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다음 시합은··· 동쪽에서 온 진기한 검투사. 진!!! 라인강 동쪽에서 올라온 사나운 거친 야만인!! 듀라!!!”
두 사람의 소개가 끝나고 우진과 상대는 아레나의 안으로 들어왔다.
우진은 들어오자마자 상대를 관찰했다.
상대의 무장은 글라디우스라고 불리는 짧은 검에 두꺼운 사각 방패. 그리고 머리에는 시야를 줄이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검투사의 무장이었다.
특히 그가 들고 있는 짧은 검.
저 검의 이름이 글라디우스는 바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검이었다.
보통 길이는 60~70cm로 좀 짧은 편에 폭은 5cm의 양날검이다.
검이 너무 짧은 감이 좀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시대의 레기온이라고 불린 로마 의 중장보병에게는 이 글라우스가 가장 적합한 무기였다.
로마군단의 전쟁이라는 것은 먼저 중장 보병이 선두에 서서 방패로 빼곡하게 정렬해서 하나의 벽을 만든다.
그리고 후방에서 투석기, 활, 투창 등을 이용해서 다양한 무기로 적을 섬멸, 하고 기선을 제압했다.
중장 보병의 역할은 그때까지 라인을 지키거나 혹은 전열이 무너진 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돌격 시에도 줄을 칼같이 맞추고 하나의 사각형 덩어리가 전진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밀집했을 때 모두가 한 덩어리처럼 접근전을 벌였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 긴 검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필요한 요건은 단단하고 찌르기와 베기에 양쪽 다 가능할 것.
그게 바로 조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철 제련기술로 만든 글라디우스는 그 길이를 짧게 함으로써 오히려 강도를 올렸다.
검은 길이기 길어지면 힘을 받기 쉬워서 부러지기 쉽다.
하지만 길이가 짧아지면 그만큼 부러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만큼 부딪혔을 때 손에 가해지는 충격은 좀 크지만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글라디우스는 손잡이인 그립에 신경을 많이 썼다.
손잡이에 홈을 파거나 그립의 두깨를 주문 제작하거나···.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써서 완성시킨 것이 이 글라디우스라는 무기였다.
이 무기는 사실상 로마가 멸망하기 전가지 유럽을 주름잡고 있었다.
우진도 명색이 검도가였고, 이런 방면으로 많은 연구를 하기도 했었다.
내심 한국에 있을 때도 만약에 검도를 가지고 그런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라는 상상을 종종 하기도 했다.
‘그 상상을 실전에서 벌어지게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우진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연단의 위에 있는 주최자가 외쳤다.
“시작!!!!”
“와아아!!!!”
“죽여라!!! 피를 보여라. 내장을 끄집어 내라!!!”
“빨리 휘둘러라!!!!”
주최자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관중들은 열광했다.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치는 남자들은 오히려 양반이었다.
여자들 중에는 옷을 홀딱 벗고 자신을 드러내며 소리치다가 옆의 아무 남자에게나 입을 맞추고 난잡하게 달라 붙기 시작하는 여자도 있었다.
‘·····영국의 축구 홀리건들은 아무것도 아니었군.’
우진은 그런 관중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고대 최대의 문명 국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냥 단체로 약이라도 빤 머저리들 처럼만 보였다.
“뭐 하느냐? 애송이, 허무하게 머리라도 날아가고 싶으냐!!?”
그때 우진에게 큰 소리로 외치면서 상대가 검을 휘둘렀다.
우진은 뒤로 발을 움직여서 미끄러지듯이 스르륵 물러났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서 자신의 검을 꺼냈다.
검투사의 무기는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서 좋은 것으로 갖춰야 했다.
우진의 경우는 아직 까지 시합에서 번 돈이 없기 때문에 원래는 기본 무장만을 가지고 올라와야 했다.
하지만···.
우진이 라시에타의 위에서 그녀에게 부지런히 봉사를 한 보람이 있어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무장을 얻을 수 있었다.
우진이 바란 것은 해동검도에서 쓰는 환도를 그림으로 그려서 주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방어 장비로 주문한 것은 손목에 차는 건틀릿이었다.
방패 대신에 쓰려고 주문한 것이었는데 이 시대의 야금 기술로는 아직 건틀릿이라는 것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두꺼운 가족을 팔에 감고 그 가죽의 사이에 철판을 대었다.
손등과 손가락을 정밀하게 보호하는 건틀릿은 아니었지만 양팔을 팔꿈치 아래로 보호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검투사의 필수 장비라고 할 수 있는 투구는 쓰지 않았다.
양철 주전자 같은 투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그것은 시야에 심각한 장애를 준다.
우진의 생각으로는 없는게 좋을 것 같았다.
우진이 검을 뽑고 중단 자세를 취하자 상대는 멈칫 하면서 우진을 바라봤다.
“특이한 놈이군···. 네 고향에서는 모두 그렇게 싸우냐?”
“····알아서 뭐 하게?”
우진의 도발에 놈은 울컥 하는 듯 했지만 그래도 멧돼지처럼 달려 들지는 않았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 뿐이다.
놈도 자기 목숨은 아까운 것이었다.
스으윽··· 스윽···.
어디로 움직여도 우진의 검 끝은 듀라의 목덜미를 조준하고 있었다.
거기에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는지 듀라는 섣불리 달려드지 못했다.
‘제길···. 뭔가 거슬리는데····.’
듀라는 내심 초조하게 우진을 바라봤고, 둘의 대치가 길어지려고 하자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
“빨리 싸워라!!!!”
관중들이 야유를 하고 썩은 야채 찌꺼기를 집어 던지기 시작하자 듀라는 조급해 졌다.
이 시대의 검투사들을 바라보는 관중의 야유는 그냥 파이트 머니에만 영향을 주는 현대 격투기 관중들의 야유와는 달랐다.
아주 드물지만····.
시합이 형편 없거나 재미 없으면 관중들은 둘 다 죽여 버리라고 분노를 터트리기도 했다.
노예의 목숨이라는 것은 로마인을 위해서 있는 것.
관중을 즐겁게 해 주지 못하는 검투사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 관중들의 심리였다.
우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듀라는 초조함에 밀려서 먼저 공격에 나섰다.
‘놈은 방패도 투구도 없다. 검을 쳐내고 몸으로 밀어 붙여서 쓰러트리면 되.’
듀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진했다.
앞에 나와있는 우진의 검을 노리고 글라디우스를 빠르게 휘둘렀다.
글라디우스는 검이 짧아서 휘둘렀을 때의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동양의 환도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가볍기 때문에 더 빠르게 움직 일 수 있었다.
후웅!!!
우진이 살짝 손목을 거둬들이는 것 만으로도 그의 글라디우스는 멋지게 헛스윙을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방패를 앞세워서 육탄으로 부딪히려고 했다.
사각 방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투구로 머리를 보호한채로 돌격하면 전신의 80%는 가릴 수 있었다.
그 상태로 돌격하는 듀라는 우진과 부딪혀서 쓰러트린 다음에 발로 밟아 버리거나 검으로 찔러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딪히기 직전에 그의 시야에서 우진이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발치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면서 그는 자신이 앞으로 쓰러지는 것을 느꼈다.
쿠웅!!!
그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모래가 투구의 공기 구멍으로 들어와서 입에 씹히는 느낌이 들었다.
“크윽··. 감히···.”
“움직이지 마.”
“···········.”
우진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그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뒷목에 닿아있는 서늘한 감촉은 날붙이가 틀림 없었다.
이렇다 할 검의 부딪힘도 없이 단 한수에 제압당한 그는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놈···. 나하고 급이 다르다.’
어지간하면 이판사판으로 몸을 돌리며 싸워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진과의 실력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우진은 이제 관중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승부가 완전히 결정된 상황에서 패자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관중들의 의사였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관중들 중에 상당수가 듀라라는 덩치에게 돈이라도 걸었던 것일까?
죽이라는 군중의 분노에 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해야 하는 건가····.’
우진이 걱정한 최후의 일선.
그것은 바로 살인에 대한 일선이었다.
로마에서 검투사로 살아가려면 살인에 대한 선을 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자유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고···. 그리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이나 똑같았다.
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 승부에서 졌다면 죽는 것은 자신이 되었을지 모른다.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다.
우진은 이런 전개를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이 자리에 선 것이다.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진 우진은 그대로 상대의 목에 검을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푸욱!!!
기분 나쁜 감촉과 소리···.
쇠가 살을 비집고 파고들어가는 감촉···.
우진은 생리적인 혐오감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살인은 그냥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죽이는 쪽에서도 죽음이라는 감각을 일시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만큼 살인을 혐오하는 것이다.
우진은 이를 악물고 상대의 등을 발로 밟고 그대로 검을 빼내었다.
검을 통해서 인간의 살과 뼈를 스치는 검날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평소에는 마치 한 몸 처럼 위화감이 없던 검이 마치 징그러운 어떤 것이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놔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앞으로···. 앞으로 이 검을 통해서 살아나가고 이 검을 통해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 것이다.
우진은 그렇게 검을 빼고 처연하게 아레나를 쳐다봤다.
“와아아아!!!!!”
“진!!! 네놈의 시합을 다음에도 보겠다!!!”
우진의 이름을 외치면서 환호하는 관중들이 사이사이에 보였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저 이 광기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 뿐이었다.
우진은 승자로 선언되고 나서 한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받고 떠났다.
왜 종려나무를 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쁘지 않은 것은 매 마찬가지였다.
============================ 작품 후기 ============================
왜 종려나무를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조사해 봤는데 종려나무가 당시 로마인들에게 승리를 상징하는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하느데...
그 정도 말고는 짐작 가는게 없습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