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콰르르릉, 번쩍!
32번째 콜 라이트닝이 검은 사슬 나가의 신기에 가까운 방어술을 뚫고 보스의 신체를 타격했다.
그 힘에 휘청거린 보스에게서 드러난 약점을 향해 콜 라이트닝이 파고들어 더 큰 피해를 안겼다.
33번째 콜 라이트닝이 놈에게 안긴 피해는 몹시 컸다.
놈의 단단한 비늘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곧 잡겠네.’
철옹성에 저장할 수 있는 마나는 총 1만이다 이를 콜 라이트닝 스킬 하나에만 사용할 경우 마나 충전 없이 한 번에 50회를 시전할 수 있다.
33번째 공격에서 저처럼 눈에 띄는 피해를 입힌 이상 남은 열일곱 번의 공격이면 충분히 놈을 처치할 수 있으리라.
어스의 성격상 남은 횟수만 믿지 않았다.
틈틈이 포션을 들이켜며 수시로 철옹성에 마나를 충전하고 있었다.
최소 60퍼센트 이상은 유지하였다.
때문에 실제 콜 라이트닝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17회 이상이다.
그러니 어찌 그가 여유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나가의 보스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건 아니다.
놈 역시 그를 공격했다.
그것도 몹시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력한 한 방일지라도 상대를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듯, 놈의 공격은 번번이 실패했다.
놈의 공격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블링크를 통해 어스의 위치가 수시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놈의 공격은 마나만 확보되면 무한대로 연사가 가능한 어스와 달리 공격을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시간이 문제일 뿐 사실상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번쩍!
번쩍!
번쩍!
“캬아아아아아-!”
이를 증명하듯 보스는 긴 비명을 끝으로 쓰러졌다.
-검은 사슬 나가의 보스 하르피아를 처치했습니다.
-1만 코인을 습득합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4를 습득합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획득합니다.
-아이템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이템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아이템은 고위 던전 보스를 사냥하면 높은 확률로 떨어진다.
6띠 던전이면 현존하는 가장 높은 등급의 던전이다.
어스의 입에서 즐거운 감탄성이 터졌다.
“습득!”
이번 아이템은 철옹성에 부디 적용 되는 것이길.
-해당 아이템과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철옹성은 이번에도 상성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펫 시쿠는?
-해당 아이템과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시쿠에게도 적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젠장!’
거친 생각이 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딱히 힘들게 잡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 줄 수단을 보고도 취할 수 없으니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 * *
“던전 입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스 경이 원정에 성공했습니다!”
“오오!”
“역시, 어스 경이다.”
6띠 던전 단독 원정은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 원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여담이지만 사실 이번 원정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었다.
그런데 그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깨고 그가 성공하였으니 이번 일을 기화로 어스의 가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던전 입구가 사라진 자리에 어스가 서 있었다.
철옹성을 한손에 쥐고서.
“어스 경! 내 자네가 해낼 줄 알았어, 알았다고. 하하.”
레이몬드 주교는 자신의 일처럼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각국에서 나온 이들은 서둘러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런가? 설마, 부상?”
어스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레이몬드 주교는 즉시 힐을 시전했다.
거푸.
“이, 이제 어떤가?”
어스는 아이템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내며 웃어 보였다.
이에 레이몬드는 자신이 어스에게 도움이 된 것이라 생각하며 크게 기뻐했다.
“성기사와 디콘은 뭐 하는 건가! 어스 경을 호위하라!”
가만 지켜보는 성기사와 디콘을 향해 레이몬드 주교가 소리쳤다.
이내 두 사람의 주변은 인의 장벽이 세워졌다.
이로 인해 어스와 말 한마디 나누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각국의 고위 귀족들은 그와 말 한마디 섞지 못한 채 떠나는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닭 쫓던 개처럼 말이다.
* * *
어스의 명성은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다.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던전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나라에선 교황청, 아니 에스터 추기경을 만나기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았다.
전날 헥터 왕국 왕도에서 벌어진 던전 브레이크 사태로 헥터 왕국이 입은 피해를 그들도 모르지 않기에 다들 그 일에 사활을 걸었다.
에스터 추기경처럼, 레이몬드 주교 역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스 역시 바빴다.
헥터에 있던 가족과 지인들이 드디어 솔론으로 넘어온 것이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은 그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저택이 워낙 크다 보니 노른과 그 가족만으로 저택을 관리할 수 없어 새로 고용인을 뽑았다.
솔론 왕국의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제야 어스는 이사 기념으로 가까운 지인들을 집에 초대했다.
카멜 왕자, 페어몬트, 프라이스, 하울리, 하커, 호커 형제와 레이몬드 주교까지.
다들 이사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라 안부를 수 없었다.
일국의 왕자.
유명한 학자.
천재 정령사.
마법사와 익스퍼트 기사들.
교단의 주교까지 손님으로 오자 어스의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 아들의, 제 오빠의 인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집들이 말미에 에스터 추기경이 직접 방문했기 때문이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든 집들이도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어스와 그 가족의 안전을 위해 에스터 추기경은 성기사와 디콘을 보내주려 했다.
어스는 이를 거절했다.
엘프인 알엘, 에리엘, 초이의 입장을 고려한 거절이었다.
그렇다고 저택의 경비를 그들에게만 맡길 수 없었다.
저택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어스는 앞서 고용인을 소개해준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이종족 노예 50명을 구입했다.
다들 실력이 괜찮았지만 앞서 한스의 소개로 구입한 알엘, 에리엘, 초이에 비하면 한 수 뒤지는 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들이었다.
이로써 저택의 경비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제야 어스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똑똑.
“푸리엘입니다.”
“들어와.”
“나가시려고요?”
평상복이 아닌 외출복을 입은 그 모습에 푸리엘이 물었다.
“어? 응. 글리시아에 가 보려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군요.”
“무슨 일 있어?”
“급한 일이 아니면 하루 정도 제게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푸리엘에게서 이런 요청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앉아서 이야기하지.”
“감사합니다.”
“시간을 내달라는 이유가 뭐지?”
“어스 님께 소개할 분이 있습니다.”
푸리엘은 지금껏 자신의 내력을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에 대한 경각심을 지금껏 내려놓을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었기에 더더욱.
어스의 두 눈에 순간 이채가 스친다.
“오늘 당장이어야 해?”
“가능하다면 그래줬으면 좋겠습니다.”
‘드디어 푸리엘의 내력에 대해 알 수 있는 건가?’
글리시아는 깜짝 방문이기에 루리아에겐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니 글리시아로 가는 건 당장 오늘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사이 루리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좋아.”
* * *
푸리엘과의 외출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푸리엘이 먼저 나간 뒤 한참 후에 약속 장소를 향해 블링크로 이동했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왕도에서 십수 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이었다.
그곳에서 어스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바로 위그드라실 서커스단의 단장 로엘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어스 님.”
“푸리엘의 배후가 당신인가?”
어스의 머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로엘을 처음 본 건 글리시아 남작 영지에서 북쪽에 위치한 소도시 버진이었다.
당시 만남은 우연이었다.
이후 그와 다시 만난 건 헥터 왕국의 국경 도시 헥시움에서다.
서커스 공연 중에 발생한 테러, 그 테러범에 맞서 싸우던 단원들은 아직도 그의 기억에 생생했다.
서커스단과 연관된 푸리엘, 그리고 그녀를 쫓던 성기사들.
‘혹시, 그때 그 테러범들도 성기사?’
정황상 그럴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든다.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몹시.
교단과 이단의 싸움에 휘말리면 백이면 백, 끝이 안 좋다.
더구나 자신은 저들에게 엄청난 약점이 잡힌 상태다.
푸리엘 하나 죽여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정의감이 내 발등을 찍었네, 찍었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어스의 마음속엔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하아. 이래서 위기에 처한 여자는 돕는 게 아닌데. 그 흔한 클리셰를 무시한 대가가 엄청나군. 좋아, 그래서 내게 원하는 건 뭐지? 그전에 경고하나 할게. 선을 넘는 요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일단 가족을 대피시켜야 한다.
그다음 지인들에게 자신이 처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나름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가족을 대피시킨다면 어디가 좋을까?
첫째도 둘째도 교단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당장 생각나는 건 오지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평생 살 수 있을까?
그건 가족들에게 못할 짓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역의 섬으로 갈까?’
거기도 안 된다. 그곳은 교단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교단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역시 아도니스뿐이다.
그렇다면 당장 배를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배를 구입할 수 있어도 그 또한 문제다.
솔론이 내륙 국가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괜히 이사했어, 괜히.’
어스는 푸리엘과 로엘이 이를 감안하고 행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스 님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안 믿어.
“믿지 않는군요. 이해합니다. 저라도 이런 상황이면 그랬을 테니까요.”
“닥치고 본론부터 들어가지. 내 기분이 지금 엉망이니까.”
“사실 우리의 만남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죠. 한데 그 사이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어스 님을 청한 건 어스 님의 도움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간절함이란 게 뭐지?”
“던전을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다.
던전을 처리해 달라니.
‘저들 조직의 중요한 인물이 던전에 휘말리기라도 했나?’
그렇다면 이를 빌미로 협상을…… 아니다, 의미 없다.
협상을 하더라도 저들이 다시 그 협상을 뒤집을지 누가 알겠는가.
저들은 개인이 아닌 조직이기에 더더욱 협상은 의미가 없다.
‘나 같아도 나쯤 되는 인물의 약점을 잡았는데 한번 쓰고 놔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다면 역시 가족을 데리고 아도니스로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육지에도 길이 있듯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데 배는 돈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다지만 항해사와 선원은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더구나 내륙 국가 솔론에선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시간은 벌어야 한다.
도피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결정을 내린 어스는 입을 뗐다.
“대가는?”
약점이 잡혔다고 마냥 휘둘리면 분명 만만히 볼 것이다.
어스는 이를 감안하고 말하였다.
그가 자신들에게 대가를 요구할지 생각을 못한 것일까?
로엘과 푸리엘 모두 당황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들에게 딱히 원하는 건 없다.
아니, 있긴 하다.
인연을 끊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이를 들어줄리 만무할 테니 저들 입장에서 과하지 않은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자신이 앞서 경고했듯 저들에게도 선이 있을 테니.
그래서 고민했다.
그 결과.
“열매.”
푸리엘이 자신을 고용해 주는 대가로 한 달에 한 알씩 주기로 한 열매, 위그드라실 조각을 요구했다.
이 정도면 과한 요구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몇 개를 원하십니까?”
칭호 : 위그드라실의 계승자(34/100).
“육십여섯 개.”
그냥 해본 소리다.
그런데 그냥 해본 그 요구에 대한 대답이 어스의 멘탈을 붕괴시켰다.
“드리죠.”
“……!”
몇 년, 혹은 평생이 걸려도 모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위그드라실 조각을 한 번에 다 입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전화위복인가?’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로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시간이 걸립니다.”
젠장, 좋다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