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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171화 (171/250)

171화

다음 날 어스는 왕궁으로 들어갔다.

전에도 와본 곳이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성기사가 아닌 귀족의 자격으로 입궐했기 때문이었다.

대전 입구를 지키는 근위대 소속 기사가 열어주는 문 안으로 어스가 걸어갔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대전 양옆에 시립하고 있던 귀족들이 일제히 그를 응시했다.

그중엔 웃으며 인사까지 나누었던 낯익은 자들도 몇 보였다.

그래서 눈인사라도 나누려 했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시선이 곱지 않았다.

‘뭐지? 저 눈빛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이 자신을 저리 삐딱하게 쳐다볼 이유가 없었으니까.

기분이 상한 어스는 냉랭한 시선을 던진 뒤 곧장 국왕을 향해 걸었다.

정식으로 국왕을 알현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성기사의 지위를 내려놓았기에 어스는 궁정 예법에 맞춰 격식을 갖춰야만 했다.

“신 어스 테리우스 국왕 전하를 알현하옵니다.”

“오랜만이네. 어스 백작. 이제 몸은 괜찮아졌는가?”

안면이 있던 귀족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기에 내심 국왕도 그리 나오면 어쩌나 싶어 우려했던 어스는 국왕의 반응에 안도했다.

카멜 왕자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우려가 사라진 어스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선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옵니다. 전하. 이젠 몸이 다 나았습니다.”

“다행이네. 다행이야. 백작도 알다시피 대륙 전역에 피바람이 불고 있네. 경처럼 능력이 출중한 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일세. 부디, 그대의 힘으로 왕국과 대륙에 드리운 먹구름을 거둬줬으면 하네.”

“국왕 전하의 뜻을 받들어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전하.”

“든든하군, 든든해. 허허.”

코넬리 국왕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국왕 입장에선 당연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스가 교단을 박차고 나와 왕국의 품으로 들어온 이상 왕국 간 주도권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왕국들뿐이랴.

던전으로 인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단의 힘을 빌리기 위한 저자세 외교 역시 더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

단 한 명을 얻었을 뿐인데도 그게 가능해졌다.

왕국의 귀족인지, 교단이 임명한 귀족인지 그간 모호한 태도를 보인 귀족들로선 더는 교단을 등에 업고 큰소리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앞서 어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자들이 바로 그런 교단의 편에 있던 귀족들이었다.

교단의 도움이 없더라도 가장 골치인 현안을 해결할 수단이 국왕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까.

“국왕 전하의 심려를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이 고운 법이다.

그래서 어스는 국왕의 가려운 곳을 힘껏 긁어주었다.

이에 코넬리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어스를 일으켜 세우는 파격적인 행동을 보였다.

웅성웅성.

대전에 도열한 귀족들이 이에 놀랐다.

당연한 반응이다.

귀족들의 반응을 통해 어스는 국왕의 행동이 흔치 않은 행동임을 알아차렸다.

코넬리 국왕은 어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자세로 모두에게 입을 열었다.

“던전으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소. 룬께서 보호하시어 이 땅은 다른 왕국들에 비해 피해가 적다고는 하지만 아예 없지 않소. 어스 백작이 왕가를 위해, 짐을 위해 떨치고 일어났으니 짐은 어스 백작에게 명하여 이중 피해가 심한 곳부터 지원할 생각이오.”

왕가에 협조적인 귀족들부터 먼저 지원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이 이를 못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때문에 귀족들의 반응은 당연히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칼렉 왕세자에게 많은 권한을 이양했지만 솔론의 왕은 여전히 코넬리다.

그가 변심하면 칼렉 왕세자의 위치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이가 작정하고 한 발언이다.

벌레 씹은 표정을 짓던 귀족중 하나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귀족파의 수장이자 솔론 왕국이 보유한 세 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하나인 하츠 노멜 후작이었다.

또한 셋 중 최연장자이기도 하다.

“전하, 어스 백작의 사용은 응당 귀족원과 협의하여 정해야 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국왕의 말에 저리 반박하고 나서도 되는 거야?’

그제야 어스는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묘한 기류를 볼 수 있었다.

웃는 자와 웃지 않는 자를.

눈을 바삐 굴린 어스는 웃는 자보다 웃지 않는 자가 더 많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츠 후작의 태도에 코넬리 국왕의 노안에 불쾌감이 떠올랐지만 자주 있던 일이라 내색하진 않았다.

정치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통상적인 상황에선 그리해야 할 것이네. 하지만 지금은 후작도 알다시피 비상시국이네.”

“그래서 더더욱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

“뒷말이라……. 후작은 짐을 편파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짐의 왕국에 있는 모든 자들은 짐의 신하이자 백성이네.”

원론적인 말을 꺼내며 잠시 뜸을 들인 국왕은 보란 듯 천천히 대전을 스윽 둘러보았다.

노화로 인해 국정에서 한발 물러났다곤 하지만 연륜에서 오는 경험까지 퇴색한 건 아니다.

“그리고 짐은 항상 신하들과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있네. 마침, 이 자리에 어스 백작이 있으니 그의 뜻도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군. 어스 백작의 생각을 말해 보라.”

하츠 후작 역시 방금까지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자 중 하나였다.

어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연기하며 재빨리 말했다.

“신은 전하의 신하이자 백성이옵니다. 신은 영명하신 전하의 뜻을 받들 뿐이옵니다. 그러니 명하십시오. 신은 어디로 가오리까?”

그 말이 국왕의 가려운 곳을,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가려웠던 곳을 제대로 긁어 주었다.

국왕은 웃었고.

하츠 후작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하나 이 자리에서 불쾌감을 터트릴 순 없었다.

자신의 영지를 비롯하여 휘하 영주들의 영지 역시 던전과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에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라 어스의 존재는 그들에게도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만 진정된다면 내 결코 네 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 *

‘손주 재롱이나 보며 남은 인생 조용히 살 것이지 노인네가 힘이 뻗쳤네, 뻗쳤어. 흥!’

하츠 후작의 노골적인 적의를 뒤통수를 받으며 대전을 물러나는 내내 어스는 속으로 진땀을 줄줄 흘렸다.

후작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 일을 겪자 어스는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하츠 후작을 속으로 씹고 있었다.

‘체력 스탯을 더 키워야 하나?’

미분배 업적 포인트가 아직 5개 남아 있었다.

생명력 : 795/795.

현재 어스의 생명력 수치였다.

여기서 남은 포인트로 체력을 추가하면 820이 된다.

‘베로니카 단장의 무형의 압박에도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던 걸 감안하면 생명력 820도 실제 공격엔 한 방일 것 같은데.’

교단 제일검인 베로니카의 실력은 하츠 후작보단 한 수 위로 봐야 한다.

마스터들 사이에서 그 한수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어스는 하츠 후작을 무시할 수 없었다.

소드 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는 익스퍼트의 마나 소드와는 비교 자체가 이 땅에선 절대 금지인 신성모독과 동급이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이네. 칫.’

대전에서 물러난 어스는 왕세자 궁에서 칼렉 왕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스의 사용권(?)은 왕가가 쥐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귀족파를 아예 배제할 수 없다 보니 협상은 필수였다.

현재 그 협상을 왕세자가 맡고 있었다.

귀족들과의 협상은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자라면 익숙해져야 할 일이기에 이 또한 교육의 일환이다.

‘가만 보면 칼렉 왕세자보단 카멜 왕자야말로 상팔자인 것 같아. 어떻게 그런 자들과 매일 얼굴 보며 사는 건지.’

그나저나 로엘은 대체 언제 조각을 주려는 걸까?

어제 레이몬드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로엘에게 조각을 재촉했다.

거너로부터 19개를 입수하여 이제 남은 조각은 20개였기에 더더욱 애가 탔다.

‘칭호만 활성화되면 다 죽었어.’

물론 칭호가 그를 무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활성화 여부가 주는 효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지금은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그땐 입김만 불어도 치워버릴 수 있는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기에 어스는 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교단과 그리고 귀족파와의 관계가 삐걱거린 지금은 더더욱 칭호 활성화가 간절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매몰되어 있을 때 드디어 칼렉 왕세자가 그새 몇 년은 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백작.”

“아닙니다. 그보다 결론은 나왔습니까?”

던전과 몬스터는 어스에겐 성장의 양분이다.

병을 핑계로 밤에만 활동할 당시와 달리 이젠 던전을 일일이 찾으러 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고 정해준 곳만 가면 된다.

성기사 시절처럼 말이다.

‘그거 하난 좋았는데. 그러고 보니 더는 교단의 마법진을 이용하지 못할 텐데 자력으로 이동해야 하는 건가?’

철옹성의 마나 저장 기능으로 인해 전처럼 포션을 마셔대지 않아도 되어 편해졌지만 그렇더라도 블링크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건 역시 피곤한 일이었다.

“우선 서부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에 백작이 힘을 써 줬으면 하네.”

“서부 지역이면 하츠 후작의 영지가 있는 곳이 아닌가요?”

“맞네.”

어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곳이죠?”

“그곳이 왕국 3대 곡창지역 중 하나일세.”

대륙 서부는 극심한 가뭄으로 농심처럼 농작물도 말라 비틀어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농작물을 살리는 데 힘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그렇군요.”

“이해해 주니 고맙네. 참, 백작 영지의 사정은 어떠한가?”

“저희도 심각하죠.”

심각한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푸리엘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린 탓에 영지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더구나 여차하면 아도니스로 나를 마음을 먹고 있다 보니 영지에 대한 관심이 자연 소홀할 수밖에 없으니 자세한 사정을 어찌 그가 알 수 있으랴.

그렇다고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건 누워 침 뱉기라 적당히 우울한 얼굴을 하고서 연기했다.

‘나는 마법사라고! 연극인이 아니라고!’

조만간 표정 연기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자네 영지에 도움이 될 걸세.”

“혹시 식량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맞네.”

곡물 가격이 제아무리 올라도 부유한 자들은 걱정할 게 없다.

웃돈 주고 사면되니까.

반면 가난한 자들은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다.

80년 전 대기근 때처럼 부모가 자식을 팔고, 자식이 노부모를 버리는 반인륜적인 행위가 성행할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이랴.

굶주린 자들이 도적으로 돌변해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이번 같은 경우는 대기근과 비교할 수 없다.

대륙 서부 지역 한정인 가뭄이니까.

그러니 남부와 동부에서 식량을 사들이면 된다.

그러니 이때를 잘 이용하면 곡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있지만.

‘먹는 걸로 돈 벌 생각을 하면 벌 받지, 벌 받아.’

어스는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미 재력은 충분하다.

어디 손에 쥐고 있는 재력이 전부이랴.

레이몬드도 있고, 이종족 해방 연합도 그의 물주다.

“후작 영지로 가겠습니다.”

“고맙네. 어스 백작.”

“천만에요.”

“참, 혹시 카멜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왕세자 저하도 모르시는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하.”

“그런가?”

“당연하죠.”

“전 가보겠습니다. 참, 후작 영지로의 이동은 어떻게 하죠?”

“신전에 협조를 구했으니 내일 신전으로 가면 이용할 수 있을 걸세.”

앞으론 신전에 발도 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던 어스는 곤란함을 느꼈다.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안 하는 거야?’

이러한 어스의 생각은 그간 텔레포트 마법진을 손쉽게 이용한 것에서 기인했다.

실상 텔레포트 마법진의 설치와 유지는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이용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마법진의 내구력 소모를 감안하면 웬만한 나라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의 실체였다.

그러니 이를 다수 보유하고 사용 빈도 또한 잦은 이종족 해방 연합이나 교단이 대단한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내일 곧장 후작 영지로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저하.”

어스는 찜찜한 기분으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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