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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02화 (202/250)

202화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을 보았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보니 고향에서 보았던 당시 모습이 떠올랐다.

나쁘진 않았다.

전에 보지 못한 주름이 보였지만 그건 삶의 만족감이 남긴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웃지 마시라 말할 수도 없고.’

푸리엘에게 부탁해서 몸에 좋은 영약이나 피부에 좋은 화장품을 알아보기로 했다.

똑똑.

“어스 님.”

“들어와.”

푸리엘이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온몸으로 여유를 풍기는 어스의 모습에 푸리엘은 저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곧 정신을 차린 푸리엘은 어스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앉는 내내 그녀의 두 눈은 어스에게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 아뇨. 아닙니다. 그보다 이렇게 대놓고 행동하셔도 되는 건가요?”

“왜? 교단이 신경 쓰여?”

앞으로 테리우스 영지의 주도라 불릴 현 농장을 둘러싼 성벽은 인력과 자원을 퍼부은 덕분에 조만간 성벽이란 이름이 어울릴 정도의 위용을 갖출 수 있을 만큼 공사에 놀라운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병영, 창고, 가옥들도 하나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이 역시 성벽 공사처럼 매우 빠른 진척을 보였다.

이 모든 일들을 총괄하는 인물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인간의 탈(?)을 쓴 엘프 푸리엘이었다.

“신경은 어스 님이 쓰셔야 하지 않나요?”

“우리가 남이야?”

“임시 부하 직원?”

농담에 농담으로 응수한 푸리엘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곤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부인의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지만 완벽하다곤 볼 수 없었다.

그러니 긴장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전혀 긴장 되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새 많이 달라졌네.”

“아뇨, 저보다 영주님이 많이 달라지신 것 같네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분위기가 전보다…… 많이 여유로워 보이네요. 근래 마음에 변화라도 생기셨나요?”

“앞으로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살 생각이야.”

“……진담이시군요?”

“어.”

* * *

“단장님, 어스 백작이 지금 자신의 영지에 있습니다.”

미답지 쪽을 바라보던 베로니카 단장은 수하의 보고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재차 확인했습니다. 확실합니다.”

베로니카 단장은 사실 확인을 위해 마법 통신구를 빼들었다.

-미답지 밖에 있는 걸 단숨에 알아차리셨네요. 내 영지에 세작을 많이 푸셨나 봐요. 하하.

문자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에 베로니카 단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혹시나 문자를 잘못 읽은 게 아닐까 싶어 재차 확인했지만 자신이 본 그대로였다.

‘이놈이!’

-어스 백작이 왜 그곳에 있는가? 설마, 교단과의 계약을 파기할 생각인가?

-잠시 내 영지에 내려왔을 뿐입니다. 다시 올라가야죠. 3일 푹 쉬고 올라갈 테니까. 단장님도 그리 아세요. 사람이 소도 아니고 어떻게 일만 하고 삽니까.

-어스 테리우스. 그대의 행동은 명백히 계약 위반이다.

-우리 계약에 내 휴가에 관한 내용은 없지 않나요? 아무튼 3일 후에 갈 테니 그리 아세요. 오랜만에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피곤하네요. 3일 후에 뵙겠습니다.

그것으로 통신은 끝났다.

베로니카 단장은 한참 동안 인지부조화에 시달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베로니카 단장은 가까운 신전으로 내달렸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 * *

테리우스 백작 영지의 중심이 될 주도 공사 현장 시찰을 끝낸 어스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준비하던 어스는 기다리던 알람에 얼굴이 활짝 폈다.

최상급 마족을 처치하고 습득한 아이템의 적용 기간이 이제야 끝났기 때문이었다.

확인 결과 기존의 무형 방벽에서 딱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가 향상되어 있었다.

‘5시간마다 1회, 반경 10미터, 지속 20분이라…… 으음.’

무형 방벽의 덕을 여러 번 보았던 어스 입장에선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정작 그의 마음은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그가 간절히 바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이동 중에도 무형 방벽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에 기대해 봐야겠군.’

섭섭함을 애써 털어 낸 어스는 대충 씻은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식탁에 앉을 수 없었다.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단장이?”

“예.”

“명색이 성직잔데 성격이 왜 그 모양인지.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어스는 푸리엘과 함께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을 넘지 않은 걸 보면 나와 완전히 틀어질 생각은 없나 보네.’

블링크로 이동하면 한순간인 거리였지만 어스는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보란 듯이.

그리고 이를 본 베로니카 단장은 남아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화르르.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어스 백작, 지금 나와 장난 하자는 건가?”

“두 달이 넘도록 황량한 미답지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고작 3일 쉰다는 게 그리 큰 잘못입니까? 저는 사람이지 도구가 아닙니다.”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오염토가 인류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잘 알고 있죠. 아니까 2달이 넘도록 죽어라 일만 하지 않았습니까?”

주변에 보는 눈이 없었다면 베로니카 단장은 단숨에 어스를 제압하여 지면에 그의 얼굴을 심어 버렸을 것이다.

베로니카 단장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기 위해 거듭 심호흡을 한 뒤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엔 지독한 냉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스스스스.

베로니카 단장이 전투 영역을 펼쳤다.

단일 대상을 향해.

그러나.

생명력 : 26,870/26,870.

이제는 예전의 어스가 아니었다.

생명력 수치가 워낙 높다 보니 베로니카 단장의 전투 영역은 어스에게 단 1의 피해도 끼치지 못했다.

한마디로 혼자 용 쓰고 있는 중이다.

“당장 날 따라나서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베로니카 단장은 그가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휴가 끝난 뒤 갑니다.”

거리낌 없는 어스의 언행에 베로니카 단장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 베로니카 단장은 전투 영역의 힘을 키웠다.

익스퍼트조차 피를 토하고 쓰러질 정도의 힘을 실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 이걸 견뎌?’

오기가 발동한 베로니카 단장은 자신의 모든 힘을 전투 영역에 쏟아부었다.

그제야 베로니카 단장은 어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었다.

-생명력 1이 하락합니다.

.

.

.

.

.

베로니카 단장이 전력을 다한 전투 영역에 노출된 어스의 생명력은 처음과 달리 하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하락도 12쯤 되자 멈추었다.

전투 영역에 과도한 힘을 불어넣은 부작용으로 인해 베로니카 단장이 스스로 이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할 말을 잃은 베로니카 단장은 멍해진 눈으로 어스를 응시했다.

한편 베로니카 단장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어스는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가 방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앞으로 예의를 차려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단장에게 그러하듯 말입니다.”

그간 상상만 했던 말을 속 시원하게 날린 어스는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사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장내를 떠났다.

반면 베로니카 단장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대동한 수하들이 거듭 청하기 전까지.

“캠, 캠프로 돌아간다.”

베로니카 단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뗐다.

한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 보면서.

* * *

어스는 베로니카 단장에게 통고한 3일 휴가를 다 쓸 수 없었다.

로엘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로엘을 깜빡했네.’

자신이 마계로 간 걸 유일하게 아는 엘프가 그간 끓였을 속을 생각한 어스는 로엘의 연락을 받자마자 연합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미답지로 넘어갔다.

“무사하셨군요.”

“미안해. 연락했어야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어.”

“그곳은 어땠습니까?”

노다지였지, 아름다운.

당연히 이 말은 할 수 없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의 성장 동력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알려줄 생각도 없다.

“마족 녀석이 허세를 부리는가 싶었는데 진짜더군.”

“식당 종업원이 소드 마스터라는 게 사실이었다고요?”

“응.”

“정말 미친 세상이군요. 그 검은 돌이 마계에서 흔해진다면 중간계가 위험해지겠군요.”

“그게 흔했다면 세상이 이렇게 조용하겠어? 난리가 나도 열 번은 더 났을 거야.”

“그렇겠죠. 참, 어린 위그드라실님을 발견했습니다.”

엘프들의 오랜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로엘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좋은 일 아니야?”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분에게서 영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영성이 없다면…… 결코 그분이 될 수 없습니다.”

“영성이란 게 그리 중요한 거야?”

“혹시 광전사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오래전에 멸족한 야만족 전사 아냐?”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광전사는 오직 살육에 미친 전삽니다. 물론, 위그드라실님의 상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성장하신다면 야만족의 광전사처럼 될 확률이 높습니다.”

“혹시…… 오염토의 원인이 어린 위그드라실 때문이야?”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오염토는 인간에 한해 작용하고 있다.

인간이 더는 마나를 다룰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니 이종족들 입장에서 이는 환영할 노릇이다.

과거의 치욕과 굴욕을 갚아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하지만 앞서 로엘이 비교대상으로 광전사를 거론했듯 당장은 인간 한정 공격이지만 차후 이종족도 안전할 수 없다.

‘아니, 그게 아니지. 당장 대륙 전쟁이 발발할 수 있잖아.’

하지만 어린 위그드라실에게 영성을 찾아줄 방법이 없는 한 이 상황을 막을 방책 역시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볼 수 있을까, 어린 위그드라실을?”

“물론입니다.”

허락은 구했지만 설마 이렇게 쉽게 허락받을 줄 몰랐던 어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날 얼마나 신뢰하는 거야?’

* * *

엘프족이 고토라 말하는 장소에 어린 위그드라실이 있었다.

세상을 뒤덮을 만큼 크고 웅장한 모습을 상상했던 어스는 막상 위그드라실을 목격하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어린 위그드라실이라곤 하지만 그 크기가 고작 성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분입니다.”

나무에게 극존칭이라니 듣기 참 어색했다.

어린 위그드라실 주변엔 녀석을 보호하기 위해 엘프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진을 치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저들의 눈빛 때문에 이 주변은 환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이 정말 오염토의 근원일까?’

동토 중 동토라 불리던 미답지를 변화시키고도 부족해 오염토는 확산하고 있었다.

그 면적을 생각하면 저 덩치로 가능할까 싶었다.

더욱이 로엘에게 들으니 저 녀석은 어린 데다, 영성도 없는 신세가 아닌가.

그럼에도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으니 만약 다 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녀석이 인간들에 의해 불태워졌을까?

‘룬이 강림하기라도 했나?’

의미 없는 생각이다.

지금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종족 전쟁!

‘저걸 없애버리면 오염토 문제도 해결될까?’

헬파이어 한방이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문제는 그 후다.

엘프와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도 상대가 제 부모를 죽인다면 어찌 여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으랴.

한때 사랑했던 감정까지 담아 더 미움 받게 될 것이다.

어스는 엘프와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 생각은 냉큼 치워 버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로엘.”

“예, 어스님.”

“가까이서 살펴봐도 될까?”

어스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변이 워낙 조용하다 보니 엘프들 모두 이를 들었다.

모든 엘프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어스를 응시했다.

경계심을 품고서.

그들의 반응에 어스는 섭섭함을 느꼈다.

엘프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저 어린 위그드라실을 처리할 생각마저 접었는데,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눈총이라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좋아(?)하지나 말지.

“아직 어린 분입니다. 조심해 주십시오.”

거부당했으면 진심으로 섭섭했을 것이다.

다행히 로엘은 거부하지 않고 그저 주의만 주었다.

“이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할 테니까 걱정 마. 나는 엘프의 친구잖아.”

어스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위그드라실에게 접근했다.

지면을 뚫고 툭 튀어나온 뿌리와 어스의 발이 닿았다.

그 순간 느닷없이 알람이 울었다.

-영성을 잃은 위그드라실은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로 채워져 있습니다.

-위그드라실 계승자 칭호를 어린 위그드라실에게 양도하면 증오를 몰아내고 영성의 씨앗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영성을 잃은 어린 위그드라실에게 ‘위그드라실의 칭호’를 양도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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