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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20화 (220/250)

220화

귀족원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 조직으로 국왕조차 그들과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는 물론 외교에 이르기까지 저들의 힘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기에 뤼빅스의 진정한 주인이라 불리는 교단과의 관계 역시 왕실보단 공고했다.

이는 비단 솔론 왕국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왕실이 안고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그러한 솔론 왕국에 명성이 자자한 마법사가 왕세자와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진 에스터 추기경이 협력하여 단숨에 고위 귀족으로 만들었다.

귀족원 입장에선 몹시 불쾌한 노릇이었지만 에스터 추기경이 젊은 마법사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기에 귀족원은 에스터 추기경의 눈치가 보여 내키지 않았지만 작위 수여를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족원이 그간 눈치를 보던 에스터 추기경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녀를 등에 업고 개혁 정치를 시도하던 칼렉 왕세자의 행보에 본격적인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왕세자와 에스터 추기경의 합작으로 탄생한 어린 백작이 8서클 현자로 거듭났다.

이는 귀족원 입장에선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 수 없었다.

어스를 귀족파로 끌어들이기엔 칼렉 왕세자와의 관계가 끈끈한지라 이는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귀족원은 어스를 외부인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전날 미답지의 권리를 걸고넘어진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오히려 체면만 잔뜩 구기고 말았다.

이후 기회를 엿보던 귀족원은 어스를 향한 안 좋은 소문이 확산되자 이를 기회로 여기고 칼렉 왕세자와 왕당파를 압박하여 어스를 귀족원으로 소환한 것이다.

어스를 자극하여 물러서게 할 계획을 세웠다.

어스는 이 사실을 알고 귀족원에 출두했다.

저벅저벅.

“왕국의 고귀한 귀족이시자, 현자이신 어스 테리우스 백작님을 맞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총관 제프리 남작입니다.”

일전에 어스가 귀족원을 방문했을 때 그를 안내한 이는 하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귀족원, 아니 귀원의 총관이 건물 입구가 아닌 정문까지 직접 나왔으니 이는 어스의 위상이 전보다 한층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반증이었다.

“안내하게.”

“뫼시겠습니다.”

아름답게 잘 가꿔진 정원을 가로질러 귀원 본관에 도착했다.

전에도 경비가 삼엄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달라진 건 비단 그뿐이 아니다.

기사도 다수 보였으며, 경비 병력 모두 이전과 달리 전원 매직 스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던전 원정과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하는 일선 부대나 원정대에 지급하기에도 빠듯한 것으로 알려진 그 매직 스틱으로 말이다.

‘내 영지에도 없는 매직 스틱이 여긴 지천이네, 지천이야.’

어디 자신의 영지뿐이랴.

앞서 들렀던 왕궁에서도 매직 스틱으로 무장한 병사는 없었다.

왕궁 위에 귀원이란 말이 과연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카멜 형이 왕위경쟁을 포기한 건 본인의 자유로운 성격도 성격이지만 그보단 귀족파의 꼬락서니를 보지 않으려던 게 아닐까?’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까지 온통 크세론 산 고급 대리석으로 도배한 복도를 한참 걷자 드디어 대회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작이나 자작 급 영지에선 기사 단장이나 최소 부단장을 맡아도 될 법한 실력자들이 일개 문지기나 하고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닌 10명이나 된다.

앞서 본 병력과 기사들을 보자 문득 ‘여기도 자신을 위해 마련된 함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함정 따윈 없었다.

“어스 테리우스 백작 입장입니다.”

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어스는 당당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으로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된 계단식 좌석이 보였다.

좌석마다 귀족들이 앉아 있었다.

어스가 들어오자 그보다 지위가 낮은 귀족들이 자리에서 잠깐 일어나 예를 표한 뒤 착석했다.

‘귀족파가 전체 9할이고, 왕당파가 1할이라 했던가?’

어스 역시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귀족들에게 예를 표해야 하지만 그는 솔론의 귀족이기 이전에 대륙 유일의 8서클 현자였기에 그와 같은 예를 지킬 필요는 없었다.

하츠 노멜 후작 역시 이를 알고 있음에도 대놓고 불쾌한 감정을 내비쳤다.

어스와 하츠 후작 사이에 치열한 눈싸움이 벌어졌다.

부릅.

부릅.

‘대부분은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으로 정신 차리는데, 저 노인네는 처맞아야 정신 차리는 부류인가? 그런데 헬파이어를 맞으면 차릴 정신도 없을 텐데.’

다른 이들에게나 후작이고, 다른 이들에게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드 마스터지 현자인 어스에겐 여러모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꼴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저러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스는 먼저 시선을 거뒀다.

그제야 하츠 후작도 눈에서 힘을 풀었다.

유치하긴.

“어스 백작은 자신이 소환된 이유를 아는가?”

“테른에서의 일 때문입니까? 만약 그 일로 날 소환한 것이라면 레아 왕국 수사대와 연락부터 취하시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사건 현장을 조사한 레아 왕국 수사대는 어스를 향한 테러가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스에 대한 소문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진실이 알려지면 보통 거짓 소문은 힘을 잃기 마련인데.

이러니 자신에게 악의를 가진 집단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이종족 연합은 비밀리에 소문의 확산을 조장하는 집단에 대한 조사도 병행 중에 있었다.

‘그 조직이 내게 테러를 가한 배후일 확률도 높겠지.’

처음엔 그런 조직으로 교단을 의심했지만 알아본바 교단이 개입한 흔적은 찾지 못했다.

아니 흔적은커녕 교단 역시 연합처럼 진지하게 조사에 착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날 받은 거라던데, 교단이 조만간 망하려나?

“물론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 백작을 소환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 사건 이후 백작이 보인 행동이 여기 이 자리에 백작이 서 있는 이유다.”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린가 싶어 어스는 하츠 후작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 행동이 문제라?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해할 수 없군요.”

“역시 출신은 속이지….”

“잠깐. 노멜 후작가의 시조는 농노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출신으로 따지자면 평민 출신인 내가 더 우위지 않나요?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농노가 평민보다 높은 계급이 되었습니까?”

“지, 지금 건국 공신 가문인 내 가문을 폄하하는 것이냐?”

어스가 뼈를 제대로 때린 걸까? 하츠 노멜 후작은 흥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자라곤 하지만 결국은 마법사다.

소드 마스터인 하츠 노멜 후작이 작정한다면 현자라고 무사할 수 없다.

적어도 이 거리에선.

하지만 이는 어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소드 마스터도 맨주먹으로 때려죽이는 그에게 고작 소드 마스터 초입에 겨우 발을 딛고 있는 하츠 후작 따위가 어찌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건국 공신 가문을 누가 폄하합니까? 출신 성분 이야기가 나와서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폄하라뇨? 농. 노. 출신이 건국 공신이 된 건 입지전적인 일로 칭송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폄하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높여 자신도 높였다.

여기서 하츠 후작이 화를 낸다면 제 얼굴에, 아니 가문에 똥칠하는 일이다.

그래서 화가 나도 후작은 이를 표출할 수 없었다.

어스에게 모욕과 족쇄를 채우려 마련한 자리임을 상기한 하츠 후작은 곧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피해국인 레아 왕국에서 이미 어스에게 혐의없음을 인정한 이상 사실 그 문제로 어스를 걸고넘어지긴 힘들었다.

제아무리 귀족원이더라도.

‘저 어린놈의 새끼가 현자만 아니면 산 채로 껍질을 벗겨버리는 건데.’

사회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그리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하츠 후작이었다.

그러나 어스는 백작이기 이전에 마법사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현자였기에 제아무리 하츠 후작이라도 섣불리 손댈 수 없었다.

지금이야 어스에 관한 소문이 좋지 않아 마탑과 마법사들이 한발 물러나서 관망하고 있다지만, 소문이 다 그러하듯 곧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우리 현자님, 우리 현자님하며 빵가루라도 떨어질까 싶어 필시 접근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츠 노멜은 더는 어스와 말을 섞기 싫다는 듯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버렸다.

“귀족원의 의장으로서 솔론 왕국 귀족의 명예를 실추시킨 어스 백작에게 100만 테스의 벌금과 1년의 자숙을 명령한다. 이는 귀족원의 의결을 거친 것으로 그 어떤 이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귀족원은 어스 백작의 작위와 영지를 박탈할 것이다.”

세다, 설마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앞서 만났던 칼렉 왕세자도 마찬가지였다.

어스는 왕당파 귀족들을 응시했다.

그들 역시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귀족원이 아니라 귀족파의 뜻이군.’

작위? 영지? 그딴 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확보하는 일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기에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하룻강아지가 짖는다고 겁먹는 범이 없듯, 차후 자신의 계획이 완성되면 그때 손봐줘도 될 문제였다.

그땐 대현자이자, 거대한 영토를 가진 건국왕으로 나설 테니 그땐 하츠 후작 따윈 손짓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무력이 아닌 권력의 힘으로 말이다.

“받아들이죠.”

“뭐?”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하츠 후작은 설마 어스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는 비단 하츠 후작만이 아니다.

귀족파 귀족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어스의 반응이 그들이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예상한 건 분에 못이긴 어스가 귀족원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그럼 이를 명분 삼아 그의 작위와 영지를 박탈할 생각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아닌 왕세자를 압박해서.

그런데 회심의 그 한 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장내에 침묵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할 말 다 했으면 돌아가겠노라 말하려던 어스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제프리 총관이 장내에 난입(?)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후작님 센힐턴 시 신전이 외부의 공격으로 사제들은 물론 신자들 모두 몰살당했다는 비보입니다.”

“바, 방금 센힐턴이라고?”

사람들 모두 대경실색했다.

특히, 하츠 노멜 후작의 혼란이 컸다.

사건이 발생한 센힐턴 시는 하츠 노멜 후작이 다스리는 영지의 도시였기에.

“그, 그렇습니다. 후작님.”

하츠 후작은 폐회 선언도 잊고 곧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귀족파들 역시 사색이 되어 그 뒤를 쫓았다.

지들 영지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데.

왕당파 귀족들 역시 움직였다.

신전이 공격받은 일은 당파를 떠나 중차대한 문제였으니까.

귀족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장내엔 어스 홀로 남았다.

‘나 말고 또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대담하네, 대담해.’

* * *

센힐턴 시의 신전을 박살 낸 범인은 2남 1녀임이 밝혀졌다.

범인의 수가 적음에 우선 놀랐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헬파이어?”

“예, 영주님. 범인 중 한 명이 헬파이어를 사용했습니다.”

푸리엘의 보고에 어스는 테른 마을을 떠올렸다.

“테른 마을 사건도 놈들 짓이겠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8서클이 흔한 것도 아니니까요.”

“놀랍네, 나 말고 8서클 경지에 이른 자가 있다니.”

“그 때문에 마탑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영주님에 이어 두 번째 현자가 탄생했다고.”

“이제 난 현자… 아, 아니다. 그럼 나머지 두 놈은?”

“듣고 놀라지 마세요. 그랜드 소드 마스터랍니다.”

현자의 출현도 놀랄 일인데 하물며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출현한 건 자신의 귀를 절로 의심케 했다.

그리고 그런 초인들이 힘을 모아 교단을 공격한다는 사실 역시 의아했다.

하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으니 교단이 원한을 산 곳이 어디 한두 곳일까.

그래도 그렇지 현자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면…

‘…밸런스 붕괴 아닌가?’

밸런스 붕괴는 이미 그 자신이 하고 있음을 망각한 채 범인들에 대해 생각하는 어스였다.

“영주님.”

“어? 응.”

“혹시, 마족 아닐까요?”

“그렇겠지 그게 아니고선 말이 안 되는 일이지.”

“하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영주님이 아니면 놈들을 처치하기 힘들 텐데.”

“푸리엘 잊었어? 나 지금 자숙 중이라고, 귀족원 나리들께서 명령했으니 곱게 따라야 하지 않겠어? 이 영지를 유지하려면. 아! 혹시, 나 찾는 사람들 오면 자숙 중이라 말하고 돌려보내. 그리고 나 열흘간 자리 비울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

“마계로 가실 건가요?”

“거기 떨어진 사람들도 잘 있나 궁금하고, 여기서 설치는 놈들이 누군지도 알아볼 생각이야. 이거 덕분에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어졌으니까.”

어스는 통역 목걸이를 보여준 뒤 곧장 차원 이동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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