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그는 미트리다테스 6세가 개인적으로 무척 신용하는 신하였지만 전쟁터에서의 능력이 그렇게 유능하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 술라와의 전쟁에서 거의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느끼고 간신히 목숨을 연명한 그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로마를 두려워 하는 기색이 강했다.
“훗,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어차피 우리하고는 핏줄이 다른 것을···.”
그리고 그 옆에서 테무진을 향해서 조소를 하고 있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자의 이름은 제노비오스.
폰투스의 장수중에 한명이며 미트리다테스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무척이나 잔혹한 남자였다.
그의 잔혹함은 과거 폼페이우스가 마리우스 일파를 사냥하면서 얻은 십대백정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잔혹한 것이었다.
“··············.”
그리고 그저 무겁게 침묵만 하고 있는 다부진 근육질의 남자의 이름이 드로미키아이테스.
테무진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폰투스 최고의 용장이었으며 또 개인적인 추문도 없고 강직한 성품과 개인적인 실력을 모두 겸비한 장수였다.
테무진은 이들을 볼 때마다 용케도 이 나라가 골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로미키아이테스는 둘째 치고···.
폰투스의 대부분의 상류층은 그리스인의 핏줄을 신성하게 여겼고 나머지 인간들을 천하게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헬레니즘의 후예라고 칭하면서 그 이외의 핏줄을 천하게 여겼다.
거기에는 당연히 테무진도 들어갔다.
테무진이 말없이 자리에 앉자 아르겔라오스가 회의를 시작했다.
“적으로 오는 자는 폼페이우스, 로마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여기저기서 병사를 모아서 이제는 총 8만에 달하는 군사를 징병했다고 하더군.”
“8만이라····. 트리키아 놈들이 또 왕창 밀어준 모양이군요.”
“엿 같은 놈들···.”
스파르타쿠스 때문에 트리키아가 로마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시기에 트리키아는 로마의 아군에 가까웠다.
다만 원래 트리키아 자체가 부족 중심의 국가였고 그 기질이 사나워서 동맹과 배신을 번갈아 가며 했지만···.
스파르타쿠스 본인도 한때 로마군의 보조병으로 복무했던 기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트리키아 대부분의 성향은 로마에 협조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오는 길에 여러 곳의 속주와 동맹시에서 병력을 모집했고, 트리키아에서도 대량의 기병을 징집했다.
로마인들은 말을 잘 못타는 걸로 정평이 났지만··. 이 당시 대부분의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누미디아의 기병.
그리고 트리키아의 기병.
그리고 폰투스의 기병.
이 시대의 삼대 기병을 꼽아보라면 대강 이정도가 될 것이다.
특히 폰투스의 경우는 기병과 더불어서 커다란 낫이 달린 전차 부대를 동시에 응용해서 전쟁터에서 활용하고는 했다.
로마의 중장보병 보다 장비는 좀 처지지만 폰투스 역시 보병의 밀집 대형을 쓸 줄 아는 나라다.
거기에 로마에는 없는 기동력이 있는 기병대와 전차 부대.
폰투스의 전투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애당초 약했다면 로마를 상대로 3차까지 전쟁을 치를 리가 없지 않은가?
로마를 상대로 그렇게 까지 여러번 물러 늘어지는 것은 카르타고 이후로는 폰투스 정도가 유일했다.
그런 폰투스의 전력을 생각하면 사실 승승장구한 술라가 괴물이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로마가 강대국은 강대국인게···, 정말 인재가 너무나 많다.
이번에 찾아오는 폼페이우스만 해도 술라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괴물이었으니···.
“폼페이우스라는 이름은 들어봤죠. 뭐라던가····. 깃발 하나로 적을 물리쳤다던가?”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우진이 있었다면 방금 지껄인 제노비오스의 어금니를 털어 버렸을 것이다.
“그랬지···. 그것 말고도 마리우스의 잔당을 잡기 위해서 아프리카로 직접 가서 모두 잡아 죽였다거나···. 에스파냐에서 배신한 장군인 세르토리우스를 죽였다고 하고···. 뭐 이런저런 얘기가 끝이 없는 인간이더군.”
“흠···, 그래도 술라만은 안 하겠죠.”
“그런 괴물은 거의 없지···.”
“아! 그리고 이번에 부관으로 따라오는 자의 이름도 귀에 익은 이름이더군.”
“부관? 누가 온다고 합니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라는 이름 기억하나? 제노비오스 자네는 기억 할 것 같은데?”
“······아아? 그 머저리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죽였던 남자 말일세. 그 아들이 온다더군.”
“이름이 뭡니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이름만큼 병신 짓도 아비하고 같을지 모르겠군요.”
지금 제노비오스가 말하는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심복이며 폼페이우스의 제자인 안토니우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버지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말하는 것이다.
햇갈릴지 모르지만 부자간에 이름이 똑같은 것은 로마시대에는 흔한 것이었다.
시저 역시 자신의 아버지와 이름이 완전히 똑같았다고 한다.
어쨌든, 안토니우스의 아버지인 안토니우스는 과거 소아시아에 해적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원로원의 지원을 받아서 출정했다.
하지만 아들과 달리 무능하다고 평이 났던 그는 크레타 섬의 연안에서 해적들과의 해전에서 대파한 후에 자기 자신도 전사해 버렸다.
사실 그 해적들은 미트리다테스 6세의 입김이 닿고 있는 해적들이었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자신의 전쟁을 돕는 조건으로 몇몇 해적들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 하나가 바로 안토니우스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적을 가장하고 당시에 안토니우스를 죽인 남자가 바로 여기에 있는 제노비오스였다.
“뭐···. 멍청한 놈의 멍청한 아들이 오는군요. 별로 신경 쓸 것은 없습니다.”
“아비하고는 다르다는 평가야. 벌써 여기저기 굵직한 전쟁터를 누비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봤자 핏줄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대인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핏줄에 인간의 가치를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헬레니즘의 대표를 표방하고 있는 폰투스는 그런 기질이 특히 더 강해서···.
안토니우스를 보고 자신의 무능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동급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오판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흠····, 멋 모르고 승승장구한 머저리에 멍청한 핏줄의 애송이···. 별로 대단한 적들은 아니겠군.”
“그렇습니다. 병력의 규모만 충분히 준비한다면 그 놈들 시체로 흑해를 메워 버릴 수 있을 겁니다.”
“·············.”
적을 얕보는 아르겔라오스.
그리고 거기에 맞장구 치는 제노비오스.
별 말은 하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드로미키아이테스.
‘·······골치 아프군.’
테무진은 이 전쟁의 전폭적인 지휘권이 자신에게 없는게 안타까웠다.
한껏 방심하고 있는 폰투스의 장수들과 달리 폼페이우스는 결코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이 자심감이 넘쳐서 자만심의 영역까지 도달했던 남자는 최근에 한 껍질 벗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안토니우스.”
“예. 사령관님.”
“군사 2만을 주겠다. 킬리카 지역으로 가서 해적들을 소탕해라.”
“절 전쟁터에서 빼시는 겁니까?”
안토니우스의 말에 폼페이우스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상대는 루쿨루스를 이겼을 정도의 놈들이다. 하지만 킬리카 연안의 해적들을 어찌하지 않으면 이 전쟁의 보급 라인을 유지 할 수가 없다.”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실수를 만회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마라. 그냥 넌 너대로 하면 되는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원로원 영감탱이들한테서 얻어온 크레타 섬의 해군들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공문도 주겠다. 해적들을 죽여 봤자 또 다른 해적들이 생길 뿐. 해적질을 할 환경 자체를 박살내 버려라.”
“·····과연, 알겠습니다.”
안토니우스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린 폼페이우스는 천천히 지도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루쿨루스가 그렇게 쉽게 죽을 인간은 아닌데···. 폰투스에 그 정도의 인물이 남아 있었던가?’
폼페이우스가 알고 있는 루쿨루스는 술라와 친분이 있었던 원로원으로 그 깐깐한 성격 탓에 위 아래로 미움은 많이 샀지만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자였다.
당시 로마의 권력자들은 속주에 부임할 때 로마 사업가들에게 뇌물을 받고 그들의 불법 행위를 봐주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루쿨루스는 그런 부정을 눈꼽 만큼도 인정하지 않는 남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랫 사람들에게 미움을 많이 샀다고는 하지만 명망있는 자들로 부터는 그 인망이 두터웠다.
전략 전술에 관해서도 유능해서 술라가 자신의 골치를 썩게 한 동방의 전선을 그에게 맡긴 것도 나름 다 믿을 만 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원래의 역사에서 폼페이우스는 폰투스 왕국과의 전쟁을 무척이나 편하게 수행했다.
술라에 이어서 루쿨루스가 킬리카 지역에 비티니아 지역까지 무도 평정을 한 상태에서 바톤을 터치 했었기에 보급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폰투스 왕국의 서쪽 지대도 이미 초토화 된 후였다.
하지만···. 뒤틀린 지금의 역사 속에서는 아직 비티니아는 사실상 폰투스에 합병된 상태였고 킬리카도 카파도키아도 폰투스의 반 강제적인 동맹에 참가해 있었다.
거기다 뒤편에는 아르메니아도 든든한 후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헬레니즘 국가들 중에 이집트와 시리아 빼고는 거의 다 참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 로마 동맹이라는 이름 하에서 말이다.
‘상황이 심각하군···. 내가 에스파냐에서 시간을 너무 길게 끌었어····.’
소아시아 부근의 지도를 살펴보면서 폼페이우스는 입맛을 쓰게 다졌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진이 건국한 파라디소스의 탓이 컷다.
그 국가가 남쪽에서 로마의 세력을 계속해서 갉아 먹고 있었기에 소아시아의 전선에 로마의 힘을 그만큼 집중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루쿨루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폰투스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막연한 신뢰가 부서진 것이다.
그리고 신뢰가 부서진 대가를 이제는 비싸게 치러야 하는 때가 되었다.
“일단은 비티니아의 영토부터 수복해야 겠군.”
폼페이우스는 지도로 한 곳에 말을 옮겼다.
폼페이우스가 최초로 수복하기로 정한 땅의 이름은 소아시아 북서부 교통의 요충지.
니코메디아였다.
니코메디아의 위치는 흑해와 지중해를 잇고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탈리아 남부로 치면 레기움 정도의 위치에 있는 도시라고 해야 할까?
이곳을 점령해야 최악의 경우 해적들 때문에 뱃길이 막혀도 그나마 트리키아에서 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여기를 먼저 공격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적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음····. 규모는 어느정도인가?”
“대략 5만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상대로 트리키아의 기병이 1만이 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엿 같은 로마의 사냥개들 같으니라고······.”
로마의 취약한 기병은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약점이었다.
거기에 비해서 폰투스의 기병은 상당히 강력한 편이다.
그런 기병의 열세를 보충하기 위해서 폼페이우스는 트리키아의 기병을 대량으로 징집했던 것이다.
“음, 어떻게 할 까요? 한 번 성밖으로 나가서 휘저어 볼까요?”
제노비오스의 말에 아르겔라오스는 차분하게 눈을 감고 생각했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역량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보는게 좋겠군.’
“아니 일단 기다려 보세.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 정찰은 해 봐야지.”
“알겠습니다.”
니코메디아를 포위한 폼페이우스의 군단을 보면서 아르켈라오스는 일단 적을 지켜보기로 했다.
말로는 폼페이우스를 가볍게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를 지나칠 정도로 경계하고 있는 아르겔라오스였다.
이런 그의 행동은 젊은 시절 술라에게 당했던 충격적인 연패의 흔적일지도 몰랐다.
젊은 시절 거칠 것이 없던 아르겔라오스는 술라에게 덤비는 족족 패배하고 몇 번이고 목숨이 위험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대범한 말과는 달리 지휘관들 중에서 로마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몰랐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폼페이우스는 술라보다 훨씬 더 거칠고 무서운 인물이었다.
“전군 돌격!!!!”
뿌우우우!!!
로마의 돌격 나팔이 불고 보병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로마놈들이 온다!!!”
“화살을 날려라!!!!”
니고메디아의 성벽에서는 폼페이우스의 군단에게 화살을 날리면서 항전했다.
============================ 작품 후기 ============================
미리 말해두겠는데... 제 소설에 나오는 테무진은 아직 젊고, 충성스런 부하도 없던 시절의 젊은이입니다.
완숙한 괴물을 타임슬립시킨것은 아닙니다.
그럼 그걸 누가 감당합니까?
일단... 테무진 VS 폼페우스를 즐겨 주십시오.
갑작스럽게 테무진의 등장으로 실망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계속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