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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08화 (108/250)

108화

대마법사 플린트 테리어는 어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방대한 마나량.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블링크의 이동 거리.

마법 시전 속도 등등.

하긴 마법사라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호기심 중 단 하나도 어스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러니 질문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잘라야했다.

그래서 대답이 궁할 때마다 항상 써 먹던 가상의 스승을 거론하여 그녀의 질문을 차단했다.

상대가 대마법사이다 보니 이번에도 통할지 내심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하게도 이번 역시 통하였다.

물론 그녀가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고, 어스가 더 이상 일개 자유 마법사 나부랭이가 아닌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대와 같은 인재를 키워낸 사문이 궁금하지만 그 또한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평생의 궁금증으로 묻어두어야겠군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오히려 우리가 해야죠.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모면했으니까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플린트님이나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교단을 위해 발 벗고 나서주셨습니다. 그러니 감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죠. 그렇지 않나요? 리더만 단장님?”

이 자리엔 어스를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솔론 왕국을 대표하고 있는 카멜 왕자와 슈리에 후작.

마법사들의 수장 플린트.

마지막으로 실종된 에스터 추기경 휘하 성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리더만까지.

원정대에 합류한 이상 어스의 소속은 리더만이 이끄는 성전단에 편입되었기에 리더만은 그의 상관이라 할 수 있다.

“어스 경의 말이 옳습니다. 플린트님.”

어스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리더만 단장은 내심 흡족했다.

레이몬드 사제가 성기사로 누군가를 추천했단 사실을 알았을 땐 무척 화가 났었다.

성기사의 명예와 긍지가 훼손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레이몬드 사제가 추천한 자를 만나면 그 자질을 엄중하게 시험할 계획까지 짜 놓았다.

만약 그 시험에 상대가 통과하지 못하면 그의 파문까지 에스터 추기경에게 강력하게 건의할 생각까지 각오했다.

어디 리더만 단장 하나뿐이랴 다른 성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휘하 성기사단이 이런 반응이니 당연히 에스터 추기경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에스터 추기경이 어스를 성기사로 서품한 건 레이몬드 사제가 그녀의 아픈 손가락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번 레이몬드 사제의 추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대륙의 화제로 떠오른 던전을 단시간에 열아홉 개나 닫는 강력한 마법사였으니까.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어스의 능력과 나이가 무색한 처신은 그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지우고도 남았다.

‘어린 나이에 큰 힘을 갖게 되면 방탕하거나 거만하기 마련인데 어찌 저리 올곧을꼬.’

리더만 단장은 레이몬드 사제를 안 이후 처음으로 그를 칭찬했다.

카멜이 좌중을 둘러보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흠, 어스 경이 왔으니 그에게 정찰을 맡겼으면 합니다. 다들 보았다시피 어스 경의 능력은 이러한 상황에선 더욱더 빛나는 능력이지요. 추기경님을 발견하거나, 아님 보스를 발견하는데 있어.”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그의 능력을 보았고, 던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들을 발견하기까지 했으니 누구도 카멜의 말에 다른 의견을 달지 않았다.

“저는 찬성입니다.”

슈리에 후작을 시작으로 다들 카멜의 뜻에 찬성했다.

어스는 내심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럼 전 곧장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우린 여기서 숙영지를 차리는 것으로 합시다.”

회의 결과에 원정대는 모두 기뻐했다.

지긋지긋함을 넘어 끔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동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앞날에 펼쳐진 가시밭길을 걷어준 은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 어스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블링크를 시전했다.

‘이젠 대놓고 펼칠 수 있겠네.’

비밀을 가진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완벽하게 감출 수 없는 비밀, 블링크와 같은 경우 더더욱 그러했는데 이참에 완전히 공개하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심정이었다.

* * *

던전에 휘말려서 실종된 사람은 에스터 추기경을 포함하여 수십 명에 이른다.

이는 어스 입장에선 다행이다.

사구와 사구 사이의 골짜기와 사구의 그림자에 사람이 있을 경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사람이 있어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구의 정상이나 그 근방이면 쉬이 발견할 수 있겠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누구도 그곳을 원치 않을 것이다.

강렬한 햇볕에 말라죽고 싶지 않은 이상.

때문에 어스의 수색작업은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망할, 걸려도 하필 모래사막 지형인 거야.’

원정대와 인사를 나누고 수색에 나선 지 1시간, 그가 돌아다닌 거리만 해도 지난 3일간 원정대가 이동한 거리보다 몇 배에 달했다.

잠시 수색을 중단하고 사구의 정상부에 착지했다.

포션만 연속으로 냅다 들이키다 보니 속도 좋지 않은데다, 오줌도 마려웠다.

졸졸졸.

달궈진 모래 위에 뿌려진 소변은 금세 말라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보고만 있어도 욕이 절로 나온다.

이런 곳을 얼마나 돌아다녀야 할는지.

‘이러다 보스부터 먼저 발견하겠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방향을 그쪽으로 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보스만 처리하면 어차피 던전 내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배출 되니까.

단 시체는 배출되지 않는다.

시체마저 배출된다면 좋을 텐데.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죽으면 그냥 시첸데 왜 꼭 찾아야 한다는 건지.’

거하게 장례 지냈다고 생각하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에스터 추기경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자신의 뒷배는 레이몬드 사제이고, 그런 레이몬드 사제의 뒷배는 에스터 추기경이기에.

막막한 심정에 사방을 둘러보던 어스의 눈에 휘날리는 옷자락이 들어왔다.

맞은편 사구 중심부근이었다.

블링크를 통해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이동한 어스는 서둘러 모래를 파냈다.

옷자락의 주인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미라처럼 바싹 마른 상태였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스는 주변도 파기 시작했다.

화상이라도 입은 듯 손이 따끔거렸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수통의 물로 손을 식힌 뒤 모래를 팔 도구가 있는지 살폈다.

‘삽이 왜 있지?’

삽을 넣었던 기억은 없는데.

아무튼 쓸 만한 도구를 발견했기에 의문을 뒤로하고 어른 손바닥만 삽날로 모래를 걷어냈다.

마법 로브를 입고 있음에도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 땀도 고개를 잠시 들면 이내 말라버렸다.

피부 상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모래라 삽질은 그래도 쉽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또 한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소년과 그보다 두 살쯤 어려 보이는 소녀였다.

두 아이는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시체는 사구의 한쪽 면에서만 나왔다.

혹시나 싶어 다른 면을 파보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일단 휩쓸린 사람들이 이곳에 먼저 떨어졌다고 봐야겠군.’

죽은 이들은 안됐지만 덕분에 단서를 얻었기에 어스는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소리까지 내질렀다.

“추기경님, 에스터 추기경님!”

* * *

햇볕을 피해 골짜기에 누워 있던 한 인영이 돌연 눈을 부릅뜨며 몸을 일으켰다.

나이는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사막의 신기루는 들어보았지만, 환청이라니……. 나도 이제 갈 때가 된 것인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한숨짓는 여성은 솔론 왕국을 발칵 뒤집은 실종 사건의 주인공인 에스터 추기경이었다.

“추기경님, 여기 계십니까? 살아 있으면 대답 좀 하세요!”

‘화, 환청이 아니다!’

자신도 다른 이들처럼 갈 때가 된 것인가 싶어 낙심했던 에스터 추기경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모래언덕을 기어 올라갔다.

햇볕에 그을려 손발이 엉망이었지만 지금은 이를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겨우 사구 정상부에 도착한 에스터 추기경은 마른 숨을 힘겹게 몰아쉬며 사방을 살폈다.

목소리를 쥐어짜보았지만 갈증으로 인해 목이 다 갈라진 상태라 뜻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답답했지만 자신을 찾는 자들이 이대로 사라질까싶어 불안한 에스터 사제는 신성력을 끌어올려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독한 더위와 그 못지않게 지독한 추위로 인해 사람들이 속속 죽어 나가고도 지금껏 버틴 건 바로 이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를 쥐어짜느라 더 아팠던 목이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해졌다.

“살려 주시오!”

룬이 아닌 사람을 향해 이처럼 간절하게 외쳐 본 지가 언제였을까? 30년은 더 된 것 같았다.

살려 달라는 말을 해본 것이.

이후 이 말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 자신에게 하던 말이었다.

살려달라, 도와 달라, 용서해 달라, 잘 부탁한다 등등.

그러니 어색해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 따윈 조금도 들지 않았다.

“살려 주세요!”

자신에게 아직도 이런 절박한 호소의 감정이 남아 있었나 싶어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목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걸까? 저 사구 반대편에 있는 것일까? 온통 사구다 보니 대체 어디를 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에스터 추기경의 행동은 무의미했다.

허공이기에.

“에스터 추기경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에스터 추기경은 이번에도 헛다리를 짚었다.

왜? 바로 앞 경사로에 목소리의 주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내린 에스터 추기경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볼 수 있었다.

연두색 로브 차림의 소년을.

“누, 누구?”

“에스터 추기경님 맞으세요?”

“마, 맞는데…….”

“다행이다, 정말 다행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성기사 어스라고 합니다. 추기경님.”

“그, 그대가?”

“목마르시죠? 여기 물부터 드세요. 한 번에 다 드시면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조금씩 드세요.”

추기경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부터해서 입술까지 바싹 말라버린 상태다.

앞서 본 시체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였다.

수통을 받아든 추기경은 정신없이 마셨다.

하나 곧 뱉어냈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파서였다.

그러나 이 생생한 고통이 오히려 추기경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고통은 산자의 것이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선물이기에.

“괘, 괜찮으세요?”

“괘, 괜찮네. 괜찮아. 내 경을 초대하고서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그런데 내 아…… 아니, 레이몬드 사제도 혹시 던전에 들어왔나?”

왠지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숨 돌리자마자 먼저 찾는 사람, 당연히 추기경에게 비중 있는 인물일 테니까.

‘대체 어떤 사이지?’

뇌물로 이어진 사이라고 보기엔 추기경의 태도가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추기경님의 소식을 듣자마자 쉬지 않고 말을 달려온 레이몬드 사제는 던전 앞에서 대성통곡했지요. 당시 레이몬드 사제는 당장이라도 던전에 뛰어들 기세였습니다. 말리지 않았다면 필시 그러했을 겁니다. 그 모습에 좀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말해서 그렇지만 제가 알던 레이몬드 사제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이 말이 정답인 듯했다.

추기경이 눈물을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근거로 확신했다.

둘은.

‘필시 연인관계야!’

어스는 속내를 감추며 추기경을 위로했다.

곧 감정을 추스른 에스터 추기경은 그제야 어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자신이 실종되고 난 이후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어스는 그간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원정대가? 오! 룬이시여. 가세 당장 그곳으로.”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쉽게도 그건 어렵습니다. 그곳까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추기경님의 소식을 전하고 곧장 달려오겠습니다.”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추기경은 겁이 덜컥 났지만 연륜과 경륜은 가짜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회복했다.

그러나 추기경의 평정심은 곧 흔들렸다.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가까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에스터 추기경은 탄식하고 말았다.

희망이 절망으로 변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추기경에게 어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추기경님,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놈들을 쫓아내고 오겠습니다.”

고개를 위로 살짝 든 어스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고, 에스터 추기경은 모든 일이 꿈이 아닐까 싶었다.

그에 제 다리를 꼬집으려던 순간 폭음과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이 모든 게 현실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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