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험난한 파도를 거쳐서 드디어 우진은 파르노무스의 항구에 도착했다.
이전에 메사나에서 난리를 쳤기 때문일까?
이전과는 항구의 삼엄함이 완전히 달랐다.
항구 여기저기서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오래 있을 곳은 아니군. 빨리 용건만 해결하고 빨리 가야겠어.’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배에서 내렸다.
우진이 배에 내리자마자 로마의 군단병이 앞을 가로 막았다.
“정지. 용건을 말하라.”
“저는 베르코스라고 하는 상인입니다. 이 항구에 물건을 팔고 식량을 사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팔 물건은?”
병사의 말에 우진은 뒤편의 배를 가리켰다.
그러자 배 위에는 머리를 산발을 하고 넝마를 걸쳐서 속살이 드러나 있는 여자들이 보였다.
“하아···. 저게 물건인가?”
배에 실려 있는 여자들을 보고 병사의 경계심은 한층 누그러진 것 같았다.
그런 병사에게 우진이 말했다.
“이번에 지중해 서쪽에서 얻은 물건들입니다. 가능하면 비싼 값을 받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잘못 왔구만? 창녀를 팔려면 여기 보다는 로마 본토가 더 비쌀 텐데 말이야.”
병사의 말에 우진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요즘 경기가 좋지 않은가요?”
“뭐. 그렇지···. 요즘 시칠리아 전체에 분위기가 험해서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하하···.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아주십시오. 우리 같은 상인들은 정보 하나하나가 파산하지 않기 위한 생명줄 아니겠습니까?”
우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병사의 손에 은근슬쩍 주머니 하나를 찔러 줬다.
“흐음····. 뭐 별것은 아니고, 붉은 파도라는 산적 놈들이 시끄러워서 말이야?”
“붉은 파도? 그게 뭡니까?”
우진은 마치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모르나? 요즘 가장 유명한 도적때 중에 하나인데?”
“예. 제가 긴 항해를 위해서 로마에 오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그렇군···. 뭐 그냥 시끄러운 도적때라고 생각하면 돼. 다행이 이 도시에는 별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그렇군요···. 뭐 다른 조심할 정보는 없습니까?”
우진은 슬쩍 주머니 한 개를 더 꺼내 보였다.
뭐 귀중한 정보가 있으면 하나 더 주겠다는 어필이었다.
“크흐흠····. 그냥 소문인데···. 붉은 파도 토벌을 위해서 시칠리아에 있는 정예 군단이 여기 파르노무스로 온다고 하더군. 여기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이미 군영을 꾸리고 대기 하고 있다고···.”
“어이!! 거기 뭐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대장님.”
말을 하던 병사는 뒤편에서 자신의 지휘관의 불호련이 떨어지자 깜짝 놀랬다.
“수상한 자냐?”
“아···. 그런것은··. 예.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냥 창녀들을 팔기 위해서 온 노예 상인입니다.”
“창녀···? 무기나 남자 노예가 아니고?”
“예. 그렇습니다.”
우진이 재빠르게 찔러준 두 개의 주머니 때문일까?
병사의 말은 은근슬쩍 호의적이었다.
“····그렇군···. 그런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라.”
“옜!!!”
그렇게 병사들이 돌아갈 때까지 우지는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숙여진 우진의 얼굴에는 심각한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역시 함정인가····?’
파르노무스 근처의 도시에 대량의 병력이 대기중이라는 말은 즉 이번에 보낸 사신의 제의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저 가능성의 얘기일 뿐.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우진은 도시의 안쪽으로 향했다.
“가르코스, 난 도시 안을 살펴 보고 오겠다. 넌 배를 지켜라.”
“예. 알겠습니다. 선장님.”
해적으로 코스프레한 우진은 자신의 부하 두 세명만 데리고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르코스와 다른 몇몇 부하들에게는 배를 맡기고 말이다.
파르노무스는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도시도 거대했고 물류도 풍부했다. 항구 하나만 놓고 보면 릴리바이움 보다 두 배는 큰 도시로 보였다.
‘이런 도시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충분한 힘이 되겠군.’
우진은 직접 보면 볼수록 이 도시가 탐이 났다.
하지만 탐이 날수록 결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때 우진은 저 멀리서 몇 명의 남자가 병사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이 도시의 지휘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우진은 얼굴이라도 확인하겠다는 호기심에 슬쩍 근처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거기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우진도 잘 아는 얼굴이 있었다.
바로 베레스의 측근이자 예전에 우진이 숀이라는 이름으로 사기쳐서 무기를 후려쳐 먹은 인간이 있었던 것이다.
‘비비아노? 어째서 놈이···?’
우진은 후두를 깊게 눌러쓰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베레스의 측근인 놈은 지금 시라쿠사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놈은 여기 파르노무스에 있었다.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데도 이걸 수상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정신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일 것이다.
우진은 조용히 접근해서 놈과 다른 한명의 남자가 말하는 대화에 집중했다.
“비비아노님. 정말 그렇게만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자네 덕분에 붉은 파도를 제압하게 되면 나는 유력한 다음 총독이야. 그렇게 되면 자네를 후하게 대우 할 걸세.”
“그저 기억해 주시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비아노와 대화하는 사대는 약간 짙은 갈색의 피부를 지닌 남자였다.
‘아마도 카르타고인 같은데···. 비비아노하고 사이가 유난히 좋은걸? 수상해···.’
우진은 이 둘의 대와에 귀를 바짝 기울였다.
비비아노는 자세히 보니 낮부터 술이라도 한잔 걸친 것인지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입도 상대적으로 가벼워 져서 자신의 계획을 멋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붉은 파도의 진이라는 놈은 이미 나의 계획에 한 발을 담궜어. 편지에 답장도 받았지. 이제 남은 것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걷어 올리는 것 뿐이란 말이지.”
“하하하···. 역시 비비아노 어르신입니다.”
“이번 일만 잘 풀리면···. 자네를 이 도시의 실질적은 지배자로 만들어주지. 잘 알겠나?”
“물론입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진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역시 함정이었어.’
만약에 자신이 아무 의심 없이 이 함정을 향해서 걸어 들어왔으면 아마도 큰 코를 다쳤을 것이 확실했다.
우진은 그 점을 생각하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왜 비비아노가 이런 계획을 직접 꾸몄을까? 듣기로는 회계사로 알고 있었는데···?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베레스하고도 연관이 없어 보이고 말이야.’
여기서 우진이 모르는 진실을 얘기하자면···.
확실히 지금이 파르노무스를 미끼로 한 함정은 비비아노가 독단으로 짠 계획이었다.
베레스의 실패로 인해서 자신까지 도매금으로 출세길이 막힐 것 같다고 느낀 비비아노는 자기 나름대로 수를 쓴 것이다.
그는 간이 크게도 베레스의 이름으로 공문서를 사칭해서 원로원에 한 장의 보고서를 올렸다.
그 보고서에는 이번에 비비아노라는 책임자의 주도 아래에서 붉은 파도를 처리하기 위한 토벌 계획을 입안했다는 보고서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베레스는 그런 상황을 꿈에도 몰랐다.
그가 원로원에 원래 보내려고 했던 서신은 원군의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서신이 원로원에 닿을 일은 없었다.
그의 심복인 비비아노가 그 서신을 따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결국 베레스는 자신의 더러운 면까지 일일이 관리하게 하던 오른팔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렇게 자기 주인을 배신한 비비아노는 자신이 실제로 입안한 계획을 원로원에게 보고하고 원로원의 재가를 받아서 군을 움직이기로 했다.
이 시기에 베레스는 20년은 후퇴한 자신의 정치생명에 시름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술로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비비아노가 일을 꾸미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는 우진에게 파르노무스의 시민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내서 우진에게 파르노무스로 야밤에 진격 할 것을 중용했다.
그렇게 하면 성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진과 붉은 파도들이 성 안으로 들어온 순간 문을 닫고 숨겨둔 로마 군대를 이용해서 소탕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뭐···, 비자금 빼돌리기 전공의 숫자꾼 치고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계획 그 자체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모두 한 가지 가정 속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우진이 아무 의심도 없이 자신의 함정에 걸려 들 것이라는 대전제 말이다.
사실 우진이 그의 말을 의심해서 함정에 걸려들지 않으면 그 모든 계획들은 그냥 뻘짓.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결국 그도 우진을 비롯한 붉은 파도의 인간들을 모두 얕잡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별것 아닌 야만인이라고 말이다.
비비아노가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을 얕잡아 보고 있다는 것을 안 우진은 이를 드러내고 미소지었다.
‘그 오만의 대가 10배로 치루게 해 주지.’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만 자리를 피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비비아노는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
비록 산적 두목 숀과 붉은 파도의 진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얼굴이 밝혀져서 좋을 일은 100%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언젠가 패주고 싶은 인간 랭킹 베스트 3안에 들어가는 밉상이었지만···.
역시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함정의 존재를 알았으니 충분해. 이제는 그 함정을 이용해서 배로 돌려줄 뿐이다.’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배로 돌아갔다.
배로 돌아간 우진은 그대로 배를 띠우고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진에게 뜻하지 않은 이레귤러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퍽!!!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라. 가르코스!!!!”
“·······벌 하시려면 저를 벌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네놈이·····.”
뿌드득···.
부릅 뜬 두 눈과 살기등등한 표정.
우진은 지금 보기 드물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런 우진에게 제대로 한 대 맞은 가르코스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할 정도였다.
우진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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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분량 때문에 여기서 절단 좀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