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우진의 만렙 팔불출 + 진상왕의 모습은 외교적 관례로 볼 때 대 실례였다.
어느 정도 실례냐고 말하자면 예전에 베레니케 4세가 보였던 무례함에 버금갈 정도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미디아의 사신은 불쾌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국의 사신으로 와서 멱살까지 잡혔는데 여전히 허허로운 얼굴로 우진에게 말했다.
“하하하··. 전하께서 유리 공주님을 아끼는 마음이 대단하군요. 유리 공주님께서 아르테미스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야 할 것 같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순결을 상징하는 달과 사냥의 여신이었다.
한 마디로 유리에게 손을 대는 인간은 우진에게 큰 화를 입을 것 같다는 말을 애둘러 표현하며 우진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
우진은 그런 사신의 마음 씀씀이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는 자기 품안에 작은 꼬마 공주를 안고는 뾰루퉁 하게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누미디아의 사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전하께서 노린 것은 이런 모습이었던가?’
파라디소스에 오기 전에 사신은 주바 국왕에게 불려갔다.
그때 주바 국왕이 말하기를···.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 누미디아악 파라디소스를 뛰어 넘는 것은 무리일 것이오.”
“전하···. 어찌 그런 약한 말을 하십니까?”
“하지만 내 다음의 세대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러기 위한 씨앗이 필요하오.”
“씨앗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조카와 파라디소스의 유리 공주의 국혼을 성사 시키시오.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소.”
“····전하 국혼 하나에 너무 큰 대가를 바라시는 것은 아니온지 걱정 됩니다.”
사신의 말은 지당했다.
하지만 주바 국왕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파라디소스의 진 국왕은 완벽한 것 같지만 정이 많고 약점도 많은 자요. 예전에 자국이 반란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만사 제쳐두고 달려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소.”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진 국왕의 성격이라면 틀림없이 자기 딸을 매우 총애할 거요. 그 아이를 위 왕가의 며느리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면 다음 세대··. 아니면 다다음 세대에서는 우리 누미디아의 시대를 노릴 기반을 마련 할 수 있소.”
“·····알겠습니다. 전하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수고해 주시오.”
그렇게 부탁을 받고 파라디소스에 온 사신이었지만 사실 좀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회의를 지니고 있었다.
왕족에게 있어서 자식은 후계자 이거나 정력의 도구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공주에게 정을 줘서는 앞으로 국사를 운영할 때 힘들다고 할 정도로 공주라는 존재는 왕에게 있어서 자식이라기 보다는 도구라는 비중이 강했다.
맨 주먹으로 시작해서 파라디소스라는 강국을 건국할 정도의 영웅이 혈육의 정에 과연 흔들릴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은 크게 잘 못된 생각이었다.
흔들린 정도를 넘어서 이건 거의 붕궤를 하고 있었다.
“··우우···아빠···.”
“그래. 유리야···. 아빠하고 평생 같이 살자.”
“···········.”
좀 심각할 정도로 말이다.
팔불출 삼매경인 우진의 모습에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딱 한 명 뿐이었다.
바로 우진의 아내이자 유리의 생모인 디도였다.
“자자···. 좀 진정해요. 그리고 유리도 이리 주시고요.”
“싫어.”
“······억지 부리지 마요.”
남편이 이렇게 억지 부리는 것은 처음 보는 디도였지만 그냥 한숨을 내쉬면서 유리를 품안에서 받아왔다.
“엄마····.”
유리도 같이 한 시간이 더 많은 엄마를 더 좋아했기에 아빠를 매정하게 버리고 엄마의 품에 안겼다.
‘칫····.’
그 광경을 보고 우진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사신을 보고 말했다.
“·····뭐, 이런저런 말로 둘러서 말하는 것을 관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난 내 예쁘고, 사랑 스럽고, 귀엽고, 착한 딸을 외국으로 시집 보낼 생각이 없소. 아니 시집보낼 생각이 영원히·····.”
“전하·····.”
“········지금은 없소.”
중간에 디도가 주의를 주자 일단은 말을 바꾸는 우진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구경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고는 우진의 의외의 일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나중에 시집 보낼 때 되면 전하가 우는 모습을 볼 지도 모르겠군.’
크릭서스는 자기도 딸을 키우고 딸 사랑이 지극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우진은 한참 더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파라디소스에서 어지간한 일이라면 대부분 왕인 우진의 독단으로 결정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진이 이제까지 크게 잘못 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따라준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파라디소스도 행정과 군부가 나눠진 상태의 의회제 국가다.
우진이 멋대로 혼자 다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전하···. 누미디아는 중요한 동맹이에요. 그건 알죠.”
“물론.”
디도의 말에 우진은 선선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중요한 동맹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국혼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
“알····기는 알지.”
“그럼, 어째서 유리의 결혼을 반대하는 건가요?”
“애는 고작 두 살 이잖아? 그런데 벌써 시집? 절대 안되. 어디 민며느리 제도야!!?”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 미리 혼처를 정하는 일은 왕가에 종종 있는 일이잖아요?”
“아니 그래도····.”
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의 말대로 이 시대에서 조혼은 흔한 일이었다.
왕족이 13~14세 때에 결혼 하는 것은 보통이었고 그보다 더 빠르게 어린 시절에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왕가의 계약에 의해서 딸을 낳으면 우리에게 주시오.
라고 예약을 걸어 놓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우진은 그렇게 유리를 보낼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가능하면 평생 품안에서 키우고 싶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자기 딸이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짜증이 확 났다.
그러니 일국의 왕이라는 입장도 잊어 버리고 사신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든 것이지만 말이다.
“흐음····. 뭐, 저도 제 딸을 너무 일찍 보내는 것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렇지? 당연히 그렇지? 자, 그럼 이 얘기 끝. 사신은 보물 가지고 코끼리는···. 놔두고 그냥 가시오.”
우진이 그렇게 얼렁뚱땅 일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디도는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지만 누미디아 왕가라는 혼처는 아깝기도 하군요.”
“역시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왕비님.”
누미디아의 사신은 재빨리 디도의 편을 들었다.
디도와 우진의 대화를 통해서 딸의 결혼에 대한 발언권에서 암묵적이지만 둘 다 공평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상식적으로···. 왕가의 혼담은 아주 특이한 이유가 없는 이상은 왕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진은 왕의 권위를 내세워서 디도를 물리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디도가 유리의 결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에서 자란 우진에게는 엄마에게 딸의 결혼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 시대의 왕가의 평균적인 상황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말이다.
“크흠···. 그러니 전하. 일단은 보류라는 방법으로 처리 하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보류고 뭐고 간에···.”
“전하····.”
“····알았어. 일단 보류로···.”
우진은 한숨을 푹 쉬면서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제 두살 난 딸에게 국혼 신청을 넣은 주바 국왕이 옥수수를 우수수 털어 버리고 싶었다.
어쩌면 눈 앞에 있으면 정말 했을 지도 모른다.
‘전쟁이고 나발이고 그냥 확·····.’
딸이 걸리니 정신을 못 차리는 팔불출 우진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진과 달리 냉정을 차리고 있는 것은 유리의 친모인 디도였다.
‘어차피···. 이렇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몰라.’
디도는 우진과 입장이 달랐다.
그녀는 현명한 여인이다.
그리고 미리 준비를 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딸을 낳았을 때부터 이미 그녀는 딸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왕가에서 태어난 여인의 신세는 자칫 잘못 하면 불행으로 점철 될 수도 있었다.
나이 차이가 할아버지뻘인 남자에게 팔려가듯이 시집을 갈 수도 있었고····.
약소국에 시집을 가서 그 나라가 망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할 수도 있었다.
유리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생각을 더 했다.
지금까지 디도는 유리의 미래를 위해서 유리가 파라디소스의 유력 가신의 자손들 중에 한명과 결혼을 하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디오클레이우스나 스파르타쿠스 같은 유력자들이 아들을 보면 그녀는 재빨리 결혼의 의사를 타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독신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고, 디오클레이우스는 여자는 많은데 달리 결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차선책인 크릭서스는 딸만 둘이었다.
도움이 안 되는 신하들을 속으로 원망만 하고 있던 그녀에게 있어서 누미디아의 혼담은 반가운 것이었다.
누미디아는 파라디소스의 주요 동맹국이고. 이제는 북 아프리카의 강대국이다.
서쪽의 마우레타니아는 이제 아무런 잡음도 없이 복속 시켰고, 이집트와도 돈독한 사이를 지속하고 있었다.
적어도 파라디소스가 양국보다 강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는 동안은 두 국가가 함부로 전쟁을 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자국 안에서 적절한 신랑감을 찾지 못한다면 외국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 어차피 순리였다.
그러나···. 역시 아직 너무 어린 나이에 딸 아이를 자기 품에서 때어 놓는 것은 그녀도 싫었다.
다행이도 그녀의 남편인 우진도 딸을 지금 당장··. 아니면 아애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일단은 보류라는 말을 해서 뜸만 들여 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세체니가 아들을 낳으면···. 어차피 유리에게 왕권의 계승은 없다고 보는게 좋아.’
디도는 세체니가 어쩐지 아들을 낳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없고 그냥 막연한 감이었지만···.
어차피 반반의 확률이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일에는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럼···. 미시헤르발 왕자라고 했던가요?”
“예. 저희 누미디아의 자랑하는 총명한 왕자 전하이십니다?”
디도의 말에 사신은 재빨이 어린 왕자를 앞으로 내세우면서 총명하다는 칭찬을 했다.
사실 거짓말이다.
다섯 살 짜리 어린애가 총명해 봤자 얼마나 총명하겠는가?
그냥 평범한 애일 뿐이었다.
‘흐음···. 마냥 어린애 치고는 태도가 의젓하기는 하네····.’
그나마 예비 사위감이 될 지도 모른다고 디도가 최대한 좋게 봐 주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미시헤르발 왕자는 이제 누미디아로 돌아가는 건가요? 좀 섭섭하군요.”
디도의 말에서 누미디아의 노회한 사신은 바로 디도의 의도를 읽었다.
“저희 왕자 전하께서는 평소에 영웅왕이라고 칭송 받는 진 전하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뻥은····.’
우진이 아무리 지금 평소보다 정신이 살짝 나간 상태라고 해도 지금 사신이 하고 있는 말이 아부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신은 있었다.
‘차라리 뽀로로를 존경하고 있다고 하지?’
21세기라면 그게 진실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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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조카가 찡찡 거릴때 마다 절 도와주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뽀로로, 폴리.
걔들하고 식당 할때는 스마트폰에 그 동영상이 필수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