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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로 성장하는 마법사-228화 (228/250)

228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글리시아 남작 영지 마족 침공 사건, 이 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각 왕국을 대표하는 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것은 그들이 이 상황을 매우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회의를 소집하고 주관하는 이는 노환으로 요양 중인 아딜레스 교황을 대신하여 현재 교단을 이끌고 있는 헤롯 추기경이 맡았다.

이 회의에서 헤롯 추기경은 그간 교단이 파악한 마족에 대한 상세한 정보까지 모두 공개했다.

“정말, 어스 테리우스 백작이 일천 마족을 단신으로 처치했단 말입니까? 헤롯 추기경님.”

“데릭 가이어스의 현신이 아닐까…헙, 아닙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어스와 데릭 가이어스를 동급으로 여기는 말을 한 자는 헤롯 추기경의 눈치를 살피며 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교단과 인류의 힘이 이종족에 미치지 못했던 그 시절 데릭 가이어스란 걸출한 초인이 탄생하여 인류는 비로소 흑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교단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류사에 있어서도, 그리고 유일 신앙을 고집하는 교단에 있어서도 데릭 가이어스는 불멸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참고로 교단에선 데릭 가이어스를 신의 사도로 선포한 바 있었다.

그러니 크세론 왕국의 대표가 한 발언은 그 개인은 물론 외교적으로도 꼬투리를 삼을 수 있는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알기에 급히 사과한 것이다.

“신중히 생각하고 발언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족의 본격적인 침공을 단언한 교단의 선언만큼이나 일천 마족을 단신으로 처치한 어스의 무력에 놀라 어수선했던 장내의 분위기는 이 일로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헤롯 추기경은 이 분위기를 유지한 채 회의를 열게 된 목적에 대해 말했다.

“본인은 인류의 힘이 하나로 모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는 바입니다. 인류 연합군을 창설하고자 합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문제는 누가 얼마나 내놓을지 그리고 그게 최선일지가 관건이다.

누군 10을 내놓는데 누군 7, 8을 내놓으면 10을 내놓은 입장에선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손해는 장차 세상이 안정화 되었을 때 강국과 약소국의 차이로 나타날 것이기에 왕국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에겐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회의장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서.

그런데 정작 중요한 연합군의 지휘권에 관한 이야기는 저들 사이에선 아예 나오지 않았다.

이미 결정되기라도 한 듯.

탕탕!

소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헤롯 추기경이 탁자를 내리쳤다.

그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교단이 정하여 통보할 것입니다.”

헤롯 추기경의 일방적인 선언이었지만 이에 불만을 드러내는 자들은 없었다.

그 속은 어떨지 몰라도.

참고로 뤼빅스 대륙엔 총 10개의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중 레오다니스, 테아노, 트리온 왕국은 강대국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반대의 위치한 왕국은 필리스, 파리스, 솔론 왕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솔론의 경우에는 약소국으로 분류되지만 레오다니스와 헥터 왕국 사이에 관계가 나빠져 그 틈을 파고든 솔론 왕국이 지리적 이점을 살려 중계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향후 20년 이내에 약소국에서 벗어나 그 사이에 위치한 중견국가인 헥터, 셀레네, 레아, 크세폰 왕국과 같은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솔론 왕국의 약진에 새로운 동력이 생기면서 어쩜 수년 이내 중견국가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전망을 내놓은 학자들이 근거로 든 건 한 인물 때문이었다.

인류 유일의 현자를 솔론 왕국이 품고 있어서였다.

문제는 교단과 현자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 보니 이를 솔론 왕국의 독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뤼빅스의 진정한 실세는 교단이기에.

그리고 이를 알기에 솔론의 귀족들은 어스를 품기보단 밀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하나 오늘 이 회의에서 결정된 안건(인류 연합군 결성)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그때도 어스를 솔론 왕국의 약진에 걸림돌이 될 독으로 볼 학자들이 있을까 싶다.

솔론 왕국을 대표하여 이 회의에 참석한 슈리에 율리아스 후작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솔론 왕국이 보유한 3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자 왕당파를 떠받치는 2개의 기둥 중 한 사람이 바로 슈리에였다.

본래 이 자리는 솔론 왕국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하츠 노멜 후작이 참석해야 이치에 맞다. 그러나 최근 그는 지병을 핑계로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그를 대신하여 슈리에 율리아스 후작이 참석했다.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마족이 침공한다면 최우선시될 것은 역시 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그러한 무력에 있어 어스 테리우스 백작 만한 인사도 없지요. 추기경께선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날 그는 마족을 상대함에 있어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대륙의 모든 이종족 노예와 혼혈을 덩컨 대협곡 너머 미답지로 보내달라더군요. 나는 그의 저의가 몹시 의심스럽더군요.”

헤롯 추기경의 말은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땅과 백성, 그리고 힘을 갖추었으니 그다음 단계는 굳이 지켜볼 필요가 없이 불 보듯 뻔했다.

건국!

이는 기존의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런 나라가 세워지면 이종족에 대한 박해, 그 주체는 교단이지만 과연 자신들이라고 원망을 피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인정한다?

꿀꺽.

“…. 그는 매우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군요. 하필 이런 때에.”

셀레네 왕국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자의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셀레네 왕국은 미답지(실리시아)와 바로 붙어 있었으니 이종족의 나라가 건설되고 그 국력이 커진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왕국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끈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로 마족 때문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장 급한 불은 마족이기에.

“그래서 교단은 연합군에서 어스 테리우스 백작을 배제할 생각입니다. 더해 그를 그의 땅으로 추방하려고 합니다. 이에 교단은 정식으로 솔론 왕국에 요청합니다. 그의 작위와 영지를 박탈하고 그를 추방하길 바랍니다.”

헤롯 추기경의 요청에 슈리에 후작은 하츠 노멜 후작이 아니라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기름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임을.

‘당했구나! 하츠 후작과 교단에게.’

* * *

마계 마족의 대규모 침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어스의 생각과 달리 글리시아 남작 영지 이후 침공의 정황으로 의심할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원 이동 재사용 시간이 끝나면 바로 가서 알아봐야겠군.’

마계에선 검은 탑을 이용하면 언제든 뤼빅스로 넘어올 수 있다.

때문에 마계의 동향을 살핀 뒤 급하다 싶으면 곧장 귀환이 가능했다.

앞서 검은 탑을 내줬으니 이번엔 작정하고 포진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마왕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면 혹 모를까.

똑똑.

“밥 먹다 말고 무슨 생각하는 거니?”

어머니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깬 어스는 손에 쥐고 있는 포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모두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요.”

“할 이야기?”

“예.”

“무슨 일이니?”

“이번에도 이사를 했으면 해요.”

어스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틀 전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별말 없던 어스가 저와 같은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다들 그리 짐작한 것이다.

행크가 입을 열었다.

“마족 때문이니?”

“그 문제도 있고 또 다른 문제도 있어요. 아버지.”

“또 다른 문제?”

사실 마족도 마족이지만, 마족으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 교단이 이례적인 침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말이다.

그 점이 어스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저들의 속에 음흉한 꿍꿍이가 없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조용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은 가족들에게 밝힐 생각은 없었다.

밝혀봐야 가족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열성 신도는 아니지만 부모님 역시 룬의 신도이기에.

“실은 글리시아 남작 영지에 마족들이 나타났었어요.”

“글리시아면? 거긴 루리아 영애의 본가 아니냐?”

“인명피해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어요. 아무튼 그 일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이 될지도 몰라요. 이번 일만 해도 그렇고.”

어스의 말을 들은 행크와 엘이나는 이사를 반대하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긴 했지만.

“엄마랑 난 네 결정에 따르마. 여기에 정이 들긴 했지만 안전이 우선이지. 그런데 여긴 네 영지인데 여긴 어떻게 할 생각이냐? 혹시, 우리만 가는 거니?”

“이곳이 제 영지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솔론 왕국의 것이죠. 그러니 온전히 제 것이라곤 할 수 없죠.”

“갈 곳은 있고?”

“물론이죠. 그리고 거긴 확실히 제 땅입니다. 또한 여기보다 훨씬 안전해요.”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일단 마족의 관심을 받은 이상 이틀 전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혹은 글리시아 남작 영지처럼 대규모 마족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놈들에게 자신은 불구대천의 원수일 테니.

그러니 어리긴 하지만 신성한 세계수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또한 이곳보다 양질의 병력이 많은 실리시아로 가는 편이 낫다.

부모님이나 여동생도 그곳에 가면 필시 좋아하리라.

“오빠.”

“어.”

“혹시, 왕국이라도 세울 참이야?”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오빠가 방금 말했잖아. 이 땅도 결국 따지고 보면 솔론 왕국의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의 땅은 확실한 오빠 땅이라고 하지 않았어? 물론 땅이 있다고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앞서 영지로 들어온 이종족과 혼혈들이 좀 많아. 혹시 앞서 사라진 그들 모두 우리가 가는 곳에 있는 거 아냐?”

여동생 루시의 추리에 어스는 할 말을 잃었다.

혹시, 푸리엘이 녀석에게 말한 건가?

푸리엘을 보니 그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루시 개인의 추리다.

쟤가 언제부터 똑똑해졌지?

의아했지만 여하튼 멍청한 것보단 이편이 백번 낫다.

행크와 엘이나가 즉각 반응했다.

“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

“왕국을 세워?”

어스는 목을 살짝 축인 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제부터 똑똑해졌는지 모를 여동생과 일일이 눈을 맞춘 뒤에야 본심을 털어놓았다.

“루시 말이 맞아. 이참에 나라 하나 세워서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살아보려고 해.”

건국을 마치 시장에서 상점 하나 여는 것처럼 쉽게 말하는 어스의 말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저들은 마법사의 가족이란 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영주의 가족이 되었을 땐 사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테리우스로 내려와 한참 지난 후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 아들이 왕이 되겠다고 한다.

현실인지 꿈인지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

“그, 그게 가능해?”

가족을 대표해서 루시가 물었다.

이미 지 입으로 떠들어놓고 이제 와서 모른 척 반문하긴.

어스는 푸리엘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녀에게 물어보란 의미였다.

루시는 곧장 푸리엘을 응시했다.

행크와 엘이나 역시.

“영주님은 가능하십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집에 붙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다 보니 영지는 자연스레 푸리엘이 도맡아 관리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능력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가족들은 푸리엘을 무척 신뢰하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푸리엘 씨가 가능하다면야.”

“가능하군요. 우리 아들이 나라를 세울 수 있다니. 얼떨떨하군요. 하하.”

“그럼 난 영주의 기사가 아니라 왕의 기사가 될 수 있는 거네. 나쁘지 않네. 호호.”

자신의 말엔 다들 반신반의하던 가족들이 푸리엘의 한마디엔 곧장 수긍하자 옅은 배신감(?)마저 느꼈다.

‘나 신뢰받는 아들 아니었나? 어떻게 내 백 마디의 말보다 푸리엘 한마디에 저리 반응하는 거지?’

어쨌건 푸리엘의 도움으로 자신의 거대한 구상을 가족들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저들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실리시아를 보게 되면 더 까무러칠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어스는 남은 식사를 마저 끝냈다.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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