 보았던 어스도 왠지 호감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호감이 로엘의 가슴에서 샘솟고 있었다.

로엘 본인도 이를 의문으로 여겼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 받을 수 없네요.”

공간 주머니를 챙긴 어스는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물은 공간 주머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간 주머니 안에도 선물이 들어 있었다.

그건 바로.

찌릿.

‘조각이다!’

공간 주머니를 단숨에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 로엘은 어스가 보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어스 일행은 헥터 왕국의 국경을 넘어 솔론 왕국에 발을 디뎠다.

큰 비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온 세상이 싱그러움으로 가득했다.

어스는 루리아와 함께 전처럼 한 마차에 타고 움직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나날이 발전하여 이젠 어엿한 연인으로서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주물주물.

“괜찮아요. 그만해요.”

“어제 무리했잖아. 근육은 그때그때 풀어주는 게 좋아.”

“진짜 괜찮은데.”

말은 그리했으나 루리아의 안마는 싱그러운 공기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더 없이 달달하게 달구고 있었다.

‘왕도 안 부럽네, 안 부러워.’

지금도 좋지만 어제 로엘 단장이 주고 간 선물 역시 그를 기쁨으로 인도했다.

공간 주머니엔 3개의 위그드라실 조각이 들어 있었다.

조각은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금두꺼비의 눈을 대신하고 있었다.

참고로 금두꺼비는 세 눈 두꺼비란 희귀한 몬스터를 형상화한 것이다.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17/100).

‘요 며칠 갑자기 조각 회수가 술술 풀리네.’

상황이 이런 식으로만 쭉 흘러간다면 칭호 활성화도 근 미래의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칭호만 활성화하면.

부르르.

“왜? 아파?”

“아, 아뇨. 전혀.”

“아프면 말해. 힘 조절 할 테니까.”

빗장이 단단해서 그렇지 일단 그 빗장이 풀리자 어스를 대하는 루리아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물론 사람들이 있으면 전처럼 행동했지만 이렇듯 둘만 있으면 달달한 깨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처럼 모든 일이 수고하지 않음에도 알아서 술술 잘 풀리고 있으니 어스 입장에선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너무 행복하였기에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다.

이 행복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날이 올 것 같아서.

‘생각이 씨가 된다고 했어. 꺼져, 꺼져라. 퉤퉤.’

일행은 솔론 왕국 국경 도시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딱 점심만 해결하고 곧장 동북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던 그때 예정에 없이 마차가 정차했다.

“어스 경, 경이 도와줘야 할 일이 생겼네. 급하네, 정말 급한 일이네!”

레이몬드가 마차 문을 두드리며 급하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사색이 되어.

“무슨 일이십니까?”

“추, 추기경님께서 우리 추기경님께서 던전에 갇혔네! 우리 추기경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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