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24화 (124/250)

124화

초저녁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거센 바람을 동반하며 그 기세가 사뭇 사납게 변하였다.

콰르르르릉, 번쩍!

짙은 어둠과 사나운 바람을 가르며 작렬하는 새하얀 섬광이 대저택 정원수를 반으로 쪼갰다.

그 소리가 채 사라지기 전 저택 내 한 곳의 문이 미동했다.

똑똑.

“누구냐?”

“바론입니다.”

“들어와.”

뱀처럼 차가운 인상의 바론이 실내로 들어왔다.

바론은 번개의 섬광을 등지고 앉아 있는 오만한 인상의 남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뒤 예를 표한 뒤 몸을 바로 세웠다.

“동행은 일남일녀입니다. 아직 그들의 신분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일남일녀?”

“예, 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과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잡니다.”

“달랑?”

“그렇습니다.”

“왕도까지 기어 올라가서 대동한 자가 고작 핏덩이와 계집이 전부라고?”

“예.”

“그년이 그럴 년이 아닌데……. 혹시, 미행을 눈치채고 진짜는 따로 움직이는 건 아니고?”

“저희가 파악한 바로 도리아 영애가 접촉한 인물들 중 팔 할이 영애의 부탁을 거절했음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이 할의 경우 파악이 되지 않아 감시를 붙였습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연락이 왔을 겁니다.”

“그들이 일주일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그땐 철수시켜.”

“예.”

“그럼 그년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자유 마을의 그놈들뿐인가?”

“그놈들의 실력이 제법이긴 하지만 6띠 던전에서 힘을 쓰기엔 크게 부족합니다. 도리아 영애 역시 이를 감안하고 왕도행을 택했습니다. 제 생각으론 백작님의 시험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그럴까?”

“영애에겐 자유 마을이 있지 않습니까? 빈털터리로 쫓겨날 상황이면 모를까 자유 마을이란 기반이 있는 이상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있지만. 지금껏 지켜 본 그년은 결코 그리 쉽게 물러날 년이 아니야. 분명 왕도에서 뭔가를 손에 넣은 게 확실해.”

“상대는 6띠 던전입니다. 소드 마스터나 대마법사를 영입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상댑니다. 제 아무리 수완이 좋더라도 영애가 그들을 영입할 확률은 희박합니다.”

“희박할 뿐 전무는 아니지.”

바론은 홀튼 하우든이 자신의 이복 여동생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의식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홀튼의 외가는 명망 있는 귀족가문인데 비해 도리아의 외가는 계승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미천한 평민 집안이다.

처음부터 홀튼의 상대가 아닌 것이다.

차라리 평판이 바닥까지 주저앉은 2공자를 신경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정 걱정되신다면 두 번째 안을 실행하겠습니다.”

“역시, 그 편이 깨끗하겠어. 참, 그년이 어스 마법사 집을 기웃거렸다고 하지 않았나?”

“그를 만났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아까 동행 중인 남자가 십 대 중반이라고 하지 않았어?”

“설마, 그가 마법사 어스라고 생각하십니까?”

“둘이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 만약, 그년과 동행하고 있는 꼬맹이가 그 녀석이라면 두 번째 안은 최악의 자충수가 돼. 그는 교단의 인물이니까.”

일국의 왕조차 교단의 인사는 건드리지 않는다.

하물며 정식 백작도 아닌 후계자중 하나에 불과한 처지에 교단의 인물을 건드린다? 그건 자살행위였다.

“그 소년의 정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가 봐.”

홀로 남은 홀튼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밖을 내다보며 주먹을 연방 쥐락펴락했다.

‘세 번째 안을 짜야 하나?’

최악의 경우를 산정하기로 마음먹은 홀튼은 마법 통신구를 빼들었다.

* * *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력한 폭풍우가 걷히자 거대한 쌍무지개다리가 하늘가에 자리했다.

아침을 먹은 일행은 마차에 올랐다.

이틀을 묵었던 소도시를 나와 2시간을 달린 마차는 상단 행렬이 길을 막고 있어 그 자리에 멈춰야만 했다.

마부가 그 이유를 알아보고 돌아왔다.

“아가씨, 아무래도 길을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죠?”

“폭풍우에 불어난 물에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이곳에서 우회할 만한 곳이 있나요?”

“저 앞의 상단이 우회로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저 행렬을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죠.”

“그럼 우회하겠습니다.”

움직이지 않던 마차는 20분이 지나서야 움직였다.

비 온 다음 날의 진창처럼 된 비포장길로 움직이다 보니 흔들림이 심했다.

사물이 멈추지 않고 좌우상하로 움직이자 30분이 되지 않아 어스는 멀미를 느꼈다.

“자, 잠깐.”

어스는 급하게 마차 벽을 두드렸다.

그에 마차가 멈추자 어스는 잽싸게 뛰어내렸다.

하필 발을 디딘 곳이 진창이라 바지는 엉망이 되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웨액!

‘쪽팔리게 이게 뭐람.’

고공에서 낙하를 밥 먹듯이 했는데, 고작 흔들리는 마차로 인해 멀미라니.

속에 있는 걸 모두 비워내자 속은 편해졌지만 여파가 완전히 가진 게 아니었기에 도저히 마차에 오를 수 없었다.

비포장이 끝날 기미라도 보이면 참아보겠지만 앞에서 움직이는 상단 행렬을 보니 파도 심한 날의 돛단배처럼 좌우로 요동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속이 미식 거렸다.

“괜찮으세요? 어스 경?”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한동안 길이 이럴 것 같은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따로 움직여야지.

“저 먼저 가 있을 테니 두 사람은 따로 오는 게 어떨까요?”

“그럼 자유 마을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주도가 아니고요?”

“예.”

“그렇다면 자유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죠.”

“촌장에게 연락해 둘 테니 거기서 쉬고 계세요.”

“그러죠. 푸리엘 넌 어떻게 할래?”

“마차로 이동하겠습니다.”

푸리에의 말은 의외였다.

‘도리아 영애를 거북해하던 게 아니었나?’

의아했지만 당장은 흔들리지 않는 곳이면 머리부터 대고 싶었기에 그러라는 말과 함께 어스는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자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바라보던 마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문으로 듣긴 들었지만 막상 보니 엄청나군요. 어스 경의 경호가 쉽지 않겠어요.”

“까다로운 고용주죠.”

두 사람은 곧 마차에 탑승했다.

마차는 또 다시 심하게 요동치며 느릿느릿 움직였고, 왕도부터 따라붙은 미행자는 자신이 본 내용을 상관에게 보고했다.

아니, 하려다 목에 닿은 날붙이의 서늘함에 마법 통신구에서 손을 떼야만 했다.

“천천히 돌아서.”

그 말에 따라 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돌아선 남자의 동공이 놀란 심정을 담고 확대했다.

남자를 제지한 이는 푸리엘이었다.

“바, 방금 마차를 탔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질문은 내가 한다. 우릴 미행한 이유가 뭐지?”

푸리엘이 미행을 눈치챈 건 폭풍우를 피해 소도시에 들어간 그날부터였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다.

여관은 공공장소니까.

하지만 매 끼니때마다, 그것도 시간대가 들쑥날쑥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식당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푸리엘은 남자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번 술을 시키고도 남자는 이를 마시지 않았으며, 음식 역시 꽤 시간이 지난 듯 식어 있었다.

그때부터 푸리엘은 남자를 감시했고 오늘 손을 썼다.

그녀가 오늘에서야 손을 쓴 이유는 미행자가 이 남자 하나인지 아니면 다른 이가 또 있는지의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슨 미행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저 역시 길이 막혀서 우회하던 중입니다.”

“마법 통신구는 뭐지?”

“그, 그야 상인이니까 고객에게 늦어지는 사유를 알리려던 겁니다.”

“입은 거짓을 말해도 몸에 배어 있는 흔적은 거짓을 말하지 않지.”

푸리엘의 눈이 남자의 손을 보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길을 좇아 자신의 손을 응시한 남자는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인정한 순간 남자는 지체하지 않고 살수를 펼쳤다.

조건반사처럼 말이다.

쉭쉭.

작은 단검이 남자의 소매에서 튀어나왔다.

두 사람의 거리는 고작 1미터에 불과했기에 단검이 튀어나온 속도를 감안하면 백이면 백, 그 단검을 얼굴과 목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 푸리엘은 이 상황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표정변화 없이 고개만 움직여서 부지불식간의 암수를 모조리 피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잘렸을 뿐이었다.

남자, 아니 미행자의 두 눈이 커졌다.

비장의 한 수가 실패한 것에 놀란 것이다.

푸리엘은 남자를 향해 접근했다.

한 자루 단검을 쥐고서.

미행자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기에 실패로 인한 감정을 단숨에 날리고 즉시 대응했다.

미행자의 두 손엔 방금 소매에 숨긴 장치로 날린 단검보다 조금 큰 단검 두 자루가 각각 쥐어져 있었다.

초급전거리에서 전광석화와 같은 접전이 펼쳐졌다.

아니, 일방적인 싸움이다.

푸리엘이 쥔 한 자루의 단검이 기묘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미행자의 단검 두 자리를 단숨에 무력화 시켰다.

슥슥.

단검을 쥔 미행자의 손목 근육이 잘렸다.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자 미행자의 단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미행자는 근육이 잘린 고통은 물론 손에서 단검을 놓쳤단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순간 발목 근육에서 열감을 느꼈다.

“……!”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푸리엘은 어느새 남자의 뒤에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린 남자는 푸리엘의 일부만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지 근육 중 발목 근육이 잘리면서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쓰러진 미행자가 입이 움직였다.

그것은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나온 신음이었다.

미행자의 목 뒤를 발꿈치로 가격하여 기절시킨 푸리엘, 그런 그녀의 곁으로 도리아가 다가왔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푸리엘의 모습은 도리아에게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잔가요?”

끄덕.

“일단 마차로 이동하죠.”

그녀의 말에 푸리엘은 미행자의 머리채를 잡고 주저 없이 움직였다.

이를 본 도리아는 그녀의 과격한 행동에 잠시 멈칫했으나 곧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였다.

도시나 마을처럼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무너지면서 우회하는 자들이 더러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 모두 눈뜬장님이라도 된 듯 이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가 워낙 짧게 이뤄진 것도 이뤄진 것이지만 그보단 푸리엘과 계약한 희귀한 안개의 정령이 전투 전에 미리 손을 써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속이 불편했던 어스는 탁 트인 시야와 찬 공기를 통해 멀미 기운을 모조리 털어낼 수 있었다.

고공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육체는 곧 블링크를 통해 매번 고도를 회복하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어느덧 어스는 눈에 익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괴물 마법사라는 이명을 선사했던 자유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도리아의 말처럼 곧장 촌장의 저택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전직 금패 용병인 노바가 운영하는 쌍도끼 여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참고로 노바는 거너에겐 정신적인 지주이자,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딸랑.

저녁 장사까지 아직 서너 시간 남은 상황이라 주점과 식당을 겸하는 1층은 손님하나 없었다.

“어스?”

“오랜만이네요. 노바.”

“이야, 네가 여긴 웬일이냐?”

현역 시절에 비하면 군살이 많이 붙어 있다곤 하지만 타고난 체구가 워낙 크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노바 앞에선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그런 남자가 지금 앞치마를 입고 음식재료를 다듬다가 어스를 맞이했다.

“노바가 요리하는 닭구이가 생각나서 왔죠. 그런데 마을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네 이야…… 흠흠, 이제 반말하면 안 되겠지? 성기사님인데.”

“존대는 무슨 편하게 하세요. 그런데 그 이야긴 어떻게 알았대요?”

“여기 자유 마을이야 별의별 놈들이 다 모이는 곳인데 괴물 마법사 소문쯤이야. 아무튼 반갑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바와 악수를 끝낸 뒤 자리에 앉은 어스는 여관까지 오며 보았던 마을 분위기를 떠올렸다.

“마을 분위기가 전과 달리 가라앉아 있던데 무슨 일 있어요?”

“하우든 가에서 마을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통보했어.”

의외의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침묵의 숲을 접하고 있는 자유 마을은 숲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하나둘 모인 용병들이 세운 마을이었다.

그 필요성에 의해 마을이 정식으로 인정 받을 때 하우든 가문과 협상하여 자유 마을로 인정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통보는 하우든 가의 계약 위반이다.

계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용병들에게 있어 이는 분노를 유발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백작 가문이었기에 섣불리 칼을 빼들 수도 없었다.

‘도리아 영애도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아무래도 이 일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마침 그녀의 번호도 받았으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