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천사가 어스를 찾아왔다.
한 손엔 빛으로 이뤄진 창과 다른 한 손엔 신비로운 문양이 영롱하게 빛나는 신성한 방패를 든 천사였다.
지금까지 여럿 천사를 보아왔지만 날개가 여섯 쌍인 천사는 처음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대천산가?’
천사를 목격한 인간은 없다.
그럼에도 성서는 천사를 직접 목격한 자가 그 모습 그대로 성서에 옮겨 놓았는지 그 생김새나 특징이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성서 집필에 참여한 자가 설마 자신처럼 차원 이동이 가능했던 자가 아니었을까 싶을 지경이다.
다수의 대마왕도 단신으로 상대한 이력이 있는 어스다.
상대가 대천사라곤 하지만 마계로 치면 대마왕 급이다.
그러니 어스가 위축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저 대천사를 사냥하면 칭호 하나 새로 얻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렵긴커녕 오히려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대마왕 잡듯 대천사를 잡으려니 후폭풍이 걱정되어 욕심을 힘껏 눌렀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강한데 여기서 더 강해지면 그땐 지금도 애먹고 있는 일상생활이 더욱더 멀어질 수 있다.
“천계의 백성을 해하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스틱스에 삶아 죽여도 시원찮을 악마여.”
악마 아니고 인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악마로 단정해버렸다.
그리 단정한 이후 저들과는 아예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시작은 우연한 사고였다고! 그래, 내가 이 말을 해봐야 뭐하겠어. 절대 안 믿을 텐데.”
“간악한 세 치 혀로 나를 속이려 하는구나. 이제 내가 왔으니 네가 올라왔던 지저분한 지옥으로 보내주마. 어찌하여 악마 따위가 신성한 천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너를 단죄하여 잔인무도한 널 천계로 보낸 악마계에 그 죄를 묻겠다.”
참고로 마족과 악마는 다른 종족이다.
처음엔 둘이 같은 종족인 줄 알았지만 천계에 와서 서로 다른 종족임을 알게 되었다.
천족과 천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니, 성서학자들 사이의 오랜 논쟁거리였던 마족과 악마는 동일한 존재인가에 대한 그들 사이의 논쟁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준다면 말이다.
“그래서 네 이름은 뭐냐?”
“추악한 악마 따위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 지옥으로 꺼져라!”
빛의 창끝이 어스를 겨냥한 순간 무형의 기운이 어스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보통은 이 압력만으로도 웬만한 악마는 육체와 영혼이 바스러지기 마련이지만 일단 어스는 신성력에 노출되어도 문제가 없는 인간이기에 이 속에 섞인 공격 하나는 무사통과했다.
그러니 남은 건 무형의 압력이다.
어스는 옷에 묻은 먼지 털 듯 이 압박감을 해소한 뒤 단숨에 대천사에게 접근했다.
몸뚱이를 때리면 죽을까 봐 방패를 때렸다.
콰-아아아아앙!
철옹성과 빛의 방패가 충돌하자 그곳에서 천둥보다 더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빛이 산란하고, 무형의 소리가 유형화 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주변으로 퍼져나간 파문에 닿은 건 그게 뭐든 모조리 물거품 터지듯 터져버렸다.
빛의 방패는 충격을 상쇄하지 못했다.
대천사의 육신은 긴 선을 그으며 날아가 산봉우리를 들이박고 나서야 멈추었다.
어스라고 충격이 없는 건 아니다.
손바닥이 저릿했다.
‘이런 손맛은 또 처음이네.’
생명력이 닳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생명력 : 3,472,220/3,472,220.
이 미친 생명력 수치는 이제 산 하나쯤은 그냥 날려버릴 수 있는 강력한 공격 역시 이젠 생명력 –1로 뭉뚱그려 계산해버렸다.
이게 과연 사람이 가질만한 내구력일까?
절레절레.
‘앱솔루트 쉴드는 괜히 배웠어, 괜히.’
몸뚱이가 9서클 절대 방어 스킬보다 더 단단해질 날이 올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거기다 힘은 또 어떠한가 하면 단순한 주먹질이 메테오와 동급이다.
비분강개한 대천사가 여섯 쌍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궁극의 기술이라도 사용하려는 듯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심상치 않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앱솔루트 쉴드를 시전했다.
아까운 로브를 버릴 순 없으니까.
“악을 멸하라!”
대천사의 웅장한 음성과 함께 빛이 해일이 되어 어스를 덮쳤다.
앱솔루트 쉴드가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스가 펼친 앱솔루트 쉴드의 절반은 그 빛의 해일에서도 살아남았다.
백색으로 물든 세상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어스는 예의 그 자리에 꼿꼿한 자세로 떠 있었다.
반면 대천사는 풍성한 깃털 태반이 빠져 있었다.
대단히 놀라운 그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선 천사의 깃털을 희생시킨 듯했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전락한 대천사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어, 어찌…생츄어리를 버틸 수 있지? 악마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신성 마법인데.”
“악마 아니고 인간이라고, 인간! 내가 몇 번을 말해야…하아, 됐다. 됐어. 이제 재사용 시간도 끝났으니 난 내 세상으로 돌아가마.”
“내가 악마의 말을 믿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사람을 끝까지 악마라고 하다니.
차원 이동이 가능해진 이상 더는 여기 남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마지막 가는 길 저 싸가지 없는 대천사님의 싸다구나 한번 날려주기로 했다.
‘블링크!’
단숨에 대천사 앞으로 이동한 어스는 메테오와 동급의 파괴력을 가진 손으로 그 뺨을 후려쳤다.
중간에 힘을 상당히 뺐다.
안 그랬다간 얼굴이 통째로 날아갈 테니까.
어스는 대천사의 싸대기를 날리지 말아야 했다.
왜?
생츄어리를 사용한 후의 대천사는 무척 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을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업적 포인트 1,200을 습득합니다.
-20억 코인을 습득합니다.
-레벨업!
.
.
.
.
“이, 이건 실수…였어.”
깜짝 놀라지만 시스템의 경고는 없었다.
대신.
-???신이 자신의 첫 번째 종을 죽인 당신을 저주합니다.
-천계에서 영구 추방당합니다.
신의 저주를 받고 천계에서 추방당했다.
영원히.
* * *
영구 추방으로 뤼빅스로 다시 돌아온 어스는 오자마자 곧장 ???신이 자신에게 내린 저주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이름(성별) : 어스(남).
직업(레벨) : 마법사(666).
칭호 : 위그드라실의 친구(유일). 축복받은 자(유일). 엘프의 군주(유일). 마왕 살해자. 대죄를 멸한 자(+7).
생명력 : 3,472,220/3,472,220. (생명력 회복 1시간 40퍼센트).
마나 : 3,494,100/3,494,100. (마나 회복 1시간 60퍼센트).
인벤토리 : 1(+65).
스탯 :
힘(6,552.7). 민첩(6,552.7). 체력(57,790). 지력(52,237). 정신(56,450).
직업 스킬(16/16) :
매직 애로우(+12/12). 파이어 애로우(+12/12). 파이어 볼(+12/12). 파이어 버스트(+12/12). 아이스 스피어(+12/12). 일루젼(+12/12). 콜 라이트닝(+12/12). 블링크(+12/12). 체인 라이트닝(+12/12). 헬파이어(+5/12). 레스토레이션(+3/12). 프로즌 템페스트(+3/12). 엘리멘탈 피니쉬먼트(+8/12). 메테오 스트라이크(+3/12). 워프 게이트(+3/12). 앱솔루트 쉴드(+3/12).
업적 포인트 : 1,570.
코인 : 9,211,536,057.
‘저주받았다며?’
신의 저주라고 해서 크게 놀랐던 어스는 막상 확인한 상태창의 내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알람이 신의 저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신이 건 저주로 인하여 향후 10년간 ‘위그드라실의 인도’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신이 자신의 저주가 터무니없이 약한 것에 화를 냅니다.
-???신이 추가 저주를 내립니다.
-추가 저주의 대가로 ???신은 향후 1만 년 동안 외부 개입이 제한당합니다.
-???신의 저주로 사후 지옥행이 확정됩니다.
“와아. 어이가 없네. 이 신님이 쳐 돌았나? 명색이 신이면서 마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건가?”
거기 비하면 천계는 침도 묻히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악의적인 저주라니.
‘지옥이야 내가 안 죽으면 안 가면 된다지만 차원 이동 10년이면…’
사후 지옥행 보다 이게 더 열 받는 어스였다.
자신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바로 차원 이동인데 이제 그걸 못하게 되었으니 통탄이 알아서 나올 수밖에.
은혜를 원수로 갚은 ???신의 선물(?)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를 발견한 푸리엘이 반색했다.
예전이었다면 당장 달려왔겠지만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기척을 냈다.
집채만 한 바위도 공깃돌 갖고 놀 듯 노는 어스의 괴력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푸리엘.”
“전하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이번 사냥터는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엘프도 천사를 믿는지.
“푸리엘, 엘프도 천사를 믿어?”
“저희 엘프족도 천사님을 공경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천계에서 있었던 일은 앞으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천사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을 뿐인데 벌써 경건한 몸가짐을 가지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천사를 까칠한 동공이 실패한 도자기 깨버리듯 대가리를 깨고 다닌 이야기를 어찌할까.
더해 천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천사 가브리엘을 방금 때려죽였다고 어찌 말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자신도 어렸을 땐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기도한 적이 있었다.
이상한 꿈 안 꾸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당신이 내 소원 안 들어줘서 벌 받은 거로 합시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하하.”
신의 저주도 묻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으니 향후 10년은 휴가라 생각하자.
평범한 산골 사냥꾼 아들에서 나라까지 건국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는데 10년은 쉬어도 되리라.
‘당신은 내게 똥을 쐈지만, 인간인 난 선물이라고 생각하겠다.’
삐딱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어스는 입꼬리를 얄밉게 위로 말아 올렸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든 걸까? 마른하늘에 벼락이 쳤다.
설마 앞으로 신이 실시간으로 자신을 관찰하기라도 하는 건가 싶어 심장이 덜컥했다.
다행히 그건 아닌 듯 먹구름이 몰려와서 비를 뿌렸다.
“전하? 창은 왜?”
하늘을 향해 창을 겨누는 미친 짓을 벌이고 있는 어스를 본 푸리엘이 놀라 소리쳤다.
벼락을 동반한 날씨에 창을 저리 하늘에 들이밀고 있는 건 자살행위였으니 당연히 놀랄밖에.
벼락을 24시간 맞더라도 이젠 털끝 하나 다칠 어스가 아니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푸리엘은 조바심에 발을 동동거렸다.
‘전하가 이상해졌어. 대체 다녀온 차원이 어떤 곳이기에 저러시지?’
* * *
“성지를 수복하자!”
“악마를 지옥으로!”
“룬께 승리의 영광을 받치자!”
“우와아아아아-!”
순교도 엄연히 죽음인 데 광신도들은 이를 축복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시국을 둘러싼 수급의 뱀들이 풍기는 기운은 분명 상대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인식하게 만들었음에도 성전이란 깃발 아래 모인 자들은 머리 한쪽에 이상이 생기기라도 한 듯 겁도 없이 앞다투어 수급의 뱀들을 향해 내달렸다.
이를 본 수급의 뱀들은 그 모습이 가당치 않은 것인지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모골 송연한 그 소리에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쓰러진 자들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소리 하나로 수천 명을 죽인 수급의 뱀은 기세가 오른 듯 아예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런 수급의 뱀을 향해 갖가지 공격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공격은 허사로 돌아갔다.
멀쩡하던 시국이 하루도 안 되어 무너진 건 시국이 약해서가 아니다.
대륙에서 가장 많은 수의 소드 마스터들이 당시 이곳에 있었고, 교황청 소속 대마법사들 역시 그 싸움에 가세했다.
그럼에도 무너졌다.
물론 당시 그들이 상대한 건 수급의 뱀을 만단 장본인이지만.
순교를 마다하지 않고 덤벼드는 인간들을 죽일 때마다 수급의 뱀은 점점 커졌다.
저러다 도시 전체를 품을 만큼 커지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이, 이건 무리야! 이래선 제물밖에 안 돼!”
“저기, 저기 성벽에 사람이 있다!”
산 사람은 모두 죽거나 혹은 시험에 통과하여 시국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니 시국에 남은 자가 있을 수 없다.
생존자들이 말하던.
“대, 대악마?”
대악마라는 호칭에 괴인이 반응했다.
그것은 찰나였다.
곧 괴인은 관심을 거둔 채 북쪽 하늘을 응시했다.
이후로 쭉.
“끄아아아아아-!”
“룬이시여…저희를 가엾게…”
전장은 일절 쳐다보지 않고 오직 그곳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