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분위기 파악 못하고 끼어들어 있는 베레니케 4세 때문에 회의의 분위기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아니 나빠지는 것을 넘어서···.
“그러니, 이번 원정에 에스파냐의 영토를 점령했을 시. 그 관리를 누미디아에 맡겨서 공동령으로 하고 싶습니다. 우리 파라디소스에서 에스파냐는 너무 멀어서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 마우레타니아 족을 완전히 제압해 주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이집트가 힘을 빌려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충분히 간악한 마우리족들에게 징벌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
“·············.”
언 듯 대사만 들으면 클레오파트라가 굉장히 오만한 태도로 말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을 한 것은 현 이집트의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있는 베레니케 4세였다.
우진과 주바 국왕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침묵할 뿐이었고 말이다.
“큼···. 언니, 현 파라오는 저입니다.”
“어머? 넌 이 언니가 시집온 누미디아를 위해서 그 정도도 못해 준다는 거니?”
“언니···. 여기는 국사를 논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식으로···. 으음, 관두죠.”
클레오파트라는 오랜만에 저 텅텅빈 머리에 개념을 주입 시킬 속사포 잔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그만 뒀다.
‘쳇··. 시집 갔으니 내가 뭐라고 하기는 좀····.’
하다 못해 보는 눈이라도 없으면 모르겠는데 바로 옆에서 주바 국왕이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주바 국왕이 클레오파트라의 눈치를 봐서 아내에게 뭐라고 말 못하고 있는 것처럼 클레오파트라 역시 언니의 남편인 주바 국왕의 눈치가 보여서 뭐라고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교 트러블의 여지가 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대신에 주바 국왕에게 말을 돌렸다.
“크흠···. 최근에 우리 이집트도 함부로 군을 움직이기는 힘들어 졌습니다. 해군력 중에 일부를 돌리는 것 정도라면 가능 하겠지만 육군은 좀···.”
“예? 오히려 육군이 여유가 남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집트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 누미디아와 유다이아 정도인데?”
누미디아는 이집트와 동맹이고 유다이아는 그 국력이 이집트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약소국이었다.
덕분에 이집트는 육군 전력보다는 해군 전력을 더 중점적으로 양성했던 것이다.
해군 쪽이 활용성도 필요성도 더 강했으니까 말이다.
“사실 최근에 유다이아에서 이상한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이름이 제 남편하고 같은 인물인데 그가 최근에 유다이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국경 지대의 경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아····. 저도 멀리서 소문은 들었습니다. 파라디소스의 진 전하와 이름이 같아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테무진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미트리다테스 6세가 마수를 뻗칠까봐 이름을 줄여서 진이라고 부르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게 이외로 지금 지중해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중에 한명이 우진의 이름하고 겹치면서 상승세를 내고 있었다.
같은 동양인. 같은 이름.
지중해의 몇몇 인간들은 혹시 이들이 뭔가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바 국왕도 그 점에 관해서 은근히 궁금해 하고 있는 눈치였다.
“으음, 사실 동양의 이름은 짧기 때문에 동명이인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 이름의 풀 네임은 한우진입니다. 한이 성이고 우진이 이름이죠.”
“아···, 그렇군요. 그럼 어째서···.”
“발음이 어렵다고 진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많아지고 저 역시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그렇게 되더군요.”
우진이 자신의 이름에 관련된 비사를 밝히자 주바 국왕과 클레오파트라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어머,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하다니···. 일국의 왕족이라고 하기에는 품격이 좀 모자라군요.”
“베레니케!!!”
“언니!!!”
그녀의 폭탄 같은 발언에 이번에는 주바 국왕과 클레오파트라가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레니케 4세는 태연하게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뭘 그러니? 남편에게 바른 말을 할 줄 알아야 훌륭한 왕족이란다. 넌 그런 교육도 받지 못했니?”
“············.”
“············.”
“············.”
이쯤 되면 거의 막나가자는 식이었다.
회담은 흐지부지 되었고 세 사람은 나중에 한 번 더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베레니케 4세의 무례함은 연회석에서도 들어났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진과 클레오파트라는 누미디아에 있어서 정말정말 중요한 손님들이었다.
국왕인 주바 국왕부터 누미디아의 중요 신하들까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런 사교적인 자리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원래 왕의 아내.
즉, 왕비나 공주들이었다.
왕가의 여자들이 국사에 끼어드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 왕가의 여자들이 외교의 자리에서 사교적인 구름 다리가 되어주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던 일이었다.
특히 베레니케 4세의 경우 클레오파트라와 이복 누이라는 혈연 관계가 있었기에 그 점을 충분히 활용해서 나라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을 철저하게 외면, 아니 무시하면서 자신의 남편인 주바 국왕과 우진을 거듭 비교하고 있었다.
“저희 누미디아와 동맹을 맺은 덕분에 파라디소스도 후방을 신경쓰지 않고 로마와 싸울 수 있께 되었죠? 그렇죠? 진 전하.”
“예. ····양국의 동맹은 저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호홓호···. 과연 현명하신 분이시군요.”
“···········.”
이쯤되면 이 여자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한심해서 안구에 습도가 올라갈 정도였다.
이쯤 되면 머리가 나쁘고 좋고를 넘어서 뭔가··. 뭔가 시비를 걸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지? 사사건건 나하고 주바 국왕을 비교하고 있는데···. 왜 그러는 걸까?’
우진은 베레니케 4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바로 배다른 이복 자매인 클레오파트라였다.
‘····내가 그렇게도 싫은가?’
클레오파트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베레니케 4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진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이복자매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왕가의 출신이었고 비슷한 연배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베레니케 4세는 어린 시절부터 단 한 번도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 언니의 위엄 같은 것을 세워 본적이 없었다.
미모, 지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평판까지···.
그 모든 것에서 그녀는 클레오파트라와 일일이 비교당했고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 거렸다.
베레니케 4세는 클레오파트라보다 모든면에서 떨어진다고 말이다.
차라리 그녀가 동생이었고 클레오파트라가 언니였다면 상황은 좀 나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니는 그녀였다.
그녀 베레니케 4세가 언니였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위엄과 본보기를 보여 할 상대였다.
그러나 너무나 뛰어난 여동생을 상대로 본을 보이기는커녕 이길 수 있는 방법 하나도 없었다.
일반 가정이라면 혹 모를까?
왕족으로 태어난 그녀에게 있어서 그런 동생의 존재는 자신의 자존심을 근본부터 부셔놓고 있는 트라우마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런 동생의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더 자신의 자존심을 강하게 세워야 했다.
자신은 위대한 헬레니즘 왕가의 한 축인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딸.
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
그런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더 값비싼 장식을 하고, 더 도도하게 굴면서 일평생을 살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허영심 때문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녀도 원래의 역사에서 파라오를 역임할 정도의 정규 교육은 받은 현명한 여성이었다.
인류 최고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고의 미모를 지니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녀의 미모 역시 세체니나 디도데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모두 빛을 잃을 정도로 질투라는 감정은 인간을 추하고 보잘 것 없이 만드는 모양인가 보다.
그녀는 한 평생 클레오파트라를 이기지 못했지만 지금 태어나서 딱 하나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찾았다.
바로 남편이다.
파라오인 동생의 반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서 누미디아로 왔을 때 베레니케는 배불뚝이 영감의 아내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짜증이 나 있었다.
하지만··. 주바 국왕은 아지 젊었고 얼굴도 잘생겼다. 또한 자신이 처음 누미디아에 왔을 때 열렬히 환호하는 시민들을 보아하니 왕권도 확고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최고의 남편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복 동생인 클레오파트라를 이겼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클레오파트라가 당대 최고의 영웅으르 이름난 파라디소스의 건국왕인 우진과 함께 이 누미디아로 찾아왔다.
이제까지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질투심이 고개를 들고 천방지축 나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그녀의 질투심 때문에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연회가 끝난고 그날 밤.
우진은 클레오파트라와 부부니까 동침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죄송해요. 전하. 오늘 하루만 혼자 주무세요.”
뒤에서 껴안으려고 하니 쌩 하고 벗어나서 도망가 버리는 아내를 보고 우진이 투덜 거렸다.
“이국에서 남편을 혼자 둔다고? 확 바람이나 펴 버릴까?”
우진의 장난 섞인 투정에 클레오파트라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바람? 좋아요. 근처 시녀라도 한 둘 넣으라고 할까요?”
“·······아니 됐어. 그냥 해본 말이야.”
이 고대 시대에 일국의 국왕인 우진이 이웃 나라에서 시녀 한 둘 건드린다고 흠 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직접 여자 밀어 넣어줄까요? 라고 물으니까 차마 거기에 예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아···. 출장 갈 때 마누라하고 같이 가면 최악이라더니·····.’
우진은 그냥 독숙공방하기로 했다.
처량하게 말이다.
‘세계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데리고 있으면 뭐 하나? 곁에 없는데····.’
남편을 독수공방시킨 클레오파트라가 향한 곳은 이 누미디아의 궁전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별궁.
바로 베레니케 4세가 머물고 있는 장미궁전이었다.
“····여전히 오버하는 악취미군.”
클레오파트라는 시종의 안내를 받아서 장미궁전에 도착한 순간 이 궁전을 이렇게 꾸민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주변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장미들은 잘 보니까 생화가 아니라 조화다.
그런데 그냥 조화가 아니다.
붉은 홍석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공들여서 깍은 물건이었다.
이러면 생화보다 훨씬 더 비싸다.
“·····언니, 안에 계신가요?”
안이 있을 것이라고 뻔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일단 말했다.
“들어오렴.”
안에서 베레니케 4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클레오파트라는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단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보다시피? 미용을 위해서 목욕중이란다.”
“·······보통 목욕은 물에 하는 것일텐데요?”
“너도 장미 꽃잎을 늘어트린 물에서 목욕하고는 하지 않니?”
============================ 작품 후기 ============================
클레오파트라가 원래의 역사에 비하면 성질 많이 주었죠?
다 우진 덕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질의 기본 스팩은 어딜 가지 않는 법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요즘 특히 오타가 많이 늘었죠? 진심으로... 새로 산 이 키보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화산에 집어 던져 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