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육 년도 깁니다.”
메넌이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약에는 내성이 생깁니다, 전하. 억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는 특별한 억제제에는,”
“알아. 하시시가 들어간다는 건.”
메넌이 혀를 찼다.
“아니, 그걸 알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제 장사 밑천인데.”
“육 년 정도 사용하면 중독을 이겨 낼 수 없나?”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생각해 보십시오. 하시시를 육 년이나 복용하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기적적으로 중독이 되진 않더라도 체내에 독성이 쌓입니다.”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다.
“독성을 완화시키는 약은?”
“억제제와 함께 복용하시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런 종류의 약들은 사람을 변하게 만듭니다. 육 년 뒤라면 전하의 그 사랑스러운 외모도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고개를 저은 메넌이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육 년이라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겁니까?”
“……그래.”
페란스가 약간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육 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그건 좀 자신이 없었다.
이 시간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열여섯과 열세 살은 너무 어렸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군요. 전하께서는 각인을 하셨고, 현재 그 상대와 발정기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하고, 그래서 육 년을 억제제로 버티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흠,”
뒤늦게 덧붙인 숨소리가 의미심장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데. 감추지 말고 해.”
“……뭐, 그냥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지금 위스타드의 수도를 시끄럽게 만드는 콜더스트가의 알파 자식이 열셋이라고 하던데요. 거기에 육 년을 더하면 딱 성인이,”
“그만.”
페란스가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남작의 아들에게 각인하신 겁니까? 그러니까, 열세 살짜리에게?”
페란스가 머리를 짚은 채 눈을 치켜떴다.
“그 이름을 가진 자들은 왜 이렇게나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군. 네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자각이 없나?”
“하지만 제가 아니라면 전하께서는 특별한 억제제를 구하실 도리가 없으실 겁니다.”
“그게 네가 선을 넘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선을 넘겠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전하. 제가 숫자에 민감한 체질이라 생각이 떠오른 것뿐입니다. 그걸 제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불경으로 느껴지는데…… 아닙니까?”
“……이런 인간인 줄 알았어야 했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메넌은 사람을 열받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경계심을 무너뜨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 터놓는 게 낫다는 말은, 묘하게도 자신이 한 편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하지 않았다. 각인 상대는 따로 있어.”
“저런. 그럼 뜬소문입니까? ……아, 그렇다면 섭정이 주장하는 불경은 누명이겠군요.”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작자였다.
장사꾼이니 남의 나라 전쟁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수도는 아만다리스와 콜더스트의 전쟁으로 한창 시끄러웠고, 블루와렌의 수호자가 그 얘기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일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습니다, 전하. 위스타드의 섭정께서는 전하의 진짜 각인 상대를 감추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할 모양이로군요. 그 이유가…… 으음, 이 말까지 제 입으로 하면 정말로 목이 날아갈 것 같은데 말입니다. 혹시 그 상대가……?”
말을 하던 메넌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페란스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각인 상대가 아만다리스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한 듯했다.
“거기까지. 그 이상은 말하지 마라. 그리고 너, 짜증나.”
페란스가 입술을 질겅였다.
“이상한데.”
그러자 메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짜증을 내는 전하의 모습이 더……. ……아닙니다. 방금 한 말은 잊어 주십시오.”
그는 어쩌면 너 짜증나, 라고 하는 페란스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갑자기 가슴이 약간 지끈거렸다.
지금에 와서는 전혀 상관없는 사이가 된 그가, 마찬가지로 지금에 와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십삼 년 뒤에는 마르스티엘의 일부였다. 제 일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자꾸 경계심이 흐려진다고.
페란스가 말을 돌렸다.
“왕실 길드의 유통망을 네게 주겠다. 길드장을 네 사람으로 앉혀. 위스타드에 그만한 인맥 정도는 있겠지. 세금만 똑바로 내면 네가 왕실 길드를 어떻게 써먹는지는 상관하지 않겠다.”
메넌이 힉, 놀라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말입니까?”
“왕실 길드가 딱히 왕실에 이득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블루와렌산 물건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이 나라에 이득이다. 무엇보다 질이 나은 소금이 더 싸게 들어오겠지.”
십삼 년이나 더 일찍.
메넌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 세상에. 제가 소금 유통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럴 것 같았다. 제일 쉽게 돈이 될 사업이니까.”
“맞습니다. 전하께서 블루와렌의 수호자가 되셨어도 괜찮았겠는데요.”
“그건 됐어. 나는 흥정에는 흥미가 없다. 대신,”
“네, 전하.”
갑자기 저렇게 큰 선물을 던져 주는 건 이유가 없을 리 없었다.
육 년간의 억제제 값으로도, 그리고 입막음용으로도 왕실 길드는 너무 과도한 금액이었다.
“내 사람이 돼.”
“……아?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혹시 제게서 다른 쓸모를 염두에 두신…… 그런 겁니까?”
“뭐?”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제가 인물이 좀 훤칠하기도 하고, 또 남작의 아들은 아직 나이가…….”
“하, 진짜.”
페란스가 알현실 소파 옆 탁자에 놓인 장식용 과일을 집어 메넌에게 던졌다. 메넌은 뻔히 날아오는 과일을 보면서도 감히 피하지 못하고 허벅지를 고스란히 맞았다.
메넌이 허벅지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손버릇이 안 좋으시군요, 전하.”
“닥쳐. 애초에 네 입버릇이 문제였으니까.”
“아니, 오해할 만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저를 언제부터 아셨다고 갑자기 그렇게나 큰 대가를…….”
“왕실 길드를 넘길 만큼이라는 건 알아.”
“……어째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마르스티엘이 너를 골랐으니까.
마르스티엘이 메넌을 신뢰한 만큼은 자신도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
“한 번 내 사람이 되면, 너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이 틀린가?”
“그건 참.”
메넌은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는지 턱을 여러 번 쓸었다.
“기대도 못 했던 일이라……. ……하지만 네, 저 역시 전하께서 제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서로 얻을 게 확실하다면 거래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겠지.”
메넌이 눈을 마주치고 싱긋 웃었다.
“그럼 알려 주십시오, 전하. 전하의 사람이 되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 내 손발이 되어라. 그렇다고 궁인처럼 내내 붙어 있으라는 말은 아니야. 내게 궁 밖의 동향을 알려 주고, 내 편이 되어 움직여. 그렇게 하는 한 왕실 길드는 계속 네 것이다.”
“알겠습니다, 전하.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을 붙이는 건 괘씸한데. 일단 말은 해 봐.”
웃음기가 머물던 눈이 진지해졌다. 역시나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다.
“아직 이유는 모르겠으나 전하께서 저를 원하신다면 저 역시 전하를 원하게 해 주십시오. 거래나 돈이 아닌, 진심으로 전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말이군. 그래서 뭘 어떻게 해 달라는 건데?”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일단은 콜더스트 남작의 아들을 어떻게 하실 건지, 그것부터 듣겠습니다.”
“그게 네게 왜 문제가 되나?”
“글쎄요……. 저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습니다만 일단 추문의 상대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추문을 어떻게 다루실지 알고 싶습니다. 그게 전하께서 어떤 인물이신지 말해 줄 것 같습니다.”
메넌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지만 페란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들려왔다.
혹시 뭔가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너와 나를 묶는 건 그라는 것을.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지만, 내게만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래도.
“……앉아.”
페란스가 알현실 구석의 의자를 가리켰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자였지만 알현을 받는 페란스의 허락이 없이는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의자였다.
“제가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아. 그리고 내 앞에서 앉는 데 익숙해져. 그게 너와 나의 관계가 될 테니까.”
“영광입니다, 전하.”
메넌이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서 있을 때보다 눈높이가 훨씬 낮아졌는데 이쪽이 거리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말해 두지만, 나는 열여섯 살이야.”
뭐라고 말할지 머리를 한참 굴리던 페란스가 이런 말로 입을 열었다.
“압니다, 전하.”
“그러니까 사실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전하의 선택은 섭정이 아니라 남작의 아들이라는 말씀이로군요. 뭐, 아직 어리긴 합니다만 전하께서 그런 취향이시라면.”
페란스가 메넌을 노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입단속하는 법을 더 배워.”
메넌이 인정한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때 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도, 그게 화려한 이목구비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의견을 드리자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뭐냐, 두 분 다 어리시니 좀 운명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아, 물론 전하께서 진심이시라면.”
열세 살짜리한테 진심이라고 하면 자신이 아주 글러먹은 인간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성장할지 알고 있다.”
“벌써 그런 믿음이 있다면 운명적인 거 아닙니까?”
페란스는 쓸모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메넌의 사견은 무시해 버렸다.
“아만다리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입을 막으려고 들 거야. 근위대가 둘을 수도로 데려오는 중이지만 중재가 통하지 않을지도 몰라. 아직 대관식을 치르기 전이라 내 힘은 미욱하다.”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블루와렌으로 보냈으면 한다. 위스타드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아……. 남작의 아드님을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만다리스를 어떻게 할지, 그리고 마르스티엘을 어떻게 지켜 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