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커억···.”
우진은 한명의 로마병사의 목을 사뿐하게 날려 버리고 난 후에 자기 검을 슬쩍 보면서 생각했다.
‘···이 정도로 훌륭한 무기인가? 아니면 이제까지 내가 사용하던 검이 후졌던 것일까?’
지금 우진이 들고 있는 태도는 예전에 우진이 쓰던 태도가 아니다.
처음에 검투사 시절에 쓰던 태도는 진작에 부서졌고, 그 후에도 조심조심해서 썼지만 결국은 수십번 넘게 태도를 부러트렸다.
이 시대 야금술로는 태도의 강도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진은 전쟁터에 올 때마다 여러 개의 태도를 비상으로 가지고 다녔다.
사실 우진의 검 솜씨가 뛰어났기에 그나마 써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라디소스에서도 태도술을 따라하는 것은 우진을 광신적으로 신봉하는 마시르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후진 야금술을 봤을 때 태도술이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진의 태도는 달랐다.
마시르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받은 능력이라던가 버파라던가··. 그런 것을 살짝 기대했지만 무능한 마르스는 아무런 축복도 내려주지 않았다.
대신이 한 자루의 검이 우진의 곁에 놓여져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태도.
그것도 시대를 초월해서 전 세계의 태도 중에서도 최고의 장인이 혼을 두드려 만든 명도인 것이었다.
시리도록 예리한 예기는 가까이 가져가기만 해도 체온이 서늘해지는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우진이 지금 쓰고 있는 태도가 그런 태도인 것이다.
그 예기가 얼마나 굉장한지 첫 실전 투입인데도 불구하고 우진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인간을 일도양단 했는데 걸리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마치 식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 같은 느낌.
베기는 베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우진은 약간의 위화감 까지 들고 있었다. 한 평생 경차만 몰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리무진을 모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위화감을 느끼거나 말거나 적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진의 돌파력은 재앙이었다.
가까이 가기만 하면 다 반토막이 나니까 이건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길··.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
“으아악!!!”
우진을 막기 위해서 몇몇 용맹한 트리키아의 전사들이 달려 들었다.
하지만 불을 향해서 날아드는 나방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뿐이었다.
우진이 이끄는 중장기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의 기병들은 대부분 창을 쓰지만 파라디소스의 기마대가 쓰는 무기는 언월도다.
이 무기의 차이에 관해서 이미 파라디소스의 기마대는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창은 찌르는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언월도는 찌르기와 베기, 두 가지 다 가능한 무기이다.
마상에서 선택의 폭이 두 가지로 넓어지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무엇보다 찌르기는 연속 공격이 힘들고 마상에서 체중을 실기도 힘들었지만 베기는 달랐다.
인간이 마상에서의 찌르기의 위력을 극대화 시키기 시작한 것은 중세 기사들의 랜스 차지가 완성되고 나서 부터라고 봐야 한다.
이 시대의 기마대의 찌르기는 오직 상반신의 팔의 완력만을 쓰고 있었지만 마상에서는 그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갑옷이 있는 부분은 쉽게 뚫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 번 세 번 찔러야 했고 말이다.
하지만 파라디소스의 기마대가 체중을 힘껏 실어서 사선으로 언월도를 휘둘러 내리면 말의 목이 날아가거나 상대방의 목이 날아가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만큼 언월도의 효용이 컸던 것이다.
그것도 오랜 실전으로 파라디소스의 기마대가 완벽하게 언월도라는 신무기에 적응했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파괴력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트리키아의 기마대로 우진의 중장기마대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
그리고 그것은···. 폼페이우스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돌격하라!!!!”
우진의 기마대가 트리키아의 기마대를 막 돌파하고 기세를 몰아서 전진하려는 순간···.
갑자기 전방에 또 하나의 군세가 나타났다.
그것은 우진으로서도 의외의 병력이었다.
“전차!!?”
우진을 깜짝 놀래킨 부대는 바로 전차 부대였다.
원래 파라디소스에서도 전차 부대가 있었다. 초창기에 시칠리아에서 베레스를 제대로 엿 먹인 궁전차 부대는 파라디소스의 주요 전력이었다.
하지만 기마의 중요서이 커지고 장인들이 마갑을 개발하게 된 시점에서 전차 부대는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기마에 비하면 역시 전차는 너무 느리고, 또한 운용의 폭도 적었다.
바로 반전하는 것도 힘들었고 진행 방향도 적에게 읽히기 쉬웠다.
그래서 우진도 궁전차 부대를 해체한 것이다.
지금 지중해에서 전차 부대를 사용하는 나라는 소아시아의 몇몇 국가들 정도 뿐이다.
그런데 우진의 눈앞에 있는 줄 몰랐던 전차대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빌어먹을···.”
우진은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전차대가 기마대보다 느리고, 행동의 폭도 좁지만 한가지 뛰어난 점도 있었다.
보통의 기마대 보다는 훨씬 더 튼튼하다는 것이다.
우진의 중장기마대에 버금갈 정도로 말이다.
“전차 옆의 칼날에 주의해라!!!”
우진은 부하들에게 경고를 날린 후에 자신이 스스로 활로를 찾기 위해서 정면의 전차대에 격돌했다.
전차대와 싸울 때 가장 주의할 것은 절대로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마대 기마의 전투에서는 그런 식의 싸움도 있을 수 있다.
서로 질주하면서 스쳐지나가듯이 말을 몰고 그리고 그 사이에 급소를 노리는 식의 전투를 말이다.
하지만 전차의 옆에는 사신의 칼날 같은 흉측한 칼날이 낫이 달려 있었다.
저기에 걸리면 말의 다리가 뎅겅 잘려가 버린다.
“노릴 곳은 어디까지나 정면이지.”
우진은 전차 부대가 덤비기 전에 토마호크를 손에 들고 정면의 말을 노리고 던졌다.
퍼억!!
“히이이잉!!!”
그러자 말이 그대로 비명 소리를 내면서 절명했다.
말 두 마리가 이끌던 전차에서 말 한 마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속도와 파워가 반으로 떨어질까?
아니가. 그냥 꼼짝도 못하는 일반 수례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하아앗!!!”
우진은 일단 전차가 멈춰서자 그대로 그 위의 기수들을 노리고 태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놈들은 그대로 단발마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절명해 버렸다.
우진이 그렇게 선두에서 시범을 보인 덕분에 파라디소스의 중장 기병들은 서둘러서 부무장인 토마호크를 전차를 끌고 있는 말들에게로 던졌다.
“히히힝!!”
“커억!!!”
전차부대는 파라디소스의 중장기병에 이런 부무장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바로 돌격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전혀 뜻밖의 공격을 당해 버리자 피해가 막심했다.
“좋아···. 할 수 있어.”
우진은 돌파력을 좀 줄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전차 부대를 돌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마부대에 있어서 돌파력이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때 우진은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다.
“저기 파라디소스의 국왕이다!!!”
“공격하라!! 영웅왕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천만 디나르의 상금이 기다리고 있다.”
“우오오오!!!!”
파라디소스 최대의 강점은 항상 선두에 서서 아군을 독려하는 왕인 우진의 존재였다.
하지만 이 최대의 강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최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우진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의 부재는 파라디소스에게 있어서 공격력이 반토막 난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후계자라고 있는 꼬마는 아직 젖도 때지 못한 꼬맹이가 아닌가?
우진은 무조건 살아야 했다.
그리고 로마의 입장에서는 우진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고 말이다.
보병중에 일부는 성벽에서 구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방어라인을 치면서 형식적인 공성전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보병들의 파라디소스의 기마대를 둥글게 포위했다.
기병이 발이 멈춘다. 라는 것은 돌격력이 반감 된다는 것이다.
이때를 노려서 오밀조밀하게 몇 겹으로 라인을 형성하면 보병이 기마를 잡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쳇···. 이 놈들 작정을 했군.”
우진은 자신의 목을 노리고 환장해서 달려드는 적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크릭서스가 우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전하.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일단 뒤로 물러나십시오.”
우진은 크릭서스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안 돼. 약세를 보이면 안 된다.”
우진은 포위망을 슬쩍 둘러보고는 가방 포위망이 약해 보이는 곳으로 군을 이끌었다.
“전군 나를 따르라!!!”
“우오오오!!!!”
“파라디소스 만세!!!”
우진이 한쪽으로 돌격진형을 진행하기 시작하자 파라디소스의 기마대가 그대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돌진력은 부족해도 우진이 앞장서서 적들을 처리하면서 길을 내기 시작하자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고도 중장기마대가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아무리 약간의 피해라고 해도 중장기병 하나에 들어가는 육성 시간과 장비 그리고 인력을 생각하면 그 약간이 너무 뼈 아팠다.
‘제길···. 내 실수다. 적의 기마대를 시험해 보려고 너무 일찍 서둘렀어.’
우진은 자기 자신을 탓했다.
원래의 계획은 공성전이 본격화 되면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싸워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적의 기마대의 군세를 보고 반응을 살피고자 선제 공격을 한 개 실수였다.
그런 사소한 판잔 미스 때문에 결국은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입고 만 것이다.
“아아앗!!!”
우진은 후회 속에서도 신들린 듯이 검을 휘둘러서 포위망을 돌파하는 것에 성공했다.
“크릭서스!! 이대로 아군을 이끌고 후퇴하라.”
“전하!! 전하께서는 어쩌시려는 겁니까?”
“난 여기서 후방을 지킨다.”
“제가 남겠습니다. 전하가····.”
“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우진은 버럭 화를 냈다.
마시르 라면 설령 우진이 날 죽여라. 라고 명령해도 그대로 그 명령에 따른다.
하지만 크릭서스는 달랐다.
충성심은 마시르에 뒤지지 않지만 맹목적으로 우진을 맹신하는 그런 점에서는 많이 부족했다.
그게 이런 지휘부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휘부의 마찰은 충성심과 신뢰감이 부족했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충성심이 너무 지나쳐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전투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이렇게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상황에서는 사공이 둘이면 곤란하다.
크릭서스의 행동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라디소스의 군단에 마이너스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자신은 충성심의 말로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동기가 좋은 결과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짧은 불화를 놓치지 않고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달려와서 다시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포위망의 두께가 약간 얇아지는 것을 대가로 치르고는 그 대신에 포위망을 한 겹 더 형성했다.
원형이었던 포위망이 마치 표주박 형태처럼 변한 것이다.
이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려면 상당한 수준의 지휘력이 있어야 했다.
“큭···. 크릭서스!! 나하고 같이 뚫는다. 다른 놈들은 뒤처지지 마라!!!”
“옛!!!”
“옛!!!”
“옛!!!”
============================ 작품 후기 ============================
충성심이 강하다고 마냥 훌륭한 부하가 되는 것은 아니죠.
크릭서스하고 본격적으로 호흡이 맞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어야 할 우진이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