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누미디아를 설득시켜라.>
기원전 204년.
한니발을 향한 스키피오의 반격인 아프리카 침공에서 누미디아의 왕자 마시니사는 스키피오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스키피오에게 협력한 대가로 누미디아는 카르타고라는 거대한 그늘을 벗어나서 더 넓은 땅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것에는 누미디아를 키워서 다시는 카르타고가 강대국이 되지 못하게 하자는 스키피오의 속내도 숨어 있었지만 어쨌든 누미디아로서는 로마에 협력한 덕에 국가가 강성해 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누미디아는 그 후에도 전폭적으로 로마에 협력했고, 3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마시니사가 전투에서 전사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시니사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로마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로마가 요청 할 때 마다 식량, 군대, 코끼리 등을 성실히 제공했다.
특히 그 중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미시프사의 조카 유구르타다.
유구르타는 로마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전쟁 누만티아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거기서 스키피오의 밑에서 종군하면서 크게 공을 세우고 후일 로마의 원로원의 주요 인사가 되는 자들과 친분을 만들기 까지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미디아는 로마의 좋은 협력자였고, 로마로서도 아프리카에 자리를 두고 있는 든든한 우방이었다.
그런 양국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후의 일이었다.
계기는 BC118년 마시프사가 숨을 거두면서 생겼다.
마시프사는 숨을 거두면서 자신의 나라의 통치권을 세명에게 넘겨 줬다.
자신의 친자인 아드헤르발과 히엠프살, 그리고 혈연상으로는 조카이고 명목상으로는 양자인 유구르타였다.
역사상 미시프사가 유구르타를 싫어해서 박해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미뤄 볼 때 유구르타에게 통치권을 물려준 것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가까웠을 것이다.
유구르타는 로마의 원로원에 줄이 닿아 있었고, 이미 독자적인 권력을 충분히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3분의1이지만 누미디아의 통치권을 손에 넣은 유구르타.
그는 3분의1이 아니라 전부를 원했다.
자신의 라이벌인 히엠프살을 암살한 유구르타는 거기에 이어서 아드헤르발까지 죽이려고 했다.
아드헤르발은 그런 유구르타를 피해서 로마로 망명을 해서 로마 원로원에 도움을 청했다.
원로원은 유구르타를 진정 시켜서 아드헤르발과 절반씩 나눠서 누미디아를 통치 할 협정을 맺게 했다.
하지만 유구르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협정을 깨버리고 아드헤르발을 공격했다.
그리고 누미디아의 수도인 키르타까지 아드헤르발을 몰아붙인 유구르타는 키르타를 함락시키고 아드헤르발을 물리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유구르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아드헤르발의 지원자들을 전부 죽이는 와중에 상당수가 로마의 고위층이 포함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로마는 분노했고 지금 당장이라도 유구르타를 처벌하기 위해서 군을 파견하려고 했다.
유구르타는 로마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로마로 직접 와서 막대한 재화를 뿌리면서 원로원을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
그는 로마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스파르타쿠스가 로마군에서 복무했던 경험 때무에 로마군을 잘 아는 것 처럼···.
유구르타도 로마군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의 밑에서 싸우지 않았던가?
실제로 그는 몇몇 로마의 장수들을 물리 치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그 중에는 당시 로마의 콘술까지 올랐던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도 있었다.
유구르타의 전투 방식은 철저하리만치 적의 약점을 노리는 방식이었다.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한껏 수비만 하는척 하다가 로마군의 백인장을 매수해서 억지로 빈틈을 만들게 한 다음에 야습으로 승리.
아무리 고대 시대라고 해도 일국의 왕이 싸우는 방식 치고는 너무나 치졸했다.
하지만···. 치졸하건 뭐건 간에 전쟁이란 이기면 그만이니 다른 사람들이 왈가불가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그의 전투 방식이 로마에서 무서운 남자를 불러왔다.
누미디아를 아프리카의 패자(覇者)에서 패자(敗者)로 만든 남자.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온 것이다.
더구나 이때 온 것은 마리우스 한명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아직 신출내기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술라 역시 마리우스 휘하에서 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
마리우스와 술라.
둘 다 로마의 역사에 있어서 장군으로는 베스트 5안에 들어가는 남자들이다.
유구르타의 입장에서는 재난을 넘어서 재앙이었을 것이다.
유구르타도 당시에는 나름 뛰어난 인물로 이름이 높았지만···.
유감 스럽게도 그 둘에 비하면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 후에 유구르타는 패망하고 결국 누미디아는 로마의 동맹국에서 패전국으로 격하되고 만다.
결국 현재의 누미디아는 원로원의 속령주로 편제되어서 이름만 나라일 뿐.
실제로는 콘술격인 총독이 통치하면서 보조군을 합한 로마군이 항상 1만 이상은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누미디아의 영토는 시칠리아 못지 않은 곡창이면서 석재와 특히 말을 공급하는 주요 창구이기도 했다.
뭐···. 지금에 와서는 시칠리아에 파라디소스라는 나라가 생겨서 그런 역할은 반감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역사적 갈등을 격에 되었기 때문에 누미디아의 인간들은 현재 로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실제의 역사에서는 주바1세가 로마를 향한 마지막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 역시 시저에게 패하고 그 후 누미디아는 로마의 속주로서 편입되었으니···.
누미디아 인들이 로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대강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흠···, 제가 적들이라면 누미디아의 협조를 얻어서 우리 로마의 뒤를 치려고 하겠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군. 지금 누미디아의 왕이 누구지?”
“히엠프살 2세라고 하지.”
“호오, 폼페이우스 당신이 기억할 정도의 인물인가?”
“아니···. 사실 인상에는 흐릿하다. 다만····.”
“다만?”
“그 아들놈이 꼬맹이 주제에 싸가지 없게 생겼더군. 그래서 기억하고 있다.”
“············.”
“············.”
폼페이우스가 싸가지 없다고 하는 아들이 바로 주바1세다.
원래의 역사에서 시저에 대항해서 북아프리카 전쟁을 일으켰던 인물인 것이다.
“그에게 뭔가 언질을 주는게 좋겠군요.”
“사절을 보내지. 아들놈은 아들놈이고 그 아비인 히엠프살2세는 나를 아는 놈이다.”
“·········.”
“·········.”
“감히 거역하지는 못할 것이야.”
그렇게 말하는 폼페이우스의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저도 한가지 손을 써두죠.”
시저 역시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키르타.
21세기에는 콩스탕틴. 이라는 조금 웃깃 이름으로 지어져 있는 이 도시가 바로 누미디아의 수도였다.
이 수도의 왕궁에는 한명의 남자가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 폭삭 삭아 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히엠프살2세.
이 누미디아의 국왕이다.
하지만 일국의 국왕이나 되는 남자지만 그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원래 왕노릇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는 특히 더 그랬다.
자신의 나라가 약소국일 때의 왕은 비참하기 이를대 없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에게 탈탈 털리고 난 이후에 누미디아는 로마에 대한 패배 의식에 뼈속 깊이 빠졌고···.
오늘만 해도 로마의 총독인 살루스티우스가 와서 그에게 협박에 가까운 전언을 가지고 왔었다.
살루스티우스는 시칠리아에 새롭게 생긴 적국 파라디소스를 견제하기 위해서 기마 5,000에 코끼리 50, 그리고 보병 1만을 지원하라고 했다.
사실상 지금 누미디아의 전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로마의 감시 하에서 병력을 증강시키기 어려운 누미디아였다.
카르타고의 예를 기억하고 있는 로마는 북 아프리카의 인간들이 얼마나 끈질긴지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제2의 한니발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로마는 이 북아프리카에 강대국이 생기는 것을 강하게 견제했다.
하지만 다른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병력이 있어서 누미디아에서 가지고 있는 군대는 그 정도가 한계인 것이었다.
“후우···. 그걸 다 달라고 하면 이민족의 침입은 어떻게····.”
하지만 무시 할 수도 없었다.
살리스티우스는 이번 전언을 가져온 사람이 로마의 폼페이우스라고 했다.
폼페이우스.
히엠프살2세는 그 이름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과거 폼페이우스가 마리우스 일파의 잔당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 북아프리카로 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직 젊음의 패기가 남아있던 히엠프살2세는 어린 10대 시절의 폼페이우스를 봤다.
그리고 느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 놈은 아주 어린 시절에 히엠프살2세가 봤던 술라나 마리우스와 비슷한 인물.
아니 그 둘보다 훨씬 더 거친 인물이었다.
폼페이우스의 그 괴물 같은 무력.
전쟁터에서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그 용맹함.
무엇보다 자신의 적을 향해서 단 한줌의 온정도 용납하지 않는 그 잔악함.
그때 10대였던 폼페이우스는 이 북 아프리카에서 마리우스 일파를 처단하면서 10대 백정이라는 별명을 손에 넣었다.
히엠프살2세는 그때의 폼페이우스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폼페이우스의 말을 무시했다가는 어떤 꼴을 겪을지 생각도 하기 싫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로마를 거역 할 수는 없으니···.”
그는 결국 병력을 넘기기로 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사정을 하면 약간의 온정으로 다소의 병력은 남겨줄지 모른다는···.
그런 유약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때 왕의 대전 안으로 누미디아의 전령이 들어왔다.
“국왕전하. 급보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그게····.”
전령은 혹시나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까봐 조심 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다 들은 히엠프살2세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
“그게 정말이냐?”
“제가 감히 어떻게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지금 당장 잡아··. 아니 만나는··· 봐야 하겠지만····.”
“············.”
망설이는 히엠프살2세를 보면서 전령은 얌전하게 명령을 기다렸다.
저렇게 우유부단하고 어리버리하지만 그래도 왕은 왕이고 전령은 그저 시다바리일 뿐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히엠프살2세는 전령에게 말했다.
“호위군단을 준비해라. 그리고··. 그들을 은밀하게 부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잠시 후···.
히엠프살2세는 자신의 궁전에서 가장 은밀한 별궁으로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을 불렀다.
사방에 빽빽하게 호위군을 준비한 후에 전령을 맞이하는 히엠프살2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전하. 부르신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음···, 들어오라고 하라.”
국왕의 명령에 약 10명 남짓의 인간이 무기도 없는 맨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약간 어린티가 남아있는 미청년이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파르디소스의 오우메니우스 백작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오우메니우스 : 나 미드에서는 중요 인물이었는데... 멋지게 나왔는데 여기서는 89화까지 와서 이제 첫 대사?
작가 : 미안하다. 넌 자료가 너무 없었어. 유일하게 구한 자료는 실존인물이었다. 빨리 죽었다. 정도 밖에는.... 그래서 등장이 늦어졌다. 미안.
.......제가 너무 한 걸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