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요새를 향해 몰려오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이었다.
요새 성벽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턱이 바닥까지 벌어졌다.
“그, 그 많던 몬스터가 다 죽었어!”
“소문이 오히려 현실보다 못하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절대 믿지 않을 거야.”
국왕을 알현하던 그날, 어스는 왕당파 귀족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귀족파의 수장 하츠 노멜 후작과의 대립을 서슴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가 지금 귀족파의 수장 하츠 노멜 후작의 기사와 병사들에게서 찬사와 경의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츠 후작이 이를 본다면 뒷목을 잡지 않을까 싶다.
반면 성기사와 디콘들의 반응은 그들과 달리 조용했다.
그가 더는 교단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쪽에서 마나 회복을 위해 명상 중이던 마법사들도 잠시 이를 중단하고 요새 성벽에 나와 있었다.
사실 요새에 있는 그 누구보다 어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쪽은 그와 같은 직업의 마법사들일 것이다.
“이상하군, 이상해.”
“무엇이 이상하단 말입니까?”
“마법을 쉴 새 없이 시전하면서도 정작 복용한 마나 회복 포션은 얼마 되지 않기에 하는 말일세. 듣던 것과 달라서 의아해하는 중일세.”
“혹시, 그사이 경지가 또 오른 걸까요?”
“6서클 경지로도 그건 말이 안 돼. 내 스승께서 6서클이라 잘 알고 있어.”
수성전에 참여한 마법사의 소속은 다양하다.
중앙군 소속의 마법사.
영지 소속의 마법사.
교단 소속의 마법사.
그리고 각 탑에서 보낸 마법사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중 실력과 자존감이 드높은 이들은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른 마법사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랬기에 마탑 소속의 중년마법사의 말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년마법사의 말을 들어보면 어스 백작의 경지가 6서클의 경지를 뛰어넘은 마법사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마법사들도 등급이 있다.
하위, 중위, 상위, 대마법사, 현자 그리고 지난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9서클의 대현자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6서클은 대마법사의 바로 아래 등급으로, 대륙에 알려진 6서클 마법사의 숫자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평균 연령은 60대 중후반이다.
그런데 어스 백작의 경지가 그보다 높을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으니 다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경악하고 말았다.
“서, 설마 어스 백작이 대마법사의 경지라는 겁니까?”
“어스 백작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고작 열여섯에 7서클은 말이 안 되지.”
“그럼 6서클 경지로도 말이 안 된다던 좀 전 그 말씀은 무슨 의민지?”
“어스 백작의 특이 체질 역시 성장형이 아닌지 의심되어 그러네.”
“체질이 성장한다니…… 6서클을 뛰어넘는 경지보단 차라리 그 말씀이 납득이 되는군요. 그럼 어스 백작이 한동안 아파서 활동을 전면 중단한 건 일종의 성장통이 아닐까요? 어스 백작과 비슷한 유형의 특이 체질은 단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정작 특이 체질의 당사자인 어스 백작 본인도 이를 몰라서 자기 자신이 큰 병에 걸렸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법사들이 마법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그리고 해당 사안이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유의 것이라면 더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고 흡사 학회에 참석한 학자처럼 진지하게 이를 고찰하고 있었다.
단 한 무리만 제외하고는.
교단 소속 마법사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경직되고 있었다.
저자의 말이 맞는다면 지금 교단 내에 돌고 있는 어스 백작에 관한 소문이 모두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어스 백작이 사직한 이유가 에스터 추기경에게 힘을 실어주어 교황의 뜻을 꺾으려는 정치적인 술수였다는 그 소문이 뒤집어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검사들의 저격인가?’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던데, 혹시 이번도 그 같은 경우일까?’
검사와 마법사 모두 성기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마법사 계열 성직자들은 검사 계열 성직자들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어스는 교단 마법사들에겐 오랜 관행을 깰 수 있는 희망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어스가 사퇴하자 이에 실망한 마법사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소문과 달리 특이 체질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교단은 다시 어스를 품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몬스터를 쓸어버린 어스가 다시 요새 성벽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향한 사람들이 시선이 뜨겁다.
그 시선은 이내 그보다 더 뜨거운 함성으로 이어졌다.
“괴물 마법사 만세! 만세!”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어스는 잠시 이를 즐긴 뒤 춤추는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입을 열었다.
“요새 책임자는 누구죠?”
그의 말에 한 남자가 즉각 튀어나왔다.
“거아스 노틸 남작입니다. 제가 요새의 사령관을 맡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스 테리우스 백작입니다. 국왕 전하의 명을 받들어 노멜 후작 영지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다 보니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말입니까?”
어스는 검지를 펴 상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에서 살펴보니 본대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몬스터들이 있더군요.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말을 달리면 대략 1시간쯤 되는 거리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놈들만 정리하면 요새는 안전할 겁니다.”
“놈들을 요격하실 생각이십니까?”
“전장이 이곳뿐만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일 생각입니다.”
어스의 말에 거아스 남작은 감탄했다.
곧 이동을 하려는 어스의 모습에 마법사들이 안달했다.
지금이 아니면 그와 대화할 기회가 없을지 모르기에.
그러나 그들보다 더 애를 태우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교단 소속 마법사들이었다.
그러나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과 달리 그들은 성기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은 있어도 몸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우연히 그들의 표정을 본 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교단 소속인데 왜 나를 저리 보는 거지?’
왕도 신전에 갔을 때 받았던 싸늘한 시선과는 사뭇 다른 시선에 내심 의아했다.
하지만 교단과는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어스는 교단 소속 마법사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어, 어스 백작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참, 제 소개가 늦었군요. 푸른 뇌전 마탑 소속의 카일 로틴입니다.”
마법사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을 테지만 이젠 당시와 사정이 달라졌다.
“전장이 이곳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조금도 지체할 수 없군요.”
“그, 그렇죠.”
“후일 왕도에 오신다면 제집에 들러 주세요.”
“저, 정말입니까?”
어스가 교단 소속일 때는 교단의 눈치가 보여 접근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교단을 나왔기에 더는 교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카일 로틴을 비롯한 각 마탑의 마법사들은 물론 영지 소속 마법사들 역시 그와 친분을 나누기 위해 경쟁했다.
성기사로 활동하던 당시와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었다.
‘마법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열성적이었지?’
의아했지만 어스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교단에 미운털이 박힌 입장에서 친구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럼 전 이만.”
좌중을 가볍게 둘러본 어스는 곧장 블링크를 시전하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쫓아가서 백작님의 활약을 보고 싶은데 아쉽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초대를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어스와 개인적인 친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들떠 있는 반면 교단 소속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불만에 찬 표정으로 한숨만 쏟아내고 있었다.
* * *
노멜 후작 영지 서부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몬스터 웨이브의 주범인 보스 몬스터에 떨어진 콜 라이트닝.
이를 연속으로 얻어맞은 보스는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당한 것이 억울한 듯 노성을 터트리며 무너졌다.
그 순간 한동안 정체되었던 어스는 레벨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레벨업.
-업적 포인트 3을 획득합니다.
이제 어스의 레벨은 68이 되었다.
보스를 처치하여 습득한 보너스 업적 포인트까지 더해지자 업적 포인트는 6이 되었다.
현세의 몬스터와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까지 대부분 처치했기에 코인도 꽤나 많이 벌 수 있었다.
위그드라실의 계승자 칭호가 머나먼 이야기였다면 스킬 강화에 코인을 썼겠지만 칭호 활성화까지 남은 조각의 숫자가 20개에 불과하였기에 코인은 건드리지 않았다.
코인 : 1,397,862.
‘7서클 스킬 하나 구입할 자금이네.’
어스는 6서클 스킬은 아예 건너뛰고 상위 스킬인 7, 8, 9스킬을 구입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였다.
때문에 7서클 스킬 이후의 스킬을 구입하기 위해선 코인을 열심히 벌어야 했다.
8, 9스킬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무려 1억 1천만 코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원정에선 보스만 잡아서 될게 아냐.’
귀찮더라도 일반 몬스터까지 싹 잡아야 된다.
갈 길이 멀다, 참으로.
상태창을 닫기 전 어스는 6포인트 모두 체력 스탯에 분배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어스는 영지 동부를 향해 움직이려다 멈칫했다.
마법 통신구가 반응하였기 때문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어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로엘 씨네.’
앞서 그에게 위그드라실 조각을 되는 대로 다 달라고 연락을 넣었었다.
일전에 말한 숫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혹시 그에 대한 답일까?
어스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수신을 열람했다.
그런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열흘, 열흘만 기다리면 된단 말이지. 크하하하하하-!”
* * *
어스가 떠난 뒤, 솔론 왕도에 위치한 신전이 폭삭 내려앉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인명피해까지 발생하여 왕도 전체가 난리였다.
당연히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하던 칼렉 왕세자 역시 이 일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 그를 더글러스 부단장이 찾아왔다.
“왕세자 저하, 어스 백작에게서 통신이 왔었습니다.”
“후작 영지에 도착했다던가?”
“아닙니다.”
“하긴, 왕도에서 노멜 후작 영지까지 꽤 먼 거리니 제아무리 어스 백작이라도 힘들겠지. 그래, 지금 어디쯤이라던가?”
칼렉 왕세자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하였다.
그 감정은 어스에게 향한 것이 아닌 교단을 향한 것이었다.
동맹으로서 협조를 약속한 교단이 이를 깨고 텔레포트 마법진 사용을 막은 것이 왕세자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도 힘들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발걸음을 돌린 건 당사자인 어스 백작이었으니까.
“그게 아닙니다, 왕세자 저하.”
“응? 그게 무슨 소린가?”
“벌써 도착하여 몬스터를 모두 정리했다는 보곱니다.”
“고작 하루 만에 그 일을 끝냈다고?”
“그렇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후작 영지에 지원 나간 중앙군과도 연락을 취해 본 결과 어스 백작의 보고가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확인까지 끝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칼렉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백작의 몸은 괜찮다던가?”
“보고에 의하면 부상은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그런데 어찌 고작 하루 만에, 아니 하루도 안 되어 그런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거지? 부단장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어스 백작이 성기사로 활동할 당시 본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도록 교단이 손을 썼던 게 아닐까 의심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희가 조사한 어스 백작의 역량과 이 상황은 들어맞지 않습니다.”
칼렉 왕세자는 더글러스 부단장의 말을 곱씹은 다음 입을 열었다.
“교단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어스 백작을 자제시켰을 수도 있겠군.”
더글러스 부단장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내내 교단 제일검의 행보가 의아했는데 이제야 납득할 수 있겠군. 최악의 경우…… 백작을 제거하려 들 수도 있겠어.”
왕세자의 표정은 침통하게 변하였다.
교단의 진의가 만약 그러하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제아무리 교단이라곤 하지만 대놓고 그리하진 못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상대가 연합한 왕국이면 수단을 강구할 테지만 교단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손쓸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두 사람 모두 이를 잘 알기에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