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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58화 (158/250)

158화

카멜, 프라이스, 페어몬트가 딴마음을 먹지 않아서 망정이지 만에 하나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피의 도주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교단을 결단 내든 아도니스로 이주하든 결정을 내리지 않고선 내가 제명에 못 살 것 같아.’

금으로 성을 지을 정도로 부유해 봐야, 만인의 칭송을 들어봐야 다 사상누각이다.

만취해서 떠든 이야기 중 하나만 외부로 새어나가도 말이다.

“거기서 뭐 해?”

“깜짝이야! 야! 넌 노크도 할 줄 모르냐?”

“무슨 소리야? 세 번이나 했어.”

여동생 루시의 항변에 어스는 계면쩍은 듯 연방 헛기침했다.

“어쨌건 세 번이건 백 번이건 그렇게 들어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카데미에서 그런 건 안 가르쳐? 쳇, 그보다 왜?”

평소 어스가 이처럼 삐딱하게 나오면 이에 반발했을 루시는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가지 않고 오히려 소파에 앉았다.

‘저 녀석이 왜 저러지? 부탁할 게 있나?’

방금 소리친 것도 조금, 아주 조금 미안했기에 웬만한 부탁이면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 수련 여행 다녀오면 안 될까?”

“뭐?”

“수련 여행 다녀오면 안 되냐고.”

“수련 여행? 얘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지금이 어떤 시국인지 몰라서 그래? 각지에서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한 둘 인줄 알아? 얌전히 집에 있다가 내년에 아카데미나 들어가.”

루시는 어스의 명성과 인맥에 힘입어 내년에 왕립 아카데미에 편입하기로 확정되어 있었다.

그냥 아카데미가 아닌 무려 왕립 아카데미다.

“아직 한참 남았잖아.”

“안 돼.”

“정말 안 돼?”

“어, 안 돼. 그러니 집에서 얌전히 수련해. 집에 좋은 스승이 차고 넘치는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린지. 쯧쯧. 참고로 엄마아빠 이용해서 내 마음 돌릴 생각을 하고 있다면 꿈 깨라.”

어스의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하던 루시는 대차게 까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쾅-!

“뭔 힘이 저리 좋은 거야? 하루에 소 한 마리씩 잡아먹나?”

단호하게 퇴짜를 놓긴 했지만 여동생이 워낙 혈기왕성한지라 가출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저 녀석까지 대체 왜 이러지?’

아무래도 감시를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인벤토리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낸 어스는 초이를 호출했다.

그가 방금 호출한 초이는 한스를 통해 어스가 거액을 주고 구입한 세 명의 엘프 중 하나로 그녀는 루시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엘프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호를 맡겼다.

참고로 저 셋 모두 익스퍼트이자 정령사다.

이들을 구입한 이후 어스는 가족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똑똑.

“들어와.”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거기 앉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루시 녀석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대부분의 시간을 수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외출은?”

“총 세 번입니다. 상점에 두 번, 승마장에 한 번 다녀오셨습니다.”

“특이점은 없었고?”

“예.”

“앞으로도 지금처럼 쭉 지켜봐줘. 그리고 걔가 도시 밖으로 나가려는 낌새가 보이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잡아 둬.”

“다리를 말입니까?”

“어.”

“그리하겠습니다.”

초이를 비롯한 알엘, 에리엘은 마법 계약서 하나에만 얽매인 자들이 아니었다.

거기에 고위 마법사의 세뇌 마법까지 더해진 상태다.

이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흔치 않은 짓(?)을 전 주인이 저지른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들 모두 어릴 때부터 전 주인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한마디로 막대한 투자를 받고 오늘날과 같은 능력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저들의 전 주인은 고위 마법사를 섭외하여 이중, 삼중의 세뇌 마법까지 사용했다.

본인에 이어 자손까지 저들을 사용하게 할 심산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어스에게 팔았으니 전 주인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파산 위기만 아니었다면 전 주인은 절대 저들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1억 7천만 테스가 아니라 그 돈의 10배를 줬어도.

“잘 부탁해. 그리고 내려간 김에 푸리엘을 올려 보내.”

“예, 주인님.”

초이를 내보낸 어스는 소파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곧 푸리엘이 찾아왔다.

“찾으셨습니까?”

“할 말이 있어서.”

“무슨?”

“수송선을 이용할 사람이 한 명에서 두 명 더 늘어나 세 명이 됐어. 로엘 씨에게 연락해서 세 명이 가능한지 타진해봐.”

“믿을 수 있는 자들입니까?”

“페어몬트, 프라이스, 카멜 왕자. 이들 세 명이야.”

“전 동료 분들이군요.”

“전 아니고 현재도 그들은 내겐 믿을 수 있는 동료야. 소중하단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그들의 신변안전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어. 나와 완전히 돌아서기 싫다면.”

“그들은 어디까지 알고 있죠?”

푸리엘의 말에 어스는 속이 뜨끔했다.

자신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지켜달라는 부탁을 한 주제에, 제 입으로 저들의 비밀을 까발렸으니 이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술이 원수다.

“말했잖아 그들은 내게 소중한 동료들이라고. 아니, 그들은 그 이상이야. 가족 같은 자들이니까 그들로 인해 너희가 곤란할 일은 없을 거야.”

“우린 상관없습니다. 꼬리만 자르면 되니까요. 문제는 어스 님이죠.”

“나 걱정해 준 거였어?”

“어스 님의 존재는 어스 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도 꽤 비중이 큽니다.”

‘내 능력 때문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의문이다.

아도니스엔 던전이 없으니까.

적어도 저들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반응이 긍정적이라 천만다행이다.

“결정 나면 이야기해줘. 그리고 열매는 어떻게 됐어?”

“도착하면 곧장 드리겠습니다.”

“고마워. 참, 초이에게도 말했지만 푸리엘도 내 여동생 좀 신경 써 줘. 엉뚱한 짓 못하도록.”

“루시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이 시국에 수련 여행을 가겠다고 하더라고.”

“어스 님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루시도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녀석 이제 열넷이야, 열넷. 그 나이에 반항심은 기본 옵션이라고. 자기 딴엔 제 힘에 자부심도 강하고 말이야. 그래서 더 못미더운 거야. 아무튼 부탁할게.”

“그러죠.”

푸리엘을 돌려보내자마자 마법 통신구로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서 보낸 문자였다.

‘일정이 잡혔나 보네. 마침 잘 됐네.’

역시 기분이 꿀꿀할 때는 던전만 한 곳이 없다.

적어도 그곳에선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활보할 수 있으니까.

* * *

레이몬드 주교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 도착한 어스는 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 방금 뭐라고 했어요? 성기사들을 대동하라고요?”

“어떻게 안 될까?”

“에스터 추기경님의 명령인가요?”

“나와 추기경님은 전적으로 자네 편에서,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네. 그러니 자네에게 부담스러운 일을 어찌 하겠나? 당연히 아니지.”

레이몬드 주교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 두 사람은 그의 편의를 세심할 정도로 챙겼다.

“그 말은 추기경님도 어쩔 수 없다는 거네요. 대체 누구죠? 교황님인가요?”

“추기경 회의에서 내린 결정이네.”

“그 회의는 에스터 추기경님이 꽉 잡고 있다고 전에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랬었는데 이번에 웬 떨거지 하나가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 쪽에 기운 추가 역으로 기울어지고 말았어. 이 때문에 추기경님의 분노가 매우 큰 상태야.”

‘보통 떨거지가 아닌가 보네. 에스터 추기경이 밀린 걸 보면.’

성기사들을 대동하는 것이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에스터 추기경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이번은 수락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과연 이번 한 번으로 끝날까?

“이번에 한해서죠?”

“그…….”

“알 만하네요. 일단 접수하죠.”

“오! 정말인가?”

“추기경님이나 형님을 곤란하게 할 수 없잖아요. 두 분이 내게 베푼 은혜가 작은 것도 아닌데.”

“여, 역시 내겐 자네와 추기경님 밖에 없다니까. 하하. 참, 그리고 헥터의 그 덜떨어진 왕자들이 루리아 영애를 성가시게 할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그리고 이건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글리시아를 교구에 편입하려는 논의가 오가고 있네.”

뜬금없는 이야기다.

“그게 글리시아에 좋은 일인가요?”

“흐흐. 글리시아가 교구에 편입된다면 그곳에 정규 신전이 세워져.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혹시, 텔레포트 마법진?”

“어때? 좋은 일 맞지?”

“좋은 일 맞네요. 그럼 루리아 영애도 텔레포트 마법진 이용할 수 있을까요?”

“그, 그건.”

레이몬드 주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난처하게 해 드렸나 보네. 내 말 신경 쓰지 마요. 나비가 꽃을 찾아가야지, 꽃이 나비를 찾아오게 할 순 없죠.”

“오! 사내대장부.”

“교구 편입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글리시아 같은 작은 영지를 편입하려는 의도는…… 혹시, 저 때문인가요? 제 편의를 봐주려고?”

레이몬드 주교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에스터 추기경이나 레이몬드 주교 모두 주고받는 게 확실한 사람들이라 이 점은 좋군.’

“참, 이거 받게.”

“이건 뭐죠?”

“루리아 영애를 피곤하게 만든 왕자들이 사과의 의미로 건넨 선물이네.”

세상 천지에 왕자를 상대로 삥을 뜯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륙 전역을 뒤져도 손에 꼽을 것이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바로 앞에 있었다.

어스는 사양하지 않고 공간 주머니를 챙겼다.

“원정은 언제 가면 돼요?”

“이틀 후네. 장소는 트리온 왕국 중부 도시 하뮬이란 곳일세.”

“트리온?”

“왜? 그 나라에 악감정이라도 있는 건가?”

노예 해방 연합의 수송선이 정박하는 중요 거점이 있는 왕국이 바로 트리온이다.

하지만 트리온 왕국이 작은 마을도 아닌 이상 이번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건 과한 생각이다.

“아뇨.”

“식사라도 할 텐가? 내가 요즘 다니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가 끝내주더라고.”

“다음에요.”

사무실을 나선 어스는 그길로 거너 명의로 오픈하기로 한 가게가 있는 번화가로 걸음했다.

헥터 왕국을 떠날 때 급히 처분했던 가게보다 이번에 오픈하는 가게의 규모가 몇 배 크다.

그곳에 포션 공방도 자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어스는 교단에서 자신에게 지급하는 포션을 조쉬의 공방을 통해 공급받기로 레이몬드 주교를 내세워 조율을 끝마친 상태였다.

더해 에스터 추기경의 영향권 아래 있는 세력에도 조쉬 공방의 포션을 공급하기로 이미 이야기를 마쳤다.

‘이래서 권력, 권력 하는가 보다.’

막대한 로비 자금과 인맥이 없고서야 불가능한 이권이다.

그러한 이권을 어스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 한마디로 따냈다.

내 지인이 운영하는 공방이 있는데 요즘 힘든가 봐요.

그 한마디로.

* * *

트리온 왕국 중부도시 하뮬.

이 주일 전 6띠 던전 하나가 이곳 중앙로에 출현했다.

이 일로 인해 인근 지역의 상권은 추락하여 파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그랬던 그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던전 파괴자가 온다니 이제 한시름 놓겠네.”

“우리 시장님이 발이 넓다더니 진짜였네, 진짜였어.”

“덕분에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어.”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어스가 온다는 날짜에 맞춰 신전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어스를 환영하기 위해.

신전 텔레포트 마법진에 모습을 드러낸 어스는 대기하고 있던 대주교와 가볍게 담소를 나눈 뒤 에스터 추기경의 자존심에 상처가 된 성기사들과 만났다.

“성기사 거스티라고 합니다.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성기사 어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천만에요. 오히려 제가 할 말입니다.”

성기사들의 숫자는 거스티를 포함하여 총 81명으로 거스티는 그들의 수장이었다.

성기사들을 대표한 거스티를 가까이서 본 어스는 거스티의 눈빛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봤지?’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필시 기억났을 터, 기억나지 않는 걸로 보아 딱히 중요한 인물은 아닌 듯싶었다.

어스는 성기사들을 대동하고서 신전을 나섰다.

그 순간 환영 인파의 함성과 꽃잎이 기다렸다는 듯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한 손에 창을 든 어스를 향해 쏟아졌다.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환영받는 삶이란.

“와아아아-!”

또한 별거 아닌 손짓 한 번에 쏟아지는 환호까지, 이 순간 만큼은 왕도 부럽지 않은 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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