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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17화 (217/250)

217화

확실히 자신을 대하는 엘프들의 태도가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

자신의 말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기 자신에게 분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명령에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물론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스에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지시일 경우였다.

엘프의 군주 칭호 효과에 대해 실험하는 중 어느덧 초대장을 받은 마탑의 대마법사들이 각자 수제자를 대동하고 테리우스 영지에 방문했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했던 주도의 문도 그날은 활짝 열렸다.

곧 어스는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자신이 현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스킬을 보여준 뒤 다 함께 만찬을 즐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헬파이어의 수식은 어찌 되는지 여쭤도 되겠습니다.”

“아카로드 술식에 대해 현자께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저희를 깨우쳐줄 조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다.”

“하만의 법칙과 술만의 법칙에 대한 현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들 전문가를 초빙한 것처럼 자신에게 질문 공세를 쏟아냈다.

죽을 맛이었다.

깨달음? 당연히 그런 건 없다.

몬스터와 마족을 열심히 때려잡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당연히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낫다.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고, 또 깨달음이란 것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에서 본 내용까지 살짝 덧붙여 뜬구름 여럿 잡았다.

완전 개소린데 다들 복음 듣듯 들었다.

개중엔 10년 묵은 체증을 극복한 듯 시원한 탄성을 터트리는 자들도 여럿 나왔다.

뭔데?

그렇게 한고비는 넘겼지만 진짜 문제는 이론이다.

아는 게 있어야 입을 털 건데 그쪽으론 뇌(?)가 깨끗하여 해줄 말이 없었다.

덕분에 물만 주구장창 마셨다.

마족 백만과 상대하는 게 낫지 이건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한 건 누가 이론적인 질문을 하면 다른 이들이 그 이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최대한 눈치를 살피며 호응도가 높은 쪽의 말에 조심스럽게 호응했다.

그러면 다들 또 감탄했다.

‘내가 똥을 싸질러도 감탄하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당연히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친놈도 아니고.

‘미친놈이 부럽긴 처음이네.’

똥줄은 모두 타 타버리고 이젠 재만 남았다.

더는 태울 똥줄이 없다.

부디 질문은 이제 그만.

“역시, 현자십니다.”

솔론 왕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푸른 뇌전의 마탑의 부탑주 플린트 테리어의 말이었다.

진짜 똥 한번 쏴봐?

그녀와는 일전 던전에 휘말린 에스터 추기경을 구하는 원정에서 안면을 튼 터라 그나마 편히…는 개뿔, 오히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가장 난해한 질문만 날렸다.

못된 할망구 같으니라고.

앞으로 푸른 뇌전의 마탑 소속 마법사와는 눈도 안 마주치리라.

밤이 제아무리 길어도 새벽이 오듯 드디어 끝날 것 같지 않던 악몽의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새 십 년은 늙은 것 같다.

드디어 만찬장으로 가서 먹고 마실 일만 남았다.

저들끼리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며 어스는 엉덩이를 살짝 뗐다.

그때.

“현자님!”

움찔.

“흠흠. 예.”

“송구하오나 헬파이어를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일곱 불꽃 마탑의 탑주이자 7서클 대마법사다.

또한, 전 여자친구의 여동생이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루리아는 잘 지내려나?

마법사들의 질문 세례에 지쳐 퍼석했던 마음이 순간 촉촉해졌다.

오늘은 술을 자제해야겠다.

실수로 루리아에게 문자를 보낸다면 다음 날부터 이불 덮고 잘 수 없을 테니.

잠시 샛길로 생각이 빠졌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더니 그걸 거절이라고 생각한 듯 알레드 포거는 난처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늙은이의 노망이라 생각해주십시오.”

마법사들의 세계에선 나이를 떠나 경지가 곧 지위가 된다.

알레드 포거 탑주의 요청은 그래서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알레드 탑주 본인도 뒤늦게 이를 깨닫곤 사과한 것이다.

어스가 입을 떼기 전 다른 이들이 먼저 나섰다.

“알레드 탑주께선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알만한 분이 저런 말을 하다니. 허허. 후배들 보기 부끄럽군요.”

명색이 대마법사인 알레드 포기이기에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들 역시 그와 동급인 대마법사들이었다.

특히 일곱 불꽃 마탑과 경쟁관계에 있는 마탑의 대마법사들의 경우엔 옳다구나 하고 알레드 포거를 물어뜯었다.

노마법사의 수염이 풍랑에 요동치는 돛단배처럼 움직였다.

훈훈했던 장내의 분위기가 돌연 냉랭해졌다.

마법 하나 보여 달라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저러는지.

“아뇨, 보여드리겠습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초대에 응해주셨는데 당연히 보여드려야지요.”

사실 어스가 원한 건 바로 이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 본적 없는 깨달음이니 마법 이론 따위가 아니라.

궁지에 몰렸던 알레드 포거는 어스의 태도에 감동했다.

‘현자님이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모은다고 했지? 내 체면을 세워주신 은혜에 보답해야겠군.’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헬파이어를 보고 싶어 했다.

자리를 옮긴 어스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헬파이어를 시전했고 모두가 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8서클 마법을 실제로 보게 되었으니 그들 입장에선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은 헬파이어를 눈에 담으려는 듯 내내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모습을 보자 어스는 문득 9서클 스킬을 보여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 생각은 조용히 덮어두었다.

난이도가 더 높은 질문이 쏟아질까 봐 두려웠다.

‘지금부터 이론 공부를 해야 하나?’

아니다, 애초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밤하늘을 가르고 하늘 높이 올라간 헬파이어가 폭발하며 백색의 장엄한 불꽃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일반적인 헬파이어보다 월등히 강력한 위력의 헬파이어였지만 실제 이를 본 건 처음이라 다들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언젠가 저들 중 8서클의 경지에 들어 헬파이어를 시전할 수 있으면 그땐 알 게 되리라.

오오!

우와!

더 큰 감탄과 함성이 터졌다.

노마법사든 젊은 마법사든 할 것 없이.

그에 기분이 고무된 어스는 큰 목소리로.

“다들 만찬장으로 가시죠.”

***

바레모스, 톨로레스, 레이레아 세 고위 마법은 마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열일곱이란 어린 나이에 8서클 경지를 이룬 마법사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

“이놈 혹시 유희 중인 드래곤 아닐까?”

“드래곤이 전멸한 건 오래전 일이야. 기록에도 나와 있었잖아. 마지막 드래곤의 목을 베어 드래곤의 씨를 말렸다는 기록.”

아주 오래전 마족은 중간계를 침공한 적이 있었다.

마계와 중간계의 차원 벽에 이상이 생겨 그 틈을 이용하여 진출했다.

당시 중간계의 모든 생명들이 힘을 모아 저항했다.

저항의 중심엔 드래곤들이 있었다.

그들의 개체 수는 백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힘은 고위 마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드래곤들조차 마왕은 어찌하지 못했다.

드래곤이 사라진 중간계는 더 이상 마족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남은 건 완벽한 정복뿐이었다.

하지만 정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차원 벽에 생긴 틈이 메워지면서 중간계에 진출한 마족들 모두 마계로 강제 귀환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현상은 아직도 마계에선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일로 인해 마족은 중간계에서 막대한 양의 기운을 가져올 수 있었다.

덕분에 척박했던 마계의 기운을 정화하여 오늘날과 같은 토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중간계에서 단맛을 제대로 본 이후 마족들은 차원을 넘는 방법을 연구했다.

안타깝게도 연구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대신 조상들이 중간계로 넘어갔듯 또 한 번 차원 벽에 틈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길고 긴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오늘날에 일어났다.

검은 탑을 통해.

문제는 이 사실을 마계에선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침공은 진작 이뤄졌으리라.

“인간 학살자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된다고 본다.”

“그렇지? 바레모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단정은 일러. 돌연변이는 어디든 있는 법이니까. 만약 놈이 진짜 학살자라면 맞서기보단 돌아갈 방법을 강구하는 게 우선이다. 마계에선 그 검은 탑의 기능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할 게 뻔하니까.”

“우리가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린다면 마계가 발칵 뒤집힐 거야.”

“그렇지 조상들의 위업을 당대에서 이룩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안정적인 통로를 통해서 말이야.”

“문제는 귀환인데, 당최 방법이 보이지 않네.”

세 고위 마족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랬던 그들이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일변했다.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강하진 않지만.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한 그들은 중간계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조직의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룬 교단의 깃발이었다.

“저기 저 마다.”

“진한 마기군. 최소 중급이군.”

“우리 말고 또 넘어온 녀석들이 있나 보네. 잘 됐어. 마계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호송 부대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지만 세 고위 마족에겐 저쯤은 여반장이었다.

“인간들부터 제거해. 인간의 도시와 멀지 않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정리하고 현장을 이탈한다.”

“그러지.”

“저쯤이야.”

50명에 달하는 성기사와 매직 스틱으로 무장한 200명의 디콘이 처리되는 건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철제로 만든 호송 마차가 부서지는 건 순간이었다.

콰직.

그렇게 세 고위 마족은 동족을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검은 탑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마계의 상황 역시.

‘대가리 큰 놈들의 조심성이란. 쯧.’

천뇌의 탑 학자들을 싸잡아 욕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그들에게 일을 맡긴 키빌 역시 잘근 씹었다.

***

“영주님, 이종족 노예를 판매하겠다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갑자기?”

“각 마탑에서 힘을 보태준 결과입니다. 특히 일곱 불꽃 마탑에서 적극적입니다.”

“아무리 마탑이라지만 교단이 신경 쓰일 텐데 의외네.”

“대륙 유일의 현자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현자도 이런데 대현자면 난리 나겠네.”

“예?”

“별거 아냐. 실리시아에 연락해둬.”

“즉시 통보하겠습니다.”

위그드라실의 가지를 가져간 로엘이 아도니스에 도착하면 대륙을 잇는 최초의 통로가 만들어질 테니 그땐 건국을 선포해도 될 것이다.

교단이 이를 좌시하지 않겠지만 그땐 분노 조절 장애에 특효약(?)을 처방할 것이다.

‘메테오를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그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교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권력자들과 협력을 강구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없지 않으니까.

당장 솔론의 칼렉 왕세자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거기다 마탑까지 자신의 손을 들어준다면 금상첨화다.

씩.

절로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그의 웃음꽃은 이내 시들었다.

부드럽던 푸리엘의 얼굴이 돌연 딱딱해졌기 때문이다.

마법 통신구를 들여다보자마자.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영주님에 향한 입에 담기 힘든 악의적인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에 관한 나쁜 소문이야 사실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소문이란 또 다른 소문에 의해 묻히는 것이 일상다반사라 반응해봐야 오히려 더 살이 붙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 관한 소문이 돌더라도 대응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대응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이번엔 또 뭐야? 난봉꾼? 사기꾼? 마왕의 사생아?”

“영주님이 마을 하나를 몰살시켰다는 이야기가 레아 왕국 서부를 시작으로 급격하게 퍼지고 있답니다.”

“내가?”

“아무래도 직접 보십시오.”

푸리엘이 건넨 마법 통신구를 확인한 어스는 할 말을 잃었다.

이번엔 무시하기 힘든 소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이 헬파이어에 당했다고?’

뤼빅스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8서클 현자는 없으니까.

그렇다며 대체… 설마, 마족의 소행인가?

아무래도 직접 현장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테른에 다녀올게. 와서 이야기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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