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오우거는 인간들에겐 재앙으로 취급된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 덩치에 걸맞은 괴력에다 그 가죽은 물리적인 공격이나 마법적인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그런 놈들이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모여 이동 중에 있었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일 수 없다.
왜냐면 오우거는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무리를 짓고 사는 몬스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짝짓기를 시작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한 몬스터가 저처럼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보겠는가.
필시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놈들일 것이다.
쾅쾅쾅쾅-!
일반적인 파이어 버스터보다 위력이 강한 어스의 파이어 버스터지만 죽이진 못하고 고작 피해를 남기는 것에 그쳤다.
‘한 방엔 못 죽이네. 역시 오우거라 이건가?’
그래도 일반적인 마법사와 달리 마나 총량에서부터 동급의 마법사가 보유할 수 있는 마나를 아이템을 통해 초월한데다, 마나 회복 물약을 사기적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상 유일의 존재가 바로 그였기에 오우거 무리를 상대로 사냥이 가능할 수 있었다.
더해 스킬 시전 속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80코인을 습득합니다.
‘6띠 던전 몬스터를 숱하게 사냥했지만 일반 따위가 이렇게나 코인을 많이 주다니.’
역시, 오우거는 오우거였다.
강력한 도약력과 힘을 가진 오우거였지만 블링크를 통해 공간을 이동하는 어스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놈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돌팔매질이 고작이다.
오우거들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고, 어스는 그 무시무시한 오우거를 상대함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가끔 돌에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생명력이 가진 가공할 효과 덕분에 잠시 움찔하긴 했어도 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그도 유일하게 신경 쓰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새 마나가 엄청 줄었네.’
철옹성에 비축된 마나를 채워주는 일이었다.
한편 오우거의 이동 경로를 원거리에서 감시하던 정찰대는 이 모든 상황을 마법 통신구를 이용하여 연합 본부에 전달하고 있었다.
처음엔 어스의 정체를 몰랐던 그들도 지금은 그와 통성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젠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이 세상에서 마법을 저처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명뿐이니까.
“소문은 보통 살이 붙기 마련인데 괴물 마법사에 대한 소문은 오히려 축소된 게 아닐까 싶어. 보고도 믿을 수 없으니.”
“끝장났다고 생각했던 북부가 덕분에 안정될 수 있겠어. 이 모두가 룬의 가호가 아닐까 싶어.”
신의 가호를 언급하는 동료의 말에 남자는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딱히 저 말을 부정해서가 아니다.
룬의 가호조차 제대로 품지 못한 교단에 실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를 입 밖에 낼 수 없다.
그랬다간 이단으로 몰려 파국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 * *
육상의 제왕이라는 오우거 수백 마리를 단신으로 격파하던 어스는 드디어 기존 오우거와는 전혀 다른 외양의 오우거를 목격할 수 있었다.
보자마자 답이 나왔다.
‘보스네.’
일반적인 오우거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뿔이 보였다.
산양의 뿔처럼 크고 위압적인 형태의 뿔과 더불어 녀석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지만 어스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태산을 박살 낼 힘을 지녔더라도 상대를 맞춰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리니 어스에게 있어 오우거 보스는 좀 더 질기고 단단한 큰 과녁일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지옥에나 가라. 콜 라이트닝!”
쿠르르릉, 번쩍!
5서클 스킬이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내리꽂혔다.
뇌 속성답게 그 속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아무리 오우거가 빠르다지만 어찌 번개보다 빠를 수 있겠는가.
콜 라이트닝은 제 주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오우거 보스를 명중했다.
눈을 아리게 만드는 섬광이 가시고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놈은 멀쩡했다.
성인 남성 서넛 명의 허를 합친 것만큼이나 굵직한 두 팔뚝을 교차하여 콜 라이트닝을 막아낸 것이다.
이 장면은 멀리서 현장을 지켜보던 정찰대 병사들을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반면 어스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런 결과가 어디 이번 한 번인 것도 아니니까.
“팔뚝으로 막네. 이건 신선했다. 그나저나 폼 나는 동작이네.”
어스는 두 눈을 반짝이며 녀석을 따라 해보았다.
언제 한번 이 자세를 써먹기로 했다.
물론 위그드라실 칭호를 활성화한 이후이지 지금 당장 써먹을 생각은 없었다.
여동생 팔목보다 가는 이 팔뚝으론 양아치가 휘두르는 몽둥이에도 이쑤시개 부러지듯 똑 부러질 테니까.
생명력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그래 인정하마! 네 팔뚝 굵다. 사내다워. 하지만 말이야. 내겐 무한대의 마나가 있어. 그러니 애쓰지 말고 얼른 죽어. 죽는 김에 아이템 하나 남겨주면 명년 이맘때쯤 널 한 번은 떠올려 주마. 콜 라이트닝! 콜 라이트닝!”
번개가 연속으로 오우거 보스를 향해 떨어졌다.
연속으로 떨어지는 십수 번의 공격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서 뚝심 있게 버티던 놈도 공격이 20회를 넘어가자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앓는 소리를 내곤 도주를 시도했다.
나름 공격에 대비해 갈지자를 그리며 숲을 향해 내달렸다.
내달리는 녀석의 속도는 전투마의 전력질주와 필적했다.
좌우로 이리저리 이동하며 움직이는데도 그와 같은 속도가 나오고 있었으니 만약 일직선으로 곧게 달린다면 바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래 봐야 블링크 앞에선 튀어봐야 벼룩이었다.
‘콜 라이트닝! 콜 라이트닝!’
속도는 어스가 놈을 압도하였지만 딱 그뿐, 정작 스킬 명중률은 형편없이 떨어져 놈의 발자국만 지지고 있었다.
차라리 놈이 당당히 버티던 좀 전이 더 좋았다.
적어도 그땐 때리기라도 했으니까.
‘숲이 널 보호해주진 않는다.’
왜? 숲을 태워 버릴 것이기에.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오우거 보스가 퇴로로 사용하려던 숲에 수십 발의 파이어 볼이 떨어지며 숲은 금세 화마에 뒤덮였다.
그에 오우거 보스가 장탄식을 터트린 뒤 홱 돌아서서는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놈이 향하는 방향은 갠스강이었다.
‘오늘 갠스강 물고기란 물고기는 씨가 마르겠네.’
어스는 놈의 선택을 지지하며 전보다 드문드문 콜 라이트닝을 내리꽂았다.
이에 놈은 자신을 공격하는 무지막지한 인간도 이젠 힘이 다한 것이라 판단했는지 갈지자로 움직이던 횟수가 줄었다.
자연 그만큼 놈의 이동거리는 더 길어졌고 결국.
쿵-!
땅 한 번 찍은 그 힘을 이용하여 단숨에 갠스강에 입수할 수 있었다.
풍덩!
놈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엄청난 높이의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 물기둥이 사라지기 전 콜 라이트닝이 가열하게 갠스 강을 때리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번쩍!
중첩된 콜 라이트닝의 힘을 견디지 못한 갠스 강이 수증기를 뿜어 올렸다.
배를 까뒤집고 죽은 크고 작은 물고기 떼가 수증기에 편승하여 튀어 오르다 수면에 내쳐진 채 하류로 둥둥 떠내려갔다.
강 수면은 죽은 물고기로 뒤덮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정찰대 병사들은 오줌까지 지렸다.
어스는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 채 연방 인상을 써대며 강을 뒤덮은 물고기 떼를 보았다.
‘이 새끼 아직 안 죽었는데.’
30여 분 넘게 지켜봤음에도 갠스 강으로 뛰어든 오우거 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류로 내려간 거야? 아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거야?’
놈이 강물에 들어가면 게임 끝이라 자신만만했던 어스는 이에 크게 당황했다.
만약 놈이 연합군 진지나 혹은 마을로 들어간다면 그 순간 진지나 마을은 피의 학살이 이어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연합군 진지에 소드 마스터가 있나?’
그 정도의 능력자가 없다면 오우거 보스는 막기 힘들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어스는 하류와 상류를 오가기 시작했다.
* * *
갠스강으로 뛰어든 오우거 보스를 찾기 위해 2시간 넘게 상류와 하류를 왕복했지만 끝내 놈을 발견하지 못한 어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연합군 진지로 복귀하여 상황을 알렸다.
“산양의 뿔을 가진 오우거?”
“최선을 다했지만 사냥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정찰대의 마법 통신구를 이용한 실시간 보고를 받은 후작은 갠스 강 중류 평야의 위험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심했다.
북부에 드리운 재앙 중 가장 큰 골칫거리이자,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오우거 무리였는데 그 무리를 배제하고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어스의 손을 피해 달아났다고 하니 엔슬리 후작 입장에선 곤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몬스터 손에 떨어진 땅을 수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토벌작전을 단행할 수 없어서였다.
후방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후작님, 지금 당장 갠스강 인근 마을과 도시에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후작의 참모가 급히 말하였다.
참모가 이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이미 생각하고 있던 후작이었다.
“즉시 통보하게. 또한 경기병을 대거 차출하여 수색에 참여시키게. 놈이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가게 해선 안 돼.”
“명을 받들겠습니다.”
막사 안이 어수선해졌다.
어스 입장에선 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큰소리 탕탕 쳐놨는데 막상 그 결과는 똥을 싸다 만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스 백작.”
“예, 후작님.”
“백작은 연락이 올 동안 여기서 대기해주지 않겠나? 본진에서 오우거 보스와 단신으로 상대할 자는 백작 자네가 유일하네. 신속한 기동력을 보유한 자 역시.”
6띠 던전 보스다,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대마법사 혹은 소드 마스터가 나서야 한다.
참고로 전날 솔론 왕도에 급작스럽게 출현한 6띠 던전에서 솔론 왕국의 소드 마스터 슈리에 율리아스 후작이 단 일검에 해당 던전 보스를 벤 사례가 있었다.
물론 미리 추기경과 대마법사의 버프를 받긴 했지만 이를 배제하더라도 소드 마스터쯤 되면 던전 보스를 상대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파리스엔 소드 마스터가 없는 건가?’
엔슬리 후작의 말에 의문을 느꼈지만 실례가 될 수 있기에 목구멍에서 맴돌던 질문을 삼키고 다른 말을 꺼냈다.
“후작님.”
“말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출동하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만, 놈이 만만치 않다 보니 처리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놈이 마을이나 도시로 들어간 상태라면 놈에 의한 피해보다 제 마법에 의한 피해가 더 클 겁니다.”
콜 라이트닝이 단일 대상을 상대로 특화된 스킬이라지만 그 주변으로 여파가 미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약속을 받아야 한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쟁에서 피해가 없을 순 없네. 자네가 의도적으로 피해를 유발한 게 아니라면 그에 따른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네.”
“그리 말씀하신다면 최선을 다해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네. 연락이 오면 즉시 알려줄 테니 쉬고 있게.”
안 그래도 피곤한 상태였기에 어스는 후작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병사를 따라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향했다.
‘삼 일 후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방심의 결과가 아닌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나빴다.
그러니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스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
개인 막사로 들어간 어스는 인벤토리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내 로엘에게 문자를 보냈다.
위그드라실 조각을 좀 더 일찍 받을 수 없겠냐는 내용의 문자였다.
로엘에게서 답신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펫이 습득한 아이템 적용이 끝났습니다.
-펫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펫을 소환하시겠습니까?
‘아! 녀석을 깜빡했네.’
시쿠의 조력을 받는다면 오우거 보스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피하지 못하게 묻어 버리면 된다.
하지만 녀석을 소환하여 오우거 보스 추격에 나서자니 솔론 왕국 왕도 내 신전을 함몰시킨 일이 불현듯 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에 하나 시쿠를 이용하여 오우거 보스를 생매장시키는 장면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교단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의 범인으로 자신이 지목될 여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을 드러낼 순 없지.’
어스에게 시쿠는 비밀병기였다.
그러니 시쿠의 도움을 받아 오우거 보스를 상대할 수 있더라도 감히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지이이이이잉.
일단 시쿠의 새로운 능력을 확인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로엘에게서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