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실패도 성공도 지난 일은 교훈일 뿐.>
시칠리아 서부의 인간들은 대부분 카르타고 출시신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로마를 싫어했고, 로마인들은 이들을 절대로 뭉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1차 포에니 전쟁 이후에 시칠리아를 손에 넣은 로마의 콘술 마그누스 발레리아누스는 로마 원로원들에게····.
[“시칠리아에 카르타고 인들을 남겨두지 말아라.”]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다.
그만큼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인들을 경계했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막대한 차별을 했던 것이다.
베레스가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서 재물로 선택한 도시인 릴리바이움 역시 카르타고 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서부 도시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서부에서 시민들의 힘이 이정도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아직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높은 확률로 로마인들의 함정일 가능성이 있겠군.”
우진의 조심스러운 말에 디도를 제외한 주변이 술렁 거렸다.
그들은 이제야 이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최근의 승리로 너무 풀어졌던 것일까?
안 그러면 이렇게 안이하게 방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우진이었다.
“함정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라도···. 이 파르노무스라는 도시는 탐이 난다. 도시의 규모로 봐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형적으로도 꼭 손에 넣고 싶군.”
“그렇다면···. 함정을 역으로 이용해야 겠군요.”
우진의 말에 디도가 말했다.
그러나 우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함정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판가름 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러니···.”
우진은 한가지 계획을 주변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진의 계획은 대담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다. 설명을 듣는 내내 디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실패하면 함정에 그냥 빠지는 것 보다 더 큰 데미지가 있는 것 아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야. 만에 하나 이게 함정이 아닐 때는 우리쪽에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는 격이 되니까.”
“그렇지만·····.”
디도는 냉정한 그녀답지 않게 거칠게 항변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그녀의 항변에 동조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디오클레이우스는 그녀를 말리기까지 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디도양.”
“걱정 안하게 될 일인가요?”
“실제로 우리는 걱정하지 않고 있소.”
“·········어째서죠?”
“진이 된다고 했으니까.”
“··········.”
‘바보 같은 사내들····.’
결국 디도는 이미 말리기는 글렀다는 것을 알고 포기해 버렸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하다 못해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디도는 우진의 무모한 계획에 몇 가지 생각을 더 추가했다.
그러자 계획의 안전성이 조금 더 올라갔다.
그래 봤자 도박성이 짙은 계획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우진은 사신으로 온 자를 불러서 말했다.
“우리 붉은 파도 혁명군은 파르노무스의 형제들의 계획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현명한 판단이 감사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해진 날짜에 파르노무스에게 뵙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사신은 뒤로 돌아서 나가 버렸다.
“그럼···. 우리도 이제 준비 할까?”
“그렇게 하지.”
우진은 몇몇 부하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전에 메사나에 잠입할 때 써 먹었던 해적 코스프레였다.
“이번에도 노예 상인으로 위장하실 겁니까?”
“그렇지···. 그게 위장하기 좋으니까 말이야. 다만 이번에는 정찰이 목적이니 남자 노예들에 여자 노예들 까지 섞어 갈 거야.”
이전에 메사나의 일 이후로 시칠리아 항구 도시의 보안은 엄중해 졌다.
노예선이라고 해도 사나운 검투사 노예들을 태운 배는 기항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진은 이번에는 연약한 여자 노예들을 태우고 해적으로 위장하려는 것이었다.
여자노예라고 해도 비전투원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기에 우진은 이번에 릴리바이움에서 새롭게 키운 여성 병력을 쓰려고 하는 것이었다.
‘여성 병력은···. 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우진은 속으로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던 차였기에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처음 릴리바이움에 들어왔을 때 여자들 중에 몇몇이 병사로 지원했었다.
우진은 처음에 단박에 거절했었다.
하지만 여자들의 열의는 대단했다.
군사로 받아 들여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겠다는 각오였다.
우진은 결국 그녀들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남자들하고 같이 싸우게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녀들을 따로 부리기로 했다.
사실 우진은 몰랐겠지만 이 시대에는 여자들이 싸우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검투사들 중에서 여자들 검투사들이 있었고 스파르타쿠스의 군세에서도 여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가들 중에는 로마군단과 스파르타쿠스의 전쟁터에서 여인이 남자의 발목을 물어 뜯으며 싸웠다고 할 정도로 처절한 기록이 있었다.
하긴, 그 경우에는 싸웠다기 보다는 처절하게 투쟁했다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그래도 여자들도 싸울 수 있다는 하나의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우진은 일단 여자들에게 간단한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게 했다.
힘이 없는 여자들에게는 무거운 할버드나 언월도 보다는 활이나 글라디우스 같은 짧은 무기가 어울릴 것 같았다.
이 두 가지라면 우진이 아니라 다른 검투사들이 가르쳐도 충분한 것이었다.
가르치면서 한 가지 당부만 했을 뿐이다.
쓸데 없이 수작부리지 말라고 말이다.
어쨌든 적재적소라고 해야 할까?
우진은 이번에 그녀들을 데리고 위장해서 파르노무스에 잠입하려고 했다.
그녀들에게 딱인 임무였던 것이다.
“그래도 여자들하고만 가려고 하면 좀 불안한데···. 나도 동행할까?”
디오클레이우스의 말에 우진은 피식 웃었다.
“아서라. 네 덩치는 너무 눈에 띠어.”
“쳇, 하긴····.”
“그래도 몇몇 애들은 데리고 움직이고, 또 이번에는 싸우는게 목적이 아니야.”
“무리하지 마라.”
“걱정하지 말라니까.”
“농담 아니야. 무리하지 말라고 했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는 디오클레이우스였지만 그 목소리는 진중했다.
“······디오클레이우스.”
“왜?”
“만에 하나··.”
“집어 치워.”
“만에 하나 내가 안 오면···.”
“집어 치우라고 했어. 한 대 갈기기 전에.”
“·······말 좀 듣지?”
“싫어.”
“···········.”
“붉은 파도 다 말아먹기 싫거든 무조건 살아 돌아와라.”
디오클레이우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돌아갔다.
그런 디오클레이우스의 등에서 우진은 자신을 향해서 걱정하는 무한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고집하고는·····.’
어쨌든 죽을 생각은 없다.
생각해 보면 쓸데 없이 사망 플레그 따위 세우지 않아도 우진이 없으면 알아서 잘 할 디오클레이우스다.
“좋아. 그럼 출발한다.”
“예!! 두목.”
그렇게 해적으로 빙의한 우진은 부하들과 함께 파르노무스로 향했다.
파르노무스까지 가는 길에 우진의 부하중에 한명인 가르코스가 말했다.
“진님. 송구스럽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말해봐라.”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정찰에까지 일일이 진님이 다 나서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의 조심 스러운 말에 우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왜? 불안한가?”
“지금 진님이 죽기라도 하면 우리는 끝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코스는 디오클레이우스처럼 우진에게 검투사 시절부터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였다.
원래 해안가 출신인 그는 배를 잘 몰았기에 우진은 배를 탈 일이 있을때는 어김없이 그와 행동하고는 했다.
예전의 메사나 공략에서도 그와 함께 움직였었다.
그런 그였기에 우진은 가감 없이 속내를 밝혔다.
“내가 선두에 나서는 것은 아군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용기라뇨?”
영문을 모르겠다는 가르코스를 상대로 우진은 말을 이어갔다.
“로마는 거대하고 강력해. 하지만 우리는 아직 작고 약하지.”
“당신이 있습니다.”
“하하···.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도 별것 없어.”
“진님···. 무슨 말을···.”
가르코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붉은 파도에 오래 있었던 고참들 일수록 우진에 대한 충성심은 더욱더 강했다.
아니, 충성심이라기 보다는 경외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특히 함께 로마에서 검투사로서 살아온 탈주 검투사들에게 있어서 우진은 절대적인 지표였다.
그의 등 하나만을 따라가면 반드시 로마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우진이 약한 소리를 하자 가르코스는 농담이라는 듯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우진에게 말했다.
“진님. 당신은 위대한 지름신의 전사입니다.”
“그 지름신은···. 아니 됐어.”
이제 와서 진실을 말하기에는 차마 쪽팔린 우진이었다.
“당신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아껴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등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알았어. 명심하지.”
우진은 가르코스가 자신을 염려하는 심정을 알았기에 그냥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사실 가르코스의 그런 태도야 말로 사실 우진이 이렇게 몸소 무리를 하는 이유였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실어주기 위해서 가장 즉효약으로 잘 듣는 것이 바로 이런 우진의 우상화였기 때문이다.
우진 스스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붉은 파도의 대부분은 우진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우상화 하고 있었다.
가장 친밀하게 대하는 디오클레이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진은 절대적인 믿음의 증표였다.
그래서 우진은 그들에게 있어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나서서 최전선에서 공적을 올리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계속해서 붉은 파도의 진이라는 이름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세력, 거점,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명성.
우진 스스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우상화 하는 헛소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자각도 하지 않은체로 자연스럽게 일군의 군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타고난 그릇이 이 험난한 시대에서 조금씩 조금씩 각성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작품 후기 ============================
우진의 단점은 가능한 모든것을 자기가 직접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자신이 군주로서의 자각이 좀 모자라는 것이죠.
좀 더 빡세게 굴려서 각성 시켜야 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